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북클럽

2014년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돌파한 SF영화 <인터스텔라>는 재생 불가능한 지구를 뒤로 하고 대체 행성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이 버리고자 결심하는 지구는 온통 모래로 뒤덮여 있다. 문을 닫아두어도 식탁 위에, 의자 위에 끊임없이 모래가 쌓인다. 주인공은 차 안에서 운전을 할 때도 고글과 마스크를 착용한다. 그런 땅에서 작물이 제대로 자랄 리 없다.

2017년, 한국. 이상고온에 사람들이 지쳐간다. 극심한 가뭄으로 하천이 완전히 말라붙어 물고기가 집단 폐사했다. 극악의 봄은 지났으나, 여전히 미세먼지 농도는 ‘나쁨’을 오간다. 바야흐로 ‘기후 디스토피아’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터스텔라>의 배경과 꽤나 유사하다. <인터스텔라>의 우주비행사 쿠퍼는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라고 말했으나, 현실은 어떨까? 진보한 과학이 마치 영화처럼 답을 찾아줄 것인가.

다양한 의견이 있겠으나, 6월 선정도서에 따르면 과학이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믿음은 안일하고 위험하다. 아산정책연구원이 이달 추천하는 책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 자본주의 대 기후>다. 저자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를 정치경제적 관점으로 조명하면서, 이미 오래 전에 청정에너지 등의 해법이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해법들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도록 봉쇄해온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지적한다. 바로 자본주의다.

[아산북클럽]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왜 ‘자본주의 대 기후’인가

클라인은 국제에너지기구(IEA) 수석 경제학자의 말을 빌어 “이런 상황이 우리 모두에게 파멸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당연해 보이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주로 보수주의자, 백인, 남성, 고소득층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회∙경제적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다.

자본주의자들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고 자유무역을 확산하는 데에 열을 올린다. 이러한 특질은 기후변화 대책과 자주 충돌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에 따르면, 2010년에 미국은 자국 산업을 지원하는 보호 무역주의 정책이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중국의 풍력 발전 지원 프로그램을 비난했다. 2012년에는 중국이 유럽연합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재생 에너지 프로그램을 비난하며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기후 협상과 무역 협상은 1990년대부터 비슷한 속도로 진행됐으나 그 누구도 두 협상의 모순점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은 듯 하다. 나오미 클라인이 던지는 질문들은 1992년 UN 기후변화협약 서명 이후 약 25년이 지나도록, 환경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된 이유를 명확히 꼬집는다. “보호 무역주의가 금기어로 취급되는 마당에, 과연 재생 에너지 분야가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생필품이 지구 구석구석까지 운송되면(탄소를 내뿜는 대형 화물선과 대형 제트기, 디젤 화물 트럭을 통해서),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기후 협상의 목표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세계 무역 기구가 기술 특허의 보호 규정을 마련하면, 친환경 기술을 무상 이전하여 저탄소 경로 개발을 도와 달라는 개발 도상국들의 요구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대부분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무역 협상이 기후 협상보다 더 우선시 되었다.

한편 탄소배출권거래제는 시장논리 속에서 펼 수 있는 합리적인 탄소 절감 대책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탄소 배출 감축을 보장하지는 못 한다는 단점이 있다. 배출권만 구입하면 정당하게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수 있다. 특히 경제 위기로 생산과 소비가 줄면서 탄소 배출권의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 탄소 가격이 폭락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탄소 저감 실적권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탄소 배출 주체들의 부담은 대폭 줄어든다.

5년간의 방대한 자료조사와 전문가 인터뷰 끝에, 클라인은 자본주의와 기후변화 대책은 양립할 수 없다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요구되는 행동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탈규제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 우리 경제와 정치 과정, 대다수 주요 매체 위에 군림하고 있는 소수 엘리트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모두가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권층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기후변화는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6월 1일 미국의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선언 하루 전, 그가 탈퇴를 예고하며 남긴 트윗에는 어김없이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문구가 써 있었다.

과학과 기술이 인류를 기후변화로부터 구해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클라인은 결단을 요구한다. “기후 혼란이 세계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도록 지켜만 볼 것인가, 아니면 기후 재앙을 피하기 위해 경제의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인가?” 클라인은 강력한 대중 운동을 통해 권력 주체를 기업에서 공동체로 전환하고, 상호의존성과 호혜성, 협력을 근간으로 삼는 세계관을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비로소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공공 부문 지출 확대, 민영화 된 핵심 사업의 공영화 등을 통해 공정하고 공평하게 에너지 전환을 이뤄낼 수 있다.

정말 ‘자본주의 대 기후’일까

아산정책연구원 최현정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소개된 기후 관련 서적들이 과학과 환경, 혹은 정책이나 협력의 영역만을 다룬 것과 달리,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그 기저의 정치경제적 양식, 즉 자본주의라는 가치를 연계했다는 점이 독특하다”며 “기후변화 문제가 일차원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준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저자가 사회운동가인만큼 사례도 풍부하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최 연구위원은 클라인이 제시하는 대안의 한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발현되려면 보다 섬세한 사회적 타협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그 결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로부터의 탈피가 반드시 기후변화 해결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 연구위원은 “모든 것을 공영화하고 국가가 개입하며 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은 결국 사회주의와 흡사한데, 그 대표적인 케이스인 북한이나 1990년대의 중국 역시 기후변화 대책이 제대로 수립돼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해결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자본주의적인 기업가 정신으로 혁신을 일으켜 기후변화 대응 협력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며,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의 UN 기후변화협약 지원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나 전기차를 생산하는 테슬라를 예로 들었다.

최 연구위원이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와 앤서니 기든스의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함께 읽기를 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든스는 사회적 합의와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정부의 정책 운영과 국가들 간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 연구위원은 “두 책을 함께 읽고 기후 문제에 대한 의견들을 균형 있게 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About Experts

권은율
권은율

홍보실

권은율 전문원은 아산정책연구원 홍보실에 재직 중이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 광고홍보학을 전공했다. 연구원 이슈브리프 '중국 탄도미사일이 한반도에 던지는 함의', '한반도 사드 배치와 중국' 작성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