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미국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북핵 관리’라는 두 가지 문제를 분리해서(decoupling) 다루자는 논의가 한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전후해 북한의 핵무기 실험,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일시 정지만도 대단한 성과이고 자신의 외교 성공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근래 발언에서는 과거 25년간 미국이 일관성 있게 주장해온 북핵의 완전한 제거라는 목표는 거의 실종된 상태다. 2020년 재집권을 위한 대선을 앞둔 지금 그에게는 근거가 박약해도 북핵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 ‘한 건’이 필요하다.
물론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적 계산을 이용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도 이렇게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데 동의하는 양상이다. 6·30 미·북 정상 회동에서 실무자 협상 재개에 합의는 했지만, 그것이 반쪽의 북한 비핵화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과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고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남북 관계에 있어 핵무기를 앞세워 남을 압박하고 남측의 양보를 강요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도 그런 디커플링 추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현재 북핵의 완전한 폐기에서 물러서는 것을 확고하게 반대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과 언론을 포함한 여론 조성자들은 국내적으로는 국민의 경각심을 키우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미국의 정계·전문가·언론과 공조해 북핵 제거와 북핵 인정을 분리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여론을 모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자는 1990년대 초반, 북핵 해결의 중임을 맡았던 사람의 하나로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송구스럽고 안타깝게 생각한다.
북핵 문제가 미국 안보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질 때 이는 한·미 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안보 혜택을 베푸는 나라이고, 한국은 수혜국(受惠國)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그는 미·일 동맹도 불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미국이 1953년 한·미 동맹을 맺을 때 한국을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유일한 목표는 아니었다. 미국의 폭넓은 이익이 있었기 때문에 한·미 동맹을 맺고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킨 것이다.
당시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재침을 막는 것도 하나의 목표였지만, 소련의 팽창을 봉쇄하고 일본을 방위하고 아시아 대륙에 전방기지를 확보하고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동맹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상당히 유익한 것이었다. 현재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달라진 것은 중국이 소련을 대체한 것뿐이다.
한·미 동맹은 미국이 북한 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필요 불가결한 존재다. 그러나 반쪽의 북한 비핵화를 그 문제의 해결로 치부할 경우 한·미 동맹은 그만큼 평가절하될 것이다. 반면, 한국으로서는, 비핵화 국가로서 북핵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억지력과 억지 정책에 더욱더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형국이다. 동맹이 더욱더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
한·미 양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념적 편견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무엇이 국가의 안보 이익에 필요한 정책인지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하기 바란다.
* 본 글은 7월 8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