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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가 패퇴했다. 4년 전 IS가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장악해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언하자 반IS 국제연합전선이 조직돼 격퇴전에 나선 결과이다. 74개 나라와 5개 기구로 이뤄진 연합전선엔 우리나라도 포함되어 있다. 5개 기구 중 하나인 인터폴의 수장으로 지난달 한국인이 선출되기도 했다.

IS는 시리아 락까와 이라크 모술에서 패퇴했으나 반IS 국제연합전선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글로벌 지하디스트 테러가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IS 창궐의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핵심 지도부의 낮은 조직 장악력에 있었다. 지도부는 행동대원들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끌려다녔다. IS 지도부를 몰아냈으나 격퇴를 자축하기엔 아직 이른 이유다.

IS는 다국적, 다인종, 다언어 집단이었다. 조직원들이 90여 나라에서 모여들었다. 이들 외국인 전투원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스스로 극단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지도부의 권위, 명령체계, 위계질서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인터넷 평등주의가 이들의 조직 문화였다. 상향식 조직의 특성상 하부 조직의 목소리가 훨씬 컸던 IS는 중앙 지도부의 통제 없는 산발적 테러로 유명했다. 이들의 신출귀몰 테러는 언제 어디서 다음 공격이 일어날지 가늠할 수 없게 했고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9·11 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의 경우 조직 수뇌부가 공을 들여 조직원을 선별 모집했고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전 세계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공개적인 조직 충원이 어려워졌다. 극단주의자들은 지하로 숨어들었고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극단주의 채팅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세기말적인 괴물 IS가 생겨났다. IS는 알 카에다가 절연을 선언했을 만큼 잔인하고 극악무도했다.

테러리스트의 프로파일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냉전 이전 테러리스트의 유형은 명확했다. 교육을 못 받은 실업자에, 사회로부터 소외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미혼 남성이었다. 냉전 이후 구분이 모호해졌다. 대학 교육은 물론 박사학위 소지자에 결혼과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다양한 연령층과 여성까지 포함됐다. 여기에 IS가 등장하며 그야말로 유형화 불가능의 시대가 시작됐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IS 행동대원들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투철하며 같은 수니파 무슬림이라도 동조하지 않으면 잔인하게 처벌했다. 자체 트위터 앱을 개발하고 완성도 높은 홍보물을 영어로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무차별적으로 뿌렸다. 수감 중이던 알 카에다 조직원이 옆방에 새로 들어온 IS 대원을 보며 이슬람에 대한 기본 지식은 물론 정치나 사회에 대한 진지함이 전혀 없는 것에 놀랐다는 에피소드는 한둘이 아니다.

IS 조직원 프로파일링의 결과는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 없이 쉽게 테러리스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북미, 호주에서 묻지마 살인, 총기난사를 저지른 후 IS에 충성을 맹세한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사회 부적응자들이었다. 중산층 출신의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IS 장악지역에 들어가 군사 훈련을 받고 돌아온 조직폭력배들도 있었다. 총기 허가, 이민자 통합, 치안 부재 등 각국의 특정 취약 고리와 사회 불만이 만나 자생적 극단주의의 프랜차이즈화가 나타난 것이다.

IS 외국인 전투원들은 이슬람의 이름을 빌려 극단 성향 채팅방에서 분노를 폭발시켰다. 이들은 쿠란을 잘 읽을 줄도 몰랐다. 국제사회에선 IS를 이슬람 테러리즘 대신 폭력적 극단주의로 부르자고 한다. 극단주의를 추종한 이들은 SNS 대화창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생각한다고 여겼다. 인터넷 특성상 극단적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는 침묵을 지키거나 토론방을 나가버리기 때문이다. 왜곡된 인식을 통해 집단적 극단화가 결집되는 순간이다. 헬조선을 증오하는 우리 젊은 층의 분노가 별다른 전조현상 없이 가상공간에서 극단적 소수나 외로운 늑대로 경도될 수도 있는 일이다.

 

* 본 글은 12월 11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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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