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가정보원은 10월 18일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12,000명 4개 여단 규모의 병력을 파병하기로 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들 중 선발대는 이미 러시아 극동지역의 각 기지에 배치되어 적응 훈련 중에 있고, 준비를 마치는 대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1 러시아는 북한군 참전 사실에 대해 부인해왔지만, 우크라이나 군 정보당국은 북한군이 11월 1일 경에는 러시아의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2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파병은 평양이 한반도 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발언과 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시점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북한은 10월 11일 외무성 명의의 ‘중대성명’을 통해 우리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침투했다고 주장하고 오물풍선을 부양한 이후 김여정의 잇단 담화(10월 12일, 13일, 14일)를 통해 우리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10월 15일에는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 연결구간의 북측 지역을 파괴했으며, 10월 18일에는 북한 국방성 대변인 명의 성명을 통해 우리가 북한에 무인기를 보낸 ‘증거’를 공개했다.3
북한의 이러한 행태는 결국, 북한이 남북한 간의 ‘적대’를 강조하면서도 당분간은 절연과 분리를 기정사실화하는 한편, 북러관계의 밀착 기조를 지속함으로써 중기적으로 북한의 내구력을 보장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이 지닌 논리적 한계를 주민들에 대한 사상통제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남 적대감을 최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한, 북한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를 통해 우리의 대북 및 통일정책에 대한 한국 사회 내 논란을 증폭시키는 것 역시 기대할 수 있고,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압박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파병은 별개의 조치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한반도에서의 중저강도 도발과 대러 파병을 병행함으로써 북러 밀착을 가속화하여 러시아로부터 대규모 경제 및 군사지원을 얻어내어 내부 통제를 강화할 수 있고, 중기적으로는 ‘핵 그림자’를 이용한 대남 도발 및 전쟁시 러시아라는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는 우선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에 대한 국내의 우려와 불안심리를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확실한 대비태세를 보여주고, 북한에 대해 『8.15 통일독트린』에서 제시된 남북한 대화협력체의 연장선상에서 남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협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제사회와의 공조하에 북한의 러시아 파병 부당성을 부각하는 한편, 파병의 실제 증거를 토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미동맹의 차원에서 북러 간 핵 위협 동맹에 대한 대응 논리를 적극 활용하여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한국의 자체 핵 능력 강화 등 ‘워싱턴 선언’을 뛰어넘는 ‘확장억제’ 보장 조치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의 배경과 딜레마
2023년 12월의 조선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연설에서 김정은은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로 고착되었다”고 주장했고, 금년 1월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에서는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킬 방안을 북한 헌법 개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는 한마디로 더는 기존의 ‘민족공조’와 ‘우리민족끼리’와 같은 개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통일을 부정하고 민족론을 폐기하는 노선의 반영이다. ‘적대적 두 국가관계’에서 ‘두 국가’는 남북관계의 속성을, ‘적대적’은 현상을 규정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후 김정은은 이를 북한 주민과 북한군에 집중 설파함으로써 기존 노선의 급격한 전환(‘민족공조’론)에 대한 조기 이해와 수용을 유도하려 했고, 군사태세 역시 그에 맞추어 대남 공격용 무기체계(순항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 방사포)의 위력을 집중적으로 시위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은 일견 김정은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 집권 12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핵무장이라는 선대(先代)와는 차별화된 업적을 이루어냈고, 자신에게 도전할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 것이고, 김주애의 후계자 내정설 역시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업적인 핵무장이 대를 이어 지속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핵무장을 통해 1970년대 이후 진행되어 온 남북한 간의 국력격차는 상쇄되거나 북한 우위로 변화했고, 남북한 관계는 ‘핵 보유국 북한’과 ‘어중간한 중견국 한국’이라는 북한 우위로 기울었다는 판단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5 그러나, ‘적대적 두 국간관계’론이 외형상의 표정 관리와는 무관하게 김정은의 불안심리를 반영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핵개발로 인한 고강도 경제제재 효과의 누적, ‘COVID-19’로 인해 충격을 받은 체제 내구력, 북한 주민들의 불만 및 의식변화 가능성 등 다양한 문제점이 산적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보수적일 경우 압박을, 진보적일 경우에도 관여정책(engagement policy)이 지닌 침투적 속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하에서 아예 남북한의 분리와 절연을 시도해야 할 필요성이 두 국가론으로 나타났을 가능성도 있다.6 실제로, 북한 내부 경제상황은 북한 당국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통계 수치와는 무관하게 불안 징후를 보이고 있고, 도시 편향 발전에 의한 지방의 불만 역시 커지고 있는 상황으로 평가되고 있다.7 북한 내 각종 일탈적 사회 현상들 역시 경제상황과 주민 불만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강력 범죄가 작년(2022년) 동기 대비 100여 건에서 300여 건으로 3배 폭증했고, 물자 탈취를 노린 사제 폭탄 투척 등 대형화·조직화된 범죄도 발생”했다는 2023년 7월 국가정보원의 보고 내용은 경제상황의 악화뿐만 아니라 공적 통제에 대한 강한 거부감과 반항심리가 북한 사회 내에 생겨나고 있음을 암시한다.8
이론적으로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은 두 가지 경로의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우선, 북한의 핵무장을 바탕으로 한국을 굴복시킬 경우, 북한 주도의 ‘협력적 두 국가관계’론으로 전환할 수 있다. 북한은 ‘적대적’이라는 것은 상황에 대한 규정이므로 변할 수 있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기반 제도 통일’을 포기하고 미북 핵군축회담 등 북한 의제를 수용하며, 이에 따라 한미동맹 이완 등을 택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협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우리 사회 내에서 목소리 높이기를 노렸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김정은은 북한의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남북한 관계에서 북한 우위가 지속 가능해지는 사실상의 공산화를 달성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 전쟁을 통한 점령도 가능하다. 반면, 불안감 때문에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이 선언되었을 경우, 북한은 ‘두 국가관계’ 보다는 ‘적대’에 방점을 둔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다. 공존보다는 배척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펴는 것이 유리하고 이것이 북한 내부 단속을 위해서도 유리하다는 판단하에, 민족공조론보다는 국제관계의 일반 원칙을 활용하는 것이 흡수의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향후 미북 혹은 북일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에 대비할 경우에도 한국을 적대시하는 것이 한국의 개입이라는 변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문제는 두 국가관계론이 논리적 딜레마를 지니고 있고, 이로 인해 ‘두 국가’관계론이나 민족론의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시간을 벌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북한 권력체제의 핵심인 ‘수령’은 노동계급과 당을 영도하여 혁명과 건설을 승리로 이끌어 나가는 등 혁명 위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존재이고,9 김일성이 북한 정권 창건기부터 내세웠던 구호는 바로 ‘조선반도에서의 혁명 완성’이었다. ‘두 국가론’은 이러한 혁명 과업(통일)의 포기와 연결될 수 있고, 이는 수령의 존재의의에 대한 의문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3대 혈연세습에 의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김정은 자신의 권력 토대를 부인하는 격이다. 또한, 북한에서 고도의 동원체제 유지는 결국 한반도 혁명 완성을 위한 “공화국 내 혁명역량 강화”라는 목표하에서 가능했다. 통일의 부정은 북한 주민들이 왜 내핍과 통제를 강요당하면서도 ‘자강’을 달성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분리와 단절은 또한 한국에 대한 열등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북한의 강한 조국통일 드라이브는 당시 한국에 대해 역량상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북한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었고, 이는 남북한의 국력균형이 한국 우위로 접어들기 시작한 1970년대 이후에도 북한이 ‘민족통일’ 구호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북한은 남북한 국력격차가 더욱 벌어지기 시작한 1980년 사실상 두 체제 병존으로 해석될 수 있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을 내세우면서도 ‘통일’을 부정하지는 않았다.10 통계청의 2023년 발표에 따르면 ’22년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2조 원으로, 우리(2,161.8조 원)의 1/60배(1.7%) 수준에 불과했다.11 외부 정보 유입으로 인해 한국의 국력을 북한 주민들이 더 잘 알게 될수록 북한정권이 추구하는 단절은 ‘핵 강국’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퇴행을 거듭해온 북한의 현실에 대한 은폐로 해석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논리적 한계는 북한이 금년 10월 7일~8일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0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고서도 그 자세한 내용을 외부에 공표하지 않은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10월 9일 북한매체들은 최고인민회의 개최 사실을 비교적 상세히 다뤘고, 헌법 수정·보충에 대해서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의장 최룡해의 발언을 통해 12년 의무교육제, 선거연령 및 노동연령 개정 등의 내용을 언급했지만, ‘통일’ 부정이나 ‘적대적 두 국가관계’ 규정, 그리고 영토 규정 등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았다.12 이로 인해 북한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이와 관련된 개헌을 하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도로 폭파 사실을 보도한 10월 16일 자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이 조치가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와 적대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13 북한이 애초 헌법 개정시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과 관련된 내용들을 이미 포함시키고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인지, 무인기 침투 주장과 남북 도로·철도 폐쇄와 관련해서 급조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고 해도 왜 헌법 개정의 다른 조항들은 외부에 보도하고서도 연초부터 김정은이 분명히 그 필요성을 규정한 ‘적대관계’에 대한 부분을 공표하지 않았는지를 충분히 설명하기는 힘든데, 이는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이 지니는 논리적 모순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김정은의 위기 의식과 ‘적대’의 강화, 그리고 對러시아 파병
김정은은 ‘적대적 두 국가론’이 지니는 두 국가 병존, 적대관계 강화의 두 경로 중에서 어느 한쪽을 조속히 선택하는 것이 북한이 당면한 난국을 돌파할 방법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두 국가 병존으로 이행하기에는 여건이 충분치 않고 주민들을 납득시킬 해법 역시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 국면에서 북한이 택한 것은 ‘적대’성을 강조함으로써 남북관계의 단절을 꾀하는 것이었고, 이는 김정은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무인기 침투 국면에서 북한이 보인 반응은 매우 격렬한 것이었고, 특히 김여정은 연일 담화를 쏟아내며 ‘잡종개’, ‘똥개’ 등의 비속어까지 사용하며 우리에 대한 비난에 열을 올렸다. 다만, 북한매체 보도에서도 일부를 식별할 수 있는 전단 내용은 북한 주민들의 빈곤과 억압적 통제 속에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김정은과 김주애에 관한 언급이었고, 김정은 가계나 정통성의 문제와 같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욕적 속성은 오히려 적었다. 북한매체가 민감할 수도 있는 이러한 내용들을 식별이 가능하게 보도했다는 것은 이 전단이 북한의 자작극이든, 실제로 ‘무인기’에 실려있었든, 아니면 무인기가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해 살포된 것이든 간에 그 내용 자체는 이미 북한 내에 유포되고 있었던 것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무인기’ 국면에 대한 북한의 격한 반응은 이러한 유형의 정보에 대해 북한 사회 내에서 일정 부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북한 주민들이 분노하고 정권 및 체제에 대한 반감을 품을 수 있다는 우려를 북한 지도층이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정보에 대해 거부감을 표출할 ‘핵심계층’도 있겠지만, 적대계층과 동요계층은 실제로 공감할 가능성이 있고, 만약 ‘핵심계층’마저도 적절한 보상은 못 주면서 충성만 강요한다는 인식이 더해지면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아무리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4) 등을 통해 북한 내에 정보 및 사상통제를 시도해도 어느 정도의 외부 정보 특히 한국에 관한 정보 유입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을 경우, 북한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 정보가 철저히 악의적이고 왜곡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일 것이다.
논리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경우 강제적인 주입을 통해서라도 사상통제를 이룰 필요가 있었을 것이고, 외부정보에 현혹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색출하고 처벌하는 데 중점을 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은 남북관계의 ‘적대’를 강조하고, 이에 의해 남북의 물리적 단절이 불가피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은 ‘무인기’ 국면을 통해 (1) 누군가 조직적으로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악의적이고 적대적인 세력이 있다, (2) 당연히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왜곡된 것이고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을 이간하려는 것이므로 믿을 필요가 없으며, 여기에 흔들리면 북한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음모에 동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3) 최근 북한에 대한 정보와 문화의 유입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외부의 불순한 세력이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이기에 믿어서도 흔들려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또한, 이 연장선상에서 남북이 물리적으로 단절되었고 앞으로도 이는 복원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통로를 폐쇄한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은 ‘적대’의 강조를 통해 대남과 대외 측면에서도 일정한 효과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대남 측면에서는 ‘한반도 위기론’을 조장하는 대남 메시지를 통해 우리 사회 내에 평화지상주의 및 대북타협론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고, 대외적인 측면에서는 서방, 특히 미국을 겨냥하여 적정 수준의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존재감을 높이고 미국 차기 정부(해리스든 트럼프든)의 대북정책 우선순위를 높이는 것이 주(主)목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파병은 이와는 별개의 조치인 것처럼 해석되기 쉽지만, 사실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파병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가 6월의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북러 新조약) 이후 명목상이 아닌 실질적 동맹관계에 들어섰음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철저한 적대국가’인 한국에 대항해 든든한 파트너를 확보하고 있고, 그만큼 북한 지도자들이 현 상황에서 한국의 ‘대결 책동’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 주민들에게 던지는 한편,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북러 간의 협력 강화로 인한 경제적 혜택을 기대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그동안 러시아에 대한 노동자 송출이 북한 경제의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러시아에 대한 10,000명 규모 이상의 병력 파병은 기존 노동자 송출 이상 가는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서방의 관측가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ICBM이나 핵잠수함 기술이 북한에 제공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14 직접적인 대북 무기지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군사정찰위성 등 사실상 북한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적용될 수 있는 지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의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11월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대해 언급하며 2024년 내 정찰위성 3개를 발사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5월의 발사 실패 이후 추가적인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러시아에 대한 파병을 계기로 더욱 적극적인 지원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이 보유한 핵 탑재가 가능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등의 성능 실험 데이터를 더욱 많이 확보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 대한 북한군 파병과 북러 밀착은 향후 대남 및 대미 차원의 행보에 있어서도 유리하다고 북한은 판단한 듯하다. 북러 밀착과 동맹관계로의 발전은 러시아가 북한의 핵 개발을 해결과제가 아닌 용인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와 함께 북러 간의 ‘핵 동맹’이 형성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과 러시아가 공히 미국에 대한 레버리지를 확대할 수 있고, 북한의 경우 중기적으로는 ‘핵 그림자(Nuclear shadow)’를 활용한 대남 도발 및 위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더욱이 북러 간 밀착은 중국을 자극하여 더 많은 중국의 지원을 이끌어내거나, 북한이 바라는 ‘북-중-러 대 한-미-일’ 구도를 형성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물론, 러시아 파병이 북한에게 이점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북러 新조약은 양국 간 군사지원의 가능성을 명기하고 있지만, ‘침공받을 때’와 ‘전쟁 상태’라는 조건을 분명히 전제하고 있다. 북한은 대한민국을 ‘적대국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조약의 당사자인 러시아까지도 한국에 의한 침공과 ‘전쟁 상태’라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의 병력 충원 문제로 인해 북한 지원까지 받아야 하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실제로 전력을 북한에 파견하기도 쉽지 않다.15 반면,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대한 파병은 (1)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란 단서를 해제할 경우, (2)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지역 진입을 제시할 경우 북러 新조약의 군사지원 요건 일부를 충족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보고를 UN 안보리에 해야 하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파병은 그 정당성 자체를 비판받을 수 있다. 현재 러시아가 북한군의 파병 사실을 부인하거나 언급을 회피하고, 북한 역시 이들을 러시아군으로 위장하는 조치를 취하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북한 행태 전망과 우리의 대응방향
북한의 대남 적대 간 고취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파병이 결국은 ‘적대적 두 국가관계’론의 딜레마를 탈피하기 위한 것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북한은 당분간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계속 증폭하는 책략을 지속할 것이다. 다만, 그동안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1) 3~4번에 한 번은 공언을 실행에 옮기고, (2) 자신들이 확전 통제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도발을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평양은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도발보다는 중저강도 대남도발을 통해 대남 위협과 긴장고조 효과를 극대화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강도 군사도발의 경우 우선은 북중 밀착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활용하려 하는 러시아의 의도와 배치되고, 그동안 대규모 화력공방에서는 오히려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던 북한으로서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북한은 ‘무인기’ 대응을 빙자하여 기관포나 고사포 사격을 비무장지대나 우리 GP, 군사분계선 일대에 가할 가능성이 있고, 해상에서는 자신들의 NLL 이남 ‘해상국경선’ 지역을 넘나들거나 해안포 사격을 가하거나 우리 어선에 대한 나포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 인력 1~2명, GP를 비롯한 일부 자산에 대한 총격 등 우리를 자극하고 즉시 대응을 주저할 만한 도발들을 북한이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서의 대규모 포사격 훈련,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통해 대남 군사우위 인상을 심기 위한 시도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북한은 남북관계가 철저한 ‘적대관계’이고, 지금이 통일이나 민족 등을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북한 주민들에게 반(反)강압적으로 주입시키는 한편, 우리의 여론 분열을 획책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에 대한 국내의 우려와 불안심리를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확실한 대응능력과 한미 연합대비태세(훈련 등을 통한)를 보여주는 한편, 북한에 대한 다양한 정보유입과 북한 주민과의 소통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8.15 통일독트린』에서 제시된 남북한 대화협력체의 연장선상에서 남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협의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북한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에서 대화를 제의하라는 것이 아니며, 한반도 긴장을 관리하기 위한 남북 간 최소한의 채널이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를 하라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국제 사회와의 공조하에 북한의 러시아 파병 부당성을 부각하는 한편,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견했다는 실제 증거를 확보했을 경우, 이제는 그동안은 추진하지 않았던 대우크라이나 무기 및 탄약 지원도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북러 밀착이 중기적으로는 핵동맹으로 발전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하여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 강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행정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북러의 핵 협박에 대한 대응은 한미의 분명한 공통이익이다. 따라서, 관련 비용과 부담을 한국이 부담할 수도 있다는 전제까지를 포함한 미국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 한국의 자체 핵능력 강화에 대한 미국 지원 등 ‘워싱턴 선언’에 비해 비약적으로 강화된 ‘확장억제’ 보장조치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北특수부대 1만2천명 우크라전 파병…1천500명 이미 러시아에,” 『연합뉴스』(2024.10.18.). 이들은 한국인과 용모가 비슷한 러시아 극동지역의 원주민으로 위장한 신분증과 러시아 군복을 소지하고 있다고 파악되고 있다.
- 2. 이에 대해서는 “Kremlin denies, falsely, North Korean military joining Russia’s war in Ukraine,” Voice of America
(October 17, 2024). https://www.voanews.com/a/kremlin-denies-falsely-north-korean-military-joining-russia-war-in-ukraine/7826328.html (최초검색일 2024. 10. 17); “Nearly 11,000 North Korean Troops In Russia Preparing To Enter The Fight Says Ukraine’s Spy Boss,” The War Zone (OCT 17, 2024).
https://www.twz.com/news-features/nearly-11000-north-korean-troops-in-russia-preparing-to-enter-thefight-says-ukraines-spy-boss (최초검색일 2024. 10. 19) 참조. - 3. “북한 “한국 무인기 잔해 평양서 발견…드론사 기종과 동일”,” 『연합뉴스』(2024.10.19.).
- 4. “2024 위대한 우리 국가의 부강발전과 우리 인민의 복리를 위하여 더욱 힘차게 싸워나가자,” 『로동신문』(2023.12.31.);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에서 강령적인 시정연설을 하시였다,” 『노동신문』(2024.01.16).
- 5. 고유환, “두 개 국가론과 자유통일론,” 국회 동북아평화공존포럼 주최 『두 개 국가론 논쟁』 토론회 발제자료 (2024.09.27.).
- 6. 차두현, “북한 2개 국가론의 정치외교적 의미와 파급효과 및 우리의 대응 방안,” 한반도 경제협력원 주최 전문가 간담회 발표 자료(2023.03.24.). 고유환 역시 북한의 두 국가론이 북한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실패를 자인하고 남측으로부터 오는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이 수령체제 유지 및 계승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우리국가제일주의론’과 ‘적대적 두 국가론’을 펴는 측면도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 7. 차두현·한기범, “북한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 분석: ‘획기적인 성과’와 대남 적대노선의 강조,”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4-02(2024.01.10.); 한기범, “북한의 ‘지방공업 발전 정책’ 평가,”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14-14(2024.05.27.).
- 8. 국가정보원의 보고 내용에 대해서는 “북한, 식량난 심화로 아사자·자살자 급증…강력 범죄도 전년比 3배,” 『문화일보』(2023.05.31).
- 9. 이교덕·김국신·조정아·박영자, 『북한체제의 행위자와 상호작용』,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 총서09-16-0(서울: 통일연구원, 2009), p. 27.
- 10. 그 이전까지 북한의 ‘연방제’는 두 체제가 병존하는 ‘연방’을 통일의 중간단계로 보았지만,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에 있어서는 이 ‘연방’을 통일의 최종형태로 보았다.
- 11. 통계청, “2023 북한의 주요통계지표,” 통계청 보도자료(2023.12.20).
- 12. 북한 제14기 11차 최고인민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1차회의 진행,” 『노동신문』(2024.10.09) 참조.
- 13.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남부 국경 동, 서부 지역에서 대한민국과 련결된 도로와 철길 완전 폐쇄,” 『조선중앙통신』(2024.10.16).
- 14. “N.K. troop dispatch for Russia may have broad implications for global security, order: experts,” Yonhap
News Agency(October 19, 2024). 물론, 당장 러시아가 이런 결심을 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꾸준한 병력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러시아 역시 이러한 거래까지 염두에 둘 가능성도 있다. - 15. 이에 대해서는 차두현, “북러 밀착관계와 『북러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의 함축성,” 아산정책연구원 『이슈브리프』, 2024-19(2024.07.31.), p. 7. 물론, 중기적인 관점에서 러시아와 북한이 핵 협박을 공동으로 가할 경우에는 굳이 러시아의 전력이동이 필요 없다는 점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