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고문

241 views

지금 대한민국은 북한에 의한 ‘핵(核) 독점’이라는 사상 초유의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 1945년 지구상에 핵시대가 열린 이래 적대 당사국 간에 어느 한쪽의 핵 보유를 일방적으로 허용한 사례는 한반도가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 북한 김씨 세습정권에 핵은 대남 적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절대무기’이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핵시대의 냉엄한 교훈이자 진리다. 북한이 일요일인 3일 ‘수소탄’ 운운하며 6차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향후 5년간 78조 2000억 원을 들여서 핵이 빠진 ‘한국형 3축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국방부의 계획은 공허하기까지 하다. 국가안보의 둑이 터진 현실에서 핵으로 맞대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북핵(北核)의 인질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북핵 문제가 공론화한 1991년 이후 지난 26년간 6명의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북한의 핵 독점을 허용해 국민을 북핵의 볼모가 되도록 만든 오늘의 상황은 역대 정부의 정책 실패, 전략 실패가 자초한 뼈아픈 대가다. 훗날 역사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정부가 추진했던 북핵정책과 대북 전략을 건국 이후 최대의 정책 실패이자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될 잘못된 정책 유산으로 기록할 것이다.

북핵 문제는 5년 안에 끝낼 수 있는 단기전이 아니라, 앞으로 10∼20년 또는 그 이상도 걸릴 수 있는 장기전이다. 북한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면 해결될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는 상대를 모르는 전략 부재의 소치일 뿐 아니라,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고 국가안보를 해치는 유화정책의 산물로 비판받을 것이다.

북핵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한의 수에 끌려다니던 지금까지의 수세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우리가 유리하게 판을 짜서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실패한 북핵 정책의 토대가 됐던 다음과 같은 헛된 기대와 잘못된 논리를 먼저 털어버려야 한다. 미국이 핵을 철수하고 한국이 핵무장을 포기하는 모범을 보이면 북한도 핵 개발의 명분을 잃고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 한국이 핵을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도입하면 북한의 핵 개발을 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을 잃게 되어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는 잘못된 논리.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는 물리적·정책적으로 가능하고 현실적으로 타당한 대안(代案)이다. 미국은 동맹이 원하면 언제라도 실전 배치가 가능한 150여 개의 전술핵탄두를 비축하고 있다. 미국의 핵정책도 동맹에 대한 확장억지 공약 이행을 위해 유사시 해외에 전술핵탄두를 배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나토(NATO) 5개국의 6개 공군기지에는 해당국 전투기에 탑재할 수 있는 150여 개의 미 전술핵탄두가 배치돼 있다. 나토와 미국은 핵전략과 핵무기 운용 정책에 대한 긴밀한 공유 협력도 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 핵의 인질이 된 상황에서 전술핵 재배치는 국제핵확산금지 규범을 준수하면서 당면한 안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대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도 대북 정책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방안으로 검토했고, 미국 조야에서도 전술핵 재배치가 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술핵은 남북한 간에 군사적 안정성을 높이고 한국민을 북핵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의 핵 독점 시대에 우리에게 최선책이 없는 가운데, 전술핵 재배치야말로 가장 타당하고 현실적인 차선책이다.

* 본 글은 9월 4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전성훈
전성훈

객원연구위원

전성훈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이다.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에서 공업경제학 석사와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경영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의 주제는 군비통제 협상과 검증에 대한 분석이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국가안보실 대통령 안보전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대한민국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통일•안보정책을 담당하였다. 1991년부터 2014년까지 통일연구원에 재직하면서 선임연구원,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을 거쳐 제13대 통일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남북관계, 대북정책과 통일전략, 북한 핵문제와 군비통제, 국제안보와 핵전략, 중장기 국가전략 등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근무했고,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방부, 통일부,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의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정치학회와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3년까지 자유아시아방송 한반도 문제 논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총리실 산하 인문사회연구회의 우수연구자 표창을 연속 수상했고, 2003년 국가정책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