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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의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태도가 강경해지는 시기에 정상 간 신뢰를 확인하고 비핵화의 큰 방향을 논의했다는 점에서 성공으로 평가한다. 우리 정부가 적절한 시점을 택해 비핵화 동력을 이어갔다. 하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첫째, 비핵화 협상의 현 좌표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회담 때만 해도 마치 다 된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된 지금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간 우리가 확인한 것과 지금까지 이뤄진 것은 무엇인가? 좌표를 모르면 방향을 정할 수 없다. 노파심에서 가정해 보면,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남긴 것은 모호한 비핵화 의지였고 비핵화 과정이나 조건은 상의도 못 한 게 아닐까. 미국은 어느 정도 자신들의 구상을 밝힌 것 같지만, 우리의 입장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알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정부는 목표를 새로 세우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한다.

둘째, 비핵화 로드맵을 미국과 조율해야 한다. 미국은 빅딜을 통한 빠른 비핵화를 추진하고 있다. 체제보장의 범위를 넓히고 일부 단계를 수용하지만, 핵무기와 핵물질을 북한으로부터 조기에 반출하려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의 비핵화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동결 입구 비핵화 출구, 일괄타결을 거쳐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으로 갔던 기억인데 어느 순간 사라졌다. 미·북 간 대화 촉진을 위해 미국에 위임한 것이라면 적어도 우리의 국익을 보장해 줄 것을 약속 받아야 한다.

셋째, 협상 과정에서 지켜야 할 이익을 지켜야 한다. 그 가장 큰 이익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에서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안보공약이다. 대북 경제 지원이 논의되지만 이것은 결국 투자다. 장기적으로는 우리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체제안전보장은 자칫 한·미 동맹을 약화시킬 수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를 지켜야 함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나, 주한미군 감축 규모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연합군사훈련과 전략자산, 나아가 핵우산 문제도 우리의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 비핵화를 위해 포기를 선택하더라도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지 않는 역외 연합군사훈련과 같이 동맹을 형해화(形骸化)하지 않을 대안을 준비해 놓고 협상해야 한다.

넷째, 종전선언에 대해서도 미국과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부분에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합의 이행보다 종전선언이 선행된다면 한·미 동맹 약화가 비핵화보다 먼저 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미국에 재량권을 주고 북한과의 협상에서 풀도록 할 일이다. 종전선언이 필요하면 북한이 요구해야지, 우리가 먼저 미국을 설득할 일이 아니다.

다섯째, 위기관리도 준비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특정한 조건들(certain conditions)’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미·북 정상회담은 무산될 수 있다. 이때 우리는 한·미 공조와 남북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 최악의 상황을 관리할 플랜 B가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이 디테일의 악마에 속한다. 하지만 유능한 정부라면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비핵화와 관련한 우리의 좌표, 로드맵, 협상안, 위기관리 방안을 시나리오별로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함으로써, 일부만 알고 소수가 결정하는 폐쇄형 시스템이 아니라, 다수가 알고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개방형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 본 글은 05월 24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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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