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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파리 테러와 ISIS

 

장지향 선임연구위원, 지은평 연구원

 

2015년 11월 14일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는 유럽 국적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이 ISIS 주력 조직의 유명세에 편승하려는 시도다. ISIS의 핵심 수뇌부가 중앙에서 일사 분란하게 조직한 테러로 보기 어렵다.

주모자가 시리아의 ISIS 외국인 부대에 있었고 이후 시리아를 한 차례 더 오갔지만 이번 테러는 중앙 지도부로부터 구체적인 테러 지시를 받고 조직한 것이 아니라 주모자가 독자적으로 현지의 ‘외로운 늑대’나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규합해 벌인 테러로 봐야 한다. ISIS 내 외국인 테러 전투원과 ISIS에 동조하는 서구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거의 인터넷을 통해, 자발적으로 극단주의에 입문한다. 가상 공간의 집단적 극단화 과정을 통해 아래로부터 충원되면서 ISIS 하부 조직이 확산됨에 따라 핵심 지도부의 권위는 흔들리고 있다.

현재 ISIS 격퇴전은 반(反) ISIS 국제연합전선 참여국 간의 이견과 정책 우선 순위의 차이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연합전선은 ISIS 공습작전만 펼치는데 이마저 참여국의 타격 대상이 달라 효과적이지 못하고 러시아가 공습에 참여하면서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그럼에도 공습은 중요하다. ‘잔인한 테러’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ISIS를 군사적으로 패퇴시키는 것 자체가 중요할 뿐 아니라 ISIS가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리는 것도 심리전 차원에서 의미가 크다. 군사적 해결책이 폭력적 극단주의를 퇴치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만 정치∙외교적 조치 만으로 사태를 해결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동시에 소외 계층의 집단적 극단화를 막기 위한 장기적인 통합 정책도 필요하다. 개방성과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극단주의 테러에 취약하기 때문에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버린 테러리즘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ISIS는 어떻게 유럽 중심까지 세를 확장했나

ISIS는 수니파 이슬람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지하디스트 극단주의 테러 세력으로 알 카에다 이라크 지부가 변형되면서 생겨난 조직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안정화-재건 과정에서 정권을 잡은 시아파 정부와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의 제도와 인력을 무차별적으로 제거했다. 이에 반발한 후세인 시절의 집권 바아트 당 잔존 세력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손을 잡았고 당 출신 고위 관료들은 ISIS의 핵심 지도부를 장악했다. 이들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정치적으로 세속사회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에 교조적 지하디스트 세력과는 일시적인 동맹을 맺고 있다. ISIS는 시리아의 아사드 독재 정권과 그에 저항하는 반군 사이에 벌어진 내전을 틈타 세력을 확장하고 2014년 시리아 락까(Raqqa)를 수도로 칼리프 국가 수립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칼리프 국가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7세기에 세웠던 순수한 초기 이슬람 공동체를 가리킨다. ISIS는 이슬람의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면서 이에 동조하지 않으면 타 종교, 타 종파는 물론 같은 수니파라도 가차없이 처벌한다. ISIS는 알 카에다가 절연을 선언했을 정도로 극악무도하다. 점령 지역에서 교조적인 이슬람 해석에 근거해 법과 제도를 실행하고, 열악한 공공 서비스를 홍보하며 ‘국가’라고 주장한다. 원유와 유물을 밀매하고, 인질의 몸 값을 받아내며, 주민들로부터 강압적으로 세금을 징수해 여타 테러 조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경제력이 강하다. 온라인을 통한 전투원 모집에도 능숙하다. 조직원의 국적이 90여 나라에 달할 만큼 다국적, 다인종, 다언어적인 초국제 조직이 됐으며 외국인 테러 전투원(Foreign Terrorist Fighters, FTF)이 최소 1만 5천 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ISIS를 표방한다고 다 ISIS는 아니다. 근거지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뉜다. 제1그룹은 위에서 언급한, 시리아 동부와 이라크 북서부를 장악해 국가를 선포한 주력 조직으로 중앙 지도부를 두고 있다. 제2그룹은 주변 무슬림 국가의 군소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제3그룹은 서구의 소외된 무슬림 이민자 그룹이다. 뒤의 두 그룹은 중앙 지도부와의 약한 연결고리는 있으나 중앙 지도부의 치밀한 명령 체계 아래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보기 어렵고, 1그룹의 유명세에 편승하려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중앙지도부와의 연결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표 1> ISIS 세력 그룹

표1.ISIS 세력 그룹
 
최근 들어 1그룹을 추종하는 세력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ISIS 브랜드의 프랜차이즈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제2그룹 단체들과 제3그룹 무슬림 이민자들이 1그룹에 충성을 선언하고 이들의 잔혹한 행위를 추종, 모방한다. 리비아의 안사르 알 샤리아(Ansar al-Sharia)와 나이지리아의 보코 하람(Boko Haram)이 ISIS의 지부임을 선언했고 ISIS의 이집트 지부를 자처하는 윌라야트 알 시나(Wilayat al-Sina, 구(舊) 안사르 베이트 알 마크디스 Ansar Bait al-Maqdis)는 최근 자신들이 이집트를 출발한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파키스탄 탈레반(Pakistani Taliban)과 인도네시아의 자마 이슬라미야(Jemaah Islamiah)도 ISIS 지지 선언을 했다. 이들은 2그룹에 속하는 조직이다. 이들 극단주의 조직들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주목을 끌지 못하다 ISIS가 유명해지자 이를 차용한다.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후 ISIS와의 연계성을 내세우는 제3그룹 소속 무슬림 이민자들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서구의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사회 주변부를 떠돌던 무정부주의자 개인이나 조직 폭력범의 일부가 ISIS의 장악지역에 들어가 전투나 군사 훈련을 겪고 돌아와 ISIS 브랜드를 범죄에 활용하고 있다. 이번 파리 테러범들도 대부분 강도, 폭력 전과범들이었다. 2015년 12월 2일 일어난 미국 LA 동부 샌버나디노 총격 난사 테러 역시 자생적 극단주의 추종자들이 저질렀고 테러 자행 후 ISIS에 충성을 맹세했다.
 
 
에코 체임버 효과가 파리 테러범과 ISIS에 연결시켜

서구의 자생적 테러리스트와 ISIS의 외국인 테러 전투원은 인터넷과 SNS를 적극 활용하는 ISIS의 홍보 공간에서 집단적 극단화 과정을 거쳐 자발적으로 ISIS에 가입했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극단적 소수가 가상 공간에서 사회에 대한 분노를 결집하면서 더 극단화 되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다. 에코 체임버는 소리가 퍼지지 않도록 만든 방으로 그 안의 소리는 증폭되고 왜곡된다. 극단주의를 추종하던 젊은이들은 채팅방이나 트위터 등에서 대화를 나누며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터넷 특성상 극단적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다수는 침묵을 지키거나 토론방을 나가기 때문이다.

ISIS는 SNS를 통해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체 영어 홍보 비디오와 책자를 선전하며, 독자적인 트위터 앱을 개발할 정도로 홍보에 집중한다. 알 카에다의 911 테러 이후 범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안전한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이슬람 극단주의 동조 세력이 인터넷으로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ISIS의 홍보전은 전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 가운데 ‘외로운 늑대’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자생적 테러리스트나 외국인 테러 전투원을 끌어 들였다.

이번 파리 테러의 경우 프랑스와 벨기에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한 무슬림 이민자 2세대 출신 테러범 8명 가운데 총책인 압델하미드 아바우드(Abdelhamid Abaaoud)가 시리아에서 ISIS 조직 생활을 경험했다. 그 뒤 유럽으로 돌아와 주변의 외로운 늑대들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ISIS 주력 조직의 하부 단위와 자생적 테러리스트 간의 연계는 좀 더 밀접해 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근 자발적으로 충원되는 ISIS 하부 조직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독자성도 강화돼 지도부의 명령 체계와 위계질서가 약화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익명성이 강한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을 통해 모인 사람들에게는 평등주의가 강해 이런 요소가 탈중앙화를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국제적 격퇴 노력은 교착 상태… ISIS 위세는 축소 안돼

ISIS는 수니파와 시아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미국과 러시아, 터키와 시리아, 중국과 일본 모두에게 공공의 적이지만 ISIS 격퇴전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반 ISIS 국제연합전선의 주요 참여국 간에 아사드 정권의 거취, 이란의 부상에 대한 경계 정도, 쿠르드족 지원, 시리아 난민 위기를 둘러싼 이해 대립으로 통합 전략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연합전선은 ISIS를 공습만 하고 있는데 그나마 참여국 간에 타격 대상이 달라 효과적이지 못하고 러시아가 공습에 참여한 뒤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무엇보다 65개국이 참가하는 반 ISIS 국제연합전선의 리더인 미국이 적극적이지 않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천문학적인 전비로 피로해진 미국에선 또 다른 군사개입의 우려가 커가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중시 전략을 천명하고 중동의 무력분쟁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선을 앞둔 오바마 정부가 ISIS 격퇴를 위해 지상군 투입이라는 도박을 감행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군사고문단과 소규모 특수부대 파병 형식이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대신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을 꾀하며 이란과 핵 협상을 전격적으로 타결하는 한편 전략적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터키를 위시한 중동 동맹국들의 불만이 매우 높다. 터키와 이라크는 쿠르드를 둘러싸고 대립한다. 터키는 시리아 내 쿠르드에 대한 지원은 거부하고, 시리아 반군을 도와 ISIS와 아사드 정권을 동시 격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정부는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자치정부군 페쉬메르가(Peshmerga)에 대한 무기 공급을 반대한다. 이라크는 수니파 세력이 시아파 중앙 정부를 불신하는 내홍에도 시달린다. 관련국들이 ISIS와 싸우고 있는 자국 내 쿠르드에 대한 지원을 외면하는 것이다.

연합 전선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2014년 8월부터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캐나다 등 연합세력은 이라크 내에 있는 ISIS 근거지에만 공습을 개시했다. ISIS의 시리아 근거지는 제외됐는데 시리아 정부의 공식 요청이 없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9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위시한 수니파 아랍 5개국이 공습을 시작했으나 이라크 정부의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이라크 내 ISIS 목표물은 제외하고 시리아 내 ISIS만 폭격했다.

그러다 2015년 9월 시리아 난민 위기가 발생하자 호주와 프랑스가 국제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내 ISIS 공습에 나서면서 격퇴전에 진전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바로 러시아가 아사드 정권 지원의 일환으로 ISIS 공습에 나서 연합전선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반군을 함께 공습하고,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 영공 인근에서 격추되면서 ISIS 격퇴를 위한 단일전선의 전망은 다시 어두워졌다.
 
 
 ‘테러리즘의 뉴 노멀’ 대처 위해 포용적∙구조적 노력 필요

개방성과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사회는 극단주의 테러에 취약해 ISIS의 테러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동시에 보장해야 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극단주의 테러의 쉬운 표적이다.

ISIS로 대표되는 폭력적 극단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이상 민주사회의 적인 테러 격퇴를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뉴 노멀로 등장했다. 파리 테러 직후 프랑스에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비상 조치가 취해지고 그 결과 5일 만에 추가 테러를 모의하던 용의자들이 검거됐다. 이는 ‘안전과 자유’의 동시 보장이 쉽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보여준다.

테러 격퇴를 위해서는 ISIS의 패배 모습을 국제사회가 볼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동시에 ISIS 추종세력이 인터넷으로 통해 확산되고 극단화 되지 않도록 소수 이민자들을 포함한 사회 소외 계층을 주류 사회로 통합시키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자녀, 사회 부적응 계층을 위한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 문화적 구심력이 강한 한국에서 국내 무슬림 공동체가 정체성을 강조하며 활성화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ISIS의 공식 홍보 책자 다비크(Dabiq)가 밝힌 ‘십자군 동맹국’에 한국도 포함되어 있어 국내에 체류하는 이슬람 국가 출신 극단주의 세력이 ISIS와 연계해 테러에 나설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국내 악덕 고용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나 소외된 다문화 가정 출신의 불만이 폭력적 극단주의의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 요즘 ‘헬조선’, ‘흙수저’와 같이 젊은 세대의 절망을 나타내는 단어의 인기가 보여주듯이 소외 계층의 불만은 이슬람이라는 매개체가 없어도 극단 성향 채팅방의 에코 체임버 효과를 통해 폭발할 수 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

지은평
지은평

지역연구센터 ; 중동연구프로그램

지은평 연구원은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연구프로그램 연구원이다. 한양대학교에서 국제학, KDI국제정책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하였다. 대한민국 미사일사령부 및 합동참모본부 통역장교, 그리고 미국 워싱턴DC소재 신미국안보센터(CNAS) 인턴 등을 거쳐 아산정책연구원에 입사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테러, 대량살상무기, 군사작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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