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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에 당황한 韓 외교부, 이 사태에 대비했는지 의구심
기업가 출신 美 대통령 시대엔 외교안보가 후순위로 밀릴 듯
통상 문제 가장 시급하지만 중요도에 따라 차분하게 해결해야

11월 9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미국의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되는 순간 우리 외교부는 무척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운영하고, 고위급 관료를 미국에 보내겠다고 한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트럼프 당선인 인맥을 파악하고 접촉하려는 움직임도 부산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만일에 대비한 대책, 이른바 ‘플랜 B’는 준비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그게 잘 준비되어 있었다면 이런 부산함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플랜 B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대미(對美) 외교전략을 만들고 행동에 옮기면 된다. 외교부나 기획재정부와 같은 부서들이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데 너무 서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듯이 미국 내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고 차기 미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를 판단해 선후(先後) 경중(輕重)을 가리면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대미 외교를 펼쳐야 한다. 수락연설에서도 나타났듯이 트럼프 당선인의 최우선 순위는 분열된 미국사회를 통합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수렁에 빠진 미국경제를 살리는 문제이다. 외교안보 문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놓이게 되고,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적극적인 해결보다는 관리에 역점을 둘 것이라 예상된다. 또한 외교안보 문제가 국내 정치·경제의 관점과 연장선상에서 해석되고 접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의 대미외교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시사한다. 먼저 너무 서두르지 않는 차분하고 세밀한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직 인수위가 구성 중이다. 일단 인수위가 구성되면 인수위는 각료급 인선 업무와 취임 준비에 집중할 것이고, 정책 검토와 수립에 신경 쓸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별로 없다. 이런 와중에 외국에서 사람들이 와서 이미 알고 있는 정책 설명을 장황하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이다. 우리의 정책을 설명하기보다는 미국 측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

한국 내 트럼프 인맥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인맥이 있다면 활용해야겠지만, 정말 의미 있는 인맥은 몇 안 된다.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인사들을 활용할 생각을 정부가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외교는 정부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이 든다. 정부의 접촉은 부담이 된다. 결과와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평소에 교류를 가져왔고 친분이 두터운 인사들을 활용한다면 보다 솔직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신뢰감도 쌓게 되며 정부에는 부담이 덜 될 것이다.

사실 인맥보다는 정책의 내용이 중요하다. 이미 알고 있는 뻔한 내용을 가지고 가서 설명을 해봐야 별로 효과가 없다. 시간 낭비일 뿐이다. 미국의 관심사항에 대한 답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는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같은 것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달리 보인다. 트럼프 당선인은 기업가였다. 그렇다면 그는 문제를 가치(value), 신뢰(trust), 혹은 믿음(belief)과 같은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이윤(profit)이나 돈(money)과 같은 차원에서 해석할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무엇이 얼마만한 실질적 이익 혹은 위험(피해)을 가지고 있는지를 수치로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한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하려 하는 것도 피해야 할 사항이다. 시급성과 중요성을 놓고 우선순위를 설정하여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단계별 접근이 요구된다. 시급한 것은 통상 문제이다. 그 다음이 2018년부터 협상이 시작될 방위비 분담 문제이다.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주한 미군기지 재배치, 사드 배치, 이미 한미 간에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함과 동시에 자체 능력 확충을 위한 노력을 배가하는 것도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하에서 한미 관계를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행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의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미 의회에 대한 외교를 소홀히 하였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의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대통령의 독주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이 의회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 당선에 대한 놀라움과 충격을 빨리 떨치고, 위기가 기회라는 생각을 갖고 성급하게 하기보다는 차분하고 치밀하게 대미외교를 추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본 글은 11월 15일자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