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칼럼

Eric Vidal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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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출장을 다녀 왔다. 현지에서 만난 유럽 외교안보전문가들의 공통 화두는 시리아 난민 사태와 우크라이나 사태였다. 대화에서는 유럽의 미래에 대한 회의가 물씬 풍겼다.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울해 보였다.

28개국으로 구성된 유럽연합(European Union)은 다자협력, 지역통합, 공동체의 상징이자 성공사례로 평가 받아 왔다. 그 기여를 인정받아 201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유럽연합이 지금은 난민 유입, 경기 침체 등으로 위기에 직면해 공동체 정신이 흔들리고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들이 입을 모으는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도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중동에서 밀려드는 난민 해결이다. 지난 9월 23일 난민 문제의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유럽연합 정상들이 브뤼셀로 긴급히 모였다. 난민이라는 인도적 문제에 협력하고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책임지고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이 심각하게 드러났다. 남유럽과 독일에 편중된 난민 수용 부담을 회원국들이 골고루 나누는 강제할당 방안이 제기되고 최종 채택되기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일종의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현상’과 ‘떠넘기기(Buck-passing)’가 횡행해 불신과 갈등이 증폭됐다.

적극적인 유럽통합파인 영국, 아일랜드, 덴마크도 초기엔 강제할당에 반대했다.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 등 21세기에 들어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은 거셌고 앞으로의 이행과정에서 지속적인 저항이 있을 것이다. 난민의 규모가 커질 수록 저항은 더 거세질 것이다. 현재 시리아 인근 국가에 체류하고 있는 난민은 약 1천2백 만 명 정도인데 시리아 사태가 조기 안정되기 어려워 대부분 난민이 위험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들어오려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난민 사태는 더욱 악화되며, 강제할당 규모는 늘어나고, 유럽연합 회원국들 간의 갈등과 내분은 심화될 것이다. 강제할당에 대한 저항은 동유럽 국가들이 가장 강하다. 이들은 유럽연합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과 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 그러나 그런 기대가 무너지고 책임과 기여가 강요되자 태도가 달라졌다. 결국 책임과 권한, 기여와 혜택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공동체는 약화된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어 유럽연합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유럽통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로존의 위기이다. 유로존은 단일통화와 공동경제권 출범을 통해 경제를 부양하고 안정적인 경제운용을 도모한다는 포부를 가지고 출범하였다. 그러나 회원국의 경제 수준과 규모가 서로 다른 데서 오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데 실패하였고, 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PIIGS) 같은 나라의 국가 부채 위기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로 확산됐다.

유로존 부채위기의 원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전문가들은 “유럽 대중들은 과도한 복지비용과 해당 국가 및 국민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원인이라고 본다”며 “그래서 유럽통합에 대해 회의가 깊어진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유로존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독일을 비롯해 재정이 상대적으로 튼튼한 국가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들 국가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국가부도사태로 유발될 수 있는 위기를 일단 넘기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놀고먹는 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유럽인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지역공동체 정신보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다. 어떤 이는 필자에게 “유럽통합의 시대는 탐욕과 방탕으로 인해 끝났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세 번째 문제는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 합병과 이어진 우크라이나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무기력함이다. 탈냉전시대에 들어 유럽연합은 ‘너무’라고 할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다. 유럽연합의 확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러시아는 이에 대응할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 평가와 전망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유럽연합은 허를 찔렸다. 예측이 어긋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사태 대응 과정에서 보인 모습이다. 러시아를 규탄하고, 경제제재를 도입하고, 휴전협정(민스크 합의)을 맺기는 했지만 효과적이지 못했다.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 반군에 무기를 제공하고 일각에서는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지만 유럽연합은 변변한 조치도 못 취하고 있다. 유럽의 안보전문가들은 답답해하고 있다. 그 반동으로 유럽 안보의 전통적 근간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군비증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렵연합이 지향해 왔던 포괄(comprehensive), 협력(cooperaitve), 공동(common) 안보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유럽연합이 분열될지, 분열을 극복하고 더욱 공고한 통합으로 갈지는 미지수이다. 확실한 것은 유럽연합은 전통적인 안보 문제와 비전통적인 안보 문제가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더욱 많은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고, 각 국가들은 유럽연합 공통의 이익보다 자국의 개별적 이익과 독립적인 공간을 만들려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란 점이다.

유럽연합의 딜레마는 지역협력과 공동체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먼저 지역협력과 공동체에 대한 이상적 접근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자협력이나 공동체는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지지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별이익과 공동이익이 충돌하면 구성원들은 개별이익에 더 집중하고 책임회피 성향을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동체나 지역협력이 확실한 이익을 보장·제공하지 못하고 책임을 요구하면 공동체는 허울만 남게 된다. 두 번째, 책임과 권한을 어떻게 조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인지 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능력이 있는 국가가 그렇지 못한 국가를 보조하고 먹여 살려야 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될 수 없다. 책임 분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권한이 보장되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과 기여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점을 합의하고 이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지역협력과 통합에 대한 기대를 현실적인 수준에서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구속력이 강한 지역 공동체가 아닌 느슨한 형태의 협의·협력체를 목표로 추진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