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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북한이 하겠다는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인공위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1일 김정은이 주재한 것으로 보이는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결정 내용에도 어떤 도발을 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머지않아 북한이 얘기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의 구체적 내용이 들려오겠지만 의외로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을 수도 있다. 북한 이태성 미국담당 부상은 이달 초 “남은 건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엄포를 부렸지만, 그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아니다. 발언자의 체면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도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도발을 걱정하는 것은 김정은이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미국이 연말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김정은의 공개 발언만큼은 뭔가 보여줘야 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강대국과의 협상에서 데드라인을 정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보인지와는 별개로, 연말에 무언가 사고를 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말하는 ‘새로운 길’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핵을 보유한 채 경제를 발전시키는 노선을 의미할 것이다.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을 평가하며 경제건설 집중 노선을 제시했지만 이제 다시 핵을 보유한 채 경제적 성과를 이뤄보겠다는 내용일 것이다. 물론 과거보다 더욱 거창한 구호들이 등장할 전망이다. 아마도 ‘자력갱생’을 넘어선 ‘자력번영’이 새 구호로 등장할 것이며,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노선은 새로운 길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북한이 걸어온 길일 뿐이다. 겉으로는 주민생활 향상을 주장하고 있지만, 속내는 핵보유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지난 2년간의 대화 행보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로 대부분의 대북 제재를 해제하려 했다. 이런 협상이 타결되었다면 북한은 핵물질과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영변 핵시설과 기타 농축우라늄 시설로 대북 제재를 해제받고 연합군사훈련을 영구중단시키며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다행히 북한의 의도를 파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no deal) 선언으로 북핵을 용인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그렇기에 북한은 다시금 속내를 드러내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면 무력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보해왔던 미국과 한국의 입장을 다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이라는 희망찬 구호를 내놓는다 해도 결국 과거로 돌아가는 일일 뿐이다.

물론 북한도 계산이 있을 것이다. 전략도발을 통해서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도발 없이 사실상의 핵보유 선언 정도로 중국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셈법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구멍이 숭숭 뚫린 대북 제재라면 버티기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알아야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과 같은 전략도발을 하게 된다면 중국이나 러시아도 북한을 지원하기는 어렵다. 당장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압박이 강화될 것이다. 북한이 도발을 하지 않고 버티기를 시도한다 해도, 결국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거나 회유해서 제재 이행을 강화하고 중국인 관광객을 중단시켜버리면 북한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지난 시절 겪어왔던 고난의 행군만 남게 된다.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길은 없다. 오로지 핵을 내려놓는 ‘비핵평화’의 길만이 그들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뿐이다.

 

* 본 글은 12월 23일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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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신범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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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