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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란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 economy)가 한 국가의 범위를 넘어 여러 나라들 사이에 형성되면서 구축되어 온 국제질서를 일컫는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의 세계화’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근대국가를 기본 단위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들간의 관계를 무력이 아닌 선의의 경쟁과 국제규범에 입각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국가들간의 경쟁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가장 큰 수혜국이다. 1960년대 초반 ‘수출입국’의 기치를 올린 이후 한국은 급속히 팽창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승하여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군비경쟁이 아니라 무역경쟁을 통하여, 인구의 크기보다는 국민의 근면성을 통하여, 군사력보다는 기술력을 통하여, 영토확장 대신 시장확장을 통하여 국부를 축적하면서 유사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없는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는 아직도 국가간의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만 간주하는 지정학적인 사고, 세력균형적 사고가 횡행하고 있고 실제로 무력을 앞세워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나라들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이다. 이 국가들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자신들의 적국, 또는 잠재적인 적국들의 이해를 극대화 시켜주는 한편 자국을 압박하고 약화시키는 기제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한국의 번영을 체제에 대한 실존적인 위협으로 간주하면서 한국이 속해있고, 한국이 대표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한미동맹의 와해를 꾀하고 있다. ‘주체’을 외치는 북한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편입되는 것은 곧 자본주의 국제체제에 흡수되어 ‘주체성’을 잃고 제국주의자들의 노예로 전락하는 첩경이다.

러시아는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인 EU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NATO의 팽창을 무력으로 막고 있다. 소련의 와해를 가져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러시아도 집어삼키려는 서방세계의 음모에 불과하다는 것이 푸틴의 주장이다.

중국은 한국 못지 않은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수혜국이면서도 미국과 일본 주도의 동북아시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궁극적으로는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역행한다면서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국 패권주의의 도구인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은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주도적으로 구축하고 수호하여온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오고 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

사실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칼 마르크스는 영국 등의 초기 자본주의가 극심한 빈부격차를 초래하자 이를 “계급(class)” 간의 이해관계의 충돌로 규정하면서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소멸을 예언하였다.

레닌은 자본주의가 한 국가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으로 확산되자 “제국주의론”을 주창하면서 자본가와 노동계급 간의 갈등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계급 모순을 전세계적인 차원으로 확신시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국제화가 자원과 시장,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식민지에 대한 쟁탈전을 야기시키고 제국주의 열강 간의 경쟁을 심화시킴으로써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라고 하였다.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는 영국과 미국 등이 주도하는 국제자본주의 질서가 자국의 이익을 해친다며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를 주창하였다.

소련은 자본주의 국제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코메콘(Comecon)이라는 국제공산주의 경제공동체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주로 남미와 국내에서 한때 유행했던 세계체제론이나 종속이론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란 ‘중심부(core)’의 국가들이 ‘주변부(periphery)’의 착취를 통해서 유지되는 것이라면서 비판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저항과 대안은 모두 실패하였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이에 합류한 나라들에게 번영과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반면,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국가주의의 이름으로,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거부한 나라들은 몰락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북한과 러시아, 중국 등의 저항은 예외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 세계 곳곳을 휩쓸고 있는 반세계화의 물결은 과연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릴 것인가?  한국의 번영을 가능케 한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아산정책연구원의 2018년 국제정세전망은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세계 각처에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어떤 도전에 직면할 것인지 짚어봤다.

아산정책연구원 원장 함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