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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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2010년대 이후 세계질서의 변화는 우리에게 항상 “지금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둘러싼 주요 국가(dominant power) 간의 경쟁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어왔고, 기존 국제질서의 통제력은 오히려 느슨해지고 있으며,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서 재편의 중심에서 미국은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협력, 경쟁 그리고 견제를 병행해왔습니다. 국제질서의 혼란과 국제기구의 형해화 역시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각 국가들이 보이는 정책과 행태는 과거의 냉전 시대와 구별되지만, 그것은 1990년대 이후 전개되어 온 이른바 ‘탈냉전’의 흐름과도 차이가 있는 것이었으며, 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한 국가들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그 방향과 속성을 쉽게 가늠하기가 힘든 국제질서의 흐름을 살펴보기 위해 2015년부터 “아산국제정세전망” 보고서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를 설정해 왔습니다. 전략적 불신(2015), 뉴노멀(2016), 리셋(2017), 非자유주의 국제질서(2018), 한국의 선택(2019), 新지정학(2020) 등이 지금까지 연구원이 다루었던 주제들입니다. 이 주제들은 서로 다른 키워드를 내세웠지만, 미국과 중국 간의 전략경쟁, 전통적 지정학(地政學) 개념이 적용되기 힘든 세계로의 돌입,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형성을 위한 힘든 도전의 특수성,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각 국가/지역의 선택을 고찰하고 그 과정의 명암을 분석하는 데는 많은 고심이 있었습니다.

2021년의 주제로 선정된 ‘혼돈의 시대: 강대국 일방주의와 新냉전의 심화, 국제기구의 형해화, 그리고 국제규범과 질서의 붕괴’ 역시 그동안의 고심의 연장선상에서 선택된 주제입니다. 2020년을 설명하는 가장 뚜렷한 단어는 ‘COVID-19’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신종 감염병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변환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2020년 중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세계는 이전에도 이미 경험되고 있던 것이며, COVID-19는 그 특징을 더욱 부각시켜주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0년 한 해 동안 세계적인 감염병 확산을 둘러싸고 세계는 때로는 단절되고 때로는 작은 그룹으로 뭉치는 모습을 보였지만, 동시에 세계적 공통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거버넌스 형성에 대한 욕구는 더욱 증대하였습니다. 미중 간의 전략경쟁 역시 더욱 격화되어 가면서도 세계화 속에서의 상호의존을 완전히 탈피하기는 어렵다는 점 역시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세계 전반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각 지역 차원에서는 특정 국가들의 합종연횡이나 영향력 강화 노력이 두드러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성 중의 일부는 과거 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지만, 2020년의 세계는 냉전적 질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대통령으로 뛰어든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대통령의 투박한 집권 4년은 세계질서 변화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여 미국의 입지를 손상시키고 중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 한몫하였습니다. 한반도 정세에도 위험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2020년 중 나타난 국제질서의 혼돈은 우리에게도 북핵 위협의 급격한 증가라는 엄중한 안보현실을 안겨주었습니다.

2021년의 세계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까요? 2020년의 반복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방향으로의 전환을 예고할까요?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 경쟁과 자유민주주의의 위기 문제는 어떤 양상을 띠게 될까요? 이 보고서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우리 연구원 차원의 해답을 구하기 위한 노력의 집약입니다. 이 보고서가 새로운 세계질서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국내외적 논의를 위한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보고서 발간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으신 연구원 내부 및 외부의 저자 여러분과 실무자들의 노고와 열성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한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