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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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동상이몽인가 이상동몽인가

– 2015 아산청해포럼 둘째 날(24일) 스케치

 

지난 10월 23일(금)부터 25일(일),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은 ‘동상이몽 이상동몽’을 주제로 ‘2015 아산청해포럼’을 개최했다. 4회를 맞이한 포럼은 한-중 미래를 이끌어 갈 양국 젊은 학자들 간의 교류와 네트워킹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됐으며, 올해는 지난 7월 개관한 6성급 호텔 강릉 씨마크 호텔에서 진행됐다. 23일 저녁 6시 30분부터 환영 리셉션과 만찬, 네트워킹 시간을 가졌으며 24일에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약 6시까지 본 회의가 이어졌다. 마지막 날인 25일에는 조찬 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선교장과 오죽헌을 둘러본 뒤 해산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차세대 전문가 31명(한국 측 15명, 중국 측 16명)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냈다. 회의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아산청해포럼]둘째 날(24일) 스케치(1)

 

“이렇게 서로 모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24일 오후 6시 20분쯤 포럼 마무리 발언에 나선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 놀라워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많은 사람들이 양국을 오갔고 한국과 중국은 아주 가까워졌다. 아산청해포럼도 벌써 4회를 맞이했다. 아산청해포럼은 양국의 친밀함을 더 견고히 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래서 제1세션 첫 주제도 ‘한-중 간의 인식 공동체는 존재하는가’였다.

[아산청해포럼]둘째 날(24일) 스케치(2)

 

그러나 포럼은 뜻밖의 모습으로 전개됐다. 가까워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음이 드러났다. 공통점을 찾으려는 열망만큼 깊은 차이도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세션이 깊어질수록 말들은 날카로워지고 표현도 노골적이 됐다.

1세션에서는 한-중 간에 인식공동체가 있느냐는 문제를 놓고 씨름했다. 발제는 젊은 세대의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됐지만 무거운 토론으로 발전돼 버렸다. 우선 ‘유교’가 한-중 간의 인식 공동체가 될 수 있느냐가 격론의 대상이었다. 결론적으로 두 나라 사이를 유교 공동체로 보는 한국 측의 시각은 착오로 드러났다.

2세션의 주제는 ‘한-중 청년 세대 이해하기’였다. 각각 한국과 중국에서 오래 살아본 양측 발표자는 요즘 양국 젊은이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토론 과정에서는 양국 젊은이들 간에는 ‘개척 정신’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3세션, ‘한중 양자관계: 동상이몽인가 이상동몽인가’는 뜨거웠다. 앞선 두 세션은 이 세션을 위한 워밍업인 듯 했다.

한국 측 발제자가 양국 관계를 한 침대를 쓰는 부부 관계로 비유한 뒤 양국 주제 발표가 끝나자마자 ‘침대’를 둘러싸고 논쟁이 가열됐다. 생각이 거침없이 드러나면서 중국은 스스로를 강대국이라고 의식하고 있고 한국을 동생으로 표현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여기에 대한 한국 측 참석자의 유감 표시가 이어졌고 그 뒤로는 서로의 생각 차이가 두드러졌다. 세션을 마무리 하면서 함재봉 원장이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몰랐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두 포럼의 건설적 역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몰랐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새로이 출발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세션 별 분위기다.

 

1세션: 한-중 간의 인식공동체는 존재하는가?

한국 측 많은 이들이 유교가 두 나라의 공통점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중국에서 살아본 유학생 출신 전문가나 중국인들은 유교는 중국에서 사라졌다가 요즘 와서 다시 주목 받는 사상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중국에서 10대 후반부터 20대 전반까지 10년을 살아 ‘나는 한국인이자 중국인’이라고 말한 한국 측 발제자는 유교에 관해 “두 나라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토론이 깊어갈수록 차이에 대한 지적이 늘어났다. 한국보다 중국 측에서 그런 발언이 많았다. “인식 공동체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말자”, ”중국인은 다양하고 복잡한 용과 봉황으로 상징할 수 있고 한국인은 곧고 강인한 대나무로 상징할 수 있다”, “중국의 80년대를 닮은 북한에 가면 유년시절을 떠 올리듯 편하고 한국에서는 거리감을 느낀다”, “중국에선 전통 문화가 회복 중인데 한국에선 오히려 사라지고 있다”와 같은 말들이 나왔다.

북한•미국과 같은 안보 문제도 빗겨가지 않았다. 중국 측에서는 한미 동맹이, 한국 측에선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 태도가 공동체 형성에 방해가 된다는 말도 나왔다. 한 한국측 참석자는 두 나라가 인식공동체가 되려면 중국이 한국의 적인지 아닌지부터 밝혀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중간에 중국 측 인사들 가운데서는 “같은 것은 취하고 다른 것은 보류한다”, “음양태극도를 보면음 안에 양이 있고 양 안에 음이 있다. 통일 된 것이다. 중국에선 태극의 음을 강조하는데 한국에선 양을 강조한다”며 절충을 시도하기도 했다.

세션 마무리 발언에서 함 원장은 야당을 ‘Her majesty’s Loyal Opposition’이라고 부르는 영국식 표현과 ‘Agree to disagree’라는 말을 예로 들며 “나와 다른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인식론적 공동체다. 앞으로 양국도 이런 관점으로 토론하는 것이 좋겠다”고 마무리 했다.

 

2세션: 한-중 청년 세대 이해하기

양측 발표자 모두 요즘 양국 젊은이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두 발표자 모두 한국과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이 있어 울림이 있었다. 한국 측 발표자는 늦은 밤 호수가에서 목격한 중국 대학생들의 뜨거운 사랑과 기숙사가 소등하자 불 켜진 복도에서까지 공부하는 중국 대학생의 뜨거운 학구열을 대비해 중국 젊은이들의 모범생 모습과 파격적 모습을 설명하기도 했다. 중국 측 발표자는 중국 젊은이들도 취업, 효도, 결혼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서 청년들의 소득 양극화에 대해서도 민감해진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중국 측 참석자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의 유행어라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소개하기도 했다.

 

“일은 있지만 시간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있지만 애정은 없다.
마이크로블로그는 있지만 팔로워는 없다.
주소는 있지만 내 집은 없다.
통장은 있지만 잔고가 없다.
일은 있지만 적응하지 못한다.
오락은 있지만 즐겁지 않다.
친구는 있지만 진정으로 나를 아는 친구는 없다.”

 

중국 참석자들은 대부분 ‘전에는 국가를 위한 삶이 강조됐지만 요즘 중국 대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만을 위한 삶’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주목되는 점은 창업에서 드러나는 ‘개척 정신’에 대한 양국 젊은이들의 차이였다. 대학 교수출신인 중국 측 참석자들 여럿은 두 나라 젊은이 모두 직업의 안정성을 중시하지만 중국 젊은이들의 개척 정신이 좀 더 강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중국 측 참석자는 “한국은 취업난이 이미 여러 해 동안 진행됐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문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아직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 다르다”며 중국 젊은이들이 더 창업에 적극적인 원인을 추측했다.

 

3세션: 한-중 양자관계: 동상이몽인가 이상동몽인가?

한국 측 발제자는 ‘한국과 중국이 같은 침대에서 같은 꿈을 꾸는가’라는 문제를 던졌다. 그는 한국과 중국이 같은 침대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요소로 양극의 지리적 접근성, 지정학적 특수성, 현대 양국 경제 구조의 상호 보완성, 21세기 큰 그림에서 양국이 공유하는 전략의 동일성-양국이 모두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나아가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원한다는 점-을 꼽았다. 다른 침대에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요소로는 중국적 특수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 북한에 대한 시각과 접근법 등을 지적했다.

중국측 발제자는 한-중 관계의 꿈을 말했다. 그는 한-중 관계를 노래 제목을 빌어 ‘가장 익숙한 낯선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는 양국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변하는 점, 양국 관계가 다른 양자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 한중 관계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는 점, 한중 관계는 대등하지 못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는 태극기를 보면 남북이 태극의 붉은색과 파란색이며 주변 4궤는 중·미·일·러 4대 강대국같이 느껴진다며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선택을 강요 받는 힘든 순간도 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토론은 한참 동안 ‘침대’라는 용어를 둘러싸고 이어졌다. 두 나라가 과연 같은 침대에 있는가, 침대라는 용어를 쓸 수 있는 사이인가, 침대 자체가 있는가를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 과정에서 중국측으로부터 남북한 모두 중국의 부인이라는 표현, 중국은 형, 남북한은 싸우는 작은 형제들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한국이 이 나라 저 나라와 함께 하는 나라여서는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에 한 한국 측 참석자는 “한국이 중국의 부인이라고 하는데 당혹했고 대국이란 중국의 노골적 표현을 듣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다른 한국 측 참석자도 “중국이 스스로를 강대국이나 큰 형으로 칭하는 것은 한국 입장에서는 불편하다”는 날 선 감정이 섞인 지적도 나왔다.

중국이 한반도와 주한미군을 미사일로 겨루고 있는데 어떻게 같은 침대를 말할 수 있느냐는 한 한국 측 참석자의 발언을 둘러싸고 “왜 미국의 무기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 않고 중국 무기에 대해서만 그렇게 생각하느냐”, “중국의 군사력이 다른 나라를 위협하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력은 미국과 격차도 크며 한국도 군사적으로 강국이다”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다른 한국 측 참석자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중국은 불과 50-60년 전에 한국과 전쟁을 치른 국가이고 한국은 미국 덕에 안보를 지켜오는 입장”임을 강조했다. 만약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한국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최후의 문제는 안보이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을 선택하리라는 것이다.

또한 양국은 각국의 국제적 입장에 대해서도 큰 생각 차를 드러냈다. 중국측 참석자들은 ‘중국은 이미 대국’이란 관점을 자주 드러냈다. “한국은 중국이 대국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한 사이에는 같은 꿈이 있고 이를 업그레이드 해서 강한 꿈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구동존이가 구동화이가 돼야 한다”는 의견을 더 했다.

한중은 국가 이익의 매트릭스가 달라 초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한국측의 지적도 있었다. 안보 이익, 경제 이익, 정치적 관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중국이 만들어갈 질서에 한국이 편입되는 것에는 찬성할 수 있지만 과연 중국이 성숙한 강대국이 될 수 있는가, 중국은 여전히 신중화주의를 표방하지 않는가 하는 지적도 이어졌다.

중국 권위자인 한 한국 참석자는 “2-3년 사이에 미중 관계가 훨씬 악화되고 한중도 악화되는 결정적인 시험의 시간이 올 것인데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는 유연하고 전략적인 공간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5 아산청해포럼

2015 아산청해포럼

*각 세션의 자세한 내용은 상단의 첨부파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바다 내음으로 시작한 아산청해포럼 리셉션
-2015 아산청해포럼 첫째 날(23일)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