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매체 블룸버그의 설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77) 전 뉴욕시장이 민주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에 파란이 일 조짐이다. 3선 뉴욕 시장 출신인 블룸버그는 지난 25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물리치고 미국을 재건하겠다”고 대선출마 선언을 했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2020년 대선을 향한 민주당 후보 경선전은 진보와 중도파의 싸움으로 묘사됐지만 블룸버그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뀔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늦게 출발한 블룸버그가 17명 후보와의 예선을 거쳐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경우, 다음 대선은 뉴욕 억만장자들의 대결이 될 수도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3월 칼럼에서 대선 불출마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8개월 만에 ‘반 트럼프’를 전면에 내세우며 출마 선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국가안보,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밝힌 것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파고들겠다는 전략인 듯하다. 물론 지지율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블룸버그의 평균 지지율은 2.3%다.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 전 부통령(29.8%)이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19.3%),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8.5%)보다 낮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LP에서 입증된 경영능력과 3선 뉴욕시장으로서의 성공적 시정(市政)경험이 최대 장점이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 뉴욕시장으로 재직하며 “뉴욕을 다시 번창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포브스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세계 11번째 부자이며, 순 자산이 약 500억 달러다. 트럼프 대통령보다 약 17배 많은 액수다. 블룸버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 다음 선거에 5억 달러 기부를 밝힌 바 있어 대선 자금은 최소 5억 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등 모든 후보자의 선거자금보다 많다.
뒤늦게 출마 선언을 한 블룸버그가 민주당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70여 년의 미 대선 역사상 늦게 출사표를 던진 인물 중 대통령으로 당선된 경우는 없다. 대선 후보가 된 경우는 민주당의 아들라이 스티븐슨이 유일한데 그는 1952년 대선 때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에게 패배했다. 따라서 블룸버그의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블룸버그가 민주당 대선 후보지명에 실패하는 경우다. 블룸버그는 뒤늦게 경선에 참여한 만큼 다른 17명의 민주당 예비 후보들과 달리 내년 2월 경선전이 치러지는 아이오와, 뉴햄프셔,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건너뛰고 3월 3일 슈퍼화요일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슈퍼화요일 예비투표는 대의원표가 1, 2위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비롯해 14개 주에서 실시된다. 민주당 대의원표의 35%(1358표)가 걸린 만큼 전문가들은 이번 슈퍼화요일에서 선전하는 후보의 승리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고 전망한다. 만약 블룸버그가 슈퍼화요일 예비투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면 대선 도전은 중단될 것이다.
둘째, 블룸버그가 슈퍼화요일에서 선풍적 바람을 일으켜 반 트럼프 대세론을 형성할 경우다. 이렇게 되면 뉴욕 억만장자 간의 대선전이 현실화할 것이다. 셋째, 슈퍼화요일에 표가 분산될 경우인데, 어렵지만 가능성은 있다. 중도 성향 표가 분산되고 진보 성향 표가 뭉칠 경우 블룸버그는 불리하다. 반면, 표가 골고루 분산될 경우 블룸버그는 회생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로 지명되기 위해선 내년 7월 13일 전당대회 전 총 대위원 3768표의 절반인 1885표를 먼저 장악하는 게 관건이다. 만약 누구도 절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전당대회에서 758명의 슈퍼 대의원들이 대선 후보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 중도 성향 후보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도부가 블룸버그를 선택할 수 있다.
블룸버그의 등장으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이 더욱 불확실해진 만큼 한국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열 것이냐, 아니면 민주당의 어떤 후보가 백악관을 탈환할 것이냐에 따라 한·미 동맹은 물론 북핵, 그리고 동북아 정세 등에 주는 함의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블룸버그는 국제주의와 다자기후협력 외 자유로운 무역을 선호하는 온건파이고,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도 깊은 친분이 있는 인물이어서 한·미 동맹은 트럼프 시대의 갈등에서 조화와 협력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블룸버그뿐만 아니라 그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중도 후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더욱 더 복잡해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군에 대해 세밀히 대비하면서 네트워킹을 강화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 본 글은 11월 27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