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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가자지구 분리장벽 근처에서 팔레스타인 청년 2명이 폭발물 풍선을 날리다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숨졌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 무장조직이 250발의 로켓을 쏴 이스라엘 민간인 4명이 사망했다. 민간인 희생은 2014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곧바로 공습에 나섰고 팔레스타인 민간인과 무장조직원 27명이 사망했다.

작년 한 해 가자지구발 로켓은 1000발, 이스라엘발 공습은 300회가 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이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립을 둘러싸고 4차례의 중동전쟁과 숱한 국지전이 있었다. 평화협정이 맺어지기도 했으나 폭력은 형태를 달리하며 이어졌다. 이·팔 분쟁은 당사자 말고도 이스라엘과 여러 아랍국가 간의 대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각각 지원하는 강대국 간 싸움으로 확대됐다.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중동전쟁에 이집트,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영국, 프랑스가 직접 참여했고 미국과 옛 소련연방이 깊이 간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5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올해 3월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공식 인정했다. 국제법에 어긋난 행보였다.

이·팔 분쟁은 국가 간의 갈등뿐 아니라 국가 안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로도 얽혀 있다. 국가는 한목소리를 내는 단일 행위자가 아니다. 한 나라의 대외행보는 치열한 내부 권력다툼의 결과이다. 여기서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중요하다. 갈등을 풀고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공익과 법치주의가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내부갈등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보수 리쿠드당과 쇠락하는 중도·진보 연합의 다툼이다. 4월 총선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5선이 유력했으나 우파연정 구성의 막판 결렬로 9월 재선거가 결정됐다. 보수우파가 다시 이길 거란 전망이다. 매년 전 세계 200여 나라의 민주주의 정도를 측정하는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최근 2년 사이 이스라엘의 민주주의 지수는 2등급에서 4등급으로 떨어졌다. 민주주의 수준이 공고화 단계에 들어간 나라치고 매우 빠른 하락이다. 작년 7월 이스라엘 의회에서 유대민족국가법이 7표 차로 통과됐다. 서안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은 묵인됐고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 올해 2월 검찰은 네타냐후 총리의 부패혐의 기소계획을 발표했으나 4월 총선에서 유권자 절반 이상이 보수우파를 택했다.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중도·진보 연합은 극우 민족주의의 폭주를 막지 못한 채 분열하거나 패배주의에 빠져 있다. 한편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해 미국 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세력인 유대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주당은 미국의 이스라엘 보수우파 지지가 국익을 해친다고 본다.

팔레스타인의 내부갈등과 민주주의 수준은 훨씬 심각하다. 1967년 결성된 팔레스타인해방기구는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를 떠돌며 무장투쟁을 벌이다 1993년 이스라엘과 역사적인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고 서안에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를 세웠다. 1987년 조직된 하마스는 가자지구의 토착세력으로 급진 이슬람주의 슬로건 아래 PA의 서구식 국가 건설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을 반대한다.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둘 사이 대립은 무력충돌로 이어졌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PA와 하마스는 비슷하게 권위주의적이다. 프리덤하우스의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PA 통치하의 서안은 최악인 13등급보다 2단계 위인 11등급, 하마스 통제하의 가자지구는 12등급이다. PA는 2006년 이후 선거를 치르지 않고 있으며 반정부 성향의 언론과 시민단체를 탄압한다. 해외 원조금의 배분 관련 부정부패는 심각하다. 하마스는 여기에 더해 반대세력에 대한 감금과 고문도 서슴지 않는다.

가자지구 시민은 매주 분리장벽에서 이스라엘과 미국 반대 시위를 벌인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내용이다. 덜 알려진 사실이 있다. 같은 가자지구 시민이 하마스의 무능과 폭압에 항의해 내부에서도 시위를 한다. 권위주의 체제의 특성상 빈도수와 언론 노출이 낮을 뿐이다.

 

* 본 글은 6월 4일자 매일경제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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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