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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의 심판은 준엄했다. 여당의 180석 압승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나, 최선이든 차선이든 국민은 현 정부에 표를 몰아주었다. 문재인정부는 국민의 재신임을 얻었다는 판단하에 기존 정책을 적극 추진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이 건재할 때와는 달리 이제는 모든 책임을 정부여당이 져야 하므로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합리적이고 명민한 정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상대가 있는 대외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총선 후 처음으로 관련 부서에서 나온 일성은 우려를 자아낸다. 통일부는 17일 “(한국민의) 북한 개별관광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중단되기 전 통일부의 북한 개별관광 추진계획은 이미 많은 문제를 초래한 바 있다. 통일부가 “상상의 날개를 펴볼 때”라면서 던진 3가지 관광안은 한국민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다. 특히 제일 가능성이 있다는 제3국, 사실상 중국 여행사를 통한 한국 관광객 방북은 북한 당국의 신변 안전 보장 없이 비자만 받고 가는 형태이다. 여행사가 북한 관광총국과의 계약을 통해 최소한의 신변 안전 보장은 받는다고 하나, 미국의 오토 웜비어가 이 형태로 방북했다가 변을 당했다. 더 큰 문제는 북한이 현재까지 전혀 호응이 없는데 통일부가 일방적으로 제안을 남발하는 것이다.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하는 사안은 북한과 반드시 먼저 협의하고 확인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은 관광이 아니라 북한의 방역을 도울 때다. 북한은 2월 18일 북한 내 코로나 의진자(의심환자)가 1명도 없다고 주장한 이래 같은 입장을 견지하나, 지난 3일 국경을 봉쇄하는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비르 만달 유엔 식량농업기구 평양사무소 부대표 등은 북한 내 감염자 발생을 확신한다. 존스홉킨스 보건안보센터 분석에 따르면 북한의 ‘질병대응체계’는 조사 대상국 195개 중 최하위로 사실상 대응능력이 없다. 지난 2월 초 북한 보건성이 직접 나서서 국제사회에 방역 지원을 요청한 것도 북한 내 코로나 상황의 엄중함을 반영한다.

코로나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것은 보통의 북한 주민들이다. 국경 봉쇄로 북한 경제의 생명줄인 중국과 교류가 막히면서 장마당 물가가 올랐다. 북한 당국의 격리조치로 생업 활동도 못 한다. 코로나에 감염되면 치료도 못 받고 희생될 수 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의료진의 눈물겨운 희생, 메르스 이후 강화한 의료방역체계 등으로 세계적 모범 사례가 된 한국이 북한 동포를 도와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북한의 열악한 사정을 고려해 방역물자 제공은 대북제재 예외 사안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대북 방역 지원을 남북 관계 개선의 돌파구로 삼는다면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정면돌파노선’을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 책동 분쇄’를 목표로 삼고 남한과의 관계를 북·미관계 하위에 둔 바 있다. 미국이 제재 해제를 선행하지 않으면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없고, 남북 관계도 없다는 선포이다. 따라서 한국의 대북 방역 지원은 철저하게 ‘인도주의적 목적’으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에게 가장 신속하고 투명하게 전달되는 방법으로 시행돼야 한다. 이미 시작된 유엔 산하 기구의 대북 지원에 지원금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지원할 테니 당국 간 대화를 하자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북한이 거부할 것이다.

총선 승리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대북 정책을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는 제안을 남발하기보다는 국제사회와 공조하면서 현재 북한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현명하다.

 

* 본 글은 4월 20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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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박원곤

객원연구위원

박원곤 객원연구위원은 현재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 국제지역학 교수이자 GRACE School 부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이전에 통일부, 국방부, 국가정보원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였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연구위원, 대외협력실장으로 근무하였다.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연구로는 "Changes in US-China Relations and Korea’s Strategy: Security Perspective," (2019);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2019); "카터의 인권외교와 한미관계 - 충돌, 변형, 조정"(2019); "안보환경 변화에 따른 한미동맹 조정 로드맵"(2018); 공저, "트럼프 행정부 안보·국방전략 분석/전망과 한미동맹 발전 방향,"(2017); 공저, "미 신행정부 국방전략 전망과 한미동맹에 대한 함의: '제3차 상쇄전략'의 수용 및 변용 가능성을 중심으로"(2017)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