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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갤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축적된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40%는 이·팔 갈등을 자국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왔다. 또 50~60%는 이스라엘에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미국 정계 내 유대계 영향력,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친이스라엘 정서, 중동 내 이스라엘의 전략적 가치 등이 그 배경이다.

그런데 최근 조사 결과는 좀 달랐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이·팔 갈등을 자국 안보 위협으로 본 미국인이 52%로 늘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 당시 미국인과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자 45명이 죽거나 인질로 잡혀갔다. 더 눈에 띄는 변화는 이스라엘에 대한 ‘우호’ 여론과는 별개로 미국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향한 ‘동정’ 여론이 이례적으로 높아진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고 이스라엘의 지나친 군사 대응으로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 위기가 악화하자 이스라엘인에 대한 동정 여론은 2020년대 초 55% 내외에서 2025년 46%로 떨어졌지만,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동정 여론은 25% 안팎에서 33%로 올랐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유권자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다. 아랍계·무슬림 유권자 일부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과 휴전 협상 실패에 실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로 선회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는 아랍계가 밀집한 미시간주 디어본에서 42%를 득표했지만, 카멀라 해리스 후보는 36%에 그쳤다. 지난 대선 당시 바이든 후보가 이 지역에서 압승을 거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유고브가 아랍계를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도 이·팔 갈등을 잘 해결할 후보로 트럼프는 39%, 해리스는 33%의 지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돈이자 둘째 사위의 아버지인 레바논계 마사드 불로스는 선거 기간 아랍계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인 지원 유세를 펼쳤고 이후 중동 문제 선임 고문으로 발탁됐다.

한편 유대계 유권자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인 유대계는 75% 안팎이 꾸준히 민주당에 투표해왔으며, 이번 대선에서도 79%가 해리스 후보를 선택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지지하는 유대계 미국인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경 보수 정부에 비판적이다. 2020년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유대계 유권자 73%가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계기로 뚜렷하게 변한 미국 여론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이·팔 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움직임이 벌써 감지되고 있다. 올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회담 직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인수해 팔레스타인 주민을 내보낸 후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그러나 국내외에서 강한 반발이 일자 3주 뒤 계획을 고집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섰고 한 달 후에는 가자지구에서 아무도 추방되지 않을 것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두는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의 중재 역시 이런 변화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 수교를 자신의 대표 업적인 아브라함 협정의 완결판으로 여기며 성사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하지만 사우디는 이슬람권 정서와 국제 여론을 고려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 없이 수교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미국 내 높아진 팔레스타인 동정 여론도 사우디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런 흐름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처럼 일방적인 친이스라엘 정책만을 고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본 글은 3월 25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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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위원이자 지역연구센터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 법무부, 국방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주의와 독재,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대표 저서로 중동정치를 비교분석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 (Palgrave Macmillan 2013), 논문으로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정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전망” (아산이슈브리프 2022),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