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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아베의 생각

2016년 10월 3일 일본 아베 총리는 일본 중의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편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베의 이러한 언급에 대해 우리 외교부는 공식적인 반응을 자제했지만, 외교부 내에서는 당혹스러움과 아베에 대한 실망이 교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의 ‘형식’과 ‘내용’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작년 위안부 합의의 형식은 한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이었고, 그 내용에는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갖고 상처입은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 …”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반드시 조약이라는 형식을 통해서만 국가들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에 한일 양국이 공동기자회견 형식을 취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할 이유가 없다. 내용에 있어 일본 정부의 책임이 표명되고는 있으나 어떻게 당시 일본군의 관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가능하다. 즉, 일본은 여전히 위안부를 모집한 주체가 일본군 또는 일본 정부가 아니고 단지 ‘이미 모집되어 있는’ 위안부가 일본군 ‘통제’ ‘내’에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아베가 이와 같은 위안부 합의의 모호한 점을 향후 일본을 위한 레버리지로 남겨놓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아베는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편지를 쓸 필요가 없다. 만약 아베가 감성적인 조치라는 미명 하에 사죄편지를 쓰면 위안부 모집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아베의 감성적인 조치 거부에 대응할 수 없는가

작년 12월 28일 한일 양국 간 위안부 합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법상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조치 이행을 법적으로 약속한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양국 간 합의를 뛰어넘는 내용을 일본에게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실상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일본 정부, 특히 아베의 감성적인 조치였다. 이 점은 우리 정부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있다. 법적으로 아베에게 사죄편지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사죄편지 발송에 대한 희망은 한일관계에서 우리 정부를 초라하고 궁색하게 만들 뿐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두 가지 대안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우리 정부가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성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역대 정부와는 다른 노력을 기울였다는 설명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설득력 있는 설명이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우리 정부 관계자의 감성적인 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둘째, 감성적인 조치를 거부하는 아베가 감성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상황을 타개할 수 없는 ‘창의적인’ 외교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아베에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외국인들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감성적인 조치가 굴욕적인 사죄의 반복 또는 일본 정부의 완벽한 책임 인정으로 간주되지 않을 수 있다면 아베의 태도는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성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대한 일본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일본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우리 외교력이 창의적으로 조성해야 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와 일본을 향한 현명한 레토릭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가 작년 12월 28일에 이루어진 위안부 합의 자체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위안부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고, 또 다른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이용할지의 문제는 우리 정부에게 달려 있다.

우리 정부는 작년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전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고 약속했다. 이는 유엔 등에서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것이지 유엔 등에서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거론조차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와 일본을 향하여 전략적인 레토릭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모집되어 심각한 인권 유린이 행해졌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표명한 것에 감사한다”는 것과 같은 언급을 유엔총회 등에서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작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에서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을 우리 입장에 맞게 정리하는 것이고, 이에 대해 일본이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다고 반발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이미 만들어진 위안부 합의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위안부 모집 과정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공고화 하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위안부 합의의 문자 그 자체만을 절대적인 금과옥조로 삼아 전전긍긍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외교적으로 매우 순진한 태도이다. 현재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국제사회를 향하여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부각시킬 수 있고, 상황에 따라 감성적인 조치도 끌어낼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 외교부가 얼마나 창의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다룰 수 있는지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 본 글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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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