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부터 북·중 접경지역을 덮친 60년 만의 대홍수로 중국의 경우 압록강 유역 단둥(丹東)시에서만 3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한 지역의 피해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소집되고,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가 편성되었을 정도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1일 대한적십자사 명의 성명을 통해 수해 구호·복구에 필요한 물자를 긴급 지원할 용의가 있고 북한의 조속한 호응을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북한은 이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하 김정은)의 발언을 통해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규정했고, 북한 매체는 ‘한국 쓰레기’라는 극단적 표현까지를 동원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지원을 사양하면서도 “앞으로 반드시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가장 진실한 벗들, 모스크바에 도움을 청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유엔 상주조정관실, 국제적십자사(IFRC) 등이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은 여전히 자력복구만을 고집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의 도모”를 120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추진해왔다. 2022년 5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 국면에서 대북 백신 지원 용의를 밝힌 것도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에도 북한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전반적인 의료여건이 부실하고 백신과 치료제를 갖추지 못한 북한에서 주민들이 얼마나 많은 자유를 통제당하고 정신적·물리적인 고통을 감내해야 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은 지난해 말 남북관계가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고 규정했고, 올해 초에는 우리가 북한의 ‘제1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이라고 선언했으며, 지난 5월부터는 기존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더해 ‘오물 풍선’을 수시로 살포하는 등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한에 대해 인도적 지원 의사를 거듭해서 밝히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 역시 헌법상 우리 국민이고 고난의 근현대사를 함께 하며 자유를 갈구했던 동족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수해 복구와 관련해 “나라의 근본인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으며 인민의 리익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습니다”라고 주장했고, 북한 매체는 이를 ‘위민헌신’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정은이 진정 ‘위민헌신’하기를 원한다면 택해야 할 것은 핵무기에 집착하여 인민들의 곤궁을 외면하고 전방 지역에 250개의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를 배치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외부 위협의 환상으로 주민들을 오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우리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정부 역시 북한의 거부나 무응답과 관계없이 북한 내에 인도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북한 주민들을 도우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북한 정권이 통일을 부정하더라도 “남북한은 분단을 극복해야 할 같은 민족”이라는 우리의 묵직한 메시지와 진정성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본 글은 8월 13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