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에 대한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환영한다고 했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은의 신년사에 대한 화답이다. 우리 기업 자산의 압류 조치를 해제하고 사업 중단에 따른 피해 보상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의도가 보인다. 문 대통령은 사업 재개를 위해 남북 사이에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된 셈이라고 했지만,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다수의 국민도 대통령의 발언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제 문 대통령도 신년사에서 지적했듯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의 관건은 국제 제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안보리 결의와 국가별 제재로 구성된 국제 제재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결국, 제재의 원인 제공자인 북한이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핵·미사일을 포기하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야 최소한의 여건이 갖춰질 것이다.
북핵(北核)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받을수록 남북관계가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북한이야 한국을 끌어들여 제재를 약화시키려 하지만,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인 우리가 그렇게 따라갈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에 발맞춰 남북관계가 진전해야 한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방문 후 기내 간담회 발언이나, 북한 비핵화와 주한미군은 연동된 문제가 아니라는 신년회견 언급은 국제사회의 상식과 규범에 맞는 국가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고민을 담고 있다.
북한의 핵 포기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서둘러 재개하는 것에 국제사회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차적으로 유엔안보리 결의와 개별국 제재에 정면으로 위반된다. 지도부에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의 주요 수출원을 모두 차단한 것은 물론 해외의 북한 근로자들까지 추방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북·중 접경지대에 북한 근로자들이 다시 나타나는 등 최근의 대북 제재 이완 움직임도 앞장서서 차단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은 2008년 산책 중이던 박왕자 씨가 북한군에게 사살되면서 중단됐다. 당시 정부는 사건의 진상 규명, 재발 방지 약속, 관광객 신변 안전 보장을 요구했지만, 북측이 거부했다. 북한의 행동은 관광이 상징하는 화해 협력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해변에 설치한 CCTV 필름을 회수해 공동 조사하자는 현대아산의 제안도 거부했다. 이듬해 방북한 현정은 회장과 조선아태평화위원회의 공동보도문에서 김정일의 특별조치에 따라 관광에 필요한 모든 편의와 안전이 철저히 보장될 것이라 했지만, 우리 정부와 국민의 요구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제재 해제를 논하기에 앞서 국민의 안전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개성·금강산 모두 한국의 치안 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자국민 안전에 대한 정부의 자세는 나라의 수준을 평가하는 척도다. 문 대통령의 신년사 화두는 한마디로 ‘사람 중심’이다. 고용 안전, 자녀 양육, 재해 예방, 인재 육성, 소상공인·자영업자 모두 국민 개개인의 삶에 관한 것들이다.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새해의 다짐이 한반도 남쪽에만 국한될 순 없다. 북한 지역에 가게 될 국민의 안전, 지금도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민 6명의 안위, 나아가 2500만 북한 주민의 생존과 인권으로 확장돼야 맞다.
* 본 글은 1월 11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