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열 달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면전 위기가 급부상 중이다. 두 나라의 충돌은 이란의 프록시 조직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이슬람저항군, 시리아의 군소 친이란 민병대는 물론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국인 미국도 끌어들일 수 있다. 나아가 유럽과 아랍 국가까지 양국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무엇이, 그리고 왜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 국면을 만들었을까. 두 나라는 전면전으로 치달을까. 두 국가는 역내 위상을 지키기 위해 레드라인을 밟을 듯 말 듯 하는 위험천만한 치킨 게임을 전개하는 형국이다.
◇무엇이
지난 4월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미사일과 드론 330여 기로 직접 공격했을 때 미국·영국·프랑스와 함께 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 친미 성향의 아랍 국가들은 미 중부사령부의 통합 방위 시스템하에서 이스라엘을 도왔다.
이들 아랍국은 이란발 미사일의 레이더 추적 정보를 빠르게 공유했고 미국·영국·프랑스·이스라엘 전투기에 자국 영공을 열었다. 가자지구의 반인도주의적 참사로 반이스라엘·반미 감정이 높은 시기에 아랍 무슬림 국가의 위상이 훼손될 수 있는 정치적 우려를 뒤로하고 이란의 위협에 맞선 전략적 연합을 선택한 것이다.
전 세계가 숨죽이는 일촉즉발 상황의 배경에는 하마스 최고 정치지도자인 이스마일 하니예 정치국 위원장과 헤즈볼라 창립 멤버인 푸아드 슈크르 사령관의 암살이 있다. 이들 이란 프록시 지도자의 암살 배후는 이스라엘로 보는 게 타당하다. 지난달 31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하니예는 테헤란의 안가에서 폭사했다. 정보와 안보 참패라는 굴욕 앞에 이란 당국은 외부에서 날아온 미사일 공격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 비밀요원이 두 달여 전 숙소에 미리 설치해 둔 원격조종 폭탄설에 무게가 실린다.
슈크르는 하니예의 암살 몇 시간 전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했다. 7월 27일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 마즈달 샴스 지역 축구장을 공습해 드루즈계 어린이 12명을 희생시킨 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이었다. 헤즈볼라는 배후를 부인했으나 로켓 잔해는 헤즈볼라 것이 분명했고, 이스라엘은 외과수술식 타격으로 헤즈볼라 사령관을 제거했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간의 팃포탯이 이쯤에서 잠시 마무리될 듯하던 차에 하니예가 또 암살됐다. 익숙한 불안이 중동을 엄습했다.
◇왜
이스라엘은 왜 헤즈볼라의 2인자를 제거한 지 몇 시간 만에 하마스의 대표까지 이란에서 암살함으로써 화약고에 기름을 부었을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부린 꼼수라는 설이 나돈다.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은 물론 최근 깜짝 당선된 개혁파 이란 대통령의 대미 관계 개선 노력을 방해하려는 치밀한 계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휴전이 성사되고 인질 귀환이 이뤄지면 네타냐후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막지 못한 국가 실패의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와 별개로 비리 혐의 재판 3건을 받아야 한다. 최근 이스라엘 국내 여론조사에서 국민 70% 이상이 네타냐후의 사퇴를 원했다.
하지만 이번 하니예 암살 사건은 이스라엘 정보국 주도의 ‘초당적’ 결단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하니예 제거는 이스라엘 국민의 바람이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란의 후원을 받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기습 공격해 민간인 900명과 군인 300명을 살해하고 240여 명을 납치했다. 이스라엘인들은 자신의 인생이 10월 7일 전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물론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정도 끔찍하다. 하마스 완전 궤멸을 목표로 한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으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3만9000명에 이른다. 이 중 하마스 대원이 1만4000여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정보국은 하니예의 거주지인 카타르가 아닌 이란에서 제거 작전을 치밀하고 고집스럽게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군사조직의 2인자 무함마드 데이프 사령관의 사망 역시 공식 확인했다. 하마스 지도부 제거의 연이은 성공으로 네타냐후의 입지가 잠시 강화됐겠지만 국내 압도적인 기세의 네타냐후 사임 여론이 크게 영향받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최고 정치지도자를 잃은 하마스와 안방에서의 귀빈 암살이라는 굴욕을 당한 이란은 가혹한 복수를 선언했다. 이란은 미국도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자국 연루설을 부인하며 휴전 협상 타결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지난 3일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다연장 로켓을 발사했고 예멘 후티 반군도 아덴만을 지나던 상선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란 프록시 역시 이들 ‘저항의 축’ 공동작전에 곧 참여할 것이다. 미국도 중동에 항모와 전투기를 추가 배치했다.
앞으로 중동 전면전의 트리거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 양상에 달려 있다. 헤즈볼라는 로켓과 미사일 15만∼20만기를 보유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보다도 뛰어난 화력을 자랑하며 시리아 내전에서 수년간 전투 경험을 쌓은 베테랑 전투원 2만5000명도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정면충돌하면 이란은 가장 중요한 전략자산인 헤즈볼라 보호를 위해 개입을 결정할 것이고, 이는 미국의 참전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힐 수 있다.
반대의 예측도 있다. 하니예의 죽음으로 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협상은 잠시 동력을 잃겠지만 하니예는 단순 메신저에 불과했기에 협상은 다시 열릴 수도 있다. 작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은 군사조직의 수장인 야히야 신와르가 주도했고 협상의 관건인 이스라엘인 생존 인질 115명의 정보는 그가 독점하고 있다.
그러나 300일이 넘는 이스라엘군의 작전으로 하마스의 거점지역과 대원 절반 이상이 사라진 상황에서 신와르에겐 조직 회생을 위한 옵션이 거의 없다. 이런 까닭에 휴전 협상 타결이 머지않았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벌써 하니예를 대신해 칼레드 메샤알이 새로운 하마스 정치국 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파국
이란과 이스라엘은 모두를 파국으로 이끌 전면전만큼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상대의 이러한 계산과 믿음을 잘 알기에 서로의 레드라인을 재차 확인하려는 숨 막힌 탐색 과정에서 더 과감한 치킨 게임이 벌어질 수 있다. 지금의 대결 국면이 바로 딱 그런 위기 상황이다.
* 본 글은 8월 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