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티스 (James Mattis) 국방장관이 곧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다. 국방장관직에 취임한지 2주가 채 되기 전에 동북아시아를 첫 방문지로 삼은 것이다. 전임자들의 취임 후 첫 방문지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순방을 통해 북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트럼프로부터 미국의 경제와 국방력에 무임승차한다고 지목 당한 한국과 일본이 그의 방문을 누구보다 반기는 이유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지 2주가 채 되지 않았지만 전임자인 오바마의 정책뿐만 아니라 오래된 미국의 정책기조를 뒤엎는 행정명령이 거의 매일 발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동맹에 대한 의무를 재확인하는 매티스의 동북아 순방은 기대 밖의 선물이다. 그렇다면 매티스는 왜 이렇게 급히 한국과 일본에 오는 걸까?
매티스의 동북아 순방은 북한의 도발이 임박한 가운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정책공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는 게 일차적 목적인 것으로 보인다. 보통 미 행정부 내에서 동북아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는 국무부의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이다. 이는 매티스보다 두 단계 아래 급이다. 그러나 북한의 중대도발이 임박했지만 아직까지도 트럼프의 동북아 정책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아직 임명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외에도 한반도 문제를 관장하는 국무부와 국방부, NSC, 그리고 정보부처 (DNI, CIA) 등의 기관 고위급 인사는 사안에 따라 5~8명 정도 되는데, 이 자리에는 후보조차 지명 되지 않았다.
매티스의 동북아 순방은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트럼프 외교안보진의 공백 때문에 국방장관이 스스로 나섰다는 뜻도 된다. 오바마는 물러나면서 트럼프에게 북한을 안보정책의 우선 순위로 둘 것을 충고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에 관련해 인사적, 정책적으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오바마의 충고에 트럼프 대신 매티스가 나서서 화답한 셈이다.
매티스의 방문은 동북아 정책을 담당할 실무진이 구성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다. 이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기존 동맹 중심의 동북아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일단 매티스는 트럼프의 외교안보진 중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매티스를 제외하면 트럼프의 외교안보 인사는 거의 모두 논란의 대상이다. 중국, 러시아, 북한과 이란이 모두 함께 이슬람 테러 단체와 연대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마이클 플린 (Michael Flynn)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미 대선 개입을 명령했다고 의심되는 푸틴과 친밀한 렉스 틸러슨 (Rex Tillerson) 국무장관, 그리고 트럼프의 이데올로그이자 미 국가 정보국장과 합참의장을 국가안보위원회 (NSC)에서 밀어내고 대신 자리를 차지한 스티브 배넌 (Steve Bannon) 백악관 전략수석 등은 미국의 전통적 외교안보정책을 부정한다. 이들을 묶는 공통점은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미국이 선도해 왔던 다자간 질서와 동맹체제에 대한 부정이자 세계화의 결실을 미국이 독식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외교안보진의 성향에 비추어 볼 때 매티스가 주창하는 동맹 중심의 안보관은 가장 반 트럼프적이다. 매티스는 미 해병대 대장으로 전역한지 4년이 채 되지 않아, 전역 후 7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으로 임명될 수 있는 제한에 걸려 있었다. 그런 그를 미 의회는 별 논란없이 통과시켜 195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군의 문민통제 전통을 깨뜨렸다. 그만큼 여야를 떠나 미 의회와 여론이 매티스에게 건 기대가 크며, 트럼프의 외교안보관에 대한 불신이 제도권과 재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반증이다.
매티스의 인사청문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그의 전통적 안보관이 잘 드러난다. 매티스는 국방장관으로서 해야 할 일로 첫째, 군의 준비태세 강화 (“strengthen military readiness”), 둘째, 동맹체제 강화 (“strengthen our alliances”), 셋째, 국방부 재무구조 조정 (“ bring business reforms to the Department of Defense”) 을 3대 우선 순위로 정했다. 참고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우려하는 분담금 문제에 관해선 그는 인사청문회 발언 중 단 한 차례 언급했고, 이마저도 원론적 차원이었다. 매티스의 이번 순방 목표는 트럼프 외교안보진 사이에서도 공격받고 있는 동맹체제의 재확인이다. 따라서 동맹을 뒤흔들 수 있는 분담금 문제에 관해서는 최소한의 원칙적 발언만 할 것으로 보인다.
매티스의 인사청문회 발언은 매우 함축적으로 중국과 북한에 대한 미 국방부의 장기적 대응 전략을 시사한다. 그의 전략은 적이 대응을 포기할 만큼 강력한 군사적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시퀘스터(자동 예산삭감 조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따라서 첫 목표는 군비증강이다. 이 부분은 트럼프 인수위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헤리티지 재단이 청사진을 제시했다. 트럼프 정부 아래서 미 육군 병력은 48만에서 54만으로 증가되고, 미 해군은 현 272척인 함대 규모를 78척의 전투함과 잠수함을 추가하여 350척까지 늘리며, 미 공군은 전투기 보유량을 100대 이상 늘릴 계획이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향후 10년간 5천억에서 최대 1조 달러 가량의 추가적 군비증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바마의 “핵 없는 세상” 은 일장춘몽이 돼버린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육해공 공격 수단인 핵 트라이어드 (triad), 즉 대륙간 탄도탄 (ICBM),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SLBM)을 첨단화할 계획이며, 미사일 방어체제는 더욱 강화된다. 이는 중국의 불안을 부채질 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의 핵전력 강화로 인해 상대적으로 작은 핵전력을 보유한 중국의 핵억지력은 붕괴될 수 있다.
이러한 미국의 강력한 대응이 있다면 오바마 정부 내내 “전략적 인내”로 인해 정체되었던 대북정책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북한에 유일하게 실질적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중국에 대해선 외교적 압박뿐만 아니라 군사적 압박 조치가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전략의 한계가 보인다. 군사적 조치를 통해 북핵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군사적 압박을 통해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고, 궁극적으로 북한 스스로 핵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낫다. 이러한 전략을 완성하는 것은 미국의 외교력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 필요한 신중함은 트럼프 외교안보진 사이에 관찰되지 않는다.
매티스는 한국과 일본을 순방하면서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그런 그는 트럼프의 외교안보진 중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그가 돌아간 후 머지않아 ‘미국 우선주의’의 파도가 동북아를 덮칠 것이다. 그 때가 도래하면 미국의 안보와 번영은 동맹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매티스의 충고 (“History is clear: nations with strong allies thrive and those without them wither”)를 트럼프 정부에 상기시켜야 한다.
* 본 블로그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