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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새해 첫날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으며 반드시 국제사회가 환영할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면서도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 나간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남측을 향해선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인 성과들이 짧은 기간에 이룩된 데 대해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한다”면서 “북과 남이 평화 번영의 길로 나가기로 확약한 이상 외세와의 합동 군사연습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외부로부터의 전략자산을 비롯한 전쟁장비 반입도 완전히 중지돼야 한다”고 했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북한의 이같은 메시지는 ‘북한도 한미동맹을 이해한다’는 청와대의 표현과 배치된다. 이에 대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정부는 지금 확인해야할 것을 확인하지 않고, 자기들 희망에 따라 해석하는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양측이 사용하는 표현의 진의가 뭔지, 그 규정부터 먼저 해야한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3일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이 같은가’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이 많이 지적한다”면서 “북한은 지금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의 의도를 우리 마음대로 해석해 북한에게 길을 터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협상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협상은 계속 끌려가게 된다”며 “비핵화 개념을 확인하고,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을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알려야 한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김정은의 올해 신년사를 ‘핵보유국의 길로 가겠다는 선언’으로 평가했다. 특히 김정은의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는 표현에 주목했다. 그는 “이건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비확산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라며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암시하는 대목”이라고 했다.

신 센터장은 현 상황에서는 “북한의 의도대로라면 협상이 어느쪽으로 가든 (북한은)핵보유국으로 가게 된다”고 했다. “만약 미국이 북한에 상응조치를 해주면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이걸 거부하면 자위적 차원에서 핵 보유를 하겠다고 할 것”이라며 “상응조치를 안해주면 북한은 ‘새로운 길’로 간다고 선언할 것인데, 이는 결국 핵보유국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꺽어야만 의미있는 비핵화 협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신 센터장은 신고·검증을 요구하는 미국과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갈리기 때문에 연초엔 팽팽한 기싸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팽팽한 기싸움을 하다가 판이 한번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작년 5월과 8월의 경험을 보면 판이 흔들릴 때 북한의 진짜 카드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서울 답방을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북미대화가 진전이 없으면 한국에 와도 받아갈 게 없다는 걸 그들도 안다”며 “답방은 현시점에 있어서 북한에 우선순위가 아니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올해 문재인정부가 대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계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건 정상이 아니다”면서 “남북이 모두 호혜적인 이익을 얻는 협력을 해나가는 것이 남북관계 정상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재인정부는 관계개선을 텄지만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안하고 있다”며 “남북관계 정상화 보다 남북관계의 정치화가 이뤄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다음은 신 센터장과의 인터뷰 전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에 대해 총평하자면.

“신년사를 보기에 앞서 먼저 신년사를 보는 틀을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신년사에서 중요한 것은 연속성과 변화를 찾는 일이다. 매년 나오는 신년사를 보면서, 작년에서부터 올해까지 어떤 일관성이 있는지. 또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는 게 신년사를 분석하는 접근방법이다.”

연속성 부분이라면 경제 분야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2015년부터 신년사에서 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2016년부터는 경제 문제를 가장 먼저 기술하기 시작했다. 2017년엔 신년사에 자력갱생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북한은 2016년에 핵실험하면서 광범위한 대북 제재를 받게 됐다. 2017년부터 자력갱생이라는 말을 통해 제재를 돌파하면서 경제를 건설한다는 개념이 등장했다. 올해 역시 경제 건설 노선과 자력갱생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엔 비핵화 협상을 하지만 자기들의 조건을 완화하지 않고 기존대로 협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제재 지속을 예상하고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이다.”

분야별로 보면 남북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상당히 많고 또 다양한 문제를 거론했다.

“남북관계에 대해선 그동안 언급이 적다가 작년부터 분량이 늘었다. 작년에 평창올림픽 참여 문제가 있었다. 올해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틀은 유지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통한 유대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을 강조한 것은 작년과 유사하다. 대신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 건 근래 들어 볼 수 없던 메시지다.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도 특이한 부분이다. 그동안 이런 내용은 안담겼는데 들어갔다. 한국 정부에 미국을 설득하는 노력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해 미북 정상회담 때문인지 대외 관계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신년사에서 대외 관계는 전통적으로 짧게 담긴다. 이번엔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미국을 향해 일종의 유화책을 제시하면서 핵보유의 길로 가려는 것 같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 하에서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이건 핵보유국의 지위에서 비확산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걸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짚어보자. ‘축소·연기’정도가 아니라 북한은 ‘영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중단이 아니라 축소하고 연기하는 것으로 공동 인식을 했다. 그런데 북한이 거기서 한단계 더 나간 요구를 했다.”

지난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 훈련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런데 신년사에선 말이 다르다.

“정부는 지금 확인해야할 것을 확인하지 않고, 정부의 희망에 따라 해석하는 잘못된 접근을 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한국과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이 같은가’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많이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같다’고 했다. 연합훈련에 대해서도 북한이 양해를 했다고 했는데, 이번에 나온 발언은 다르다. 이런 전제가 흔들린다는 것은 우리가 쌓아올린 남북대화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으로서 비핵화를 말한 것이고, 주한미군 철수를 해야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떡하나. 이렇게 되면 사실상 비핵화가 힘들어진다.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이 과연 우리 안보 이익에 부합하는가. 북한은 지금 한국이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북한의 의도를 우리 마음대로 해석해 북한에게 길을 터주고 있다. 북한의 전형적인 협상전술이다.”

북한이 이렇게 엄포를 해놓으면 한미 훈련을 하는 순간 판이 깨질 수도 있겠다.

“연합훈련 부분에 대해서는 2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 북한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자신의 핵보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외부의 위협과 군사훈련을 항상 이야기했고 전략자산 전개를 이야기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판이 깨질 때를 대비한 명분 쌓기일 수 있다. 지금 북한 말은 기존 합의를 넘어서는 부분이다. 우리가 만약 소규모 연합훈련을 한다면, 북한은 이를 명분삼아 판을 깰 수 있다. 다시말해 한국이 자신들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때 판을 깨는 명분으로 활용하려는 장기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의로 제시한 ‘한미연합훈련 연기’ 카드가 우리를 옭아매는 상황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은 차근차근 따져가면서 내실을 다지는 게 중요한데, 너무 속도를 내려다 짚고 가야할 부분을 짚지 못했다. 자칫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지금 정부는 모래부터 다시 다져야 한다. 다시한번 비핵화 개념을 확인하고,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를 말한다면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고 알려야 한다.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 속에서 우리도 의미있는 남북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문재인정부가 김정은의 역린을 건드려 남북 관계가 경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핵화 개념 확인을 회피하는 건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오면 앞으로 이어질 협상에서 계속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협상을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협상은 계속 끌려가게 된다. 협상 초기엔 한국이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엔 우리가 훨씬 유리했다. 북한에 대한 제재 망이 매우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의 표현을 선의로만 해석하고 관계를 개선하면서 풀어주니 북한 여건이 개선됐다. 여기서 판이 깨지면 그동안 투자한 정치적 외교적 자산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만 손해를 입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작년 실수를 바로 잡아야 한다. 북측에 ‘한반도 비핵화 개념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있는 북한 비핵화의 개념’이라고 못박아야 한다. 북한은 당시 공동성명을 통해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수용했다. 9·19 공동성명 1조에 보면 한반도의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IAEA와 NPT에 복귀한다고 돼있다.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의 개념이다. 지금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라고 표현했지만 이게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개발이 정당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비핵화 내용도 미국이 상응하는 신뢰 구축 조치를 하면서 주한미군 철수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결국에는 한국을 무장해제 시키겠다는 접근이다. 북한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우리의 희망대로 접근한 결과, 이런 상황을 맞게 됐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서울 답방을 언급하지 않았다. 김정은이 연말 친서에서 답방을 희망한다고 했기 때문에 신년사에도 내용이 담길 거란 관측이 많았다.

“북한은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 이익 중심의 대외 정책을 구사한다. 답방을 그냥 하지 않겠다는 거다. 한국으로부터 경제적 선물을 받는 조건이라야 한다. 북미대화가 진전이 없으면 한국에 와도 받아갈 게 없다는 걸 그들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답방은 현시점에 있어서 북한에 우선순위가 아니다. 우리정부는 희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북한의 우선순위는 아니다. 김정은을 서울에 데려오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 순리대로 가야한다. 순리라고 하는 것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해서 미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그걸 토대로 대북 제재 완화와 신고와 검증이라는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합의되면 그 이후에 김정은이 와서 비핵화 선언이나 우리 국민이 원하는 천안함 사건·연평도 포격에 대한 사과 등의 조치를 하고 경제적 협력 사업을 얻어가는 그런 방식으로 정상회담을 기획해야 한다. 지금 당장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김정은을 서울로 데려오는 것은 남북관계나 한반도 평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정부는 ‘김정은 서울 답방’을 성사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이벤트에 끌려다니는 접근을 해선 안된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을 추진하기 전에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신고와 검증이 확실히 적용된 제대로된 비핵화를 말하는 것인지 확인을 해야한다. 이와 동시에 이산가족 상봉 등 우리 국민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주는 진전을 해나가야만 (서울 답방이)의미가 있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 자체에만 목을 메다보면 정상회담의 의미가 오히려 축소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해서 확인해야할 부분을 하나하나 짚고 가야 한다.”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만나고 싶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의 신년사를 환영하는 트위터를 보냈다.

“만약 김정은과 트럼프 대통령이 만나 제재 문제를 푼다면 서울에도 답방을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트위터를 날린 것은 이게 본인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김정은과 관계가 좋고 북미대화가 잘 되고 있다’ ‘북한도 핵실험과 미사일실험을 안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 김정은이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를 평가하면서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있을텐데, 트럼프 대통령이 굳이 부정적인 부분을 트위터에 실을 이유가 없다. 그건 자신의 정책을 스스로가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계속 ‘잘되고 있다’는 신호를 내보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이른 시기에 갖게 될까?

“성과있는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는 고위급 회담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게 미국 생각이다. 신고·검증 문제를 사전에 확인해서 정상회담은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로 만들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 방법이다. 반대로 북한은 정상회담으로 바로 가고 싶어한다. 정상회담으로 바로 가 신고·검증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영변 핵시설을 파기할테니 나중에 와서 봐라. 이건 참관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받을 가능성이 적다. 그때 북한이 히든 카드, ‘장거리 미사일 포기’나 ‘핵동결’ 카드를 던질 수 있다.”

미국이 북한의 히든 카드에 넘어갈까?

“미국이 위태위태하다. 미국 학계에서, 예를 들면 게리 세이모어나 로버트 아인혼 같은 경우, ‘북한이 핵동결만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선 본토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남은 문제들은 차후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럼 남은 문제들이 나중에 풀리느냐, 풀리면 좋지만 안풀리면 어떻게 되느냐? 북미간 타협이 이뤄졌기 때문에 북한은 결국 핵보유국으로 가고, 한국은 이걸 통제할 수 없게 된다. 핵협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CVID나 FFVD가 반드시 견지되는 핵협상을 해야 한다.”

신고·검증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검증을 해야 북한이 보유한 핵물질의 총량을 알 수 있다.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추적 관리가 불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김정은이 보낸 친서를 공개했다. 친서 외교를 어떻게 평가하나.

“기존 정책을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 미북 모두 정상 간 만남에 대해선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만 만남은 약속하지만, 만남으로 가는 과정에 고위급 회담을 통한 신고·검증 합의나 대북 제재 해제를 먼저 해줄 의사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미북 대화가 잘 안풀리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했다. 새로운 길이란 무엇일까.

“작년 신년사에서 언급한 ‘책임있는 핵강국’이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된다. 김정은은 작년 신년사에서 ‘책임있는 핵강국’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책임있는 핵강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 세력이 우리 국가의 자주권과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그 어떤 나라나 위협도 핵으로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걸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협상에 임하는 목적은 결국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북한의 의도대로라면 협상이 어느쪽으로 가든 핵보유국으로 가게 된다. 상응조치를 해주면 조선반도 비핵화 개념에서 제재가 해제된 상황에서 협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북한은 조건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다. 이걸 거부하면 북한은 자위적 차원에서 핵 보유를 하겠다고 할 것이다. 만약 상응조치를 안해주면 북한은 ‘새로운 길’로 간다고 선언할 것이다. 핵보유국으로 가겠단 것이다. 결국 상응조치를 해줘도, 안해줘도 북한은 핵을 보유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꺾어야만 의미있는 비핵화 협상이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속내를 알고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도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속내를 알고도 일단 계속 해보겠다는 건 자신감 때문일까. 아니면 실패를 인정했을 때 돌아올 비난이 두려워서일까.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금 판이 깨지면 돌아올 비난이 두려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미국이 가진 다른 옵션이 없다. 북한이 진정성있게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판을 깨버리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옵션은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는 것 뿐이다. 전략자산 보내고, 이걸로 북한이 굴복할까? 게다가 이 방식은 돈이 많이 들어간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옵션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를 길게 끌면서 북한을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 핵심 수단은 바로 제재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상응 조치를 못하는 거다. 이걸 해주는 순간 북한을 통제할 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비핵화의 개념을 놓고 미북 간에 논쟁이 벌어질텐데, 미국이 여기서 물러나진 않을까?

“그걸 양보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 번째 정당성이 없다. 미국은 핵보유국이다.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은 NPT상 5개 나라,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다른 나라는 합법적인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당연히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긴 어렵다. 실질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같은 문제는 영향력 유지의 문제다. 물론 미국의 필요에 따라서 주한미군을 감축할 순 있다. 하지만 중국이라는 도전자를 고려할 때 주한미군을 완전히 빼는 건 제한되는 부분이 있다. 다만 이를 이용하려는 북한이 핵 동결 거래나 장거리미사일 포기를 제안하고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하겠다고 하면 미국도 장기적 비핵화라는 명분 하에서 동결 거래를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상 북핵을 용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최악의 거래가 된다. 우리는 이걸 막아야 하는데 정부가 과연 이를 막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주한미군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에 한국과 미국이 작년에 타결하지 못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재개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차질을 빚는 것은 미국의 과도한 요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단점이다. 한미 관계는 트럼프 행정부와만 하는 게 아니다. 긴 안목에서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잘 다루는 것도 외교적 능력이다. 우리가 증액을 미국이 원하는 수준대로 다 해줄순 없지만 마찰이 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합의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신 완충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일종의 ‘트레이드 오프’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분담금을 3000억원 증액했다. 그러면 그에 상응해서 자동차 관세 적용을 늦춘다거나 하는 경제적 카드를 받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정 장치를 넣는 것이다. 만약 상황이 급변하면 재조정을 한다는 근거 조항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진짜로 비핵화한다면 지금처럼 분담금을 많이 지불할 이유가 없다. 그런 상황이 오면 재조정 하면 된다. 마지막으론 투명성이다. 미국은 지금 분담금을 어디에 얼마나 쓰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투명한 방위비 분담 협정을 진행하고, 자금이 투명하게 운영될 때 한단계 더 높은 방위비 협상이 이뤄진다. 너무 단기적으로 돈 안올려주려고 얼굴을 붉힐 필요는 없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동맹파였던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사임하면서 우려가 더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관에 대한 우려가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한미 동맹의 전통적 발전에 돌발 변수가 됐다. 한미연합훈련 중단도 즉석에서 결정하고, 미국 대통령이 가진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서 한미동맹을 훼손시킬 수 있는 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파트너인 한국이 더 유의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미국의 이익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지만, 우리의 이익에도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 주한미군으로 안보를 지키고, 동맹의 시장을 통해 250억~300억달러의 흑자를 얻는다. 동맹을 유지하면서 우리도 지켜주고 돈도 번다. 이런 파트너가 어디에 있나.”

연초에 미북간 고위급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북한은 지금 고위급 대화에 김영철이나 리용호를 안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신고 검증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채,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치적 타협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료 채취 등을 포함한 전면적 사찰을 요구하는 미국과 참관 수준의 사찰만을 허용하려는 북한의 입장이 갈리기 때문에 1, 2월 동안에는 팽팽한 기싸움을 하다가 판이 한번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판이 흔들린다고 해서 대화가 무너지는 건 아니다. 작년 5월과 8월의 경험을 보면 판이 흔들릴 때 북한의 진짜 카드가 나온다. 그런 점에서 올 한해는 유동성이 엄청 클 거라고 본다.”

판이 흔들릴 때 북한이 한국정부를 활용할 가능성도 있겠다.

“그렇다. 북한으로선 한국정부가 지금 자신들을 상당히 잘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국 정부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작년 10월 한국 정부가 대북 제재 완화를 이야기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대화 재개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국을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화 체제를 이야기한 것도 눈에 띄었다. 문재인정부는 작년에 ‘종전선언’을 하려 했지만 못했다. 올해 이 문제가 다시 재론될까?

“북한으로선 종전선언을 강력히 추진할 의미는 없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에서 군사분야 합의서를 ‘사실상의 불가침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를 내놓은 마당에 종전선언이 가지는 의미가 약하다고 북한은 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종전선언에 대해 ‘정치적 선언이고 북한이 위반하면 원상복구하고 주한미군의 지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종전선언 몸값 낮추기를 해왔다. 그런데 사실 이런 내용이라면 북한 입장에서도 굳이 종전선언을 해야하느냐, 종전선언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 이다.”

그렇다면 평화체제 언급은 무슨 의도였을까?

“중국을 배려한 메시지다. ‘정전협정 당사자들’이라는 표현 속엔 중국이 포함된다. 지난해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가진 북중 관계를 반영한 태도라고 본다.”

원자력 발전과 석탄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이목을 끈다.

“북한이 에너지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할 수 있다. 핵무기를 만들었으니 기술 여건은 충분하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경제 여건에선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건 핵의 평화적 이용을 꺼내기 위해서 깔아둔 포석이다. 비핵화 협상을 하더라도 핵의 평화적 이용은 확실히 챙기려는 것이다. 협상이 된다면 그런 부분에서 진전을 보이려고 할 것이다. 석탄은 매년 신년사에서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이번엔 ‘자립경제 발전의 첫 전선’이라면서 아주 상세하게 기술했다. 석탄 증산을 강조했는데, 이건 독자 노선을 가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자력갱생과 같은 의미다. 무슨 말이냐 하면 대북제재가 유지되면 석유가 안들어온다. 그러니까 대체 에너지 자원인 석탄이 필요한 거다. 이건 결국 비핵화 협상에서 쉽게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걸 보여준다. 더 버텨보겠다는 걸 시사한다.”

신년사에서 또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면?

“북한이 첨단 군수 공업을 통해서 군사 장비 현대화를 이야기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남북간 신뢰구축이나 한반도 평화지대화를 말하면서도 자신들이 뒤쳐진 첨단 무기 분야에선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만약 북한이 우리에게 밀리는 첨단 재래식 무기 분야의 격차를 좁히면 핵을 가진 북한과 남한의 군사력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우리가 유의하고 군사 훈련이나 대비태세 유지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문재인정부 들어 방산 분야는 위축됐다.

“현 정부 들어 방산 분야 수출 성과가 나온 게 있나. 아쉬운 부분이다.”

올해 신년사는 형식상에서도 상당히 독특했다. 특히 김정은이 신년사를 하러 이동하는 과정에 김여정과 김창선, 조용원이 수행했다. 의미가 담긴 연출일텐데, 어떻게 봤나?

“자신의 최측근을 드러냄으로써 연출차원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 정치적 의미에서는 측근들을 드러내면서 체제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고 있다. 이들은 김정은에게 가장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한명은 혈연, 한명은 집사, 한명은 조직 내 최고 아끼는 부하. 충성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김여정은 비서실장 역할, 김창선은 집사 역할, 그리고 조용원은 경제 부분을 담당하는 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신년사 총집필을 맡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의 신년사가 올해만큼 주목받았던 적이 있었나. 북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부분은 아니지만 관심이 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과도한 관심이라고 본다. 2016년 신년사를 보면 핵이야기 빠져있고, 남북관계 개선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북한은 2016년 1월 6일에 핵실험을 했다. 2010년에도 신년사도 남북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그런데 그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있었다. 신년사를 북한의 정책 기조 차원에서 살펴보는 건 좋지만, 거기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정책적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을 고민하고 참고자료 정도로만 활용해야 한다.”

오늘 오전 북한의 조성길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잠적해 망명을 타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어떻게 봤나?

“김정은 체제의 취약성을 잘 보여주는 일로 평가한다. 겉으론 튼튼해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체제의 최고 엘리트들마저 숙청의 두려움에 떠는 모순을 잘 드러내고 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변화를 시도했지만, 실상 경직된 체제로 인한 누수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 북한의 현실이다.”

올해 남북관계를 풀어가야 할 문재인정부에 조언을 하자면.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건 정상이 아니다. 북한이 대화에 나와서 ‘냉면이 넘어가느냐’ 식의 고압적 자세를 취하는 것도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남북이 모두 호혜적 이익을 얻는 협력을 해나가는 게 남북관계 정상화다. 문재인정부는 관계개선을 텄지만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안하고 있다. 남북 관계가 지속 발전하려면 정상화가 함께 가야 한다. 지금은 남북관계 정상화 보다는 남북관계의 정치화가 이뤄지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 본 글은 조선일보, [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3부④] 신범철 “김정은 신년사는 핵보유국 선언…정부, ‘비핵화’ 규정부터 다시하라”(19.01.03) 인터뷰 내용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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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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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