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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새로운 길’은 위험천만
핵 포기 없이 새 전략무기 도발
트럼프가 방관할 수 없는 정세

3월에는 한·미 정례 연합훈련
미국선 大選 경선의 최대 고비
文정부도 정책 실패 반성해야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었다. 새로운 길을 장담했던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 보도로 육성 신년사를 대체했다. 개인이 아닌 노동당 전체가 새로운 길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함이겠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핵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일 뿐이다.

김정은의 상황 인식도 실망스럽다. 스스로 약속했던 비핵화 조치는 일절 언급이 없다. 9·19 평양 공동선언에서 북한이 선제적으로 폐기를 약속한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가 건재한 상황에서 미국의 적대시 정책만을 비난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인식도 착각이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으면 어떠한 양보도 할 수 없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만들어줄 나쁜 거래를 할 수 없다는 원칙은 시간 끌기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이 제시한 정면돌파전은 위험하다. 그는 북한의 충격적인 행동을 보게 될 것이라며 강도 높은 전략 도발을 예고했다. 특히,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란 말로 신형 핵무기 투발 수단 실험을 시사했다. 지난 2017년 11월에 발사한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넘어서는 뭔가를 준비하는 모양새다. 아마도, 다탄두 ICBM이나 고체연료 ICBM 또는 건조 중인 신형 잠수함을 진수시킨 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미국의 군사적 대응을 야기할 수 있는 심각한 무기체계다.

향후 한반도 정세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국의 입장에 따라 핵 억제력의 폭과 깊이를 상향 조정하겠다는 말 속에 북한의 향후 행보가 녹아들어 있다. 당장 1∼2월에 강도 높은 전략 도발을 강행할 가능성은 작다. 아마, 북한군 동계훈련 과정에서 단거리미사일 발사나 해안포 훈련을 하면서 긴장을 서서히 끌어올릴 전망이다. 이후 3월에 개최되는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핑계로 ICBM 등의 고강도 전략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크다. 연합 군사훈련을 반대해 온 중국의 입장을 고려할 때, 이를 핑계로 도발을 한다면 북·중 관계의 악화는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간과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전략 도발을 마냥 지켜볼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3월 초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포함한 16개 주가 경선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북한이 ICBM을 시험발사할 경우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앞다퉈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선(red-line)을 넘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응징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2017년과 같은 긴장 고조가 불가피하며 일촉즉발의 군사 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

사실 한반도 3월 위기설은 새로운 게 아니다.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있는 매년 3월마다 북한군의 활동은 증가했고 군사적 도발도 빈번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3월 26일의 천안함 폭침 공격이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진 북한의 다양한 미사일 시험발사와 김정은의 참관이었다. 하지만 올 3월은 더욱 특별하다. 북한의 정면돌파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그 수위가 예측불허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뼈저린 반성이 필요하다. 지난 2년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많은 수모를 참았는데도 이번 보도 내용에는 남북관계가 아예 실종됐다. 의도적으로 우리를 무시한 것이다. 남북 관계는 북한이 하자는 대로 끌려간다고 풀리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줬다. 우리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북한도 한국의 입장을 고려한다. 대북정책 전환과 3월 위기 가능성에 대비하는 정부의 대비태세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이번 보도에는 북한의 취약점도 드러나 있다. 먼저, 북한의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고 있지만 그러고 싶은 주민은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주민을 희생시키는 수탈 구조가 심해지면 체제는 약해지게 돼 있다. 비핵화가 없다면 경제적 어려움은 지속될 것임을 알려야 한다. 또한, 중국을 고려하는 행보에서 제재 지속에 따른 대중 의존도 증가가 목격된다. 그렇다면 미국을 통해 중국을 설득해서 북한 도발을 예방하고 대화를 재개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을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 본 글은 1월 2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