각 후보 지닌 ‘정반대의 위험성’
韓, 한반도 관리 능력 보여야
3일(미국 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대선이 전례 없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인단 수에서 바이든 후보가 우위를 유지하고 있고 많은 언론이 바이든 당선을 점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누구도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현장투표와 우편투표에서 나타나는 극심한 표 쏠림 현상, 예상보다 높았던 ‘샤이 트럼프’의 비율, 선거를 통해 분출된 미국 사회 내의 지역·계층·인종 갈등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승리자가 되든 과거와 같은 깨끗한 승복선언과 원활한 정권 이양(혹은 재집권 구상)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라는 점이다.
우리와 세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그 결과가 한반도와 세계에 가져올 여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대선 이전부터 우리는 누가 승리하면 미·북 정상 간 협상을 선호해 온 스타일상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에 유리할 수 있고, 다른 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동맹을 강조해 왔으므로 방위비 분담 등의 협상에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런데 각 후보가 지닌 정반대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 현실이다. 일종의 ‘희망적 사고’에 따라 각 후보가 가진 우리에게 유리할 수 있는 점만을 선별적으로 보아온 것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누가 되든 간에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가 그리 만만치 않은 형국이었다. 현재의 예측대로 새로운 바이든 시대가 출범한다고 해도 우리가 안게 될 딜레마는 만만치 않다.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과 동맹의 결속을 선호해 온 민주당의 원칙을 고려할 때 바이든은 우리의 남북대화 의지에 지지를 보낼 것이지만, 이것이 국제적 제재의 틀이나 ‘북한 비핵화’보다 앞서가는 상황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신뢰성 하락과 인권유린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그에 대해 북한을 일단 믿어보자고, 인권 문제는 당분간 좀 묻어두자고 접근했다가는 과연 한국이 미국과 같은 길을 가는 국가인가라는 자체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반면 트럼프 2기가 시작될 경우 이제는 재선과 공화당 주류의 지원 부담으로 자유로워진 그가 북한과 훨씬 더 큰 딜을 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의 예측불가능한 행보가 불러올 수 있는 상황, 즉 2017년 미·북 긴장의 재현과 한반도 위기도 동시에 걱정해야 한다.
현재는 이러한 위험에 또 하나의 불확실성이 더해진 상황이다. 앞으로 두 달간 새로운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는 내년 1월 20일까지 미국은 대선 후유증을 극심히 앓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두 달 이상을 한반도 문제에 신경 쓸 수 없는 정책 공백기간이 생김을 의미한다. 이 기간 한반도 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투명성이 북한의 조바심과 도발 유혹을 자극해 평양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한반도 긴장을 급격히 고조시키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미국에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든 그들은 이 기간을 한국이 어떻게 관리해 나갔는가에 주목할 것이다. 과연 한국은 남북한 관계를 주도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가. 서울의 정책과 메시지는 평양정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미국은 이러한 한국의 협력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보다 세계와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은 믿음직한 동맹국일까 아니면 어디로 튈지 모르거나 자기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인 존재일까. 워싱턴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기에 내년 1월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북한에 대해 현 상황을 오판하거나 예단하여 자신들의 ‘전략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이 결코 북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평양의 난국을 더해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 일관된 협력과 지원 의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을 우회하거나 무시해서는 어떠한 일도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점 역시 납득시켜야 한다. 그동안 평양은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한국은 이를 수용할 것이라는 듯이 행동해 왔다. 그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대화나 소통을 거부해 왔다. 이제 북한의 긍정적 태도를 격려하고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도 한국이 분노하면 북한이 바라는 어떤 것도 결코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함께 보여줄 시기이다. 그게 가능해야 남북 협력도, 한반도 평화도 우리 뜻대로 이룰 수 있다.
* 본 글은 11월 05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