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이 7월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우려 속에 광복절을 앞두고 파행 조짐을 보이는 한·일 관계의 향후 전개 방향과 한국과 일본 정부가 취해야 할 외교노력에 대한 여러 전망과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한·일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외교적 유화 제스처를 취할 의사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한·일 관계 전반을 규정하는 국제정치구조요인을 고려하면, 어떠한 관계 회복 노력도 결국 단기적으로는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배려 와 선의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국에 실망하고 더욱 불신하게 되는 역효과만을 초래 할 수 있다.
주식투자가 사이에는 “주식시장의 반등은 인위적으로 되지 않고 경제의 펀더멘털 (fundamentals)이 개선될 때 시작된다.” 라는 잠언이 있다. 현재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양국정부와 국민, 그리고 주변국가들이 깊이 우려하여 빠른 개선을 바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주식시장 반등의 비유와 같이, 한·일 관계 반전의 계기는 그 구조적 요인이 변할 때 비로소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올해 하반기까지는 양국 간의 관계회복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뿐만 아니라 작금의 어려운 한·일 관계는 양국 정부의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한국의 대일정책이 관계악화로 인해 예상되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향후 관계 회복에 맞춰 최선의 포지셔닝(positioning)을 통해 장기적 이익을 극대화할 준비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하여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제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한국정부는 일본의 과거사 부정발언 및 행동과는 차별적으로, 보편적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지지하는 한국의 모습을 부각하는 외교전략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은 비단 일본만을 향한 정책이라기보다 동북아 관련 국가 모두에 게 한국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대하여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다면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9월의 G20 정상회의는 한·일 정상회담의 기회이면서 동시에 우리 나라의 입장을 세계주요국가에 전파하고 이해와 지지를 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한국이 일본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성숙한 외교로 높이 평가 받을 것이다.
한 • 일관계의 장기적 악화현상
일본민주당 정부 집권 초기(2009~2010년)를 제외한 최근 10년 동안의 한·일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자민당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등장은 한·일관계가 냉각기로 접어드는 시작점이 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 이후 같은 해 8월 13일 최초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단행했다. 국내외의 비판과 반대 속에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5년 5개 월의 재직기간 동안 모두 6차례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2005년 3월에는 일본 시마네 현 의회에서‘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제정 조례안을 가결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 명의로 ‘대일 신독 트린’을 발표하여 일본의 독도 영유권 강화 움직임에 대응했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경계심은 대미외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록에 의하면 2005년 3월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국무장관이 한국정부와 북한핵무기 개발대응책을 조율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80분 동안 라이스 장관을 접견하며 그 중 45분을 일본 문제를 논의하는 데 할애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6월 조지 W. 부시 대통령 과의 워싱턴 정상회담에서도 일본의 태평양 전쟁과 식민정책에 대한 반성의 부재와 잘못된 역사관을 장시간에 걸쳐 비판했다.1
2009년 8월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며 집권한 것을 계기로 하토야마 유키오 정부가‘아시아 공동체’ 외교비전에 대해 발표하자 일본민주당 집권 기간에 한·일관계가 급속히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칸 나오토 내각과 노다 요시히코 내각을 거친 일본의 민주당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파트너쉽을 구축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오히려 한·일관계는 2012년에 위기를 겪게 되었다. 양국은 역사인식과 독도문제를 두고 설전을 거듭했다. 8월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다. 식민지시대 폐해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 없이는 일왕의 방한이 불필요하다는 요지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후, 한·일관계는 심각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자민당 당수가 두 번째로 내각총리직을 맡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선에서 승리하여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향후 한·일관계에 대한 상반된 전망이 나왔다. 낙관론자들은 과거 이명박-노다 시대의 한·일관계 악화는 불안정한 정권 구조와 권력누수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양국에서 동시에 새 정권이 출발하고 한·일외교가 새 틀에서 시작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전망하였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논란이라는 정치적 부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대일포용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였다. 또한 2013년 7월 21일 참의원 선거 에서 압승을 거둔 아베 정부가 거침없이 일본 우경화의 기치를 올릴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상호 방기(放棄) 상태에 빠진 한•일관계: 문제는 정치 지도자의 신념보다 구조적 조건
박근혜-아베 시대의 한·일관계의 미래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낙관론은 한·일관계를 구조적틀에서 분석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구조적 요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축소하고 긍정적인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비관론은 양국 정부의 통치스타일을 고정불변으로 가정하고 향후 한·일관계를 전망하는 경향이 있다. 외교정책이 최고결정권자의 신념과 정권성격에 영향을 받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내 정치에서 원칙주의를 고집한다고 해서, 탄력 있는 실용주의 외교와 대북정책을 배격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반면 일본 정치외교 전문가인 박철희 교수가 지적하듯이 아베의 집권을 곧바로 일본의 극우화로 결론짓는 것은 일본을 보는 한국형 착시현상이다. 박 교수의 말대로 아베는 ‘이념형 인간’으로 함부로 행동하기보다 국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는 일국의 총리다.2
아베 총리는 자민당의 압승요인이 민족주의감정에 호소가 아닌 경기회복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승리 후 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강한 일본’의 근원은 경제력이며 경제부흥 없이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거나 사회적 안정을 성취하길 기대할 수 없다.”라고 강조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3
그렇다면 왜 한국과 일본정부의 양자관계 개선 노력은 지지부진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인가? 왜 아베 정부는 한국과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악화시키는 정부관료의 돌출발언과 행동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고 있는가? 직설적으로 말해 현 상황에서는 한국도 일본도 상대방을 절실히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은 일종의 ‘상호 방기 (mutual abandonment)’상황에 놓여 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은 자국의 필수국가이익을 실현하는 데 상대국가와 협력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이다. 더 나아가 상대국가가 자국의 핵심국가이익실현에 걸림돌이 된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적극적인 양자관계 개선 노력이나 ‘배려외교’를 구사할 인센티브가 없다.
현 한·일관계는 2002~2003년 노무현 정부와 미국의 부시 행정부 간의 상호 방기 관계와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 2003년은 한미동맹이 반세기를 맞이하는 중요한 시점이었으나, 한·미안보협력관계상 가장 어렵고 첨예한 시기이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효순·미선 학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가 이어지며 미국에 대한 비판론이 팽배했다. 이러한 비판은 한국이 외세로부터 진정으로 독립하여 한반도 상황을 안정시키고 종국적으로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미국과 거리 두기’ 혹은 ‘미국 버리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으로 이어졌다.
한편 당시 미국은 반미촛불시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듯한 한국정부의 행동에 불만과 우려를 표시하며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 파트너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상태였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북한의 핵개발이 사실로 판명이 되었음에도 자주외교의 이름으로 미국과 거리를 두고 민족화합이라는 명분을 통해 북한에 가까이 가려는 한국의 움직임을 미국은 심각한 신뢰의 문제(serious breach of faith)로 받아들였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공헌과 희생을 폄하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한국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한국 버리기’식의 정책 기조 변화가 워싱턴에서 팽배했다.4
노무현-부시 시대 초반의 상호 방기 상태가 2004년 이후 차츰 극복되며 한·미관계가 개선되었다. 그 이유는 한국과 미국이 자국의 핵심국가이익을 추구하는 데 상대국과의 정책협조가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다만 2004년의 한·미관계와 현재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이 이제까지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상대방과 적극적으로 관계개선을 도모할 정치적·경제적·안보적 인센티브가 없는 상태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자국의 핵심국가이익을 실현하는 데 상대방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핵심국가이익으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대응과 군사도발억지, 한국경제발전의 토대 마련에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군사도발을 방지하고 핵미사일 위협을 해소하는 데 일본과의 협조가 필수불가결하 다고 판단했다면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 정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일본과의 안보 협력보다는 미국과의 전통적인 안보정책공조를 강화하고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선택이다. 경제협력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무역상 대국인 점은 사실이지만,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상황에서만큼 일본과의 경제협력이 절실한 상황은 아니다.
일본은 외교·안보분야에서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견제에 있어 일본은 미·일 군사동맹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일본이 미국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보이며 집단적 자위권을 조건부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노선을 끌어 가고 있는 이유이다.
우리나라는 한반도 평화안정과 북핵문제해결을 위해 미국과 중국 G2 체제에서 신뢰외교 와 균형정책(alignment policy)을 추구하고 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한·일 양국의 안보정책이 동북아 지역 내 공산권의 군사적 팽창과 전쟁 방지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한국과 일본이 각국의 안보 위협 우선순위에 공동 합의 하거나 정책을 조율하는 과정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진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이 대중 중시의 방향으로 경시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표명하며 양국관계 개선 노력을 한국의 중장기 외교정책 방향이 뚜렷이 드러난 이후로 미뤄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항상 2퍼센트 부족한 일본의 ‘배려외교’
현재 한·일관계가 악화된 또 다른 이유는 양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실종된 데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양국관계의 개선을 희망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구조적으로 상대국과의 정책협력이 우선순위가 아닌 현 시점에서는 양국 모두 골치 아픈 문제의 발생을 최소화하는 게 상책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 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역사문제 사과와 해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태도를 먼저 보일 것을 요구하는 ‘기다리는 외교’를 하고 있다.5 이에 맞서 일본은 나름대로 우리나라와 협조하여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있지만 한국이 입장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 ‘배려외교’를 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회의론으로 치우치고 있다.
아베 총리와 일본정부는 2013년 상반기에 스스로의 기준으로는 역사문제에 대해 대단히 양보하면서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가의 입장에서는 그 진정성을 충분히 인정할 만한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2퍼센트 부족한 배려외교’ 의 반복이었다.
아베 정권은 우호적인 한·일관계를 희망한다고 하면서도 종군 위안부 문제, 고노 담화 및 한·일관계개선 노력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은 표명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베 정부는 한국에 특사를 보내 2013년 2월의‘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연기하거나 혹은 중앙 정부가 후원하는 국가 행사로 치르지 않을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불과 사흘 앞둔 2월 22일의‘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인 시마지리 아이코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내각부 정무관을 보내 이번 행사를 일본 정부 당국자가 최초로 참석한 사실상 국가 행사로 주최했다. 이러한 결정은 아베 총리가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 공약으로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국가 행사로 격상시키겠다고 한 공약을 지킨다는 국내 정치적 고려와 한국의 반발을 예상하여 행사의 수위를 조절하는 외교적 고려가 조합된 결과였다. 또한 2013년 4월에는 아소 다로 부총리와 이나다 도모미 행정개혁상 등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양국 간에 예정되었던 정부고위관료 회담이 불발되기도 했다.
최근 동아시아컵 한·일 축구경기 때 우리 응원단이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하는 플랜카드를 건 것에 대해 일본의 문부과학상이 한국의 국민 수준을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요미우리 신문은 사설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 글랜데일 시에서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고 7월 30일을 ‘한국위안부의 날’로 지정하여 기념한 것을 두고 일본정부에 고노담화의 재검토를 촉구했다.6 아베 총리는 오는 8월 15일 일본 종전기념일에 자신을 포함한 내각의 핵심 각료 3인인 아소 다로 부총리,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각료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지만, 다른 각료의 참배여부는 개인이 결정할 ‘마음의 자유’라는 뜻을 밝혔다.7 이러한 일본 정부의 국내 정치와 국제관계 사이에서의 미묘한 줄타기 행보는 한·일관계복원에 대한 아베 정부의 진정성과 신뢰를 의심하게 만드는 함량미달 배려외교의 또 다른 예가 될 것이다.
2013년 7월에 발표된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각국에 대한 호감도, 신뢰도, 영향력 평가, 그리고 국가수장 호감도 네 가지 요소에서 한국인은 일본과 아베 정권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부록 참조). 먼저 국가호감도 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호감도는 지난 1년간 10점 만점에 평균 3점으로 낮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직후인 7월 초 평균 4.92점을 기록하여 전년대비 약 24퍼센트 증가했다(부록 표 1).
국가 신뢰도 평가에서도 한국인들은 일본(11.4%)보다 중국(31.7%)을 더 신뢰하고 있으 며, 일본을 한국과 지리적·역사적·문화적 공유가 적은 이스라엘(19.0%)보다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지목했다(부록 표 2). 국가수장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한국인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10점 만점에 평균 6.29점), 시진핑 중국 주석(5.35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4.08점) 순으로 호감을 보였으며, 아베 일본 총리의 호감도는 평균 1.65점 으로 북한 김정은 위원장(평균 1.14점)과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다(부록 표 3). 주변국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지난 1년간 부정적으로 유지된 점을 감안한다면, 한·일관계가 앞 으로도 상당기간 냉각된 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G20 한•일 정상회담과 가치외교를 활용할 때
한·일관계가 당분간 개선될 여지가 없는 현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대일 외교정책은 무엇이 있을까? 그저 상황이 더 악화되더라도 일본이 한국의 요구를 수용하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것일까?
한·일관계는 시한을 두고 서둘러 개선될 문제가 아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인정과 사과, 그리고 배상에 대한 구체적인 조건과 시한을 정해놓고 일본 측의 입장변화를 촉구하는 식의 대일외교는 성과를 보기 어렵다. 과거사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정부관료와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아베 정부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일 간의 고위급 대화 제의를 받아들이겠다는 식의 조건부 대일외교도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한·일관계를 한국-일본 이라는 양자적 틀에서만 바라보거나, 단기적 외교성과를 거두는 데 중점을 두는 대일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정부가 일본만을 대상으로 한 외교노력에서 벗어나 다각도의 대일외교정책을 구사함으로써 한국이 한·일관계를 주도할 수 있는 장기적 토대를 서서히 구축해 나가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향후 대일외교정책은 두 가지의 구체적인 정책옵션을 통해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아베 총리와 전제조건 없는 정상회담외교를 적극 검토해볼 수 있다. 둘째, 인류 보편의 가치를 수호하는 중견 국가로서의 모습을 외교정책에 녹여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재고해 나가야 한다.
최근 아베 총리는 동남아 순방 중 한·일 정상회담과 일·중 정상회담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5~6일 G20 회담에서 한·일 정상 간의 회담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적어도 아베 내각의 임기가 보장된 2016년까지 싫든 좋든 서로를 상대해야 한다. 한·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앞으로 3년 동안 일본이 ‘박근혜 표 대일정책’을 바꾸려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원칙과 상호신뢰에 입각한 박근혜식 외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한·일 양국이 근본적인 신뢰구축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아베 총리에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정책은 비단 일본만을 향한 정책이 아니다. 동북아 관련 국가들은 한국이 어떻게 일본을 대하느냐를 관찰하면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한국의 역량과 역할에 대하여 평가하게 마련이다. 특히 2012년에는 동북아 정세에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 대부분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일본의 아베 총리,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그리고 대만의 마잉주 총통은 적어도 향후 4년간은 동북아 정세를 두고 서로를 상대할 수 밖에 없는 장기적으로 고정된 구도가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서울프로세스)의 성공은 이렇게 고정화된 동북아 국제정치 구도하에서 어떻게 관련 국가들의 공감과 지지를 확보하는 데 달려있다.
몇몇 관련국에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신뢰구축을 목표로 하는 한국정부가 왜 일본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는지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련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프로세스에 대한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보여주고, 동북아 지역평화와 협력의 걸림돌은 한국이 아닌 일본의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G20 한·일 정상회 담은 한국이 대화와 협력을 통한 동북아의 평화와 신뢰구축을 이끌어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개방되고 자신 있는 선도국가의 이미지를 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은 G20 정상회담 동안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더욱 소원해지는 것은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대아시아 재균형전략(Rebalancing Policy)의 성공적인 추진에 부담될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 두 아시아 국가와의 동맹관계를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략수립에 십분 활용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향후 한미안보관계의 운영과 협상에서 ‘일본카드’를 레버리지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조건적 집단 자위권 행사원칙을 반영해 12월에 발표할 예정인 일본의 신방위대강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미국을 통해 한국을 견제하는 일본식 ‘통미봉남(通美封南)’ 외교로 박근혜 정부의 원칙외교를 바꾸거나 비켜갈 수 없다는 확고한 우리의 입장을 미국에 전달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박근혜 정부는 자국의 과거사를 예외주의 논리로 방어하려는 일본과는 차별적으로, 인류보편의 가치외교에 앞장서는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외교적 노력을 경주 해야 한다.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발언과 같은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회피와 상황논리에 맞서, 우리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아시아 국가 간의 역사문제일 뿐만 아니라 성노예와 납치라는 보편적 여성인권문제로 부각시키고 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미국과 같은 민주국가의 국내 정치이슈로도 재정의되고 있다.8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침략에 대한 정의(定義)가 국제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발언을 했다. 미국에서는 일본 정부가 마치 태평양 전쟁을 일본의 미국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아닌, 미국이 시작하고 일본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대응한 전쟁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아소 다로 부총리의‘바이마르 헌법과 나치’ 발언은 유럽국가들과 국내지식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과거사 부정이 세계 각국의 자국역사이해와 국내 정치 이슈화되면서 일본의 국제적 위상과 입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속되는 일본 정치인들의 과거사 부정 발언은 상당기간 한·일관계의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저해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부정 발언에 비난으로만 대응하는 것이 아닌 국제규범과 인류보편적가치에 입각하여 식민지 시대의 침탈과 인권유린에 대한 한국입장을 국제사회에 꾸준히 설명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문제와 독도문제에서도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대하고 일본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사 기간 | 2012.08.14 ~08.16 |
2013.01.03 ~01.05 |
2013.03.30 ~04.01 |
2013.05.02 ~05.04 |
2013.07.01 ~07.03 |
---|---|---|---|---|---|
미국 | 5.55 | 5.70 | 5.81 | 5.74 | 5.61 |
일본 | 2.93 | 3.31 | 3.19 | 2.93 | 2.96 |
중국 | 3.97 | 4.45 | 4.38 | 4.22 | 4.92 |
북한 | 3.19 | 2.99 | 2.03 | 2.07 | 2.27 |
구분 | 신뢰함 | 신뢰하지 않음 | 모름/무응답 |
---|---|---|---|
미국 | 5.73 | 37.0 | 5.7 |
유럽연합 | 48.0 | 31.2 | 20.8 |
중국 | 31.7 | 61.8 | 6.5 |
러시아 | 19.9 | 58.7 | 21.4 |
이스라엘 | 19.0 | 50.9 | 30.1 |
일본 | 11.4 | 85.0 | 3.6 |
이란 | 6.1 | 70.9 | 23.0 |
북한 | 5.6 | 90.2 | 4.2 |
전체 비교표 | 호감있음(%) | 보통(%) | 호감없음(%) | 모름/무응답(%) | 평균(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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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 | 56.9 | 23.8 | 11.6 | 7.7 | 6.29 |
시진핑 주석 | 35.4 | 24.1 | 21.7 | 18.8 | 5.35 |
푸틴 대통령 | 14.0 | 25.0 | 33.4 | 27.6 | 4.08 |
아베 총리 | 5.0 | 9.0 | 76.5 | 9.5 | 1.65 |
김정은 위원장 | 2.3 | 6.3 | 85.1 | 6.2 | 1.14 |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자료수집과 정리를 도와준 이민수, Samuel Mun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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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oichi Funabashi, 2008. The Peninsula Question: A Chronicle of the Second Korean Nuclear Crisis. Washington D.C.: Brookings Institution Press,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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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철희, “아베의 ‘일본’제대로 보기”, 문화일보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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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Jonathan Soble,“Abe Issues Party Rallying Cry after Poll Win,”Financial Times, July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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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Nicholas Eberstadt,“Our Other Korea Problem,”The National Interest, Fall 2002; Richard V. Allen,“Seoul’s Choice: The U.S. or the North,”The New York Times, January 1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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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설: 문제는 아베 총리의 진정성이다”, 중앙일보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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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ditorial: Refute Recent Moves in U.S. to Distort Comfort women Issue,”The Yomiuri Shim- bun, August 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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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극인 “아베, ‘각료들 8·15 신사참배는 자유’”, 동아일보 (2013.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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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07년 7월 미하원이“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하여 일본정부에게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하 원 결의안 121)에 찬성한 경우가 한 예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