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소집된 북한의 제14기 12차 최고인민회의에서 관심사였던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통한 대미정책 방향 제시는 없었고 ‘통일‧민족 지우기’ 헌법 개정 내용 공표도 없었다. 또 5년의 대의원 임기가 끝난 지(2019년 선출) 2년이 지났다. 이에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형식상의 ‘주권 기관’이고 노동당의 정책 보조 기관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고인민회의가 북한의 정책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정권기관 간 힘의 분배를 반영하기도 하며, 이 회의에서 김정은 및 간부들의 발언들이 지니는 함축성이 적지 않음에 따라 2019년 4월 이래 6년의 14기 최고인민회의 활동을 종합‧분석했다.
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지연은 김정은의 ‘통일 지우기’ 헌법 개정 지시를 향후라도 완결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며, 2026년 9차 당대회 이후로 더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6년간 12차례 소집된 최고인민회의를 분석하면 회의 소집 절차, 주기, 의제 선정 면에서 정례화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권한 행사 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도 주기적으로 전원회의를 소집해 입법권 및 내각 감독권을 행사했다. 이번 최고인민회의 소집에서 특히 주목되는 헌법 개정은 김정은 집권 이후 김정은 권력세습을 위한 개정, 국무위원장의 권한 강화를 위한 개정,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개정과 기타 실무적 개정 등 여덟 차례 있었다. 김정은의 시정연설은 다섯 차례 있었으며, 2021년 이후에는 매년 한 차례씩 시정연설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 시정연설은 내외 정책 방향 전반을 개략적으로 소개하면서 대남‧대미‧핵 문제 등 특정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김정은의 입장을 밝히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제14기 구성 이후 북한의 권력 구조에서 더욱 위축된 것으로 평가된다. 최고인민회의 운영의 제도화‧입법 활동의 상대적 활성화‧대의원 선거제도의 변화 등 약간의 기능 변화도 있었으나, 그것은 여전히 당 독재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능 조정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그 같은 변화가 누적되면 당국이 의도하지 않은 역할 전환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 통치 기구의 다원화와 북한 사회 내 주권재민 의식 고양을 위한 대북정책 활동을 지속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개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형식상 북한의 입법기구이다. 임기 5년의 대의원 687명으로 구성된다. 김일성‧김정일과는 달리 김정은은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았다. 최고인민회의 회의는 매년 상‧하반기 1~2월(2020년까지는 4월)과 9~10월에 1~2일간 두 차례 소집되며, 휴회 중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위원장 최룡해)가 그 권한을 행사한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노동당이나 국무위원회에 대한 견제와 균형 기능은 존재하지 않으며 조선노동당 또는 국무위원장이 결정한 정책을 지지‧찬동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막강한 정부 견제력을 가진 대한민국 국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회의에서 논의되는 내각의 그해 사업 보고, 예‧결산 승인, 법령 채택과 수정, 그리고 국가기구 인사 개편을 통해 북한의 정책 방향과 조직개편 내용이 개략적으로 알려지기 때문이다. 최고인민회의는 이러한 문제에 관한 토론 및 의결 권한을 법적으로 가지고 있으나 형식적 권한에 불과하며, 사실상 김정은이나 노동당이 사전에 결정한 정책을 발표하는 기구로 활용되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회의가 소집되면 특히 김정은의 시정연설 가능성이 주목된다. 과거 김일성은 해마다 최고인민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했으며, 김정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2011년 12월에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은 2019년부터 간헐적으로 시정연설을 통해 북한의 대내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곤 했다. 북한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25년 1월 22~23일 이틀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2차 회의를 개최했다. 그러나 회의에서는 관심사였던 김정은의 시정연설을 통한 대미정책 방향 제시는 없었고 ‘통일‧민족 지우기’ 헌법 개정도 없었다.1
따라서 임기가 경과했음에도 대의원 선거가 왜 지연되고 있는지, 대의원 선거제도의 변화는 없는지, 최고인민회의 회의 소집 주기와 의제는 어떻게 정례화되었는지, 최고인민회의 휴회 기간 중 권한 대행 기관인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와 책임자 최룡해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북한 권력 구도 내에서 최고인민회의의 위상과 역할에 변화가 있는지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특히 관심의 대상인 김정은 집권 이후 헌법 개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김정은은 어떤 주제로 시정연설을 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이뤄지는 북한의 헌법 개정과 김정은의 시정연설은 북한의 대내외 정책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분석 소재이다.
14기 최고인민회의 주요 활동
1. 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지연 및 선거법 개정 배경
먼저 14기 들어 북한은 왜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직을 배제했는지, 임기 5년의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후 6년 가까이 경과했음에도 15기 대의원 선거가 왜 지연되고 있는지, 그리고 2023년 8월의 대의원 선거제도 일부 조정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살펴본다.
북한은 제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2019년 3월 10일에 실시해 687명의 대의원을 선출했다. 당시 선거에서 2014년에 선출된 13기 대의원 중 340명 정도를 교체(약 50%)했다. 김정은은 13기와는 달리 14기 선거에 대의원으로 나서지 않았다. 북한은 2019년 8월 헌법을 개정해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겸직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추가해 김정은의 대의원 불출마를 사후적으로 정당화했다. 최고지도자 김정은의 지위를 일개 대의원의 일원이 아니라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존재로 권위를 격상하는 조치로 평가된다.2
북한은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한 달 후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를 소집해 국무위원장 재추대를 비롯해 국무위원들과 내각 구성원 등 이른바 국가지도기구를 재구성했다. 북한 헌법상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임기는 5년으로 2024년 3월에 15기 대의원 선거와 4월에 새로운 국가지도기구 구성이 예정되었으나 선거는 없었고 대의원 임기는 연장되고 있다. 북한 헌법에는 ‘불가피한 사유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지연되면 대의원 임기는 연장할 수 있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북한은 대의원 선거가 지연되는 ‘불가피한 사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 임무’를 부과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은 2024년 1월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대남노선을 전환하면서 최고인민회의에 이와 관련한 헌법 개정을 요구했으나 그 ‘통일 지우기’ 헌법 개정도 지연되고 있다. 아마도 최고인민회의 재구성보다 더 중요한 정치행사인 9차 당대회를 앞두고 있어 15기 최고인민회의 구성은 당대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최고인민회의가 최고권력자나 노동당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은 대의원 선거제도 조정 문제이다. 북한은 2023년 8월 3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법’을 개정했다. 대의원 후보자 추천 방법을 ‘고정지표 대상’과 ‘선발지표 대상’으로 이원화하면서 ‘선발지표 대상 선거구의 경우 2명 추천’ 제도를 신설했고, 대의원 후보자와 선거자들 간 상봉 모임(1~2일) 제도도 신설했다.3 북한이 경선을 거쳐 대의원 후보로 등록하고 대의원 후보와 유권자(선거자)가 소통하는 자리를 만나도록 선거법을 개정한 데 따라 실시된 첫 선거가 2023년 11월 26일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다. 지방인민회의 대의원은 4년마다 도 인민회의와 시군 인민회의 대의원 2만 7천여 명을 선발한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당 전원회의에서 “인민회의 대의원선거 방법이 인민적 성격을 부각시키고 주권기관의 사업이 더욱 민주주의적으로 개선되어…지난 11월 대의원 선거가 인민들의 공민적 자각과 애국 열의를 고조시켰다”고 평가했다.4 그동안 당이 내정한 인물 한 명이 단독 후보로 나선 것과 비교하면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경쟁’을 도입한 셈이며 후보자가 표를 가진 주민을 직접 만나 ‘소통’하도록 한 것도 북한으로서는 큰 변화다. 민심 관리 방법으로 약간의 선거제도 변용을 도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선거자 회의’ 구성이나 자격심사 기준(‘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 등, 대의원 선거법 37조)으로 볼 때 참정권 보장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2. 14기 최고인민회의 회의 의제‧주기 분석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형식상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으로 ‘입법권’을 행사한다. 헌법(91조)에 규정된 최고인민회의의 권한은 헌법 및 부문법 제‧개정, 국가 대내외 정책의 기본원칙 수립, 국무위원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내각 총리 등 선거, 인민경제발전계획 및 집행 상황 보고‧심의, 예결산 보고‧심의, 조약 비준 및 폐기 권한 등이다. 이 같은 권한은 당의 방침을 구체화하는 수준에 불과하나 점차 최고인민회의 활동이 정례화‧제도화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토의된 의제를 보면 상반기 회의에서는 총리의 내각 사업 보고, 재정상의 예결산 보고, 법률 채택, 조직 문제 등 네 가지 의제 논의를 정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표1] 참고). 이를 원칙으로 하면서, 김정은이 시정연설을 하는 경우 내각 총리의 보고는 제외되었고(2019.4, 2024.1), 법률 채택과 인사 개편 수요가 없는 회의(2021.1, 2024.1)가 이따금 있었으며 그 대신 기구 개편(2024.1)이나 중앙재판소 사업 보고(2025.1)가 대체되었다. 하반기에는 법률 채택과 조직 문제가 주 의제이며, 간헐적으로 ‘특정 법 집행검열‧감독 결과 보고’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후자의 사례로는 ‘재자원법 집행검열 감독 정형’(2021.9), ‘금융부문법집행 총화’(2023.9), ‘품질감독법 집행검열감독 정형’(2024.10) 등 세 차례 보고가 있었다.
한편 14기 최고인민회의의 회의 소집 주기를 보면, 북한은 회의를 매년 두 차례, 상반기에는 1~2월(2020년까지는 4월)에 하반기에는 9~10월에 각각 1~2일간 소집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에만 하반기 회의 소집이 없었다. 전반적으로 회의 소집 주기나 의제 선정 면에서 정례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40여 일 전에 최고인민회의 소집 일자와 의제를 사전에 예고하는 등 회의 운영도 점차 제도화되었다. 이 같은 정례화‧제도화가 민주적 절차로 보기는 어렵지만 대의제도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는 평가는 가능하다고 본다.
[표 1]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회의 토의 의제
3. 최고인민회의 상무위원회 및 상무위원장의 활동상 특징
14기 최고인민회의 들어 대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최고인민회의 회의 외에 상임위원회 등 상설조직의 활동에 대한 북한 선전매체의 보도가 증대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군 총치국장‧당비서 등을 역임한 최룡해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난 이후 그의 위상이 부분적으로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활동은 권력의 행사와는 거리가 멀며, 잦은 법 규정 채택이 소수 구성원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하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2024년도 활동을 종합하면, 최고인민회의 회의 2회(1월,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 5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상무회의 3회 소집이 있었다([표 2] 참고). 최고인민회의 회의는 1년에 1~2일씩 두 차례 소집될 뿐이며, 15명으로 구성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권한을 대행하는 사실상의 최고인민회의 운영 주체이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는 상임위위원장 최룡해, 부위원장 2명(강윤석‧김호철), 서기장(고길선), 상임위원 11명 등 총 15명이 참가한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상무회의’는 상임위원장, 부위원장들, 서기장 4명이 참가한다.
최고인민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의 입법권 행사 범위의 차이는 한국 국회의 법 제정권과 행정부의 시행 규정 제정권 차이와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국회 휴회 중이라도 우리 행정부는 입법 대행권이 없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북한 헌법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에 제기된 새로운 부문법안과 규정안, 현행 부문법과 규정의 수정, 보충안을 심의‧채택하며 중요 부문법은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을 받는다”고 규정(116조 2항)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전원회의’와 ‘상무회의’로 구성된다. 전원회의는 위임 입법권 외에 ‘국토건설계획’ 승인, 중앙재판소 판사 선거 기능도 수행한다. 상무회의는 전원회의에서 위임받은 문제들을 결정하는데(북한 헌법 119조), 전원회의와 상무회의의 입법 권한 차이는 규정하지 않았으나 우리 행정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권의 차이와 유사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2024년 12월 최고인민회의가 제14기 제1차 회의 이래 ‘인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입법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고 선전했다.5 그 사례로 최고인민회의 회의에서의 재자원화법, 원격교육법, 제대군관생활조건보장법, 육아법 채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서의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 채택, 살림집관리법6 채택, 사회주의농촌발전법, 시군발전법, 시군건설세멘트보장법 채택, 원림록화법, 의료법, 도로교통법 등 수정 보충을 들었다.
[표 2] 2024년 최고인민회의 회의, 상무위원회 전원회의‧상무회의 소집
상훈‧포상권 행사도 최고인민회의의 주요 기능이다. 지난해 노동신문이 공개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이뤄진 상훈‧포상 활동으로 ‘김일성 훈장‧김정일 훈장‧공화국로력영웅 칭호 수여, 김정일 청년영예상‧김정일 소년영예상 수여, 26호 모범기대영예상 수여, 사회주의애국림 칭호 수여, 모범준법단위칭호 수여, 모범교육시 칭호 수여, 모범체육군 칭호 수여, 3대혁명붉은기 수여, 모범학교들에 영예의 붉은기 수여, 모범준법단위 칭호 수여’가 있었다. ‘평양시 화성구역에 새로 동, 거리를 내옴에 대하여’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발표되었다.
다음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역할이다. 2019년 4월 14기 최고인민회의 지도부 구성 이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총정치국장과 당 근로단체 비서를 역임한 최룡해가 6년째 맡고 있다. 중국은 개혁기에 전국인민대표대회 지도직에 힘 있는 인사가 취임하면서 전인대를 강화해 자신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편으로 활용함으로써 전인대의 독자성 추구에 이바지했다.7 그러나 북한의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서 이 같은 능력 발휘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과는 거리를 두는 모습으로, 전임자 김영남이 1998년 9월 이래 20년 이상 역임한 점에서 최룡해도 장기 보임할 가능성이 있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최룡해의 활동은 당 정치국 상무위원 일원으로 중앙당 행사 참가가 주류를 이룬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은 최고인민회의 행사 주관, ‘국가 대표’로서의 활동, 지방 생산현장 ‘현지요해’라는 세 가지 행사에 한정되었다. 노동신문이 보도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의 2024년 공개 활동 기사는 총 66건이다. 그중 신년 경축 공연‧방북 러시아 대통령 환영식 등 김정은이 주관하는 행사에 동참하거나, 태양절에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전승절 노병 방문 등 고위 간부들이 집단으로 참가하는 중앙당 행사 등 정치행사 참석이 3분의 2(44건)를 차지한다. 나머지 3분의 1(22건)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 주재, 외국 신임장 접수‧외빈 접견, 평양‧황해도 등 생산현장 ‘현지 요해’가 각각 6~8건으로 비슷한 비중을 차지했다.8
4. 김정은 집권 이후 헌법 개정 및 ‘통일 지우기’ 문제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2025년 1월까지 헌법을 여덟 차례 개정했다. 2012~2016년 사이 세 차례 개정은 김정은 권력승계를 위한 것으로, 2012년 4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직제 신설, 2013년 4월 헌법 서문에 ‘금수산태양궁전’ 관련 내용 추가 및 12년 의무교육제 반영, 2016년 6월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국무위원장(김정은)은 공화국 최고영도자’로 규정했다.
2019년 두 차례 개정은 국무위원장의 권한 강화를 위한 개헌이었다. 2019년 4월 국무위원장의 “국가 대표” 추가, “무력총사령관” 호칭 등장, “민족의 태양”‧“선군 사상”‧“선군 정치” 삭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추가가 있었다. 2019년 8월 국무위원장 권한을 확대하여 최고인민회의 법령, 국무위원회 중요 정령‧결정 공포권 및 외교대표 임명‧소환 권한을 부여하면서, 앞에서 언급한 “국무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거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2023년 9월 헌법 개정은 ‘핵보유국’을 기정사실화하는 개헌으로 ‘제4장 국방’에 “공화국은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핵무기발전을 고도화한다”는 조항(58조)과 “공화국 무장력의 사명은 국가주권과 령토완정 등을…군력으로 담보한다”는 조항(59조)을 추가했다(서문의 ‘김정일이 조국을 핵보유국으로 전변’ 표현은 그대로 둠). 이 개헌은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정책 법령화’로 ‘핵 사용(선제공격) 5대 조건’을 제시함으로 핵 개발 노선을 불퇴(不退)의 노선으로 못 박은 데 이은 조치로 평가된다.
2024년 10월과 2025년 1월의 헌법은 실무적인 개정이었다. 2024년 10월 헌법상 노동(16→17세) 및 선거(17→18세) 시작 나이를 수정한 것은 12년 의무교육제 실시에 따라 고급중학교 졸업 나이가 2024년부터 달라진 데 따른 조치였다. 2025년 1월에는 중앙재판소‧중앙감찰소 명칭을 최고재판소‧최고검찰소로 다시 바꾸는 헌법 개정이 있었다. 법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명칭을 ‘최고’ 표현으로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미 잘 알려졌듯이, 2024년 연초에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론’ 대남노선 전환 방침을 제시하면서 관련한 헌법 개정을 지시했다. 그의 지시에 따르면 북한 헌법에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크게 네 곳으로 판단된다. ‘서문’의 ‘김일성‧김정일의 조국통일위업 실현과 조국통일운동 추진’ 사항 및 헌법 9조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 실현’에서 ‘통일‧민족대단결’ 삭제, ‘제4장 국방’에 ‘대한민국 무력 점령’ 추가, ‘제7장 국장, 국기, 국가, 수도’에 영토조항 추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은 2024년 10월 및 2025년 1월 최고인민회의 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관심사인 ‘통일‧민족 지우기’와 영토조항 추가 헌법 개정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2024년 10월 17일 노동신문은 남북연결 도로 폭파 소식을 보도하면서 폭파 배경으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이 요구”에 따른 것으로 해설했다. 이에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북한이 최고인민회의에서 ‘대한민국 = 적대 국가’ 취지로 헌법 개정을 하고는 뒤늦게 밝힌 것으로 보도했다.9
그러나 필자의 판단에는 북한이 ‘통일‧민족 지우기’ 헌법 개정을 했는지는 불투명해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적대 국가로 규제한 헌법 요구’는 2023년 9월에 헌법 ‘제4장 국방’에 추가한 내용을 두고 ‘대한민국을 적대 국가로 규제’했다고 해석한 것으로 판단되며, 특정 국가를 적대국으로 규정하는 헌법은 어떤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인 것으로 알고 있다.10
[표 3]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헌법 개정 내용
5.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사례 분석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은 북한의 당면한 대내외 정책 방향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정책연설이나, 자의적으로 행해질 뿐 정례화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특히 2024년 이후 김정은이 정치행사나 현지 지도를 계기로 수시로 연설함으로써 그 유용성이 줄어들고 있다. 시정연설 양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김정은은 2019년 4월~2025년 1월 사이 12차례 소집된 최고인민회의 회의 중에 다섯 차례 참석하여 시정연설을 했다. 2019년 4월 첫 시정연설을 했고 2021년부터 4년간은 매년 한 차례씩 시정연설을 했다. 올해 1월 22~23일 소집된 회의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대미정책 방향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언론의 관심과는 달리 시정연설을 하지 않았다.
시정연설은 북한의 ‘대내외 정책 방향’, ‘당면 투쟁 방향’, ‘당면 과업’이 주제이다. 과거 신년사 또는 당 전원회의 연설의 ‘당 사업 총화 및 과제 제시’처럼 국가 정책 전반의 실태를 평가하고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다른 점은 시정연설에서는 특정 주제에 대해에 대한 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정책 과제 전반은 개략적으로 거론하면서 “남조선 당국의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비판(2019.4), “남한의 이중적 태도” 비판(2021.9), “비핵화는 절대 없다”고 강조(2022.9), “핵보유국 지윈 변경 불가”(2023.9), “통일‧민족 지우기” 등 대남노선 전환(2024.1) 등 주로 대남‧대미 및 핵 정책 방향을 피력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김정은은 올해 들어 주요 정책회의는 물론 각종 정치행사나 현지 지도를 계기로 연설하는 빈도가 늘었다. 수해복구 현장에서, 지방공업공장 건설장에서 연설했고, 과거에는 하지 않았던 정권 창건일(9.9) 즈음 국정연설도 했다.11 김정은이 국정 관리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주민들의 정책에 대한 불신 증대를 시사한다.
[표 4] 김정은의 14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결론 및 시사점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14기 들어 북한 권력 구조에서 위상이 제고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 빠졌고, ‘국가 대표권’ 중에 중요 권한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이관되었다. 당 정치국 상임위원 서열도 내각을 지도하는 기관임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내각 총리보다 낮아졌다.
그러나 약간의 기능 변화도 있었다. 과거보다 최고인민회의 운영이 제도화되고 입법 활동도 활발해졌으며, 일부 복수 대의원 추천제도의 시행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정은 주장대로 “주권기관의 사업이 더욱 민주주의적으로 개선되었다”(2023.12 당전원회의)고 평가하긴 더욱 어려우며 최고인민회의는 여전히 당정책을 정당화하고 집행하는 보조 기구로서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북한 정권이 여전히 강한 당독재 체제로서 최고인민회의가 ‘민의를 대변하는 입법기구’로서의 역할은 극히 미약하지만, 앞으로도 느린 속도로나마 역할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이 법적 통제에 의한 체제관리를 강화하는 가운데 지난해 지방발전정책 추진 과정에서 보였듯이 김정은이 정책에 민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증대되어 언젠가 북한 당국이 의도하지 않은 기능 발휘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가 장차 개혁기 중국의 전인대나 통일 추진기 동독의 의회처럼 기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견고해 보이는 북한 ‘수령‧당 독재체제’의 이완이 필요하다. 북한 정권이 자랑하는 ‘최장 사회주의 정권’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북한 주민들에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북한이 노동신문에 게재한 ‘한국 국회의 현직 대통령 탄핵안 가결’ 보도를 계기로 남북한 의회제도에 대한 비교 의식을 고취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12
북한 체제의 다원화를 위해 북한 주민들에게 인권의식 주입과 함께 주권재민 의식을 고양시키고 시민사회의 형성을 촉진하며, 나아가 통치 기구 간의 견제와 균형 기능이 확대되도록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직접적인 교류‧협력이 통로가 차단된 현재로서는 다양한 소통 매체나 탈북민을 활용하고, 남북한이 동시 수교한 국가들에게 북한과 의회 차원의 교류를 권고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또 장기 과제인 것으로 보이나, 앞으로 남북 당국 간의 대화가 활성화된다면 의회 내지는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해 나간다면 북한 체제의 개혁‧개방과 다원화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필자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동독 의회의 기여를 기억한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10월 통일하기까지 과정에서 동독 공산당은 와해되었고 동독 인민회의는 기능이 활성화되어 동독 민주화와 통일 지원 입법으로 동서독이 ‘합의 통일’의 형식을 취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13 장차 북한에서도 노동당의 위상과 역할이 위축되는 대신 최고인민회의가 북한 사회의 개혁개방과 다원화, 남북통일을 위한 입법 지원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점이 최고인민회의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2025년 1월 최고인민회의 의제는 ①“내각의 2024년 사업정형과 2025년 과업에 대한 문제” ②“2024년 국가 예산집행의 결산과 2025년 국가예산에 대한 문제” ③건재공업법 채택 ④바다가양식법 심의 채택 문제, ⑤“중앙재판소의 2024년 사업정형에 대한 문제” ⑥“사회주의헌법의 일부 조문을 수정할 데 대한 문제”(중앙재판소‧중앙검찰소를 최고재판소‧최고검찰소로 개칭) ⑦조직 문제였다. 한기범, “북한의 2025년 1월 최고인민회의 14기 12차 회의 평가”, 『북한』, 북한연구소, 2025년 2월호 참고.
- 2. 김정은은 집권 후 첫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였던 2014년 3월 9일 13기 대의원 선거에서는 제111호 백두산 선거구에 후보로 등록돼 당선됐다. 그러나 2019년 3월 10일 14기 선거에는 대의원으로 등록하지 않았다.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김정은을 국무위원장으로 추대하면서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로 표현해 687명의 대의원 중 한 명이 아니라 ‘전체 인민’을 대표하는 존재라서 대의원을 맡지 않은 것으로 해석됨.
- 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각급 인민회의 대의원선거법’(2023.8.30. 수정보충) 제32조는 “대의원후보자의 추천은 고정지표대상, 선발지표대상을 선발하는 방법으로 한다. 고정지표대상을 선거하는 선거구에는 1명을, 선발지표대상을 선거하는 선거구에는 지역별, 부문별, 직업별, 직급별, 남녀별 균형을 맞추어 2명을 정해주는 원칙에서 대의원정수보다 많이 선발한다”고 규정함. 제38조는 “대의원후보자 등록의 결정은 선거자회의(대의원후보자 자격심의 회의, 300~100명으로 구성)에서 비밀투표의 방법으로 한다 …선발지표 대상으로 추천된 2명의 대의원후보자들에 대한 투표에서는 지지표를 많이 받은 1명의 대상에 대해서만 후보자등록을 결정”한다고 정함. 47조는 “대의원후보자는 등록이 끝나는 차제로 1~2일간 해당 선거구에 나가 선거구의 실태를 료해하고 선거자들과의 상봉모임도 진행하면서 직접 자기 소개를 하고 결의도 다져야 한다”고 규정함. 국가정보원, 『북한법령집 상』(2024.8), pp. 87~89.
- 4.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 『노동신문』, 2023.12.31.
- 5. “우리 국가특유의 인민적성격에 대한 뚜렷한 증시”, 『노동신문』, 2024.12.27.
- 6. 이 법이 밝힌 ‘살림집배정에서 지켜야 할 원칙’에 의하면 “혁명렬사가족, 애국렬사가족, 전사자가족, 피살자가족, 영웅, 전쟁로병, 영예군인, 제대군관, 교원, 과학자, 기술자, 공로자, 로력혁신자, 세쌍둥이세대, 다자녀세대 같은 대상에게 살림집을 우선적으로 배정하여야 하며 탄부, 광부, 용해공, 먼바다어로공, 철도기관사 같은 힘든 부문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문화적이고 충분한 휴식조건이 보장된 살림집을 배정하여야 한다. 또한 자연재해로 집을 잃은 세대, 국가적조치로 철거된 세대에 살림집을 의무적으로 배정하며 가족수와 출퇴근조건, 거주조건, 신체조건 등을 고려해 배정하여야 한다”고 밝힘.
- 7. 개혁기 중국은 공산당 통치체제를 유지하면서 말단기관에 직접선거 제도를 도입하거나 비공산당원의 국가 고위직 영입을 확대하는 등이 민주적 방식을 도입했고, 또 국회격인 전인대의 대정부 견제‧비판 기능을 강화함. 김재철, 『중국의 정치개혁: 지도부, 당의 지도력 그리고 정치체제』(서울; 한울, 2002), p. 169.
- 8. 참고로, 2024년 노동신문에 ‘조직비서 조용원’으로 나오는 기사는 50건으로 중앙 및 지방의 김정은 행사에 동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내각 총리 김덕훈’으로 나오는 기사는 83회로 생산현장 현지요해와 중앙당 행사 참석이 큰 비중을 차지함.
- 9. 북한의 통일 관련 전술은 크게 대남 무력적화론과 민족 공조 개념에 입각한 위장적 평화통일론 두 가지로 대별될 수 있다. 김정은은 2023년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통해 이중 위장적 평화통일론을 포기했지만, 무력적화론은 유지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의 ‘통일·민족 지우기’는 결국 위장적 평화통일론의 철회를 의미한다.
- 10. 김정은의 헌법 개정 지시 이행이 지연되는 이유는 개헌에 앞서 관련 문건, 역사‧교육 및 사상 교양 등에서 ‘민족 지우기’와 ‘통일 지우기’가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 실무적 선행 작업이 복잡‧방대한 이유로 ‘지연’된 것으로 추정됨. 이 같은 시행착오는 통일 지우기’ 개헌 지체가 연관 과제가 복잡하게 얽혀 합의가 쉽지 않음을 간과한 김정은 지시의 즉흥성을 시사한다. 김정은은 연초에 헌법 개정 작업과 함께 “‘우리민족끼리’와 ‘평화통일’을 상징하는 과거 잔여물 처리 대책 수립”도 지시함.
- 11. 김정은은 “위대한 우리 국가의 륭성번영을 위해 더욱 분투하자“ 제하 연설에서 “사회주의 신념에 관한 문제” 라며 지방공업발전 문제에 비중들 두면서 “핵무기를 기하급수적으로 늘일데 대한 핵무력건설정책 관철”을 강조함. 『노동신문』, 2024.9.9.
- 12. “괴리한국에서 윤석열괴뢰 구속기소, 피고인으로 전락”, 『노동신문』, 2025.1.29.
- 13.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음.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인 1989년 11월 말 콜 서독 총리는 동독이 사통당(공산당)의 독점 권력을 포기하고 자유‧비밀 선거를 보장하면 동독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하자, 그해 12월 초부터 동독의 저항 운동은 통일운동으로 바뀌기 시작함. 1990년 3월 18일 동독 최초의 자유선거에서 점진적 통일을 주장한 사통당(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과 사민당은 참패했고, 통일을 주장하는 기민련이 인민회의를 구성함으로써 공산당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의회가 민주적 의회로 재탄생하고 반공 변호사 기민련 후보자 드메지어를 총리로 선출함. 동독 10대 인민회의는 기득권 세력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1990년 4~10월 6개월간 신헌법에 사회주의적 요소를 삭제하고 동서독 화폐·경제·사회통합에 관한 법, 통일조약에 관한 법 등 통일을 위한 여러 법안을 의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