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최근 국내의 정치적 혼란 상황, 한·미 간 소통 문제 등이 발생하면서 미국의 대북 거래와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이 결합될 경우 한국 ‘패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한·미 관계 이간을 위해서라도 미·북 협상을 활용할 동기가 있고, 미국 역시 평양과의 직거래를 통해 우리에 대한 거래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뒤집어보자. 미·북 직거래가 과연 그렇게 쉽게 진행될까. 진행된다면 양측의 거래 조건은 제대로 맞을까. 정말 한국을 ‘패싱’하고도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미·북 협상, 특히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브로맨스’ 재개에는 의외로 많은 장애물이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결보다 북한 문제의 순위가 낮으며, 외형적 친분 과시와 달리 양자 사이에 불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거래 조건 역시 만만치 않다. 미·중 전략 경쟁에 역량을 집중할 의사를 선거운동 과정에서 밝혔고, 올해의 북·러 밀착 과정을 지켜본 트럼프는 북한을 중국 및 러시아와의 전략 경쟁에서 중립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낮췄을 것이고, 북한이 핵 능력을 미국에 향하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달 21일 무기장비 전시회에서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봤다”는 발언을 통해 협상에 나선다고 해도 2019년보다 훨씬 높은 몸값을 요구할 뜻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국으로선 국제 비확산 체제 붕괴 위험을 고려할 때 북한 핵 능력 동결에 대해 제재 전면 해제나 미·북 수교를 선뜻 선택하기 어렵다. 또한 우리를 배제한 상태에서 이뤄진 거래의 대가(경제 지원이나 투자 등)를 지불해 달라고 요구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의 입장은 비교적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다. 미·북이 대화를 재개하는 것은 미국 판단에 맡길 것이고 우리는 자체 원칙에 따라 남북관계를 운영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되 우리와 조율되지 않은 대북 보상에 비용을 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을 워싱턴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워싱턴이 미국에 대한 북한의 핵 위협을 우선 제거하길 원한다면 잔존 북한 핵 능력(전술핵 능력)을 억제하고 북한의 핵 그림자(Nuclear shadow)를 차단하기 위해 전술핵 재배치 등 실물적 확장억제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경우에는 협의를 통한 조정이 가능할 것이다.
2018~2019년을 되돌아볼 때 평양·워싱턴 간의 협상과 남북관계를 억지로 연동시키려 한 것이 전체적인 북핵 문제 해결 구도를 어그러뜨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북 협상 구도를 활용해 ‘종전선언’이라는 당시 정부의 의제를 실현하려 한 것 역시 한·미 공조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미·북 협상과 분리해 인식하고, 워싱턴의 운신 폭을 보장하는 것이 한·미의 신뢰와 협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정부가 지닌 통일·남북 관계 구상에 대해 워싱턴과의 정보 공유를 확대하는 시도를 계속해야 하고, 이를 통해 동맹 파트너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지금까지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정치세력은 없다. 그렇다면 “안보는 초당적”이란 말만 내걸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동맹은 탄탄하게 유지될 것이고, 한반도와 지역 안정을 위한 양국 간 공조를 정부뿐 아니라 국회 차원에서도 보장하겠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 본 글은 12월 9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