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시바 내각의 명운을 가를 중의원 선거가 지난 27일 치러졌다. 선거 결과 자유민주당은 제1당 지위는 유지했지만, 의석을 크게 잃어 사실상 참패한 것과 다름없다. 자민당은 선거 공시 전보다 65석을 잃어 191석, 연립여당을 이루는 공명당 24석과 합쳐 총 215석을 획득했는데, 이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목표로 내세운 자공(자민·공명)연립 과반(233석)에도 미치지 못한 결과였다.
이달 1일 출범한 이시바 신내각이 조기 해산을 강행하며 치러진 이번 중의원 선거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져온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자민당에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정 정도의 의석수 감소는 예상됐지만, 자민당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잃었다. 낮은 투표율이 자민당에 유리하던 기존 선거 경향도 나타나지 않았다. 자민당 전통적 지지층의 활약도 두드러지지 않았고, 무당파 표는 야당으로 향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야당의 단일화조차 일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국민이 자민당을 외면한 것이다. 다만 이것이 곧 일본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보수적 색채를 띠는 국민민주당이나 급진적 색채를 띠는 레이와신센구미 등의 도약을 보면 오히려 기존의 자민당 1강 구도, 즉 자공연립여당의 절대 우위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이시바 내각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당장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위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옛 자민당 의원들의 재영입, 혹은 공명당 이외의 다른 정당과 연합을 형성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나 이조차 쉽지 않다. 특히 정치자금 문제로 공천에서 배제된 의원들을 자민당으로 재영입하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불가피하다. 정책적 성향이 유사한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등과 대연합 가능성이 부상하나,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약진한 국민민주당의 경우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자금 문제로 고전을 겪는 자민당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자공연립 과반 획득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책임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우에 따라 이시바 내각은 전후 최단 내각이 되며, 총리가 바뀔 수도 있다. 내년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다양한 가능성이 부상하며 당분간 일본 국내 정치의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편 그간 한국을 이해하는 발언을 해온 이시바 총리의 이번 선거 참패는 한일 관계에 있어 좋은 소식은 아니다. 비록 일본 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광범위한 합의가 있는 만큼 한국에 대한 정책이나 기조가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기대하는 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는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총리가 선거에서조차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함에 따라 소신에 따른 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일본 국내 정치의 혼돈 속 대외 정책 그리고 한일 관계는 더 나은 한 걸음을 내딛기 어렵겠지만, 현재의 흐름은 유지될 전망이다.
다만 한국에서 이시바 내각 출범 이후 기대감이 지나치게 높아졌던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기대감은 오히려 실망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국내 정치의 변화에 따른 대외 정책은 불가피하다. 오히려 그 변화 속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 본 글은 10월 28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