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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판문점선언의 군비통제분야 평가

판문점선언의 3개항 가운데 한반도 군비통제와 관련된 제3항은 ‘현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로 규정하며 다음 4개 항을 제시함.
① 상호 무력 불사용에 대한 불가침 합의 재확인 및 엄격한 이행 약속
② 군사적 긴장해소와 신뢰구축을 통한 단계적 군축 실현
③ 올해 종전선언,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4자 회담 추진
④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확인

제3항은 판문점선언 이행 차원에서 전개될 남북간 군사회담의 최종 목표가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바, 이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70여년 간 유지되어 온 한반도의 안보질서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목표 설정임.

불가침 합의는 남북한이 1991년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관련 조항과 후속 이행합의인 “남북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불가침부속합의서)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임.
– 판문점선언에서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지금까지 남북기본합의서를 전면적으로 이행하자는 한국 역대 정부의 요구를 묵살하면서,
– 미국에 대해 불가침 약속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남북간에는 이미 불가침에 합의해서 추가 합의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 남북불가침 합의 사실을 선별적으로 활용했음.

긴장해소와 신뢰구축을 통한 단계적 군축은 전통적인 재래식 군비통제 이론과 과거 유럽의 재래식 군비통제 경험을 토대로 ‘先운용적 군비통제, 後구조적 군비통제’의 점진적 수순을 따르겠다는 것으로 평가됨.
– 운용적 군비통제는 쌍방간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오해와 오판으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방안으로서 군사훈련에 대한 통보와 참관, 군 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등이 있음
– 구조적 군비통제는 양측의 실제 군사력을 감축하고 보유를 제한하는 등 군사력에 실질적인 규제를 가하는 조치임.

종전선언에서부터 3자/4자 회담 개최까지 제기한 것은 2018년에 종전을 선언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며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것으로서 향후 한반도의 안보구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액션 플랜임.
–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다음 문제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요구됨:
– ① 정전협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의 법적, 실체적 유효성 여부,
– ② 굳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하는 긴급하고 불가피한 이유,
– ③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것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4자회담 사이의 불분명한 관계,
– ④ 북핵 완전 폐기와의 명확한 선후 관계.

핵문제 관련 언급은 판문점선언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부분으로서 정부가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북핵문제의 중요성을 다양하게 밝혀왔던 점에 비춰볼 때, 우선 순위와 명확성 측면에서 일반의 예상과 다른 의외의 결과임.
– 판문점선언은 제1항에서 핵무기 포기 여부에 대한 김정은의 의사를 명확하게 명시했어야 함.

북핵폐기를 첫 번째 목적으로 성사된 정상회담의 문건은 북핵 완전 폐기가 실현되지 않으면 그 의미를 가질 수 없으며,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의 판문점선언 이행은 국내외적으로 커다란 반발과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음.
–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를 언급한 제④항에 앞서 명시한 종전선언, 군사적 신뢰구축과 단계적 군축, 평화협정 체결 등은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가 없는 한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해치를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됨.
– 북한에 핵이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남북한 군축과 평화협정 체결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으며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도 어려움.

 

Ⅱ. 한반도 군비통제의 조건과 한계

 1. 재래식 군비통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
남북한이 본격적인 군비통제 협상을 벌인 것은 1990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임.
– 당시 북한은 기존의 ‘조선반도의 평화를 위한 군축제안’과 같은 내용을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함.
– 한국은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한 후 모든 폭력행위의 포기를 포함하는 불가침 약속을 기초로 군비감축을 추진한다는 단계적 방안을 제의함.

남북한은 일련의 협상을 1991년 12월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는데, 기본합의서의 불가침부문에서 6개조의 군비통제 추진 윤곽에 합의함.
– 무력불사용(제9조), 분쟁의 평화적 해결(제10조), 불가침 경계선 설정(제11조),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한 신뢰조성과 군축(제12조), 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제13조), 남북군사분과위원회 구성(제14조).
– 불가침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다음 네 개 항목으로 구성된 부속합의서를 체결함: ①무력불사용, ②분쟁의 평화적 해결 및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 ③불가침 경계선 및 구역, ④군사직통전화의 설치·운영.

특히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기본합의서 발효 후 3개월 안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5개항을 협의·추진하기로 합의했음.
– ①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 및 통제 문제
– ②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문제
– ③ 군인사 교류와 정보교환 문제
– ④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실현 문제
– ⑤ 검증 문제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서 드러난 군비통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됨.
– 첫째, 무기에 대한 제한보다 병력 감축을 선호하는 데, 이는 언제라도 감축된 병력을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체제의 특성을 반영함.
– 둘째, 북한이 제시한 각종 군축방안은 신뢰조성에 대해 언급하고는 있으나 군축에 초점을 맞추었음.
– 셋째, 군축 완료 후의 최종 병력 수를 10만 명으로 설정하고 군축 개시 후 3-4년 내에 이를 달성하도록 함으로써 매우 급속한 군축을 주장함.
– 넷째, 무기를 우선 감축대상으로 삼지 않음으로써 군축의 종료단계까지 무기체계의 수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입장을 견지함.
– 다섯째, 외국군 병력과 장비의 철수를 주장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약화를 기도함.
– 여섯째, 북한에는 존재하지 않는 외국군의 한국 주둔과 주한미군의 핵보유 의혹을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함.

2.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에 대한 올바른 인식
과거 남북한 군비통제 협상의 가장 큰 정책적 오류는 남북대결이 심화된 상태에서 관계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군사적 신뢰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신뢰조성의 기능과 역할에 과도한 기대를 걸었다는 것임.
– 신뢰구축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유럽의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간의 재래식 군비통제 경험을 원용했지만, ‘核 대 核’의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재래식 군축을 했던 유럽과 달리 한반도는 북한만 핵은 물론 화학 및 세균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일방적으로 보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유럽의 재래식 군비통제 경험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할 수는 없음.
– 신뢰구축은 안보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주변적 사안일 뿐이며 적대 당사자들이 긴장완화에 대한 공동이해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할 뿐임.

신뢰구축방안을 이행한다고 해서 신뢰가 무럭무럭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단지 상대의 가시적인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불필요한 긴장의 고조를 막으면서 오해와 오판에 의한 무력충돌 가능성을 줄이는 기능을 할 뿐임.
– 신뢰구축방안을 합의‧이행하는 것과 국가간에 진정한 신뢰가 구축되고 우방이 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며, Confidence-Building은 Friendship-Building이 아님.
– 신뢰구축방안만으로 상대의 의도와 진정성을 확인할 수는 없으며, 다양한 신뢰구축방안이 추진될수록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격언을 되새겨야 함.

신뢰구축의 역할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남북한이 한 두 가지 신뢰구축방안에 합의했을 때 마치 평화가 달성된 것과 같은 “허위 안보감”(false sense of security)을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국가안보를 저해할 위험이 있음.
– 정부는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비통제가 마치 적을 친구로 만듦으로써 신뢰구축만 되면 안보위협에서 해방되고 평화가 달성될 것이라는 잘못된 여론이 형성되지 않도록 국민을 계도해야 함.

3. 향후 북한의 예상 태도와 한국의 대응방안
북한은 對南 핵무력 우위를 확보한 상태에서 남북간 긴장완화와 평화달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일정한 신뢰구축과 군비통제 조치를 추진할 것임.
– 김정은이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포한 소위, ‘새로운 전략적 로선’은 ‘병진노선’의 수정이 아니라, 지난 5년간 병진노선에 의거해서 핵무력 완성이란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으니, 앞으로는 튼튼한 핵무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에 나서겠다는 병진노선의 고수임.
– 병진의 두 축 가운데 핵무력을 완성했으니 정책의 무게중심을 경제발전으로 옮기겠다는 것으로서 핵무력 보유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인 것임.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황에서 남북간의 불가침과 신뢰구축 및 군축은 오히려 우리의 안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현 단계에서 북한이 재래식 군비통제에 적극적인 데는 두 가지 의도가 있는 것으로 평가됨.
– 첫째, 재래식 군대 유지에 소요되었던 인적, 물적 자원을 경제건설로 돌리기 위한 포석으로 향후 북한이 남북간 대규모 병력감축을 제의할 가능성이 큰 바,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요구됨.
– 검증의 어려움을 감안해서 병력감축은 군축의 최종단계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유럽의 경험이 주는 중요한 교훈임.
– 둘째, 북한은 한국의 질적으로 우수한 무기체계를 축소시키기 위해 전차, 전투기, 함선, 야포 등 주요 무기체계 별로 ‘1:1’ 감축을 제의할 수 있음.

북한은 종전선언으로 시작되는 한반도의 안보구도 재편 기회를 활용하여 한국, 미국 및 국제사회를 상대로 강력한 심리전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정부차원의 대비가 필요함.
– 평화 분위기를 극대화해서 한국의 대북 경계심을 약화시키고 허위 안보감을 확산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핵개발도 일리가 있다는 인식을 우리 사회 저변에 확산시켜 북한 핵을 사실상 용인하도록 유도할 것임.
– 미국 여론을 상대로 종전 선언으로 현재의 정전협정은 그 목적과 기능을 상실했고 평화협정 체결로 진정한 평화가 달성되었다고 선전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미국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하도록 유도하면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굳이 요구할 필요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낼 것임.
– 국제적으로는 평화가 달성된 한반도의 상황과 대북제재 사이의 불일치성을 부각하면서 전쟁이 종식된 만큼 남북한이 서로 협력해서 평화와 번영을 이루도록 국제사회도 도와줘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면서 대북제재 무력화를 시도할 것임.

지금까지 김정은의 발언이나 북한 당국의 공식 문건에 “보유한 핵무기와 관련 능력을 완전히 폐기하겠다”고 언급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 유의해야 함.
–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의 어느 누구도 NPT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음.
– 우리 특사단은 3월 6일자 언론발표에서 북측이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소개했지만 체제안전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음.
– 3월 26일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비핵화 문제는 한미가 북한의 선의에 응해서 평화와 안정의 분위기를 만들고 평화실현을 위해 점진적이고 동시적인 조치를 취하면 해결될 수 있다”면서 한미에 책임을 전가함.
– 4·27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는 발언은 핵포기 의사로 해석될 수 없으며, 1993년 美北 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역대 정부가 대북 안전보장을 약속했고, 트럼프 행정부도 ①북한침공, ②정권교체, ③북한붕괴, ④흡수통일에 반대하는 소위 ‘4대 NO’ 원칙을 밝혔음에 유의함.
– 정부는 북한이 체제안전 보장과 적대정책 해소를 구실로 한미동맹 와해와 주한미군 약화를 시도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관철하려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함.

* 본 글은 05월 10일 ‘국회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연구부문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