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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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이스라엘이 백악관에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체결해 관계 정상화를 선언했고 이어 수단,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에 합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 성지의 수호국이라는 위상을 감안해 뒤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취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특히 UAE와 이스라엘은 이란의 팽창주의 추구와 미국의 ‘중동 떠나기’ 정책에 대비해 정보기관 협력, 합동 군사훈련 등을 통해 전략적 연대를 강화했다. 이란 강경파가 핵개발 재개 의도를 드러내는 시점에 바이든(Joe Biden) 정부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서두르자 두 나라는 중동판 나토 구축을 강조했다. 이제껏 아랍 국가의 반대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국의 유럽사령부 담당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최근 UAE의 주도로 이스라엘의 중부사령부 편입 논의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동에서는 이스라엘만이 보유한 F-35의 UAE 판매를 주저하자 이스라엘이 설득에 나서기도 했다. 나아가 UAE의 첨단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정책에 이스라엘의 기술 경쟁력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은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협력 메커니즘으로 평가된다.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이란, 터키는 아브라함 협정을 거세게 비난했으나 정작 아랍 세계 내 반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아브라합 협정으로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로 구성된 친미 수니파 아랍 쿼텟(Arab Quartet) 내 이집트의 소외감이 커지면서 균열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2021년 5월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에서 이집트가 독보적 중재력을 보이며 존재감을 확인했고 바이든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기도 함으로써 불화는 일단락됐다. 또한 수니파 걸프국과 이스라엘의 안보 협력이 이란 강경파를 자극해 역내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UAE와 사우디 내 실용주의 추구 여론이 확산되고 개혁정책이 활발이 진행되는 시점에 이들 국가가 군사적 긴장과 전쟁 위기를 높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 협정의 추가 가입 후보국으로 거론된 나라들은 미국의 ‘중동 떠나기’ 내용, UAE-이스라엘의 밀착 정도, 사우디-이란의 관계 회복 속도 등을 더 지켜본 후 향후 거취를 결정할 것이다. 비록 여타 아랍 국가들이 협정의 대열에 빠르게 합류하지 않더라도 아랍과 이스라엘의 데탕트 시대를 연 아브라함 협정은 역내 안정과 협력 심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과 아랍-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2020년 8월 UAE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새로운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시대를 열었다. 9월에는 바레인까지 참여해 UAE, 바레인, 이스라엘이 백악관에서 아브라함 협정 서명식을 갖고 국교 수립을 알렸다. 소국 바레인의 합류에는 사우디의 영향력과 UAE의 앞선 행보가 크게 작용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쿠슈너(Jared Kushner)가 설계하고 추진했다.1 협정의 이름인 ‘아브라함’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의 한 뿌리가 되는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다른 문명 간 상호 이해와 공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어 10월 수단, 12월 모로코도 이스라엘과 수교에 합의했다.

사우디는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의 수호국이라는 위상을 감안해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 대열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다. 대신 2020년 11월 사우디의 실세 빈 살만(Muhammad bin Salman) 왕세자,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 폼페이오(Mike Pompeo) 미 국무장관이 사우디에서 비밀리에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사우디는 UAE와 이스라엘이 첫 직항 노선을 운행했을 때 이스라엘 국적기의 사우디 영공 통과를 허락했다.2

2020년 10월 코헨(Yossi Cohen) 이스라엘 정보국 국장은 UAE와 바레인을 방문해 정보 협력을 논의했다. 이스라엘에서 아브라함 협정과 아랍 국가와의 국교 수립 문제는 외무부가 아닌 정보국이 전적으로 담당했다. UAE, 바레인, 이스라엘은 대사관 설립, 직항편 개설, 경제 및 정보 기술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특히 UAE와 이스라엘의 협력 분야는 관광, 의료, 첨단산업과 스타트업, 에너지, 정보 보안, 통신 등 훨씬 구체적이고 폭 넓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처음으로 생긴 텔아비브-두바이 항공편은 일주일에 25번을 운항했고 코로나19 시기에도 불구하고 2020년 12월에만 이스라엘인 67,000명 이상이 두바이를 방문했다.3 라피드(Yair Lapid)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2021년 7월 UAE의 아부다비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과 두바이 주재 영사관, 9월 바레인의 이스라엘 대사관 개관식에 참석했고 이스라엘에도 이들 국가의 대사관이 각각 문을 열었다.

아브라함 협정 체결 이후 이스라엘은 UAE가 개방한 페르시아만에서 이란의 군사 훈련 정보를 더 정확히 수집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는 UAE를 향한 위협 정보를 빠르게 파악했고 모사드의 정보력 덕분에 UAE의 해외 공관은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2021년 2월 에티오피아 주재 UAE 대사관 공격을 모의하던 용의자 16명이 체포됐고 수단의 UAE 대사관 역시 공격 대상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나아가 모사드는 사우디와도 이란이 후원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과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4 2021년 4월 UAE, 이스라엘, 그리스, 키프로스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고 11월에는 UAE, 바레인, 이스라엘, 미해군 중부사령부가 홍해에서 다자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한편 수단과 모로코는 앞서 국교를 수립한 두 국가를 뒤따르는 것 같은 인상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관계 정상화 협정에 ‘아브라함’이란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들 국가의 정상화 내용 역시 UAE, 바레인 보다는 범위가 더 좁았다. 모로코와 이스라엘은 연락사무소 설립, 직항편 개설, 경제 협력 강화를, 수단과 이스라엘은 의료서비스와 농업 협력 강화만을 서로 약속했다. 특히 수단과 이스라엘의 국교 수립은 적대 관계 종식과 평화 추구라는 대의 보다는 수단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를 요구하며 미국과 협상을 벌인 결과다.5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합의를 통칭 아브라함 합의라고 부른다. 2021년 7월 이스라엘은 모로코의 노력 덕분에 아프리카연합의 옵서버 자격을 얻었고 8월 모로코의 이스라엘 연락사무소 개관식에 라피드 외무장관이 참석했다.

 

이란과 미국의 변화에 맞선 UAE와 이스라엘의 협력 심화

 
아브라함 협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했고 협정 체결 이후에도 높은 추진력을 보이는 나라는 UAE와 이스라엘이다. UAE와 이스라엘의 전략적 협력은 이란의 역내 팽창주의 추구와 미국의 ‘중동 떠나기’ 전략에 따른 공동의 안보 우려와 이에 대한 대비를 배경에 두고 있다. UAE는 이스라엘과 협력을 심화하는 과정에서 사우디, 바레인 보다 대내외 제약을 덜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 6개국 가운데 군사, 외교안보, 경제, 사회의 개혁을 가장 먼저 독보적 속도로 추진해 온 나라다. UAE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아부다비 왕세제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Mohammed bin Zayed Al Nahyan, MbZ)는 2000년대 중반부터 적극적인 군사안보, 투명 외교, 산업 다변화, 개방 사회를 위한 국가 체질 개선을 강조해왔고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MbS) 사우디 왕세자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11년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Muammar al-Qaddafi)가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UAE는 카다피 응징을 위한 NATO의 ‘오디세이 새벽 작전(Operation Odyssey Dawn)’에 적극 참여했고 미군과 NATO 장성들로부터 ‘작은 스파르타,’ ‘미국의 오른팔’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6

 
이란의 역내 팽창주의 추구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자 이란의 강경 보수 지배연합은 아사드(Bashar Assad) 정권을 적극 도왔고 시리아 정부군이 승기를 잡아 감에 따라 이란 최고종교지도자의 정예 군사조직 혁명수비대와 이의 후원을 받는 무장조직들도 영향력을 높여갔다. 혁명수비대 장성들은 소속 전투병 뿐 아니라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출신 민병대 수만 명을 이끌며 전투 현장을 지켰다.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이란 혁명수비대 병력 규모는 2015년 당시 10,000여 명에 달했고 혁명수비대 산하 정예 부대인 쿠드스 부대 소속 2000여 명은 현지 시아파 민병대를 훈련시켰다. 헤즈볼라는 시리아 전역에 110여 군사 보급소를 세웠고 특히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 지대의 군사 기지화에 성공했다.7

이란 혁명수비대는 여세를 몰아 페르시아만에서 대규모 해상훈련,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순항미사일 탑재 잠수함과 전투기 공개를 이어가며 패권 확보의 야심을 보였다. 혁명수비대가 육성해 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의 친이란 꼭두각시 무장조직은 역내 미 동맹 우방국을 상대로 값싼 드론, 연·풍선 폭탄 공격 등 비대칭 저강도 공격을 늘렸다. 미국은 1995년부터 2020년까지 5개국의 11개 친이란 무장조직과 소속 개인 89명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8

시아파 종주국 이란의 패권 추구 야심은 수니파 걸프국 UAE와 사우디, 이스라엘에게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다가왔다. 2015년 시작된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가 주도하고 UAE가 적극 지지하는 아랍연합전선은 정부군을, 이란은 후티 반군을 각각 지원해왔다. 이후 후티 반군은 사우디 리야드 국제공항과 아람코 유전시설을 향해 드론 공격을 감행했고 UAE를 표적 위협해왔다. 2016년 1월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악화는 결국 단교로 이어졌고 바레인도 이란과 단교, UAE는 외교관계 격하를 선언했다. 사우디가 자국 내 반정부, 친이란 성향의 시아파 인사들을 처형하자 이란에서 사우디 공관 공격 사건이 일어나면서다. 2017년 6월 사우디, UAE, 바레인은 이란과 우호 관계를 지속한다는 이유로 수니파 걸프 형제국 카타르와도 단교했다.

2020년 1월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고 실세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 사령관이 미국의 공격으로 사망하자 이란 내 강경 보수파가 득세하면서 급진 팽창주의 정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혁명수비대는 공식 성명에서 UAE의 두바이, 이스라엘의 하이파를 특정해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사우디를 향해, 레바논의 헤즈볼라,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는 이스라엘을 향해 드론과 로켓포 공격을 이어갔다. 2020년 12월 강경파가 장악한 이란 의회는 20% 우라늄 농축 재개 법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고 2021년 1월 이란 당국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1주기에 맞춰 20% 농축 재개를 선언해 핵무기 개발의 속내를 드러냈다. 2021년 6월 이란 대선에서 강경파 라이시(Ebrahim Raisi) 후보가 당선되면서 이란 보수 지배연합 내 강경파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진 반면 미국과의 핵합의를 지지한 이란 온건 개혁파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의 ‘중동 떠나기’ 전략
 
미국의 ‘중동 떠나기’ 전략이 명확해지면서 이란과 대립각을 세워 온 수니파 걸프국과 이스라엘은 전략적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미국은 오바마(Barack Obama) 정부 시기부터 중동에서 ‘역외 균형(offshore balancing)’ 기조와 ‘뒤에서 이끄는(leading from behind)’ 방식을 새롭게 주장했고 아시아 중시 전략을 내세웠다. 미국 내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피로감 심화와 셰일 에너지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에 따라 중국 견제의 이해관계가 부상했기 때문이다.9 트럼프 정부 역시 ‘중동에서 발 빼기’를 노골적으로 선언하며 이란 핵협정의 독단적 파기, 급작스러운 시리아 철군을 강행했다. 2020년 2월에는 아프간 정부를 배제한 채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었고 이는 이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집권하는데 결정적 기회로 작용했다. 같은 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의 피스 메이커(peace maker)를 자임하며 아브라함 협정의 중재자로 나섰고 자신의 거래식 외교(transactional diplomacy)에 거부감을 덜 느끼는 수니파 걸프국을 중심으로 추가 협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2021년 1월 출범한 바이든 정부 역시 인도-태평양을 외교정책의 중점 지역으로 강조하며 중동에서 미국 역할의 축소 계획을 밝혔다. 미국은 중동 내 군사자원 재배치의 일환으로 사우디, UAE,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등지의 미사일 방어시스템, 비행 중대, 병력 감축 계획을 밝혔다.10 8월에는 미군의 아프간 철수 직후 탈레반이 재집권했고 급진 지하디스트 세력의 활성화가 이어졌다. 미국은 극단주의 테러의 위협에 대해 역내 동맹국 기지를 거점으로 무인기의 감시와 타격에 의존하는 ‘수평선 너머(over the horizon)’ 전략으로만 대응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바이든 정부는 ‘중동 떠나기’의 준비 과정으로서 트럼프 정부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적극 추진해왔다. 이란 강경파가 국내 정치 구도에서 장악력을 공고히 하며 핵개발 의도를 드러내는 시점에 바이든 정부가 이란 핵합의 복원을 서두르자 이스라엘은 이란 핵과학자 암살, 핵시설 파괴 등 다양한 비밀작전을 수행했다. 2019년 7월 나탄즈 핵시설 화재, 2020년 11월 이란 핵개발의 대부 파흐리자데(Mohsen Fakhrizadeh)의 살해에 이어 2021년 4월 나탄즈 핵시설의 또 다른 대형 폭발 등의 배후로 이스라엘 정보국이 지목되고 있다.

UAE와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걸프국은 이스라엘과 함께 중동판 나토 형식의 반이란 군사동맹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 2021년 3월 간츠(Benny Gantz)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란의 팽창주의 위협에 맞서 수니파 걸프국과 특별 안보 협정 체결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금껏 아랍 국가의 반대 때문에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부사령부 담당지역에 포함되지 못하고 유럽사령부에 속해 있었으나 최근 오스틴(Lloyd Austin) 미 국방장관은 이스라엘의 중부사령부 편입 문제가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의 팽창주의 행보 뿐 아니라 저유가로 인한 재정 감소, 청년층의 의식 변화에 직면한 UAE의 정권 내구성 강화를 위해서도 절실했다. UAE는 2010년대 중반 이래 경제와 사회 부문에서 파격적인 개혁정책을 시행해왔고 이러한 정책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역내 안정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스라엘계 스타트업 기업이 UAE에 다수 진출해 있고 사우디의 개혁개방 프로젝트에도 이스라엘 출신 자문단이 관여했다. 정권 안정을 위해 첨단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청년과 여성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는 UAE의 개혁정책에 이스라엘의 기술 경쟁력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 1주년의 평가와 전망

 
아브라함 협정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지 않았지만 구시대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중동 대내외 갈등 일변도의 오랜 관성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11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장기 무력충돌과 팔레스타인 정치조직 파타와 하마스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지쳐 있던 아랍 국가에게 민족주의의 당위성에서 벗어나 역내 안정을 추구하는 새로운 안보 협력의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이제껏 아랍 국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에서 같은 민족인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며 파타와 하마스의 권위주의적 행태와 시민사회 탄압에 침묵했다. 파타가 이끄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2006년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자 이후 15년간 선거를 실시하지 않은 채 권위주의 통치를 고수해왔다. 한편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제법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서안지구의 합병을 중단하기로 했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아브라함 협정을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증진하는 구상이라며 환영했다. 12

아브라함 협정을 향해 아바스(Mahmoud Abbas)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은 아랍 국가의 단결을 훼손한다며 비난했고 자리프(Mohammad Javad Zarif) 이란 외무장관은 아랍 국가에 대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에르도안 (Recep Tayyip Erdoğan) 터키 대통령은 UAE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대사관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아랍 세계 내부에서는 눈에 띄는 반대와 비난의 목소리가 없었다.13

바이든 정부는 UAE와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전략적 협력과 아랍-이스라엘 데탕트를 지지하고 있다. 아브라함 협정이 비록 트럼프 정부의 유산이지만 미국이 중동 내 역할 축소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동맹 우방국이 폐쇄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연대를 조직한 일은 반가운 소식이기 때문이다.14 바이든 정부는 중동에선 이스라엘만이 보유하고 있는 차세대 주력 기종 F-35 전투기를 UAE에 판매하는 데 동의했다. F-35 전투기 확보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온 UAE에 트럼프 정부는 판매 계약을 승인했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이를 파기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이스라엘군의 레이더에 UAE의 F-35 전투기 탐지 장치를 설치하는 조건으로 판매를 재승인했고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설득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 바이든 정부는 아브라함 협정의 취지를 지지하나 수니파 걸프국에 민주주의와 인권 원칙을 강조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과 평화로운 공존 역시 지지하고 있다.15

아브라함 협정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아브라함 협정 이전 중동 내 대표적 친미 수니파 아랍국은 사우디, UAE, 바레인, 이집트 4개국이었으나 협정 이후 UAE와 이스라엘이 긴밀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고 사우디, 바레인, 미국이 이를 적극 지지함에 따라 이집트의 전략적 중요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집트의 불만이 커지면서 수니파 아랍 쿼텟 내 균열이 불거졌다. 아브라함 협정의 체결 보다 훨씬 이전인 1974년 이집트는 아랍 세계 최초로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를 이뤘고 1994년엔 요르단이 뒤따른 바 있다. 이후 이집트는 아랍 세계의 대미, 대이스라엘 관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지켜왔다. 최근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에일라트-아슈켈론 파이프라인을 UAE로 잇는 육로 수송라인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수송량이 줄어들면서 이집트 재정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아브라함 협정 이전 이스라엘의 동지중해 에너지 부문 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아랍 파트너는 이집트였다.16 나아가 2013년 7월 엘시시(Abdel Fattah al-Sisi) 당시 국방장관이 쿠데타를 주도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무슬림 형제단 정부를 몰아내자 오바마 정부는 대이집트 원조를 즉각 중단하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출범 후 3개월 간 엘시시 대통령에 우방국 정상 통화 인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5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무력충돌이 발발하자 이집트는 휴전을 중재하며 존재감을 다시 드러냈고 바이든 대통령의 감사 인사를 받기도 했다. 이집트와 달리 UAE에겐 하마스와 대화 채널을 가동할 자원이 없다. 비록 중동에서 아랍 민족주의와 팔레스타인 이슈를 향한 피로감과 무관심이 증폭되고 있으나 가자지구의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가 이스라엘과 대화를 거부하고 무력을 통한 이슬람국가 건설 목표를 폐기하지 않는 한 이집트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17

또한 이란의 패권 추구에 맞선 수니파 걸프국과 이스라엘의 전략적 연대가 이란 강경파를 자극해 역내 질서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18 그러나 UAE와 사우디 내 대외인식 여론이 민족주의와 종파주의를 지양하고 실용주의를 선호하는 추세인 점에 비추어 이들 국가는 이란과 불필요한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은 피할 것이다. 2010년대 초반 이래 실시해온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UAE와 사우디의 35세 이하 청년 인구는 구세대와 달리 종교, 가족, 공동체, 민족, 종파 가치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변화를 보여왔다.19 더구나 UAE와 사우디가 개혁정책을 활발히 추진하는 시점에서 이란 강경파를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경제정책을 흔들지는 않을 것이다.20

실제로 사우디는 역내 미국의 공백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최근 이란과의 관계 회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2021년 사우디와 이란은 이라크의 중재로 바그다드에서 네 차례 회동을 이미 갖고 사우디 내 이란 영사관 재개를 논의한 바 있다. 2021년 12월 UAE 안보 보좌관 역시 이란을 방문해 라이시 대통령과 양국 관계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한편 UAE, 바레인, 수단, 모로코에 이어 이스라엘과 국교 수립에 합의할 것으로 여겨졌던 오만과 쿠웨이트는 미국의 ‘중동 떠나기’와 사우디-UAE-이란의 관계 회복 속도 등을 더 지켜본 후 향후 거취를 결정할 것이다. 이들 아랍 국가가 협정의 대열에 빠르게 합류하지 않더라도 아랍-이스라엘 데탕트 시대를 연 아브라함 협정은 역내 안정과 협력 구축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아브라함 협정 이후 심화된 UAE와 이스라엘 간의 전략적 연대는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UAE가 최근 이란과 화해 무드를 조성하며 관개 개선 입장을 밝힌 것에 비추어 UAE-이스라엘 관계가 공식 동맹의 수준으로 발전하기는 어렵겠으나 실질적 협력 수준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UAE는 수니파 걸프 산유국 가운데 적극적 군사안보, 투명 외교, 산업 다변화, 개방 사회를 위한 개혁 정책을 가장 먼저 파격적 속도로 추진해왔다. 또한 수니파 대표국 사우디와 달리 대외적 위상을 고려해야하는 제약이 덜한 나라이다. UAE의 이러한 역량과 지위는 친미 수니파 아랍 쿼텟 내에서도 독보적이었고 이스라엘과의 협력 심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은 UAE의 국가 체질 개선 프로젝트와 정권 안정 노력에 매우 효과적인 조력국으로 기여해왔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1. 쿠슈너 선임고문은 원래 2017년부터 중동의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서안과 가자지구의 경제 발전에 초점을 맞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안 설득에 나섰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당시 트럼프 정부가 보인 편파적인 친이스라엘 행보 때문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2018년 5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해 자국 대사관을 옮겼고, 9월 워싱턴 주재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를 폐쇄했다. 2019년 2월엔 팔레스타인 영사관을 폐쇄한 후 이스라엘 대사관 산하 팔레스타인부로 강등 이전했다.
  • 2. “Analysis: Covert Israeli-Saudi Meeting Sends Biden a Strong Message on Iran,” Reuters, November 27, 2020.
  • 3. Roie Yellinek, “The Abraham Accords one year on,” Middle East Institute’s Policy Analysis, August 19, 2021.
  • 4. Aya Batrawy, “Quiet Ties and Secret Talks Paved Way for UAE-Israel Deal,” The Washington Post, August 19, 2020; Albright Madeleine K. and Stephen Hadley, “How Trump’s Middle East Plan Could Boost the Region,” Politico, September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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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