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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는 혼동되기 쉬워…우리 사회 책임 있는 인사들, ‘내재적 접근’과 내면적 접근’ 사이 줄타기
저런 종류 발언들 축적되면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평화 착시와 안보 무용론 혹은 전쟁 對 평화’의 양분법에 빠지게 된다
정책결정자나 여론주도층의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유

북한을 연구하거나 대북정책을 펴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 하나 있다. ‘내재적 접근법’이란 용어이다. 북한의 행태나 책략을 우리의 시각에서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접근법은 그리 낯선 것이 아니며 협상이나 대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눈높이’를 맞춰야 그의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이야기되는 대화법이기도 하다. 협상은 상대가 있으며, 내가 원하는 바만을 고집해서는 타결에 이르기 힘들다. 또 나의 시각에서 상대방을 바라다보면 편견과 아집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면 ‘내재적 접근법’은 북한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고 타당한 접근처럼 보인다. 몇 가지의 함정만 조심한다면 말이다. 내재적 접근법의 요체는 ‘이해’하되, ‘공감’하지는 않는 것이다. 내재적 접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입장을 그가 처한 환경이나 능력 등을 고려하여 유추함으로써 나의 대응전략을 발전시키는 데 있다. 즉, 내재적 접근은 상대방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그의 계산은 무엇일까에 대한 판단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그의 변화를 가장 적절히 이끌어낼 수 있을까를 위해 쓰일 때 타당성이 있다. 특히 국가급 행위자라면 말이다. ‘내재적 접근’은 나를 그리고 내 국가를 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일부 이익이 발생하기도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중요한 것은 ‘나’의 이익이다.

그런 면에서 ‘가치의 내면화’는 내재적 접근과는 일견 비슷해 보이면서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접근이며, 일종의 타락이다. ‘가치의 내면화’는 결국 상대방의 입장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나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며, 이 과정에서 부지불식간에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쉽게 이야기하면 이런 식이다. 범죄심리학자나 프로파일러가 상담기법을 통해 범죄자의 내면의 심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범죄 동기를 알아내려 한다면 그는 ‘내재적 접근’을 택한 것이 맞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범죄자의 범죄동기를 공감해버리고 “그럴 수 있다”고 그의 행위를 합리화해버리면 이건 ‘가치의 내면화’이며, 완전한 본말의 전도가 된다.

문제는 이 두 가지가 혼동되기 쉽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을 연구하거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그 지역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감을 가지고 있다.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그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버리면 그는 이미 ‘내재적 접근’이 아니라 ‘가치의 내면화’를 하는 것이며, 결국은 그의 시각 자체는 오염되어 버린다.

우리는 이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한반도 평화’ 혹은 ‘남북관계 발전’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부지불식간에 ‘내재적 접근’의 기치 아래 ‘가치의 내면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떤 이는 이것이 지나친 기우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예는 이제 일상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한ㆍ미 동맹은 냉전적 동맹이며, 평화동맹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게 이런 모욕을 당한 것은 미국 때문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대포로 쏘지 않은 것이 어디냐” 등등.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인사들이 올해 들어 내놓은 이 말들은 모두 평화와 협력을 위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하기에는 ‘내재적 접근’과 ‘내면적 접근’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고 있다. 이 발언의 기저가 한반도 평화의 저해요인이 미국과 그에 동조하는 한국 내 세력의 ‘압살정책’과 ‘전쟁책동’ 때문이라는 주장을 강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저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북한의 의도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을 실험해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내재적 접근’의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내재적 접근’의 청중은 굳이 이야기하면 상대방, 즉 대북정책에서는 북한이다. 우리 국내의 일반인들이 아니고, 국내의 청중(audience)을 바탕으로 저런 종류의 발언들이 축적되면 우리 사회는 어느 순간 평화 착시(錯視)와 안보 무용론 혹은 ‘전쟁 對 평화’의 양분법에 빠지게 된다. 정책결정자나 여론주도층의 분별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 본 글은 9월 9일자 펜앤드마이크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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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현
차두현

외교안보센터

차두현 박사는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지난 20여 년 동안 북한 정치·군사, 한·미 동맹관계, 국가위기관리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실적을 쌓아왔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2005~2006), 대통령실 위기정보상황팀장(2008),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2009)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의 교류·협력 이사를 지냈으며(2011~2014) 경기도 외교정책자문관(2015~2018),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2015~2017),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2017~2019)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객원교수직을 겸하고 있다. 국제관계분야의 다양한 부문에 대한 연구보고서 및 저서 100여건이 있으며, 정부 여러 부처에 자문을 제공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