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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세의 절대권력,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가 이달 초 3주 일정의 긴 미국 순방을 마쳤다. MbS 왕세자의 초장기 방미 일정 탓에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를 같이 방문하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계획이 어긋났다는 후문이 있다. 사우디 실세는 워싱턴DC를 비롯해 뉴욕, 보스턴, 실리콘밸리,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휴스턴까지 거치며 미 전역을 횡단해 자신의 개혁 야심작 `비전 2030`을 알렸다. 석유 의존과 보수 이슬람 체제 탈피 선언이 단연 주목을 받았다.

올 6월부터 사우디에선 여성의 운전이 허용된다. 세계 최대 국영회사 사우디 아람코의 해외 상장이 이어지고 최첨단 미래·오락 도시들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번 방미의 주목적은 국가 이미지 개선으로 보인다. 탈석유와 경제 다변화, 민영화, 사회 개방 의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좋다. 문제는 젊은 왕세자 혼자서 이 모든 개혁을 이끈다는 점이다. 작년 말 MbS 왕세자는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및 기업가 200여 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고 이들의 재산을 국고에 헌납받은 후 풀어줬다. 개인 권력 강화를 위한 숙청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를 불식하려는 듯 MbS 왕세자는 미국 각계 인사들을 격식 없이 만나며 젊고 자유로운 개혁가 이미지를 선보였다.

그런데 사우디 실세의 개혁과 관련해 유독 국내 사회·경제 부문만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사실 MbS 왕세자는 대외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도 천명했다. 현재 사우디는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장악으로 최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 저유가로 인한 재정 압박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다. 이에 대한 처방으로 MbS 왕세자는 투명하고 다변화된 외교안보를 선언했다. 친미 밀실 외교를 고집해온 사우디로선 파격적 일탈이다.

작년 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패퇴 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살아남으면서 시리아 내전이 마무리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을 도운 이란과 러시아는 승전국이 됐고 전후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 내 장악력을 공고히 했고 이란은 시리아는 물론 이라크, 레바논, 예멘으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은 사우디를 향해 지난 3년간 100발 이상의 미사일을 쐈고 그중 하나는 리야드 국제공항에 떨어지기도 했다.

MbS 왕세자는 비밀스러운 뒷거래를 통한 외교안보 전략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사우디는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의 공산주의 봉쇄 전략을 도와 소련에 맞설 무자헤딘을 지원했다. 넘쳐나는 오일머니의 밀실 거래는 오사마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탄생시켰고 결국 사우디 왕정도 이들의 대대적인 테러 공격을 받았다. 사우디는 투명하지 못한 전략 때문에 정작 자신의 안보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사우디 실세는 미국과의 동맹에만 기대지 않기로도 했다. 이번 순방 기간 2015년 미국 주도로 타결된 이란 핵합의에 항의하며 러시아, 중국을 핵기술 협력 파트너로 고려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담았다.

작년 10월 살만 사우디 국왕은 왕국 수립 이래 처음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미사일방어시스템 S-400 구입을 결정했다. 아들 MbS 왕세자의 계산이다. 러시아 무기는 미국의 사드 옆에 배치된다. MbS 왕세자는 미국·사우디 관계를 무슬림 혼인에 비유하길 즐긴다. 미국과 이혼하지 않고도 다른 3명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앞으로 사우디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사우디는 셰일오일 업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증산 정책을 폈고 이어진 유가 하락으로 재정위기에 처했다. 무차별적 복지로 유지해온 왕실의 통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란의 급부상과 더불어 예멘 내전 개입, 카타르 단교의 위기도 극복해야 한다.

개혁의 속도가 빠르다는 우려가 있으나 이미 맹렬한 기세로 진입한 경로에서 빠져나오기엔 비용이 더 크다. 무엇보다 사우디가 처한 여러 위기를 타개할 옵션이 빠른 개혁 이외엔 없다. 실세 왕세자의 개혁 질주는 젊은 세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전체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30세 이하 청년층이 납세와 보조금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개혁을 지지한다니 기대해볼 만하다.

* 본 글은 04월 23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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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