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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완전하고 절대적인’(full and absolute) 주권 하에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 ‘스발바르’(Svalbard) 인근 수역에서 대게(snow crab) 전쟁이 격렬하다. 이 대게 전쟁은 소위 ‘스발바르 조약’의 해석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스발바르를 둘러싸고 발생한 대게 전쟁과 관련된 국제법적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스발바르는 노르웨이와 북극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군도’(archipelago)이다. 1920년 2월 9일 프랑스 파리에서 체결된 스발바르 조약 제1조에 의하면 스발바르는 북위 74도에서 81도, 동경 10도에서 35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섬들로 구성된다. 스발바르의 위치를 고려하면 척박한 불모지가 상상되지만 실상은 스발바르는 각종 자원의 보고이다. 이미 19세기부터 스발바르 자체에 묻혀 있는 석탄은 물론 스발바르 인근 수역에서 발견되는 상당한 어족자원 때문에 스발바르에 관심을 가지는 여러 유럽 국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스발바르 인근 수역에 약 20여 년 전부터 새로운 어족자원이 나타났고, 이를 놓고 노르웨이와 스페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몇몇 유럽연합(European Union) 국가들이 분쟁을 벌이고 있다. 바로 대게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대게 전쟁’이다.

스발바르에 대하여 주권을 가지고 있는 노르웨이는 2014년 자국 법령을 통해 기본적으로 대게 포획을 금지했다. 다만 또 다른 노르웨이 법령(즉, Norwegian Participation Act) 하에서 허가를 받은 선박은 예외적으로 대게를 잡을 수 있다. 이는 노르웨이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들 또는 외국 국적 수산회사들은 대게를 포획할 방법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몇몇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와 같은 노르웨이 법령이 스발바르 조약 하에서 인정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우선 스발바르 조약 중 해석과 관련하여 쟁점을 제기할 수 있는 조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스발바르 조약 제2조와 제3조 중 일부분이다. 제2조는 모든 스발바르 조약 체약국의 선박과 국민은 ‘동등하게’ 스발바르의 ‘영토’와 ‘영해’에서 어로활동과 사냥에 대한 권리를 향유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제3조에는 모든 스발바르 조약 체약국의 국민이 스발바르의 ‘영토’와 ‘영해’에서 모든 해양, 산업, 석탄(또는 광물) 채굴, 상업 관련 회사의 활동에 ‘동등한’ 조건 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와 같은 스발바르 조약 제2조와 제3조의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스발바르 조약이 체결되던 1920년 당시에는 그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어업보호수역(fishery protection zone)과 대륙붕에도 스발바르 조약이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를 제공한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1977년 스발바르와 관련하여 배타적 경제수역 대신 200해리에 이르는 ‘비차별적’(non-discriminatory) ‘어업보호수역’을 선포했고, 따라서 스발바르로부터 (영해를 제외하고) 200해리 이내의 해양영역은 배타적 경제수역이 아닌 ‘어업보호수역’으로 불리고 있다.] 스발바르 조약의 해석에 따라 스발바르의 어업보호수역 또는 대륙붕에 대하여는 스발바르 조약이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노르웨이 및 노르웨이와 대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은 대게를 유엔해양법협약 제77조 제4항에 규정된 ‘정착성어종’(sedentary species)에 속하는 생물체로 간주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는 스발바르의 ‘대륙붕’에 대한 권리를 가진 국가가 대게를 포획할 권리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해, 대게 전쟁은 어업보호수역 또는 배타적 경제수역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대륙붕’과 관련된 문제가 된다. 그리고 스발바르의 대륙붕에서도 노르웨이 및 (노르웨이를 제외한) 모든 스발바르 조약 체약국의 국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해석될 수 있다면 스페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폴란드 등 노르웨이와 대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도 스발바르의 대륙붕에서 대게를 잡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발바르 조약이 말하고 있는 (스발바르의) 영토에 대륙붕이 포함되는가?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 해석이 존재한다. 첫째, 영토에 대한 주권을 가지고 있는 한 대륙붕에 대한 연안국의 권리는 실효적이거나 관념적인 점유 또는 명시적 선언에 의존하지 아니하므로 스발바르의 영토에 대하여 다른 스발바르 조약 체약국이 향유하는 노르웨이와 동등한 권리가 대륙붕에서도 연장 적용되어 행사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둘째, 스발바르 조약은 대륙붕 자체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으므로 스발바르의 대륙붕에서 대게를 잡을 수 있는 국가는 주권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노르웨이에 한정된다는 해석이다.

두 가지 해석 중 어느 해석이 옳은지에 대하여 아직까지 권위 있는 결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극해의 대게 전쟁은 권위 있는 결론을 위해 국제재판소에 회부되지 않는 한 완전히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노르웨이 및 노르웨이와 대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 간 입장이 완전히 대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게 전쟁이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이 아닌 스발바르 조약의 해석 또는 적용에 관한 분쟁에 해당한다면 (스발바르 조약이 분쟁해결 절차를 제공하고 있지 않으므로) 노르웨이 및 노르웨이와 대게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이 합의하지 않는 한 적절한 국제재판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북극해의 대게 전쟁이 조약의 해석에 따라 그 결론이 달라진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통해 영토 문제와 국제해양법 문제가 날카롭게 분리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는 것만으로도 국제해양법을 더욱 더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성이 증명되는 것이다.

 

* 본 글은 2020년 8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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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