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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회의 미·중 정상회담

세계 질서의 향배를 가늠할 미·중 정상회담이 1일(현지시간) 개최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진 두 강대국은 일시적인 휴전을 선택할 전망이다. 하지만 외교는 어느 한 순간(snap shot)만을 봐서는 안 되고 흐름(flow)을 봐야 한다. 정상회담이 무난히 끝난다 해도 미·중 간 누적된 불신과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중국의 속내를 고려할 때 패권경쟁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미·중 정상회담이 충돌이 아닌 휴전으로 종료될 것이라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2일 밝힌 것처럼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고, 분쟁이 길어져 경제불황이 올 경우 지지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온건파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전해진다. 중국과의 무역문제를 2020년 재선에 활용하려 들 것이기에 지금 당장은 적정한 타협을 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국 역시 당장 급한 불을 끄자는 입장이다. 아마도 에너지 수입이나 제품 구매 확대를 수단으로 미국을 설득하려 들 것이고, 시진핑 주석이 체면을 유지하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중 관계에 놓인 근본적인 문제들이 풀리긴 어려울 것이다. 현재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방지, 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을 통한 불공정 거래 중단, 금융시장 개방 등을 중국이 모두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만일 중국이 수용한다 해도 끝날 문제가 아니다. 외교·군사적으로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는 중국을 기존의 패권국가인 미국이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이미 예정된 운명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아태 재균형 정책을 전개하며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틀 내에서 외교적, 군사적, 경제적 차원의 대중 우위를 확보하려 했다. 한·미·일 안보협력과 같이 아태 지역에 있던 기존의 양자동맹을 다자협력 구도로 확대하고, 해군력의 60%를 태평양 지역에 배치하는 등 역내 군사역량을 강화하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중국에 대응할 수 있는 경제협력 기반을 구축하려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의 정면충돌만큼은 피하려 했다. 그 결과 미·중 간의 극단적 대결은 없었고, 중국은 상대적으로 우호적 환경 속에서 역내 외교 영향력 확대, 군사력 강화, 그리고 불공정 경제행위를 지속했다.

트럼트 정부의 대중 정책에는 물론 대통령 개인의 성향도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간 미국이 보여 왔던 중국에 대한 소극적 행태에 대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바마가 중시했던 민주주의나 인권, 자유무역과 같은 가치는 트럼프의 눈에는 사치로 비쳤을 것이다. 그에게는 2017년 한 해만으로도 3755억 달러에 달한 대중 무역적자가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권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한 것으로 보이며, 2017년 12월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발표를 시작으로 중국을 본격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 미국 안보정책의 최상위 문서는 중국을 경쟁자이자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수정주의자로 불렀는데, 이러한 노골적인 표현은 이전 행정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올해 들어서는 무역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중국을 본격 압박하고 있는데, 6월에는 500억 달러에 대해 25%의 관세를, 그리고 9월에는 2000억 달러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1일에도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가 뒤따를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중국 상품에 대한 관세가 어떻게 조정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기존의 관세까지도 감면할지, 기존 관세는 유지하면서 추가 관세를 유예할지, 아니면 전면전을 선언하고 추가 관세를 내년 초부터 부과할지 미지수다. 또한 이러한 관세 부과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중국의 해외 수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이 19%에 불과하기에 중국 경제에 전면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 경제도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높은 관세는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중국의 보복 조치로 인해 중국과 거래하는 미국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무역전쟁이 중국 경제의 다른 부분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만일 무역전쟁의 과정에서 위안화 환율에 문제가 생기거나 중국의 고질적 경제문제, 즉 기업의 과도한 부채나 부동산 거품 문제가 함께 터질 경우에는 중국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미·중 간 경쟁은 또 다른 파열음을 낼 것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의 상호불신은 너무 커져 있다. 또한 중국은 버티면 되는 입장이고, 미국은 이대로 멈추면 결국 따라잡힌다는 인식을 하고 있을 것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미·중 간 패권경쟁의 심화는 한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먼저 그간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자유무역이 도전받는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미·중 양국의 보호무역 기조가 심해질 경우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조성할 것인지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북핵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중 관계의 악화는 북한을 미국과의 경쟁 문제로 바라보는 중국에 있어 김정은 정권의 전략적 가치를 높여 준다. 북한이 이러한 중국의 시각을 이용할 경우 비핵화 협상은 점점 더 지연되고 안 풀릴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장밋빛 환상을 버리고 현실에 기반한 대북정책을 전개해야 하는 이유다. 치열해지고 있는 미·중 간 패권경쟁은 지리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미·중 사이에 위치한 한국에 나쁘거나 더 나빠질 상황으로 다가오고 있다.

 

* 본 글은 12월 01일자 중앙SUNDAY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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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