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본 보고서는 전략분석실 김진우 박사 지도하에 작성되었습니다.

 

개요

 
들어오는 긱(gig)만큼, 즉 운전자가 일하는 건수만큼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우버(Uber)가 택시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사람들은 태스크 몽키(Task Monkey, 심부름 용역 사이트)나 업워크(Upwork, 프리랜서 중개 사이트) 등의 인터넷 사이트가 활약하는 것을 보며 미래에는 컴퓨터가 인간 대신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고, 인간은 인터넷을 통해 일하게 될 것이라고 하며 미래의 ‘일(work)’의 모습을 가늠한다. 이 과정에서 초인공지능(super-intelligent) 컴퓨터가 등장하여 인간의 일을 보조하거나 아예 대신할 것이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들 말한다. 그렇다면 일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에 대해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버 같은 피투피(P2P, Peer-to-Peer) 시장이 미래에 고용시장의 일부로 자리 잡을지조차도 확실치 않다.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먼저 선진국의 고용시장 현황을 살펴보고, 소위 ‘긱 경제(gig economy)’라는 현상 뒤에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큰 흐름이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현재 긱 경제와 임시 근로가 일부 국가에서 확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추세가 범세계적이거나 거스를 수 없는 현상은 아니다. 통념과는 달리 일부 선진국에서는 임시 근로직(비정규직)이 줄어들고 상용 근로직(정규직)이 늘고 있다. 또한 긱 경제는 정책적•사회적 결정의 결과일 뿐 결코 기술 발전이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본 연구보고서에서는 세 가지 결론을 도출한다.

① 긱 근로는 그 본질로부터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긱 근로자에 대한 수요와 숫자가 늘고 있는 주된 원인은 특정 국가들의 느슨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때문이다.
② 긱 근로에 대한 긱 근로자의 입장은 모두 같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긱 경제가 제공하는 유연성과 경제적 보상을 좋아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임시직이나 파견 근로자로 어쩔 수 없이 일하며 사회보장이나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갖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무한대로 발생하는 일회성 ‘긱’보다는 ‘상근직’을 선호한다.
③ 긱 경제는 기본적으로 기술 발전의 산물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산물이다. 실제로 미국의 여러 지방과 유럽 및 대만에서는 기존의 노동법 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우버 사업을 금지하고 있다. 기술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는 우리 사회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회계 부정을 하지 않고는 [우버 운전자]로 살아남을 수 없다.’

-바비,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일하는 우버 운전자

‘이쪽은 다른 간병업체보다 돈을 더 많이 준다. 새벽, 주말, 공휴일에 일하면 추가 임금이 지급된다. 계약으로 보장된 시간은 없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 내게 딱 맞는 일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캐서린, 간병인, 전형적인 긱 근로자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은 바람직하며 필요하다고 본다. …만약 택시업체가 우버나 리프트(Lyft)와 경쟁하려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더 친절해야 하지 않을까.’

-데보라 제프, 은퇴한 간호사1

‘자유’와 편의성의 긱 경제

만약 당신이 마지막 버스를 놓쳤고, 집도 멀고, 자동차도 없다고 치자. 어떻게 집에 갈 것인가? 많은 나라에서의 답은 간단하다. 우버를 부르면 된다. 여행을 가면서 돈을 아끼고 싶은가? 그러면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나 에어비앤비(Airbnb)는 어떤가? 정원의 에 잔디를 깍고 창고도 정리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면, 태스크 래빗(Task Rabbit)에 요청하면 된다. 불과 몇 분 안에 일꾼이 초인종을 누를 것이다. 새 사업의 홈페이지가 필요하다면 의욕이 넘치는 업워크(Upwork)의 디자이너들이 얼마든지 해결해 줄 것이다. 만약 법적인 문제가 발생한다면 업카운셀(Upcounsel) 사이트에서 원하는 변호사를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

미래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테크노 유토피아(techno-utopia)를 믿는 사람들은 사이버 공간의 시장이 더 자유롭고, 그 안의 근로자들은 더 자유롭다고 말한다. 이 ‘자유’는 유연한 ‘긱’ 근로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좋고, 비용 절감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좋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사이버 공간의 자유시장 철학에 대해 유보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긱 경제의 도래는 임시직 확산과2 함께 임금, 고용 복지, 고용 안정성 축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3

사실 긱 경제와 그에 앞서 존재한 임시 근로자는 사이버 공간이나 우버가 등장하기 수십 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근로의 비정규화가 심화되면서 이것이 고용과 경제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4 일례로 미국에서는 근로자 복지의 상당 부분을 사용자가 제공한다. 상근직이나 정규직으로 고용된다는 것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임금과 근로 시간을 보장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들이 받는 급여에는 유급 휴가, 병가, 의료•치과•연금 보험 등 복지 혜택이 포함된다. 반면 긱 근로와 임시 근로의 시장에서는 의료보험, 사회보험, 퇴직금, 그리고 정기 급여 같은 것이 없고 따라서 주택 담보대출이나 기타 개인대출도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긱 근로자들의 처지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장에서 퇴근한 후 우버 운전자로 일하며 추가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또 많은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사진작가, 번역가, 이벤트 기획자 등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용역 계약직으로 업워크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여 잠재 고객과 연결된다. 이런 긱 근로자들 중에는 고소득자들도 있고, 전일 근무하는 일반 직장인에게는 없는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긱 근로는 종류에 따라 수입의 차이도 크다. 우버 운전자로 일하는 것보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런던의 펜트하우스를 빌려주는 것이 수입이 좋으며,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 대만 지사에게 의뢰받아 프리랜스 번역을 하는 것이 스페인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간제 사진사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수입이 많을 것이다.

임시직이나 긱 근로자의 숫자는 나라마다 다르다. 이런 차이는 국가마다 법규, 사회 규범, 가치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주장하는 테크노-유토피아 철학에 의하면 긱 경제는 피할 수 없는 미래의 물결로 느껴진다. 그러나 경제구조는 한 사회나 국가가 첨단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결정하면 그에 따라간다. 미국의 앵커리지 (Anchorage)나 팜비치 (Palm Beach), 홍콩, 호주의 일부 지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영국, 루마니아가 우버 사업을 불허하거나 서비스를 제한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5

경제의 작동 방식과 이익의 분배 방식을 결정하는 주체는 정보기술이 아니라 바로 사회와 국가이다. 정보기술 때문에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노동이 비정규화되고, 근로자들의 생계가 위협 받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임금과 후생이 좋아질 수도 있다. 어떤 사회에서는 기업가정신, 위험 감수,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와 함께 작은 정부와 세금 인하를 지향한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을 연구한 경제학자 윌리엄 바우몰(William Baumol)의 지적처럼, 기업가들은 혁신을 추구하지만 그 혁신이 항상 사회 전체를 위한 선이 되지는 않는다.6 결국 기술 활용과 그 결과로 생성되는 근로관계는 기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선택하는 것이다.
 

긱 경제와 직업의 세계

 
긱 경제란 무엇인가?

흔히 긱 경제하면 스마트폰 앱이나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주문형(on-demand) 근로를 연상한다. 급성장하고 있는 P2P 시장에서는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 태스크 래빗 같은 유명 브랜드 외에도 수많은 업체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P2P 시장이란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직접 서비스(또는 상품)를 공급하는 곳이다.

긱 경제라는 용어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제공되는 다양한 형태의 주문형 임시 근로를 포괄한다. 이때 근로자는 중개업체를 통해 일을 할 수도 있고, 직접 임시 고용계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임시 근로자는 정규 근로자와 동일한 양의 일을 하면서도 혜택은 훨씬 적다. 반면 기업의 비용은 줄고, 나아가 소비자들도 더 낮은 가격으로 서비스나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물론 유연한 시간제 근로나 계약 근로를 선호하는 근로자들도 있지만 아직 대다수는 안정적이고 사회복지 혜택이 주어지는 상용 근로를 선호한다.

긱 경제는 얼마나 큰가?

2016년 10월,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긱 경제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약 8,000명의 미국 및 유럽인들을 조사한 결과, 생산가능 연령 인구의 20∼30퍼센트는 ‘자유 근로’ 소득자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래 차트에서 보듯이 자유 근로 전체에서 온라인 플랫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작다(15퍼센트).7

P1

하버드대학교의 로렌스 카츠(Lawrence F. Katz)와 프린스턴대학교의 앨런 크루거(Alan B. Krueger) 경제학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근로자는 미국 경제활동 인구 전체의 0.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8 전체에서 극히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P2

긱 근로자를 포함한 비정규 근로자 규모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근로활동 조사 자체가 정규직을 대상으로 하도록 되어 있고, 시간제나 계약 근로자(자유 근로자 포함) 및 자영업자들이 모두 정규직과 하나로 묶여 측정치가 부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의 그래프에 나온 카츠•크루거 교수의 수치를 보면 2015년 현재 비공식 근로가 미국 전체 고용의 15퍼센트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가 어떨까? 아래 그래프 (OECD의 수치)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키프로스, 폴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아이슬란드를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는 임시직이 확대되는 추세인 반면, 독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스웨덴 등은 오히려 감소하거나 소폭만 증가했다.

출처: 국제노동사무국(Int. Labour Office), “비정규 형태의 고용,” 비정규고용 전문가회의(2015.02.16-19 제네바) 발표용 보고서 p.5

출처: 국제노동사무국(Int. Labour Office), “비정규 형태의 고용,” 비정규고용 전문가회의(2015.02.16-19 제네바) 발표용 보고서 p.5

따라서 긱 노동이 모든 선진국에서 동일하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국가는 임시 근로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어떤 국가는 근로자가 특정 기업에게 용역을 제공하면 자동적으로 피고용인으로 간주한다. 이런 국가에서는 임시 근로를 훨씬 엄격하게 다룬다.9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에 대한 해 관심이 커지다 보니 마치 긱 경제가 불가피하고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된다. 그러나 위의 통계를 보면 임시 근로의 규모나 추세는 국가마다 편차가 있다. 더욱이 임시 근로는 범위가 넓고 각 나라마다 의미가 다르다. 선진국들의 경우 신자유주의의 모형인 ‘유연한 노동시장’을 지지하는 논리가 지배적이지만, 일부 서유럽 국가에서는 미국에 비하여 근로자들의 권익이 훨씬 높은 수준에서 보호를 받는다.10 결과적으로 벨기에의 임시 근로자는 미국의 임시 근로자보다 훨씬 더 많은 권리(서면 용역계약서 등)를 갖는다.

긱 근로자

긱 근로자가 경제의 각 부문에서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쟁점이 되고 있다. 영국 법정은 우버에 대하여 소가 제기되자, 우버는 운전자들에게 최소 임금과 유급 휴가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11 미국의 일부 지역이나 다른 여러 국가에서도 우버 사업을 노동법에 위배되거나 다른 정책적 이유로 금지하고 있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긱 경제의 근로자들은 전일 근무하는 상용 근로자들이 즐길 수 없는 유연한 근로 시간과 자유를 누린다. 앞서 인용한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대상의 70퍼센트는 본인이 원해서 자유 근로를 한다고 답했다(아래 도표 참고).13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조사에 포함된 모든 국가에서는 정규직이 주된 근로관계라는 점이다. 그리고 긱 근로는 조사대상자 대부분에게 보조적인 소득원이었고, 더 나아가 긱 근로자의 30퍼센트는 원하지 않으면서 긱 근로를 한다고 했다. 선택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뜻이다.

P3

긱 근로자 중 일부는 프리랜서로서 업워크(Upwork) 등의 사이트를 통해 일을 찾는다. 이들과 구매 주체와의 근로관계는 중간에 중개업체(인터넷 사이트나 앱)가 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복잡해진다. P2P 업체들은 근로자를 자신들이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며 자신들은 단지 중개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런 플랫폼을 통해 계약을 맺은 근로자는 독립계약자/청부인(미국 근로 종류인 independent contractor의 번역인데 한국어로 ‘자영업자’ 혹은 ‘개인사업가’로 불림)인가,14 종속계약자/종속청부인(dependent contractor)15인가 아니면 피고용인인가?16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긱 플랫폼

P2P 시장의 업체들은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와 에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다. 따라서 중개업체에게는 근로자와 그들의 행동, 안전 및 복지에 대하여 일부 법적인 책임이 있다. P2P 시장을 둘러싼 가장 큰 쟁점은 ‘유연성’과 ‘안정성’의 상호배치 문제다.

우버 같은 P2P 플랫폼을 이용하는 근로자 대부분은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근로자가 일단 일을 시작하면 고객을 연결시켜 주는 플랫폼의 브랜드에 의존하게 되고, 보수도 플랫폼에 의해 결정된다. 고객들은 싸고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우버를 이용한다. 고객이 갖는 신뢰 덕에 우버는 브랜드 파워와 경쟁력을 갖게 되고, 유명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에 우버 운전자들은 한낱 개인이며 이름없는 용역 제공자다.17 프리랜서들이 주로 이용하는 업워크에서도 마찬가지다. 업워크는 구매자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판매자를 연결(인터넷을 통해서)시켜 주고, 판매자에 대한 종합적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서비스의 질을 보장한다.18 하지만 판매자와 전통적인 프리랜서는 차이점이 있다. 바로 업워크를 통해 만난 고객과는 향후에도 직접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19

이런 문제들은 ‘사용자나 소유주가 아닌 주체는 모두 피고용자’로 간주하는 나라에서는 큰 쟁점이 되지 않는다.21 이런 나라에서는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로 사업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업워크에서 프리랜서들에게 요구하는 ‘직접 거래 금지 서약서(non-circumvention agreement)’도 OECD 여러 국가에서는 노동법에 위배될 수도 있다. 유연성과 안정성의 상치 역시 정부가 연금•의료 보험 및 기타 고용 관련 급여를 1차적으로 제공하는 국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21 사회복지제도가 잘 된 나라일수록 노조와 민주주의가 발전되어 있기 때문에(스웨덴, 프랑스 등) 설혹 노동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미흡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실제 규제가 미흡한 경우는 드물다).22 규제가 제대로 안 되는 노동시장일수록 사용자들에게 유리한 유연한 근로관계가 많다. 이런 경우 노동의 비정규화는 더 낮은 임금과 더 큰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23 모든 근로자가 전일 근무하는 상용근로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일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고, 돈 많이 줄 고객만 선별해서 일하고 싶은 프리랜서들도 있다.24

긱 근로자들이 이용하는 플랫폼은 택시 및 호텔 산업부문에 비정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25 그러나 우버나 P2P 시장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지속 가능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홈조이(Homejoy)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공급업체와 직거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근직원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P2P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우버의 시가총액이 기록적으로 높아도 자금 출혈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보면 우버의 생각대로 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26
 

미래의 향방

 
긱 경제의 부상은 기술 변화와 관계가 깊다. 기술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으며, 기존 직업을 사라지게도 했다. 19세기경 수공업자들은 공장과 대량생산 체제 때문에 설 자리를 잃었고, 생산의 탈기술화/탈숙련화(deskilling)가 이루어졌다. 현재도 기계학습(machine learning)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첨단 로봇공학 등의 발전으로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 예측되고 있다. 사용자들은 발달하는 기술 덕분에 임시 근로자와 긱 근로자를 더 쉽게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용 주체들은 업워크나 우버 같은 플랫폼 덕분에 적합한 기술이 있는 근로자들을 즉시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자유로운 노동시장을 갖고 있다는 미국에서도 P2P 시장은 전체 비정규 및 임시 근로 부문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비숙련 노동자(또는 탈기술화된 직업 종사자)에게 긱 근로의 부상은 악재다. 반면 유연한 근로와 (부정기적이지만)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싶은 고숙련 노동자에게는 호재다.

탈기술화가 정규직을 없앨까?

워드 프로세서, 재무 소프트웨어, 물류 혁신, 인터넷 등 기술은 현대 산업경제에 의 많은 혁신을 가져왔으나 비숙련 노동자와 탈숙련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27 이제 많은 근로자들은 그때그때 수요가 있을 때만 일하는 임시 근로자, 즉 긱 근로자가 되었다. 노동 규제가 느슨한 국가일수록 이 현상은 심하게 나타난다.28

일부 기술 찬양론자들은 이런 추세가 지속 확장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학자 에릭 브린욜프손(Erik Brynjolfsson)과 앤드류 맥카피(Andrew McAfee)는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면서 복잡한 인지적 작업(cognitive task)도 점차 컴퓨터가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29 이들은 컴퓨터와 로봇의 지능과 능력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인간의 노동에 대한 수요는 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지능형 기계로 인해 탈숙련화되어 인간의 노동은 필요할 때만 ‘긱’ 단위로 제공되는 현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컴퓨터의 지능은 놀랍도록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아이비엠(IBM)의 왓슨(Watson)이라는 슈퍼 컴퓨터는 미국의 <제퍼디(Jeopardy) 퀴즈쇼>에서 인간을 상대로 승리한 후, 지금은 암환자 검진에 사용되고 있다. 아마도 미래에 많은 직종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상당 부분을 대신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컴퓨터가 언제 사람을 대체할지, 이런 추세가 계속될지, 어느 시점에서 끝날지 등에 대해 깊이 논의하고 있다. 데이비드 오토(David Autor)는 자동화가 근로의 효율성을 높일 것이며, 자동화의 발전은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30

실제로 몇몇 국가에서는 이런 일자리의 고도화가 경제 전 부문에 걸쳐 일어났다. 엔리케 페르난데스 마시아스(Enrique Fernández-Macías)에 의하면 “장기적 관점에서 스웨덴은 꾸준히 일자리를 고도화시켰다. 스웨덴은 몇 십 년 동안 수출 지향적인 사회복지 모델을 성공시키며 고숙련•고소득 근로자의 숫자를 꾸준히 늘렸고, 막강한 노조의 힘으로 저임금 노동자의 수를 억제했다.”31 이를 보면 긱 경제의 부상은 기술 발전과 함께 사회적•정책적으로 취한 결정의 복합적 결과다.

이에 비해 미래의 기술 발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경제학자들도 있다. 로버트 고단(Robert Gordan)은 기술 혁신의 속도가 전반적으로 둔화됐다는 점과 지난 몇 십 년간 총생산 증가율이 줄어든 것을 지적하면서 생산성 관련 통계수치와 빅 데이터 및 로봇의 능력을 볼 때 기술의 미래에 대한 하여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폈다. 그는 생산성 증가율의 감소는 자동화(automation)와 컴퓨터 연산능력의 발전속도의 감소를 뜻하며, 따라서 미래의 작업장은 지금에 비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32

국가별 가치관의 차이

자본주의 경제의 자본시장에서 어떤 기술에 투자할지는 정부가 결정하지 않는다. 앱, 플랫폼, 로봇, 컴퓨터, 알고리즘 등도 정부의 지시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술이나 혁신이 사회적 파급 효과를 가져오면 정부가 일부 규제하고 통제한다. 국가마다 유권자, 이익 집단, 관료 사회, 정책 입안자들이 원하는 바것에 따라 ‘고용’에 대한 개념이 달라진다. 이는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의 세법은 ‘독립 계약자’와 ‘피고용인’을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급여세가 적용되고 다른 하나는 면제된다.

기술 변화에 따라 일의 미래가 결정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 긱 근로자로 일할지 결정될 것이다. 기술 변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데 국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33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산업혁명이나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대처한 방식은 이탈리아나 미국과는 사뭇 달랐다. 마찬가지로 로봇, 머신 러닝, 긱 근로자 플랫폼의 등장에 대한 각 사회의 반응도 크게 다를 것이다. 한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 반응에 내재된 가치관은 어떤 것인지에 따라 규제 당국과 정부가 채택하는 정책은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
 

결언

 
이제 ‘긱 경제’는 ‘일’을 의미하는 21세기 용어가 되었다. 실리콘 밸리에서 그리는 경제의 미래상에 따라 만들어진 용어다. 이 경제의 미래상은 자유주의적인 사이버 유토피아와 기술만능주의에 입각한 미래상이며, 앱, 온라인 플랫폼, 인공지능, 로봇 등이 일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며 결정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상용근로자로 일할지 임시•긱 근로자로 일할지는 기술이 결정할 바가 아니다. 임시 근로와 긱 근로는 국가와 사회가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서 노동시장을 자유화하여 우버나 업워크 등의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처음부터 이런 플랫폼과 이를 받쳐주는 근로관계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독립 계약자’와 같은 직종을 만들어주고, 플랫폼 운영이 가능한 방향으로 직종을 해석했기 때문이다.

정책을 수립하고 선택하는 정부와 구성원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책임과 도덕성을 바탕으로 맡은 책임을 다한다. 각 나라마다 복지와 근로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각각의 나라가 처한 사회규범에 기인하며 기술로 극복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기술과 사회규범과의 상호작용 및 섬세한 균형관계에 따라 우리가 긱 근로자가 될지, 상용 근로자로 남을지, 긱 근로의 비중이 줄어들지, 커질지 결정될 것이다. 어찌됐든 선택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도덕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Peter Ward
Peter Ward

전략분석실

피터 워드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연구조교다. 고려대학교 한국사 학사를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석사과정 재학 중이다. 연구관심분야는 북한 사회와 경제, 미국 정치, 남한 정치, 경제사회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