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대담

‘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한가?:

『9.19 공동선언』15주년 간담회1

 

■ 대담패널:
· 김기웅(前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 류제승(前 국방부 정책실장)
· 장호진(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前 청와대 외교비서관)
· 차두현(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황원진(창원대 초빙교수)

 

참석자 4:

 
2005년 『9.19 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15년이 되었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Rafael Mariano Grossi) IAEA 사무총장이 영변과 강성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이 있었다며, 북한이 핵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에 굉장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것이 『9.19 공동선언』 이후 북한 비핵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금년 11월의 미국 대선 이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협상의 교훈을 돌아볼 때, 미국에서 행정부 교체 혹은 2기 행정부의 시작과 함께 기존 정책의 재검토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대북 유화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수도 있다. 현재 선거 후 대북협상을 시사한 트럼프 캠프는 물론이고 바이든 후보 진영에서도 일부 군축론자들이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 아래 “위협 감소” 혹은 “위협 관리”를 목적으로 한 대북협상을 주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러한 정책이 섣부른 제재해제나 협상지상주의로 이어질 경우, 자칫 북한에게 또 한 번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대북 압력이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의 정책ㆍ태도 변화를 유도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견지에서 이번이 간담회는 특히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성명 15주년을 맞아 실시하는 오늘 간담회의 핵심 주제는 크게 세 가지이다. 먼저, 『9.19 공동선언』을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선언 자체가 거의 사문화 되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그래도 이것을 시금석으로 하여 이후 북한을 비핵화 협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당시 북한이 『6자회담』이라는 다자 대화의 장에 “왜” 나왔으며, 그 여건이 현재도 유효한지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즉, 단순히 시간벌기용으로 나왔는지, 혹은 북한 스스로 결심을 하여 소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나온 것이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서 당초에는 비핵화 의사가 있었지만, 이후 그 이행이 부진하게 되었는지를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대화를 통한 비핵화가 현재도 유효한지에 논의 하고자 한다. 이는 미국에서 이미 5~6년 전부터 나온 『6자회담』 안락사 논쟁과 관련 있는데, 정말 대화를 통해 비핵화가 가능한지 살펴보겠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논의해 보겠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적게는 50개에서 많게는 60개 정도의 핵탄두를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는 5~6년 후에는 100개가 넘어갈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나오는 상황이다. 더욱이 그로시 사무총장에 따르면 농축 우라늄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어차피 재처리가 필요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핵분열 물질은 계속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계속 두고 봐야 할 것인지 참석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자 한다.

 

참석자 5:

 
개인적으로 협상을 통해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기가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정도 기만당했으면 되었지, 얼마나 더 지속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9.19 공동선언』 이전의 과정을 돌아보면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그리고 2005년의 『9.19 공동선언』으로 합의가 진행되었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합의였는데 북한은 협상 과정에서도 이면에서 계속 핵 활동을 했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에도 북한은 파키스탄과 핵-미사일 교환 거래를 하고 있었다.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기술을 들여오고, 그 대가로 파키스탄에 노동 미사일을 제공했었다. 2005년 『9.19 공동선언』 이후에는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는 합의하는 과정과는 별도로 은폐된 핵개발을 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또한 2007년의 2.13 합의와 10.3 합의 시점에서도 북한은 우라늄 농축을 통해서 핵무기 생산을 위한 기반 시설을 만들고 있었다. 2012년 2.29 합의 이후에도 직후인 4월에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당시는 북한이 미사일에 있어서 새로운 기술의 단계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되돌아보면 협상은 북한의 핵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순간을 넘기기 위한 수단이라고 이야기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북한은 협상과 관계없이 핵보유국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처음부터 확고했고, 그 의지가 지금 와서 꺾일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자 하는 의사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협상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장 김정은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북한 지도부 내에서 권력교체가 일어난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 권력 상층부는 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핵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 지도부 내 이견은 전혀 없다고 본다. 핵무기는 북한 체제뿐만 아니라 권력 핵심을 보위하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협상을 통해서 핵무기를 내려놓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

 

참석자 1:

 
애초 핵 문제는 북한이 처음 제기한 것이었다. 1990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 수정안을 가지고 2차 고위급 회담(총리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방문했지만 북측은 기본합의서 외 “조선반도 비핵지대에 대한 방도”라는 합의문안을 내놓았다. 당시 우리 측은 이를 무시하고 돌아왔고, 양측 모두 3차, 4차 회담에서 이를 논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4차 회담 이후 미국으로부터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남북한 간 기본합의서를 체결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왔다. 워싱턴은 핵 문제 해결 이후에 기본합의서를 체결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 측에게 기본합의서와 핵 문제 해결 두 개를 병행하는 것으로 합의하자고 설득하였고, 미국도 이에 동의하였다. 이후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구축에 대한 선언”을 1991년 11월 8일에 발표하였고, 북한 측은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1992년에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남북기본합의서』와 함께 발효시켰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왜 1990년 12월에 갑자기 비핵지대 관련 합의서를 꺼냈으며, 이후 왜 우리 측의 비핵화 선언 안을 수정 없이 그대로 수용했는지 의문이다. 당시 북한은 조선반도 핵 문제라는 틀로 접근하고자 했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핵 시설이 발견되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 비핵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비핵지대 안을 우리 측에 제안한 것으로 보인다. 즉, 이 안을 바탕으로 주한미군기지 사찰을 요구하면서 문제를 국제레짐의 통제를 받는 북한 핵 문제가 아니라, 남북한과 미국이 모두 이행해야 하는 “조선반도의 핵 문제”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고자 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미국과 북한 모두 제네바 합의가 끝까지 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2005년 『9.19 공동선언』도 김정일로서는 당시 상황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나쁠 것이 없다는 계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들이 하는 것은 계속 하면서 남측이 가져온 제안을 받아도 나쁠 것이 없다는 정도의 계산이지 근본적으로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이러한 결정들이 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 결정은 아니었고, 꾸준히 핵개발은 계속 하면서 그 때 그 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김정일 유훈”이라고 알려진 것에 따르면 “핵 관련 협상은 핵을 버리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핵 개발을 위한 협상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결국 경우에 따라 속도 조절 등의 조치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핵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자신들이 핵보유국으로서 국제레짐 차원에서 핵 문제를 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과 비보유국 간 합의인 『9.19 공동선언』이나 2.13합의 등은 자신들이 국력이 약하고 불리한 상황에서 체결된 불평등한 합의이며, 따라서 존중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북한은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며, 이런 측면에서 『9.19 공동선언』의 경우 기본정신은 존중하고 인용이 필요할 경우 인용하겠지만(이를테면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등), 이것 자체에 자신이 엄격하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다.

 

참석자 4:

 
1990년대 당시의 여건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에는 한국도 비핵국이었고, 북한도 엄밀히 말하면 비핵국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을 보장받고 있었던 반면, 북한은 러시아나 중국으로부터 핵우산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 및 체제 변혁, 중국의 개혁ㆍ개방 등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북한이 처음 제기한 것은 “조선반도 비핵지대화”에 대한 것이었는데, 비핵지대화란 지역의 국가들 간 합의해서 역내에 어떤 핵무기도 들여오지 못하도록 하고 자신들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으며, 대신 안전보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효과가 있다. 먼저 역내 국가들이 동맹국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자주”의 논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프레임을 만듦으로써 자신은 소련 및 중국으로부터 핵우산 못 받고,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보장받는 상황을 해소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관계 측면에서도 NPT상의 5개 핵 보유국들이 비핵지대(Nuclear Weapon Free Zone)를 선언한 국가들에 대해서는 (중남미 비핵지대가 대표적임) 소극적 안전보장(NSA: 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해주는 반면,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경우에는 NSA을 해 줄 의무가 없다. 북한이 초반에 얘기했던 비핵지대화 논의에서, 자신의 능력이 커지면서, 지금은 군축회담 논리로 바뀐 것 같다.

북한이 당초부터 기만적이었다는 것이 이 간담회 참석자들의 다수 논의인 것 같은데, 다른 시각도 한 번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비핵화 관련 중요한 합의가 붕괴될 때에는 항상 한국과 미국이 약속을 어겼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런 견해에 따르면 첫 번째 대표적인 사례로 북한이 제네바 합의 이후 실질적으로 핵 활동을 중지했고, 1999년에 금창리 의혹 시설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성실하게 사찰을 받았는데, 경수로 공급 계약을 계속 지연시켜서 북한을 초조하게 만든 것은 미국이었고, 결국 이것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로는 『9.19 공동선언』 이후에도 미국이 BDA 건으로 북한의 자금을 압박했고, 그 이후에도 경유 지원 약속이라든지 경수로 지원 관련해서 무성의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북한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합의를 깰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의견이 있다. 결국 판이 깨진 것은 한국과 미국이 약속을 안 지킨 결과이지, 북한이 기만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각의 지적에 대한 의견들은 어떠한지?

 

참석자 2:

 
지난 15년의 시간을 구간과 구간을 잘라서 보면, 북한이 비핵화를 할 것 같았고, 이행할 것처럼 행동도 일부 보였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결론은 명확하다는 것이 제 개인적 의견이다. 북한은 처음부터 핵을 보유하고자 했으며 포기할 의사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포기할 것처럼 상대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지금 언급하신 우리사회 일각의 주장들은 구간과 구간에 함몰되어 있는 논거이다.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을 고려할 때, 1990년대 초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철수했던 사건을 되돌아보자. 자료에 따르면 철수 당시에는 약 100발 정도의 전술 핵무기가 존재했었다(공대지 중력탄과 포병탄 2종류). 하지만 많았을 때는 975발까지 있었으며 종류도 다양했다. 1989년 프랑스 상업 위성의 정보를 통해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 처음 알려졌는데, 미국이 이를 파악하고도 전술핵을 탈냉전 흐름에 따라 철수했던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당시 한미 양국 정부가 어떠한 전략적 고려를 했고 북한의 의도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궁금하다. 당시 분위기는 우리 땅에 미국 전술핵이 계속 남아있으면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논리가 성립이 안 될 것이라는 고려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전술핵은 철수할 수 없다는 식의 조건이 있었으면 그 이후의 비핵화 협상 과정이 더 원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참석자 1:

 
남북 간 기본합의서 체결과 핵문제 해결을 병행하기로 한ㆍ미 간에 합의하고 나서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가 이뤄졌었다. 당시 미국은 기본합의서 자체는 의미 없으며 핵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노태우 정부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기본합의서 논의를 진행해 놓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화가 중단되면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 측은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서 기본합의서와 비핵화 선언을 같이 하였다. 즉,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 중점이 서로 달랐고, 정치적 고려도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참석자 5:

 
한국과 미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현 상황까지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주장이 성립되려면 협상 후에 북한이 핵개발을 적어도 중단하거나 늦춰야 했다. 실제로는 영변 핵시설 가동을 잠시 중단시킨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원상복구 가능한 수준에서 중단시켰다. 앞서 말했듯이 북한은 제네바 합의 이후 곧바로 파키스탄과 거래하여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 활동을 지속했다. 북한은 투 트랙으로 계속해 온 것이다. 눈앞에서는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는 것처럼 보이고 뒤에서는 계속해서 핵을 개발해왔다. 한ㆍ미에 책임을 돌리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사안을 엄밀하게 따져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북한은 협상 때문에 개발을 늦추거나 중단시킨 적이 없다. 모든 상황이 다 드러난 지금까지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참석자 4:

 
90년대 전술핵 철수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인데, 북핵 문제만 아니었으면 주한미군의 상당수가(지상군 위주가 될 가능성이 당시에는 컸음) 철수할 수 있었다. 미국은 감소된 주한미군 밑에 전술핵을 둔다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는 당시 동구권이 와해되고 있던 상황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개발을 해 봤자 몇 년이나 갈까 평가 절하했을 수도 있다.

 

참석자 3:

 
한ㆍ미가 합의이행 부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주장 관련해서, 제네바 합의는 1994년 10월, 경수로 공급협정은 1995년 12월에 체결한 것인데, 1년 2개월이면 결코 지연되었다고 할 수 없다. 공급협정의 큰 문제 중 하나가 한국형 원자로(KSMP)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북한이 안 받으려고 해서 지연된 것이다. 따라서 한ㆍ미가 일부로 지연 전술을 펼쳤다는 주장은 팩트와 맞지 않다. 그리고 『9.19 공동선언』 이후에 불거졌던 2005년의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는 핵 문제와 관련이 없다. 북한의 불법 자금세탁 행위에 따른 미 재무부의 조치였다. 이는 핵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왜 당시 이것을 터뜨렸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 내에서도 부처간 조정이 잘 이루어 졌다고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당시 미국도 BDA 제재가 그렇게 큰 일이 될지는 몰랐던 것 같다.

또한 2007년의 2.13 합의에 따르면 북한이 재처리 시설 포함해서 영변 핵시설을 폐쇄ㆍ봉인하게 되어 있었는데, 당시 한국과 미국이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게 할 만큼 약속을 위반한 사실이 없었다. 북한은 애초에 이 합의를 이행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같은 해의 10.3 합의도 북한이 이행을 하지 않았다. 2007년 10.3 합의부터 12월 말까지 두 달 동안 한국이나 미국이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결정적으로 잘못한 것은 없다. 한ㆍ미 책임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는 프리즘으로 사안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진행하다 보면 아쉬운 부분도 있고 서로 실수도 하고 오해하는 부분도 있지만, 한ㆍ미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주장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9.19 공동선언』을 평가해 보자면 오히려 한ㆍ미 양국이 너무 순진했던 측면이 있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며,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북핵이 협상용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심지어 (이란 등에 대한) 판매용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시간을 낭비한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가장 큰 목적은 김일성 일가와 고위급 빨치산 후손들의 독재적 과두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 또는 한국에 동조하는 미국 세력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또 다른 이유라고 생각한다. 핵무기가 미국까지 도달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한국이 흡수통일을 하고자 할 때 이를 못하게 막을 수 있는 국가가 미국 밖에 없는데, 미국을 강제할 지렛대가 없으니 미국에 도달할 정도의 핵무기가 필요한 것이다. 물론 여건이 나아지면 핵을 통해서 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9.19 공동선언』은 자신들이 핵을 꼭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아니라, 핵을 보유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이 정도 내용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항들이 포함되었다. 따라서, 『9.19 공동선언』의 내용을 이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정부 당국자들은 이 공동성명으로 북핵문제가 사실상 해결되었다고 선언하였다. 『6자회담』 4차 회담 이후 “5차 회담”이라는 말을 못 쓰게 하고 앞으로 이행만 남았다며 “4차회담 2단계회담”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라고 했을 정도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중요한데, 북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안전보장”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이를 평가 절하했다. 그 결과 『6자회담』은 스스로 동력을 잃은 측면이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도 않았고, 또한 포기해야 할 때 자신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제공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북한이 생각하는 “안전보장”은 밖에서 자신들을 흔들어 대지 말라는 것이다. 흡수통일 하려 하지 말고, 체제 문제이든 인권 문제이든 밖에서 흔들어 대지 말라는 것이다. 최근의 대북전단 문제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6자회담』은 조속한 비핵화만을 강조했을 뿐 북한의 관심사를 다루지 않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을 들어준다면 어떤 선까지 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들어줄 수 없다면(사실상 독재의 용인이므로) 다른 어떤 수단을 구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없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결여된 결과 『6자회담』은 동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 나의 해석이다.

 

참석자 5:

 
북한 핵 시설이 프랑스 상업위성을 통해 1989년에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실제 핵시설 건설은 그 보다 훨씬 빨랐을 것이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개발을 추진한 것은 1970년대이다. 당시 해외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했는데, 이는 길게 보면 핵무기 투발까지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남북 간에 군사력과 경제력이 역전되는 시기였고, 북한이 재역전시킬 가능성은 없었다. 그 상황에서 북한은 군사력 균형을 유리하게 유지하기 위해 핵개발을 선택한 것이었다.

김정일이 사실상 권력을 승계한 1970년대 이후 북한 내부의 상황을 보면, 주민들과 권력 지도부 간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이야기 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굶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였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혁명의 수뇌부”와 일반 주민들 간 계층이 더욱 명확하게 나뉘어 졌다. 이미 지적이 나왔지만, 북한은 정권 보위를 위해서도 핵무기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북한 내부를 보면,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한 것이 거의 없는데 그나마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핵무기 덕분이다. 북한에서는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사 지도자”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김정은이 핵 문제에 있어서 강하게 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김정은 입장에서 협상을 통해 핵을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이다. 심지어 김정은이 실각되더라도 권력 핵심부의 이해관계는 똑같다. 분노한 주민들의 봉기로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되면 누가 숙청되고 말고가 아니라 다 같이 죽는 것이다. 그러한 북한 정권에 대해 돈 조금 주고 제재 조금 풀어주고 해서 해결 해보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되돌아보면 북한이 핵협상에 스스로 나온 경우가 두 번 정도였다. 첫째는 제네바 합의 이전인데, 당시 북한은 미국이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다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켰을 때이다. 즉, 북한 정권이 완전히 괴멸되든지, 아니면 김정은 정권이 치명적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되기 전에는 진정성 있는 협상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참석자 4:

 
자연스럽게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왔는데, “대화를 통한 비핵화가 현재도 유효한가?”에 대해 의견들을 말씀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 특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앞으로도  『6자회담』 방식의 다자회담이 시도될 필요가 있는지, 혹은 남ㆍ북ㆍ미, 남북과 미ㆍ북의 양자 혹은 3자회담 방식이 나은지에 대한 판단을 해봐야 할 시점이다. 또한, “대화를 통한 비핵화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가?”도 중요하다. 북한의 행태를 관리하는 정도에 두고 실제 비핵화는 대화 이외의 다른 수단으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지, 아니면 꾸준히 대화를 밀어붙이면 언젠가는 성과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 보고자 한다.

 

참석자 2:

 
김정은이 2018년 남북 무대 및 국제무대에 등장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먼저 김정은이 안정적으로 권력 기반을 구축한 점을 들 수 있겠다. 권력 승계 후 대략 6~7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장성택 숙청을 상징으로 하여 여러 명을 제거하였다. 두 번째는 대북 제재가 힘들어서 대화를 통해 이를 느슨하게 만들지 않으면 북한의 미래가 어둡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2017년의 “국가핵능력 완성” 선언을 기점으로 핵무기를 완전히 손에 쥐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그전까지는 실험의 과정이었다면, 핵무기를 언제든 쓸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킨 후 국제무대에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과연 김정은을 대화를 통해서만 설득할 수 있겠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대화 기조는 유지해야 하겠지만, 대북제재는 더욱 강화된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군사적 옵션을 사용해 가며 북한을 겁주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압박해서 김정은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의 정보분야 고위관리(과거 주한미군사에서 정보부장으로도 활동하였음)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라고 했다. 그것은 김정은과 측근을 분리시키고, “그들”(김정은+측근이라는 북한 권력엘리트)과 주민들을 분리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여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대화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대북제재를 통해서도 원하는 결과를 못 얻었으니, 이제는 “최대의 압박”(maximum pressure)이 아니라 “대량압박(massive pressure)을 가해야 하며, 그 대상은 김정은과 측근 세력이 주가 되지만, 불가피하게 그 영향을 북한 주민들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야 권력엘리트들과 북한 주민들이 분리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심리전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 수단을 놓아버렸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이다. 우리는 『판문점선언』 이후 대북 확성기를 포기했는데, 대북 확성기는 김정은이 대북 전단 보다 더 과민하게 반응했던 수단이다.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던 수단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다. 또한, 남북군사합의의 문제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간략히 두 가지 문제점만 지적하겠다. 군사합의가 우리의 전방지역 감시정찰 능력과 해ㆍ공군의 작전 활동을 현저히 위축시켰다. 감시정찰 관련해서, 전방을 지키는 사단장과 군단장이 유용한 무인기들을 전혀 운용하지 못하고, 상급 부대에서 내려온 정보만을 활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방에서 가시거리에 있는 것은 볼 수 있지만, 북한의 도발 준비는 그보다 후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작전 활동 관련해서, 공군이 지상군과의 협력관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연마해야 하는 것이 근접항공지원 능력이며 이 활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포천의 훈련장인데, 남북군사합의 이후 해당 훈련을 하지 못 하고 있다. 시카고대학교의 미어셰이머(John J. Mearsheimer) 교수는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에서 “외교와 전쟁은 나란히 작동하며, 외교력은 군사적인 위협으로 뒷받침되어야 더욱 효과적이다. 강압 외교는 전쟁을 방지하는 데 있고, 진행되고 있는 전쟁을 종결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원칙에 기초해서 보았을 때, 남북 군사협약은 우리가 얻은 것보다 양보한 것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참석자 5:

 
핵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논하자면, 결국 북한 정권을 변환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즉, 북한 사회의 민주화를 통해 핵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핵과 연관하여 제재, 대화, 경제적 지원, 군사적 압박을 모두 사용하되,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러면서 모든 옵션의 초점은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데 두어야 한다. 그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심리전이다.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면 모든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 군사적 압박도 마찬가지이다. “팀 스피릿” 정도의 훈련을 하면 북한 주민 전체가 압박을 받는데 (일반 관료들도 군화 신고 사무실에서 비상근무함), 그러한 압박을 가하면서 이를 협상과 연결시키고, 또한 심리전을 병행해야 한다. 즉, 지금 당하는 고통이 김정은과 핵무기 때문이라는 점을 계속 일깨워주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방의 확성기 효과는 굉장히 크다. 북한에서 전방에 근무하는 약 30만명의 군인들은 그래도 성분이 좋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10년 복무하면서 확성기 방송을 계속 들으면 바뀔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제대 후 뿔뿔이 흩어져서 고향에 돌아가므로 북한 전체 주민들에 대한 심리전 전사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이 우리의 확성기 방송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이다. 확성기 외에도 다양한 심리전 수단이 있는데, 특히 탈북자들이 제일 좋은 수단이다. 약 3만여 명이 국내에 들어와 있는데, 우리가 이들을 잘 대우하면 그 자체가 북한 정권과 주민에 대해 강력한 심리전이 된다. 자유를 찾아서 한국에 오겠다는 주민들을 기꺼이 받겠다고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대우도 잘해줘야 한다. 최근 북한 사회도 휴대폰 보급 등으로 정보의 유통이 빨라졌으므로 국내 탈북자들의 동향은 북한 내부에 거의 실시간으로 전달될 것이다. 이것은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는 자유와 인권, 번영이 그들의 체제를 붕괴시킬 수 있는 핵무기인 것이다. 따라서 협상만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북한 사회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보다 거시적인 목표에도 중점을 두고 모든 옵션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만 한다. 이는 점진적인 것 같지만, 오히려 비핵화를 앞당길 수 있으며,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참석자 1: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도 있다. 기본적으로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우리와 북한, 미국이 갖고 있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인식의 차이가 “상황관리” 차원에서의 합의를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합의 이행까지는 못하도록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의 합의는 사실상 “자신들의 의견이 관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의한 합의였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겠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믿지 못한다. 미국이 과거 베트남 등에서 행했던 정치 공작들도 있고, 현재 홍콩 문제 등과 같은 국내정치 상황에의 개입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미국은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또한 한국과 미국은 정부들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길게 보고 약속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보는 측면도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북한은 자신이 핵을 버리더라도 인권이나 국제질서 등을 명분으로 하여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 전까지 계속해서 자신들을 흔들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1차 핵실험 직전 북한 측 관계자에게 만일 핵실험 할 경우 중국이 식량과 유류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중국말을 잘 들으면 당분간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그 길은 죽는 길”이라고 대답했었다.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북한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핵무기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원하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하더라도 자신들이 붕괴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을 갖게 하는 방법을 통해서 인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 외 다른 방법으로는 압박과 대화를 통해서 핵을 관리하는 방법이 있겠고, 또는 아예 군사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대화 관련해서, 조금 전에 김정은이 대화에 나온 동기가 안정적인 권력 기반을 구축한 점을 지적하셨는데 나는 그가 할아버지 김일성을 따라하는 것으로 본다. 과거 공산주의 세계에서 김일성은 꽤 유명한 지도자였다. 김정은도 그러한 모습, 즉 정상적인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로서 정상적으로 대외 활동을 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대화 의지 자체는 있었다. 그는 조선반도의 판이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때 잘못 만들어진 불리한 판을 자신이 새롭게 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그 판을 새롭게 짜지 않으면 그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판을 바꾸기 위해 핵이라는 카드를 놓고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은 처음부터 우리 측과 정상회담을 하고자 했다, 그런데 김정은 집권 초반 정부는 이를 받지 않은 것이고, 현 정부는 받은 것이다. 핵으로 적화통일을 하는 것 역시 김정은의 목표인 것은 맞지만 이것은 장기적인 목표인 것 같고, 당장은 자신에게 불리한 판을 바꾸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대화를 통한 협상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실제로 지금 핵 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도 협상의 결렬 자체는 원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김정은도 “상황관리”라는 차원에서 일정 부분 얻을 것이 있다면 협상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군사적 긴장 상황을 어느 정도 동결시키면서 북한 지도부의 상황 인식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변화시켜 나가는 여건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 아닌가 여겨진다.

 

참석자 4: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리하는 옵션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정시간 북한의 핵 위협 하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안보를 확보할 수 있는 우리의 역량 문제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비태세와 역량을 가지고 북한 핵위협을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해주길 부탁드린다.

또한, 김일성이 사회주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존경을 받고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갖게 된 시기는 그가 “수령”이 되기 이전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그가 주석이 되고 “수령”이 된 이후 변질된 것이다. 지금 김정은이 정상국가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비핵화뿐만 아니라 자신의 1인 권력도 내려놓아야 한다. 이를 김정은이 과연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참석자 2:

 
김정은이 핵을 갖고 있어봐야 쓸모 없다는 인식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협박 수단으로도 별 효과가 없고, 오히려 계속 보유할 경우 대북제재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패착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 접근법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해 볼 수 있겠다. 김정은으로 하여금 핵무기 보유가 쓸모 없다고 인식시켜 줄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전술핵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한ㆍ미가 전술핵 재배치를 논의하겠다는 발표만으로도 중국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  작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여 INF를 탈퇴하였는데, 늦어도 5년 이내에 지상 기반의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 어딘가에 배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까지는 미국 정부가 전술핵 재배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이는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와서 트럼프 대통령 자신부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고, 스티브 비건도 키신저를 인용해서 미ㆍ북 협상 실패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즉, 미국 조야의 흐름도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핵 확산인지의 논쟁이 있을 수 있겠고 실제로 과거 유럽에서 그러한 논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핵확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nuclear sharing)의 경우 핵 운영의 주체는 여전히 미국이고, 우리는 플랫폼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1979년 12월 12일에 나토가 ‘이중트랙 결정’(Double-Track Decision)을 했는데,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전진 배치에 대한 대응으로 서방 세계에서 Pershing II를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을 억제하는 효과와 함께 결국은 중거리 핵미사일동유럽 배치를 포기하라는 강압 효과의 두 가지 목적을 갖는 결정이었고, 따라서 이와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결국 1989년 미소 간에 INF 조약이 체결되었다.

 

참석자 3:

 
전술핵을 가져오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핵 보유가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맞을 수 있지만, 다른 계산을 할 수도 있다. 북한으로서 흡수통일을 막는다는 정치적 목적 측면에서의 핵무기의 유용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전술핵은 북한에게 그다지 큰 압박 수단이 아닐 수 있다. 또한, 전술핵을 한반도에 가져올 경우, 수평 핵확산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참석자 4:

 
전술핵의 재배치나 핵공유를 가지고 수평확산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관련 핵기술을 한국과 공유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석자 3:

 
개인적으로 전술핵 재배치가 다른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이것은 중국이 정말 사생결단하고 달려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전술핵을 배치하기에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너무 가깝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참석자 4:

 
핵공유와 전술핵 재배치가 혼용되어 거론되는데, 전술핵 재배치가 어렵다면 다른 지역에 핵무기는 적재해두되, 한국군의 플랫폼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핵공유’도 국내의 안보 안심 효과를 위해 고려할 수도 있다고 본다.

논의를 정리해보겠다. 참가자들은 『9.19 공동선언』이 이행되지 못했던 이유들로 (1) 북한의 기만 의도, (2) 북한의 합의이행을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의 부족, (3) 북한이 진정 원하는 바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을 들었다. 북한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들어줄 수 있는지(그리고 들어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들에서는 차이가 있었지만, 북한은 일상적인 접근으로는 결코   비핵화를 할 생각이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참가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고 생각된다. 또한, 북한을 합의 이행으로 이끄는 수단의 발굴이 부족했다는 점 역시 공감대를 이룬 사항이었다.

결국 『9.19 공동선언』의 최대 교훈은 일단 어떤 비핵화 관련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 문구나 약속 만으로는 의미가 없으며 지속적인 감시와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또한, 유관국간의 끊임없는 정책조율과 공동전략의 개발도 필수적인 사항이다. 참가자들은 현재로서는 공동선언을 이끌어내었던 다자회담, 즉 『6자회담』과 같은 형태보다는 미ㆍ북, 남북한, 남ㆍ북ㆍ미와 같은 양자/3자간의 대화나 협상이 더욱 유효하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 이상으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한국의 ‘당사자적 지위’일 것이다. 2005년의 『9.19 공동선언』 이후 2007년의 2.13 합의나 10.3 합의 등이 도출되었던 이유는 한국이 당사자적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촉진자’ 역할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사자적 지위가 유지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점에 대해 우리가 보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화만으로는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는 것 역시 공동선언 15년의 교훈일 것이다. 물론, 대화는 사태의 극단화나 한반도 내의 급격한 긴장 고조를 예방한다는 의미에서 분명히 효과가 있다. 그러나, 대화와 동시에 북한의 약속이행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압박과 대북 심리전 등이 병행되어야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데에 참가자들은 의견을 같이 하였다.

또한, 북한 비핵화는 장기적인 접근을 요하는 사안인 만큼, 그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핵위협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도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한국의 자체 능력 강화와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의 구체적 보장이다. 이번 간담회를 통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 혹은 한ㆍ미간 핵공유도 이제는 양국의 정책옵션에 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러한 필요성을 절감한 데서 나왔다고 본다.

지금까지 『9.19 공동선언』 15년을 맞이하여 기존 비핵화 합의들의 현주소와 잠재적 문제점, 그리고 대화를 통한 비핵화의 추진 대안에 대해 살펴보았다. 좋은 의견을 개진해주신 참가자 여러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일시: 2020년 09월 15일(화) 15:00-17:00 / 장소: 아산정책연구원 2층 회의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