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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해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UAE는 인도, 인도네시아에 이어 우리와 특별관계를 맺은 세 번째 나라가 됐다. 문 대통령은 양국의 국방과 원전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올해 2월엔 UAE의 실질적 지도자 모하메드 빈 자이드(MbZ) 아부다비 왕세제가 답방했다.

의아했다. 문재인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내세운다. 2009년 UAE 원전 수주를 위해 아크부대 파병을 강행한 이명박정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신남방·신북방 정책 기조 아래 아세안, 인도, 유라시아에 주된 관심을 둔다. 까닭은 UAE발 거센 항의에 있었다. 문재인정부가 이명박정부 시절 원전 수주의 이면계약으로 체결된 군사협력 양해각서를 문제 삼자 UAE가 반발했다. 계약 위반 시도에 타이밍까지 나빴다.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의 라이벌 이란이 역내 패권국으로 급부상하던 차였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예멘 내전에서 이란과 대치해왔으나 역부족이었다. 이때 문재인정부가 한-UAE 군사협력에 대한 정당성을 따진 것이다. 아크부대는 UAE 특수부대 훈련을 맡고 있다.

우리의 최대 건설 수주국이자 중동 내 최대 수출국 UAE와의 관계는 회복되어야 했다. 문 대통령은 바라카 원전 준공식에서 MbZ 왕세제에게 우리의 사우디 원전 수출을 도와달라고도 했다. 사우디 역시 탈석유 개혁의 일환으로 100조원 규모 원전 건설을 계획 중이다. MbZ 왕세제는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의 요청 넉 달 뒤 사우디는 우리를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와 함께 예비사업자로 선정했다. 올해 말 최종사업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문재인정부는 현상 유지에 대한 혜택을 높이 여겨 과거 정부의 원전 세일즈 외교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UAE와 사우디에서는 탈원전 정부의 원전 수출 저의를 두고 의심이 많다. 한편 아랍 산유왕정의 최근 상황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시기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지난 1·2년 새 이들이 처한 안보와 재정 위기는 빠르게 악화됐다. 과거 답습에서 벗어난 더 나은 외교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아랍 산유왕정은 극단주의 테러 위협, 이란의 패권 추구, 셰일혁명에 맞서 개혁개방을 택했다. 특히 UAE와 사우디의 행보는 단연 앞섰다. 두 나라는 밀실외교와 단절하고 국제연합전선에 적극 참여했다.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장성들은 UAE군에게 `작은 스파르타`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UAE와 사우디에선 전사자가 늘어났지만 2018년 초 이후 이란의 헤게모니 장악은 확고해졌다. 이 와중에 형제국 카타르와 단교해 아랍 산유왕정에 내분까지 생겼다. 두 나라는 세금 징수, 보조금 삭감, 첨단산업 육성, 여성 인재 등용으로 탈석유 시대에 대비했으나 바깥 변화는 더 빨랐다. 셰일업계 호황으로 올해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전망이다. 파격적인 개혁개방이 빠르게 진행되자 내부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 규범을 공유하려는 UAE와 사우디에는 개혁을 향한 확고한 지지 세력과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인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바로 그 동력이다. 두 나라 정부가 특히 공을 들이는 대상은 여성이다. UAE의 여성 장관 비율은 30%에 달하고 연방평의회 의석 절반이 여성에게 주어진다. 올해 초 사우디에선 첫 여성 대사가 나왔다.

개혁으로 출구 찾기에 나선 UAE와 사우디를 위해 우리의 발전 경험 공유 사업을 통한 공공외교 제안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최근 UAE와 사우디의 공격적 인재 육성 투자로 인해 그 틈새가 매우 좁다. 아부다비에는 세계 명문대 분교들이 자리 잡았고 두바이에선 우버와 아마존이 탐내는 토종 스타트업이 배출되고 있다.

사우디 개혁 프로젝트엔 이스라엘 출신 자문단이 활동 중이다. 문재인정부의 사람 중심 어젠다로 두 나라 개혁개방의 동력인 청년과 여성에게 높은 공감을 사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성평등, 여성 개발 기조도 호응을 얻을 것이다. 제 잇속 챙기기 외교라는 과거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 본 글은 4월 23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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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