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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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한국학연구센터는 9월 21일(수), 제10회 <아산서평모임>을 개최했다. 주제도서는 한석정 총장(동아대)의 《만주 모던: 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기원》(문학과지성사, 2016)이었다. 모임은 정수복 작가의 사회, 저자인 한 총장의 발제로 진행됐으며, 류석춘 교수(연세대), 윤해동 교수(한양대)가 지정 토론을 맡았다. 이날 모임에는 전상인 교수(서울대), 김명섭 교수(연세대), 정주연 교수(고려대) 등 29명의 서평위원이 참석했다.
 

◈ 한석정 총장=“만주 모던으로의 길”

한석정 총장은 “5∙16 군사쿠데타 후 군정 지도자들이 이끌었던 ‘재건체제(혹은 80년대까지 지속된 불도저 체제)’의 뿌리를 식민주의, 특히 만주국(1930~40년대 일본 관동군이 중국 동북지역에 세운 괴뢰국)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한이 공통으로 기술했던 ‘민족항쟁의 성지, 만주’라는 내셔널리즘 담론에 가려져있지만, 이 시기 만주는 기실 조선인들의 기회의 땅이었다는 것이다.

한 총장에 따르면 30년대 만주에는 개척 농민들 외에도, 만주국 하급 관리와 장교, 중소기업인, 아편장수 등 다양한 조선인들이 존재했다. 일부는 일본인 다음의 ‘2등 공민’ 행세를 하기도 했으며, 특히 중일전쟁 발발 이후 고학력 조선인들은 일본인들의 징집이 초래한 공백을 파고들어 중∙하위급 행정과 경영의 경험을 쌓았다. 한 총장은 “해방 후 귀국한 만주 출신 일부 인사들이 만주국의 계획경제와 국방국가를 모델로 치열한 남북한 체제경쟁을 치르며 속도전으로 도시와 공단을 만들어 나갔다”며, 이러한 압축 성장에 적절한 경직성 근대를 ‘만주 모던’이라 명명했다.

아울러 한 총장은 한국사회에서 식민주의와 근대가 각각 암흑이라는 부정적 가치와 발전·해방이라는 긍정적 가치에 고착돼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식민주의나 근대는 중립적으로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든 문화의 기원이 제국주의라는 지적이 있듯, 일본 식민주의의 한 의미는 여러 아이디어나 제도의 광범위한 확산”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 총장은 “전후 한국 근대국가의 형성에는 일제시기의 식민국가와 해방 후 미군정, 그리고 제3의 자원인 만주국의 청사진과 재료가 일부 사용되었다”며, “재건체제는 만주국의 영향으로 통제경제와 인적, 물적 동원뿐 아니라 국토를 갈아엎는 역동, 민족을 위한 강건한 신체와 남성성의 모색, 대중예술의 통제 등을 추진하였다”고 덧붙였다.
 

◈ 류석춘 교수=”식민지 근대화론 제대로 해석해야”

류석춘 교수는 한 총장이 “식민지를 겪으며 근대가 모방되고 확산되었다”면서도, 정치적 부담감 등의 이유로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오히려 ‘파시즘과 권위주의가 근대의 추동력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이 더욱 파격적이고 논쟁적이라고 주장했다.

류 교수는 또한 《만주 모던》에 북한 관련 내용이 언급되지 않은 데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책이 설명하고 있는 박정희 대한민국과 만주국의 관계보다 김일성 북한체제와 만주국의 관계가 더욱 밀접하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만주국이라는 동일한 유산을 각자 ‘비틀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 남북한의 대결은 결국 남한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덧붙여 류 교수는 만주의 유산을 긍정적으로 활용한 남한과 최악으로 활용한 북한에 대한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윤해동 교수=”만주 모던: 하드 모던(hard modern) 혹은 소프트 모던(soft modern)”

윤해동 교수는 ‘만주 모던’에 대해 ‘하드 모던’과 ‘소프트 모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언급했다. 윤 교수는 “저자에게 만주 모던은 ‘건설과 동원, 경쟁 등 압축 성장에 적절한 경직성 근대’로 규정되는데, 그가 주장하는 ‘경직성 근대’의 내용은 상당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또 “저자가 미국이 한국 발전국가의 틀과 환경을 규정한 반면 ‘만주국식 에토스’가 내부 동력이 되고 있었다고 본다든지, 발전국가 지도자들의 뇌리 속에 켜켜이 쌓인 기억이 발전국가의 근대를 규정하고 있었다고 보는 점에서, 만주 모던은 하드 모던이 아니라 소프트 모던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윤 교수는 “만주 모던이 경직된 측면과 부드러운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특히 1960년대 한국에서 재현된 만주 모던에는 소프트 모던을 중심으로 한 근대성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만주 모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통해 식민주의의 측면에서 근대의 성격을 다시 읽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나, 만주 모던의 성격을 좀 더 섬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자유토론

발제 및 지정토론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한 총장의 연구 방법론에 문제를 제기했다. ‘왜 만주의 30년대가 60년대 한국에서 재현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총장의 대답은 ‘60년대 지도자 자리에 있었던 일부 인사들의 뇌리 속에 만주국의 기억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는 식의 비과학적 서술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이론적 자원을 제시해야만 사회과학으로서의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연 고려대 교수 역시 “저자는 매력적인 내러티브로써 30년대 만주국의 경험과 60년대 한국의 경험을 ‘닮은 그림’으로 제시하지만, 그림 A가 그림 B로 어떻게 전파, 확산, 혹은 전이됐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60년대 근대국가 형성에 미군정, 식민국가, 만주국의 청사진과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설명에 대해서도, 이 세 가지가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제10회 <아산서평모임> 세부일정표, 발제문 및 토론문(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