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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14일 “북한은 유엔 제재의 틀을 벗어난 경제 사업 추진을 바라고 있고, 우리 정부가 앞장서기를 바라고 있다”며 “이 때문에 물밑 접촉에서 정상회담 날짜를 약속해놓고 공식 회담에서 변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이날 서울 아산정책연구원에서 가진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철도, 도로, 산림 사업의 진행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남북 간 ‘정보라인’ 사이에 있었던 경제 협력 관련 이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북한이 공식 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 센터장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종전선언 촉구에 대해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를 종전선언과 바꾸려는 속셈”이라며 “이렇게 북한이 원하는 대로 따로 떼 협상하면 북한의 핵능력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협상이 진행되면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해체하면서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라고 할 것”이라며 “북핵의 실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협상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현 정부는 이전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려는 경로의존성에 빠져 있고, 평화체제에 대한 희망적 상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종전선언 필요성은 강조하지만, 어떤 비핵화 조건에서 종전선언을 할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고 있다. 우리 스스로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그 부분에 북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다.

신 센터장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으로 성의를 보였으니 종전선언 등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국내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북한은 대외 무역이 90% 가까이 차단되고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며 “그런데 우리 정부가 평창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의 고립을 탈피시켜줬다. 북한이 무언가 많이 해준 게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북한에 엄청난 혜택을 부여했다는 것을 우리 정부 스스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신 센터장과의 인터뷰 전문>

남북 정상회담이 9월로 잡혔는데. 당초 기대와는 달리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

“남북관계 협상이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보 라인에서 물밑 조율이 이뤄진 다음에 우리 측 통일부,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공식 라인을 통해 확인되는 방법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투트랙으로 가다 보면 서로 인식차가 생길 수 있다. 투트랙 협상 과정에서 시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내용상 입장이 바뀔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당초 서로 기대했던 것과 회담 결과가 달라진다.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한국정부가 뭔가 이행을 하지 않은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정상회담 날짜도 바뀔 수 있다는 식의 경고성 발언까지 하고 있는데 북한이 우리에게 무엇인가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측에서는 당초 정상회담 시기로 8월말 9월초를 얘기했는데, 9월 중순 이후로 미뤄졌다. 물밑접촉에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주기로 하고 정상회담 날짜를 약속했는데, 북한은 우리 정부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좀 더 받아들여 달라고 하는 것이다.”

북한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 중인 9·9절(북한정권 수립 기념일) 70주년 행사가 회담 일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가.

“9·9절은 정상회담 일정 조율에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입장에서는 9·9절 이전에 대외 관계가 개선돼 9·9절을 성대하게 개최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북한이 EU(유럽연합)에 고위급 참석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얘기가 들리는데, 비핵화 진전이 이뤄졌다면 많은 나라의 고위급을 참석시켜서 70주년을 성대하게 치르고 체제우월성을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비핵화 부분에서 속도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9·9절에는 제한적인 활동밖에 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부를 9·9절에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북한도 한국이 올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한국의 9·9절 불참을 두고 한국 정부에 불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협상전술 차원에서 요구했을 수는 있지만, 북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투트랙 협상을 통해 한국 정부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북한은 한국에 대외적으로는 철도, 도로, 산림연결사업과 종전선언을 요구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가 유엔제재의 틀에서 벗어나서 이런 사업을 추진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가 완화되고 한미공조가 갈등을 겪는 것이 북한 입장에서는 최대의 이익인데, 한국정부는 제재 틀을 깨는 것은 못하겠다고 한 게 아닌가 싶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 정부가 잘한 거다. 그러자 북한은 제재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라고 했을 수 있다. 미국에 좀 더 양보를 받아낼 수 있도록 말이다. 제재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금강산 관광이라든지 인도적 지원 같은 부분을 한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그런 이면합의가 지켜지지 않아서 북한이 압박을 넣는 건가.

“리선권이 한 말을 분석해보면 한국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다.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강조하는 것 같다. 즉 철도, 도로 연결과 산림 산업 진행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한 이행과, 종전선언과 관련해 한국정부가 미국 설득에 노력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8월 말에 방북 일정에 남북 정상회담 일정이 치였다는 얘기도 있다.

“한반도 상황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남북관계가 개선돼야 하고 핵 문제도 풀려야 하는데, 핵 문제가 풀려야 남북 관계 개선도 이뤄낼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해서 핵 문제를 해결하고, 진전된 것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남북 협력으로 나아가는 게 논리적 귀결은 맞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북 정상회담도 안 할 것은 아니지 않나. 미북 관계에 진전이 없을 때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북 관계도 개선하겠다는 게 한반도 운전자론이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일정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스스로 한반도 운전자론을 포기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간의 논리가 궁색해지는 셈이다. 또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고위급 회담 바로 전날까지도 정상회담을 8월말이나 9월초에 할 것이라고 했었기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이 지연됐다고 연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북한은 공식 채널과 별개로 선전매체를 통해 잇따라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핵실험장을 폐쇄하는 등 성의를 보였는데 종전선언과 제재완화를 같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논리는 잘못됐다. 북한은 소위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를 주장하면서 살라미 전술로 나오고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중 엔진시험장만 폐기했다. 부분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북한은 이런 것들을 따로 떼서 협상하려 한다. 북한식으로 따지면,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등가성이 있는 것이었다.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기로 종전선언을 끝내버리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북한이 원하는 대로 따로 떼서 협상하고 따로 보상을 하면 북한 핵능력의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북한의 핵무기, 핵 물질, 관련 시설이 얼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깜깜이 협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협상은 북한이 협상의 주도권을 갖고 핵무기와 핵물질을 끝까지 손에 쥐기 위한 협상이고, 따라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협상 틀 안에서 종전선언을 하게 되면 우리의 안보 이익은 상당한 도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을 해주고 나면 북한은 그다음으로 동창리 미사일발사대를 폐기하겠다고 할 것이다. 종전선언이 법적인 합의는 아니지만, 정치적으로는 전쟁이 종료됐다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고 평화를 회복하려고 만들어진 유엔군 사령부 해체를 북한이 요구할 것이다. 즉,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를 해체하면서 유엔군사령부도 해체하라고 할 것이다. 북핵 실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협상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살라미 전술은 북한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술이다. 현재 미국도 그런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 ‘신고-검증-폐기’를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현 정부 일각에서도 그런 북한의 논리에 동조해 빠른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기류가 있는 것 같다.

“한국 정부가 생각하는 종전선언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은 강조하고 있지만 어떤 비핵화 조건에서의 종전선언인지 말하지 않는다. 남북 관계와 비핵화 협상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원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조치는 얘기하지 않고 종전선언을 강조만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한미 간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잘못하면 북한 협상에 말려들 수도 있다. 근본적인 협상의 문제인 것 같은데, 할 말은 해가며 협상해야 한다. 북한 비핵화 부분에서 우리의 요구도 얘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정부는 이와 관련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모호한 표현을 써왔는데, 북한과 우리가 생각하는 비핵화가 다르다는게 판명나고 있다. 우리는 북한에 비핵화에 대해 강도 높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는 ‘선의로 대하면 북한의 다음 단계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결단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비핵화 로드맵을 우리 스스로 마련하고 그 부분은 북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현 정부가 비핵화보다는 종전선언에 더욱 집착하는듯한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현 정부의 경직성, 이전 노무현 정권의 대북 정책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려는 경로의존성, 그리고 평화체제에 대한 희망적 상상(wishful thinking) 때문인 것 같다. 2007년 10·4 합의를 보면 이미 종전선언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카드가 다시 부각된 것에 집착하면서 협상을 전개하는 것 같다. 평화 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여러 옵션 중 하나가 종전선언이었는데 이 정부가 그것을 유난히 부각시킨 것 같다. 또 종전선언을 북한이 적극적으로 요구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동안 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해 크게 언급하지 않다가 7월부터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때쯤부터 북한이 종전선언을 유리한 카드로 생각한 것 같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같은 문서로 한반도 평화가 담보되는 게 아니다. 평화체제는 제도적 요건이 필요하고 또 실질적 평화보장책도 있어야 한다. 제도적 요건은 종전선언, 법적 보장이고 실질적 평화보장책은 군사적 신뢰구축 등을 의미한다. 신뢰구축은 곧 비핵화다. 안보문제가 해결돼야 신뢰가 쌓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최우선 순위는 핵문제 해결이다. 현 정부는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이 선의의 조치로 나갈 것이라는 희망적 상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전선언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다음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종전선언을 해서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면 다행이지만, 종전선언을 해줬는데 북한이 유엔사 해체나 한미동맹 약화를 조건으로 건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번 선언한 것은 되돌리기 어렵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 ‘희망적, 이상주의적 태도’ 때문에 북한이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 아닌가.

“북한은 등가성이 전혀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등가성이 있다, 없다 조차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데 이제는 얘기해야 할 때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북한은 철저히 고립돼 있었다. 대외 무역이 90% 가까이 차단됐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평창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고 고립을 탈피시켜줬다. 북한이 뭔가를 해준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북한에 엄청난 혜택을 줬다는 걸 우리 정부부터 알아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선의에 기대고 있지만, 지금까지로 봐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핵 실험장, 미사일 엔진실험장을 폐기했다고 하면서 ‘엄청난 비핵화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질적인 비핵화 프로세스가 아니다. 비핵화는 ‘신고-검증-폐기’라는 과정을 이행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비핵화와 다른 행보, 주변을 때리는 행동으로 주의를 돌리고 있는데 진정한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금까지 해온 북한의 조치는 필요없는 조치다. 북한은 더이상 핵실험이 필요 없기 때문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했다. 북한 스스로 임계점 실험이 가능하다고도 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는 검증 없는 일방 폐기였다. 동창리 엔진실험장 폐기와 관련해서도, 작년에 이미 백두계열 엔진이 완성됐다. 화성 15호의 추진력도 검증됐기 때문에 필요 없는 조치다. 그런 조치로 미국의 종전선언,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등가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북한 행동의 가치가 높지 않다.”

비핵화와 등가성이 없는 우리 정부의 자체 조치도 최근 논란이 많다. 국군의 날 행사를 축소하고, 단독 군사훈련까지 줄이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이 끝나고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발표했을 때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협상 방식으로써 연합훈련을 중단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조차 안 했다면 지금 북한이나 국내 진보 진영에서는 ‘미국이 아무것도 안 했다’고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합훈련을 중단하는 선제적인 조치를 했다는 점에서는 협상으로써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판문점 선언이다. 그 안에 서로 적대행위를 하지 않기로 되어 있는데, 이 내용 때문에 군사훈련을 중단했다면 판문점 선언이 잘못된 것이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판문점 선언을 빌미로 군사훈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로를 위한 공세적인 훈련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훈련은 방어훈련이고 군사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이다. 북한 위협이 해소되는 상황까지 계속 해나가야 한다. 북한은 핵능력이 있기 때문에 재래식 능력을 우리와 북한이 1대1로 감축하는 것은 남북 간 전력 격차를 더욱 크게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재래식 능력을 100, 북한의 재래식 능력을 100, 북한의 핵 능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현재 남북한의 전력은 1대 2 수준으로 남한 열세다. 그런데 재래식 능력을 50씩 감축하면 핵 능력은 그대로 100이기 때문에 전력이 1대 3이 되고, 우리는 북한에 대해 더욱 열세가 된다. 따라서 필요한 군사 훈련은 하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방어훈련조차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는 방조했다는 의혹까지 있다.

“우리 정부가 대응을 잘못했다. 작년 4월~10월 사이의 북한 선박 7척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과정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 조사가 지난 2월까지 이어졌는데 관계 기관의 서류제출 등이 늦어졌다고 하니까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올해 2월~7월이 문제다. 관세청이 지난 2월에 검찰에 조사 결과를 송치하려 하니 검찰이 ‘보강수사를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보강수사가 5개월이나 지연됐다. 미국 언론에 의해 문제제기가 됐던 때가 7월이다. 일련의 상황을 보면 미국에 의한 문제제기가 없었다면 보강수사가 7월보다 더 늦어질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수사 기간에 정상회담이 있었다. 정치적 고려 때문에 수사를 지연한 것은 아닌지, 충분한 개연성이 있는 것 같다. 정상회담을 의식해 관세청 스스로 정치적인 판단을 해서 지연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쪽에서 이런 정치적 고려 사항이 전달됐는지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관세청 스스로 했다면 그 안에서 책임져야 할 것이고, 외부 압력이 있었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석탄을 반입한 한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기업·개인에 대한 2차 제재)이 가능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우리 정부의 조사는 작년 10월까지 국한돼 있다. 그런데 작년 10월 이후에도 관련 선박들이 오갔는데, 우리 정부는 북한 석탄이나 제재위반 물품이 추가로 들어오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정확한 설명도 없다. 이게 세컨더리 보이콧 문제와 연결된다. 4~10월 조사를 통해 관련자, 법인을 처벌하고 선박을 유엔에 통보한 것은 잘했다. 이 사안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이 제기될 가능성도 극히 적다. 이 뒤에 이런 상황이 반복됐는지가 문제고, 새롭게 문제가 있었다면 세컨더리 보이콧을 할 수도 있다. 유엔안보리 보고서는 항상 연말에 나오는데, 올해 보고서를 통해 내년에 다시 문제제기가 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10월 이후 상황을 조사할 필요가 있고 잘못이 있다면 먼저 발표해서 미국에 의해 먼저 알려지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급박하다. 9·9절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참석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가능성이 있을까.

“가능성이 있지만, 변수도 있다. 최근 들어 북중 관계가 복원되는 흐름이 있다. 미북 정상회담 이후 3차 북중 정상회담 있었고 그때 북중 관계를 과거의 혈맹관계와 같은 수준으로 복원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북한 정권이 출범해서 70년이 되는 9·9절이 중국에도 중요하다는 의미를 갖는다. 혈맹이기 때문에 중국도 축하해줘야 할 정치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면 시 주석의 방북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변수도 생겼다. 7월부터 미·중 간 관세전쟁에서 중국이 서서히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상황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했는데도 비핵화 문제가 진전이 안 된다면 그 상황에서 시 주석이 방북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일 것이다. 즉, 폼페이오 방북과 비핵화 협상이라는 변수를 만난 셈이다. 그래서 시 주석의 방북은 약간 유동적이지만 아직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북한은 중국을 통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를 흔들려고 한다. 3차 북중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종전선언에서 보다 목소리를 높게 내는 것도 그 증거다.”

미국의 입장도 오리무중이다. 비핵화 협상에 큰 진전이 없는 것 같은데, 트럼프 대통령은 유해 송환을 받은 것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것 같다.

“비핵화를 바라보는 미국 내 시각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안보를 중요시하는 그룹이다.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주장하며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고 싶어하는데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두 번째는 비확산 그룹이다. 국무부 중심의 써클인데 북한이 핵무기를 더이상 생산하지 않고 해외로 유출하지만 않으면 1차 목표는 달성됐다고 생각하는 그룹이다. 비핵화 문제는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전통적으로는 이 두 가지 그룹이 있었는데 세 번째 그룹이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북한 핵문제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도움이 된다면 활용하는 그룹이다. 근본적인 비핵화가 아니더라도 정치적 위상을 강화시켜준다면 유해송환 등의 이벤트를 통해 협상 모멘텀을 끌고 가는 것이다. 지금 협상이 지지부진한데, 중간선거 이전인 10월 중순까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양보한다거나 영변 핵시설을 동결, 신고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족할 것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못한 것을 자신이 했다고 할 것 같다. 완전한 비핵화는 접어둘 수 있다는 뜻이다. 2년 뒤 대선까지 비핵화를 완전히 못하더라도 핵 물질을 일부 반출해서 가져오는 등 북핵 문제를 정치적 성과로 가져올 수 있다면 현재 상황이 잘 되고 있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생각한 것은 완전한 비핵화다. 우리는 여기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미국은 비확산에 만족할 수도 있다. 비확산 하기만 해도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사라지고, 비확산 레짐에도 도움이 되고, 한반도 전략상황에도 도움이 된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한국은 물론 일본도 미국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확산을 주장하는 미국 내 사람들은 결국 미국의 이익을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협상과정에서 두 번째 그룹이나 세 번째 그룹의 목소리를 따라가선 안 된다. 우리 나름대로 비핵화 로드맵이 있어야 하고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도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첫 번째 그룹과 이해관계가 맞다.”

우리 정부도 여러가지 자체 비핵화 로드맵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로드맵이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처음에는 ‘동결 입구, 비핵화 출구론’이었다. 그다음에는 이른바 ‘일괄타결론’이었다. 이것도 안 되니 ‘포괄적 합의 후 단계적 이행’을 주장했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말하지 않는다. 협상이 진행되면서 우리는 협상 진행 자체만 중점을 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국내정치적 효과를 노린다고 이야기하진 않겠다. 보수 진보를 떠나서 북한 문제는 정치적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과거 보수 정권이 과도하게 북한과 대결 분위기를 조성한 것도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고, 마찬가지로 진보 정부도 과도한 평화분위기 조성으로 현상을 왜곡시키면 안 된다.”

현 정부가 생각했던 대북 대화 타임테이블도 예정보다 어긋나는 거 같다.

“우리 정부 계획은 일부 어그러지긴 했다. 너무 종전선언에 꿰맞춰서 일정을 잡으려 하는 것 같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셈이다. 비핵화가 되면 그때 종전선언을 해주면 된다. 종전선언 날짜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시기가 언제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와 의미 있는 신고를 얻어내고 그에 부합하는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성급하게 가면 협상에서 지게 된다. 긴 안목에서 이 문제를 보고 시간에 쫓기지 말아야 한다.”

김정은의 유엔총회 연설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유엔총회에 김정은을 불러서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려는 시도는 바람직한 것 같다. 김정은의 유엔총회 연설 같은 게 이뤄지려면 필요한 여건이 조성돼야 하고, 필요한 여건은 곧 비핵화 이슈다. 비핵화에서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어야 한다. 유엔총회에서 김정은이 연설을 하더라도,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태라면 우리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나. 김정은의 진정성을 의심할 거다. 총회 연설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비핵화 진전이 없다면 연설은 의미 없다. 연설로 평화가 왔다는 것도 과도한 주장이다. 유엔회원국 수장이면 유엔에서 연설할 권리가 있다. 이를 의미 있게 해석하려면 비핵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아직은 판단 이르지만,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역시 북한은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행동을 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훨씬 못 미친다. 북한은 지금 비핵화를 이야기하면서 강도 높은 압박을 우회하는 전술적 기동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뿐 아니라 압박 카드도 유지해야 하고, 제재 이행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비핵화는 결단의 문제다. 우크라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도 결단을 통해 다 포기했다. 핵 지식기반까지 없앨 수 있느냐는 100% 장담할 수 없다.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란 북한이 핵무기, 핵물질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영변 원자로의 농축우라늄 시설 등 가동했던 핵시설을 다 폐기하고, 관련 데이터를 다 파기하는 것이다. 북한 과학자들의 해외 이전까진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저 정도만 해도 CVID는 됐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핵무기, 핵시설이 없고 전문지식은 있다면 잠재적 핵능력이 있는 것인데 그건 사실 우리도 있다. 다만 우리는 재처리 시설이 없고, 무기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다. 따라서 북한이 핵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정도는 우리가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단은 김정은의 결단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 또 북한이 신고-검증-폐기를 한다면 신고와 함께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를 해주고 검증을 받으면 이에 맞게 단계적으로 제재를 해제해주고, 완전히 검증되면 북한이 더이상 속일 가능성이 없으니 추가적인 경제지원 같은 것을 매칭하면 되는 것 같다. 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북한이 미국이나 국제사회에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핵무기나 핵물질을 반출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비핵화 의지가 없는 것이다. 신고를 하지 않는 것은 깜깜이 협상을 하려는 것이다.”

* 본 글은 조선일보,”[격동의 한반도-전문가 진단 2부⑭]신범철 “정상회담 지연, 이면합의 불이행에 北이 반발했을 가능성””(18.08.18) 인터뷰 내용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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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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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