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Carlo Allegri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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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추석 연휴였던 지난 주말, 세계의 관심은 뉴욕의 국제연합(UN) 제70차 총회로 모아졌다. 강대국 정상들의 교류나 교황의 첫 UN 연설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관심은 향후 지구촌에 미치게 될 영향력 측면에서 의미가 큰 UN개발정상회의로 향했다. 앞으로 15년간 지구사회의 주요 관심의제가 될 지속성장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가 공식 채택되어 발표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193개 회원국들 중 역대 최대규모인 160개국 정상들이 UN개발정상회의에 참석하면서 그 관심을 대변하기도 했다.

2000년에 UN은 새천년을 맞이하며 범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공동의제로 빈곤과 기아 퇴치, 보건 및 교육 환경의 개선, 질병 퇴치 등 8가지 목표로 구성된 새천년개발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설정하였고, 국제사회는 목표 달성을 위해 공동 노력해 왔다. 올 7월 UN에서 발표된 MDGs 성과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세계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던 절대빈곤 인구는 2015년 현재 세계인구의 14% 정도로 크게 줄었고 교육, 보건, 양성평등, 질병 등의 많은 지표들도 현저하게 개선되었다. 이 성과는 1990년 810억 불 규모에서 2014년 1,352억 불 규모로 확대된 선진국들의 공적개발원조(ODA) 기여와 무관하지 않다.

UN의 지속성장목표는 새천년개발목표의 기한이 올해로 만료됨에 따라 새롭게 채택된 국제사회의 공동의제이다. MDGs는 여러 긍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중심의제가 절대빈곤 퇴치였던 만큼 UN 회원국 모두에게 적용되는 포괄적 목표가 되기엔 한계가 있었다. 아울러 빈곤, 기아, 양성평등 등의 사회적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주로 표면적인 지표 개선에 노력을 기울였고, 분야도 사회경제적 영역에 집중돼 인권이나 평화, 민주적 거버넌스 확립과 같은 정치사회적 문제의 중요성이 반영되지 않았다. 설정된 목표들 간의 연계도 부족하여 ‘발전’이나 ‘성장’이 나아가는 전체적이고 궁극적인 지향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지난 주말 공식 채택된 UN의 SDGs는 지난 15년간 이뤄 낸 MDGs 성과를 단절 없이 계승하면서, 범세계적인 지속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함께 가꿔 갈 공동의제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으며, MDGs와 비교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첫째, SDGs는 17개 주요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로 구성돼 있다. 선언적인 8개 목표가 제시됐던 MDGs와는 달리, SDGs는 주요 목표 달성을 위해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의제까지 제공한다. 아울러 개선 및 발전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술적인 304개 지표들을 선정함으로써 개선 효과를 실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했다.

둘째, SDGs는 MDGs의 기존의 기조는 물론 포용성과 보편성이라는 새로운 기조를 강조하는 한편 에너지, 혁신, 노동환경, 도시문제, 기후변화, 평화와 정의 등 저개발 국가들의 개발 문제뿐 아니라 선진국들의 지속성장 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또한 17개 주요 의제들은 파편적, 개별적으로 작용하기보다 사회 발전과 포용, 경제 성장, 지속가능 환경 등 다른 목표들과 연계하며 포괄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MDGs가 UN 사무국의 주도로 개발되었음에 반해 SDGs는 193개 UN회원국들의 정부대표 및 범국제적인 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한 연구와 협의를 통해 개발됐다. SDGs는 2012년 6월 Rio+20 회의의 결정에 따라 구성된 개방형 워킹그룹(open working group)이 2년간 개발했고 2014년 초안이 UN에 보고되었다. UN이 지구적 차원의 지속성장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와는 달리 상향적(bottom-up) 거버넌스 구조를 활용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UN의 SDGs 채택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으로 새롭거나 획기적인 일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제사회에서 post-MDGs시기의 국제협력 의제개발에 대한 논의는 일찍이 시작되었고, 의제개발 과정에서 UN은 모든 정부와 민간부문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었다. 이는 개별 국가가 소외되지 않고 UN의 SDGs 개발과 채택에 동참하는 동시에 이들 나라들이 대내외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2014년 스페인 정부와 UNDP의 주도로 ‘SDG펀드(SDGF)’가 설립되기도 했다.

중견국 혹은 가교국(架橋國) 외교를 주창하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개발원조위원회(DAC) 29개 가입국가들 중 하나로서 향후 국제사회의 공동개발의제로 채택된 SDGs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외교적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지난 몇 년간 지속해 오고 있는 ‘새마을운동 ODA’가 SDGs 달성을 위한 개발협력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전략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우리의 개발의제를 국제사회에 강요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UN MDGs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방안으로 2011년 5월 ‘새마을운동 ODA 기본계획’을 세웠고, 2014년 3월에는 ‘글로벌 새마을운동 ODA 전략’을 공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새마을운동 ODA를 추진한 우리 노력이 국제사회의 MDGs 달성에 얼마나 실효적으로 기여했는지에 대한 국제기구나 제3국의 분석과 평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수혜국의 빈곤퇴치나 경제개발에 기여했지만 새마을운동 ODA가 MDGs를 위한 다자외교가 아닌 양자외교 측면에서 시행됐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양자외교를 넘어 다자협력의 장에서 공공기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UN개발정상회의 본회의에서 새롭게 제시한 새로운 ODA 프로그램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Better Life for Girls)’ 구상은 의미가 크다. 이 구상은 보건과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개도국 소녀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향후 5년간 2억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소녀’라는 특정 연령층을 집중 지원해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새로운 공공외교 분야를 개척하고, 이를 통해 우리의 외교적 역량을 높이며, SDGs 달성을 위한 국제적 기여가 한국의 중견국 입지를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외교적 역량 및 대상과 관련해 이 프로젝트가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의미 있는 계획인 만큼 국내의 소녀층이나 여성과 연계해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한다면 더욱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국내에서 지지 받지 못하는 가치가 외교 정책을 통해 국제사회에 전달되고 실현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보다 나은 삶’ 구상이나 새마을운동을 새로운 범국제적인 농촌개발전략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SDGs시대에서 국제협력의 의제 달성을 위한 공여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설 수도 있다. 양자외교 중심을 벗어나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외교 역량을 넓혀나간다는 우리 외교의 시험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About Experts

최현정
최현정

외교안보센터

최현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다. 청와대 녹색성장기획관실 선임행정관(2010-2013) 및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2008-2010)을 역임하였고,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연구위원(2008), IT전략연구원(現 한국미래연구원) 연구위원(2006), 일본 동경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2003-2004), 공군사관학교 국방학과 교수요원(1995-1998)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기후변화, 녹색성장, 신성장동력, 동아시아 발전주의 국가 모델과 산업정책, 국가미래전략, 개발원조 등이다. 연세대학교 국제대학(UIC)에서 비전임교수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Green Growth for a Greater Korea: White Book on Korean Green Growth Policy, 2008~2012 (Seoul: Korea Environment Institute, 2013)가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학사와 정치학 석사, 미국 Purdue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