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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다변화·개혁 바쁜 중동
방산·원전서 韓과 협력 확대
日보다 중동 수출 많은 한국
지원규모 6분의 1수준 그쳐
한국, 중동 원조정책 늘려야
 
2024년 말 시작된 국내 정치의 혼돈에도 전문 관료와 경제인은 동맹 우방국을 안심시키고 시장을 안정시켰다. 2025년에도 흔들림 없는 외교·안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중동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산유국과는 방위산업과 원전 협력에 집중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 한국이 가장 잘하는 분야고 중동이 매우 원하는 협력이다.

중동, 특히 걸프 산유국은 한국의 최대 석유 공급처이자 구매력 높은 수출시장이다. 한국은 세계 7위 석유 소비국이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산 석유를 중동산으로 대체하면서 중동 의존도는 72%까지 늘어났다. 걸프협력회의(GCC) 나라들과는 2023년 12월에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경제협력의 절정기를 맞았다.

한편 한국은 이들 국가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시행하는 산업 다각화와 사회 개방화 개혁에 필수 기술과 발전 모델을 제공한다. 걸프국들은 한국을 공동체·도덕·윤리 등 전통 가치를 보존한 채 시장 경제를 발전시키더니 최첨단 기술 강국으로 우뚝 선 사례로 인식하며 사회주의나 서구식 모델보다 더 이상적인 발전 경험이라고 평가한다.

더불어 걸프 산유국은 외교·안보 다변화에도 맹렬히 나서고 있다. 최대 맞수인 이란이 핵 개발과 역내 무장 대리조직 육성을 통해 군사 모험주의 야심을 드러내는데 최대 우방국인 미국은 ‘탈중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개혁에 성공해 정권 생존을 보장해야 하는 시기에 이란은 역내 혼란을 조장하고 미국은 인도태평양에서 중국 견제에만 매달렸다.

불안에 휩싸인 걸프국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며 미국 무기체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섰다. 한국이 그 중심에 있다. 우리의 대중동 무기 수출은 지난 10년간 10배가량 늘었고 한·걸프협력회의 FTA 덕에 이 추세는 강화될 것이다. 최근 세계 9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급부상한 한국은 천궁Ⅱ, K9 자주포, K2 전차 등의 수출을 대상국의 교육과정과 연계해 기술 이전과 인적자원 개발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걸프 산유국이 바라는 자국 방산 역량 강화 전략과 딱 맞아떨어진다.

이들 국가는 원전에도 진심이다. 전례 없는 개혁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 대비하고 왕실의 품격을 위해 탄소중립에도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라늄 농축에 집착하는 이란을 겨냥해 핵심 원자력 기술을 확보할 필요도 있다. 한국은 2009년부터 UAE에서 최초의 사막형 발전소인 바라카 원전을 설계부터 가동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곧 대규모 원전 건설에 착수할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2025년 1월엔 한국과 미국이 세계 원전 시장 공동 진출을 위한 약정에 서명하면서 우리의 원전 수출은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중동에서 한국의 원조 정책은 아쉽다. 물론 우리는 평화유지군 활동 등에 참여했고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확대해 왔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위한 인도적 지원금을 두 차례에 걸쳐 제공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중동 원조 규모는 일본의 6분의 1 수준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이 일본을 앞설 것이라는데 이에 걸맞은 기여가 모자란다.

게다가 팔레스타인 지원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산유국이 아랍과 이슬람 세계에서 대표국의 위상을 유지하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단히 신경 쓰는 의제다. 중동 방산과 원전 시장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돈을 더 벌면서 정작 원조와 지원금은 덜 내는 것을 이곳 나라들이 모를 리 없다.

 
* 본 글은 2월 1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