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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의 2차 대북 특사단 방북 내용이 공개되었다. 특사단장인 정의용 안보실장은 9월 6일의 언론브리핑을 통해 (1) 9월 18일~20일간 평양에서의 (3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2)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확고한 의지 확인, (3)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활동 지속에 대한 공감대, (4) 정상회담 이전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 등 남북한 간의 주요 협의ㆍ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정의용 특사단장은 기자단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북한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였으며, “종전선언=주한미군 철수의 주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의도가 아니라는 점도 전달하였다.

2차 대북 특사단의 방북결과는 남북 관계 발전과 미ㆍ북 관계 개선,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의 先순환 모멘텀을 살리는 불씨가 된 것은 분명하다. 미국 역시 특사단 방북 이전에 이루어진 트럼프 대통령과 문대통령간 전화 통화에서 긍정적 결과를 기대했고, 언론 발표에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특사단이 미국에 전달할 북한의 대미 메시지 역시 더 진전된 비핵화 조치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 이전까지 강도 높게 주장하던 ‘조기 종전선언’이 대화 핵심내용으로 강조되지 않은 것 역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초 예상했던 경제협력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3차 남북정상회담은 이러한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남북관계 발전을 허심탄회하고 심도 깊게 논의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최소한 공개된 내용만을 중심으로 할 때에는 비핵화 부분에서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이는 평양에서 개최될 3차 남북정상회담이 중점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첫 번째는 북한 비핵화의 구체적 로드맵이 여전이 없다는 점이다. 먼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개념의 구체화가 필요하다. 4월 27일의 1차 정상회담과 6월 12일의 미ㆍ북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여전히 이 용어는 ‘반복확인’ 수준 이상의 것을 벗어나지 못 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특사단 방북 사실을 보도한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내용이나 우리 특사단의 브리핑 내용 어디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핵능력 포기 의지는 명시적으로 표명되지 않았고,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은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핵능력의 포기 혹은 해체”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미ㆍ북 핵군축 회담”의 양자 모두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또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무력충돌과 군사적 위협,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상황을 조선반도의 비핵화로 규정지어 향후 비핵화 과정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동시에 북한은 비핵화 선행조치를 했음에도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 것은 미국의 종전선언 합의를 촉구하는 것임과 동시에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로드맵을 수용하지 않고 북한의 핵능력 하나씩 떼어 협상하고 보상받는 소위 살라미식 협상을 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기도 한다. 따라서 북한이  ‘신고-검증-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로드맵을 수용할 수 있도록 우리 나름의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둘째, 이제는 수사(修辭)를 넘어선 구체적인 조치를 약속받는 것이 중요하다. 2차례에 걸친 특사단 방북이나 미ㆍ북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여러 차례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 이제는 이것이 명시된 문서나 육성, 혹은 외형적인 정책ㆍ조치로 가시화(可視化)되어야 한다. 북한의 핵ㆍ미사일 모라토리움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실제로, 지난 10개월 동안 북한의 핵ㆍ미사일 실험이 없었고, 무엇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공개적인 방법으로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결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많은 의심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동창리 엔진실험장 폐쇄(이것을 모라토리움이 아닌 동결조치까지로 보더라도)는 그 동안 위성사진이나 관계자 전언 등을 통해 ‘추정’되었을 뿐 여전히 대외적으로는 발표되지 않고 있다. 금년 상반기의 비핵화 초기 이행조치로 예상되었던 핵물질이나 핵무기의 반출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로부터 대폭 후퇴한 이행조치인 핵능력 리스트 신고를 받아내야 할 것이다. 물론, 남북 정상회담 속성상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최소한 미ㆍ북 협상의 징검다리 성격을 지니는 언급이라도 3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셋째, 남북 도로ㆍ철도 연결을 포함한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 그리고 정치ㆍ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구축 노력이 구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그리고 미ㆍ북 관계개선)와 어떻게 先순환 관계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아직은 남북한 간에도 해빙이 이루어진 시기가 여전히 짧다는 점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모든 것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요한 점은, 남북 경제협력과 긴장완화에 거는 북한의 기대가 매우 크다는 것, 그리고 이 기대는 과거와 같은 한ㆍ미/국제 공조의 이완이나 배타적인 ‘민족공조’가 아니고 북한 자체의 긍정적 변화를 반영한다는 것 등이 남북간의 합의에서 우러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국제적인 의무이행과 남북관계 발전을 동시에 추구해 나간다는 원칙의 표명을 고려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의 협력과 평화가 지역질서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확신이 가능한 비전이 발표되어야 한다. 이것이 있어야 우리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관련 구상에 있어 주변국들의 광범위한 지지와 협력을 발휘할 수 있다.

여전히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대미 메시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남북정상회담 이후 미ㆍ북 관계의 진전이나 비핵화의 동력 강화를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예단하기는 힘들다. 다만, 특사단의 방미를 통해 전달될 평양의 메시지를 워싱턴이 긍정적으로 평가할 경우 남북 정상회담과 UN총회에서의 한ㆍ미 정상간 만남 이후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다시 현실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애당초 『판문점 선언』에서 명시된 “연내 종전선언” 역시 무리 없이 구현될 것이다. 반면, 미국이 이 메시지를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할 경우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처리되어야 할 과제는 더욱 늘어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한미공조와 주변국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3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확인된 지금, 우리로서는 단순히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넘어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판을 다시 정비한다는 자세로 대북/대외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우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라는 목표 하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정립하는 한편 북한과 주변국에 각인시켜 나가야 한다. 그 역할이 ‘중재’이든 ‘주도’이든 간에 구체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하여 한국이 지닌 구상과 대안은 무엇인지를 보다 명시적으로 표명하고 주변국을 설득해야 한다. 남북한 그리고 한ㆍ미간에 견해차가 있으면 그 차이점 역시 묻어두고 피하려 하기보다는 솔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에 합의한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3차 정상회담 전에 개최한다고 하는 것은 미국과 사전 조율이 되지 않은 사항이라면 향후 한미간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한미공조 강화를 통해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평양의 변화는 북한이 결국 정상적인 국가급 행위자로서 행동하게 하는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 역시 이러한 제스추어를 보였다. 그렇다면 그 원칙이 남북한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하며, 이에 대해서는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이번 특사단 방북시 김정은 위원장 면담 여부가 마치 특사단 방북의 성과를 좌우하는 잣대의 하나처럼 언급되기도 하였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 하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전달할 ‘특사’라면 상대방의 최고지도자를 당연히 만나는 것이 상식이다. 즉, 김정은 위원장 면담은 북한의 ‘호의’가 아니라 특사의 당연한 ‘권리’이다. 우리가 이 선후관계에서 쓸데없이 위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주변국 외교도 더욱 다변화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의(善意)로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을 추진한다고 해도 주변국들은 우리의 의도를 언제든 이기적이고 자기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펼 수도 있다.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에 결코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국과의 신뢰 및 외교적 투명성 제고를 위한 노력 역시 대북정책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국내적으로 의사결정체제를 다원화하고 가능한 많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이 문제들에도 관심을 기울일 단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