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날이 밝았다. 우리의 역사에 지속가능한 평화의 큰 획을 그을지 아니면 북한의 기만전술로 기록될지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순간이 오늘 펼쳐진다. 이에 성공적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기 위한 몇 가지 기대를 담는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한 비핵화에 초점을 맞추고 반드시 진일보된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핵이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교류협력도 지속가능할 수 없다. 핵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할 일로 치부하며 한국과는 대화를 회피해 왔던 북한은 3월 초 정의용 수석 특사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점을 밝히고 북·미정상회담 주선을 부탁했다. 우리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됐으며, 북·중 정상회담이 먼저 개최되는 등 북한은 고립을 탈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그렇다면 이제 북한이 답할 차례다.
북한은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서 합의했던 것처럼 검증가능한 비핵화에 합의하고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의사가 있음을 밝혀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한다는 비핵화 기간 및 로드맵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남겨둬도 좋다. 하지만 ‘외부의 위협이나 체제가 보장되면 비핵화를 하겠다’는 조건부 비핵화나 ‘남과 북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수준의 외교적 수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정도 합의로는 진정한 평화에 목마른 국민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만일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근본적 입장 변화 없이 모호하게 남북정상회담을 넘겨버리면 북·미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는 것을 매개로 일부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없이 중국과의 관계 개선만으로 당면한 위기를 돌파하려 들 수 있다. 이 경우 부적절한 타협이든 군사적 옵션이든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에 따라 우리의 안보가 좌우된다.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이나 평화체제와 관련한 합의도 중요하다.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 남북 간 연락사무소 개소,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비무장화와 같은 신뢰구축 조치를 담고, 나아가 정전체제를 종식시키는 종전선언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 합의가 가져올 실질적 긴장완화의 혜택을 고려할 때 관련 내용은 많을수록 좋다. 하지만 가장 큰 위협인 핵문제에서 진전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의 신뢰구축 조치라도 그 의미는 퇴색되게 마련이다.
남북 간 교류협력도 국제규범의 틀 내에서 추진해야 한다. 지난 두 번의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에서는 경제협력에 한계가 존재한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와 2375호로 인해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나 경제교류가 사실상 묶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협 목록을 만든다 해도 그 이행은 비핵화와 대북제재의 완화를 조건부로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스스로 대북제재를 무너뜨리는 악수를 피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마지막 과제는 인도적 문제의 해결이다. 이미 고령화된 많은 이산가족은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로 가족상봉이 이뤄지길 갈망하고 있다. 이미 2차 정상회담 합의문에도 이산가족 상봉은 포함돼 있었던 전례를 고려할 때 이산가족 문제는 못 풀 문제가 아니다. 북한에 억류된 우리 국민 여섯 명의 송환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심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설득력을 기대해 본다.
남북관계는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는 역사적 배경과 이해의 간극이 존재한다. 열거한 수많은 과제가 한 번의 정상회담으로 모두 해결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에 집중하고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본 글은 04월 27일자 세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