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기고문

561 views

Don’t Bother.

LA Times지가 부통령 토론회를 두고 한 말이다. 부통령 토론회는 태생적으로 주목 받기 힘들다. 미국 부통령이라는 자리가 원래 존재감 없는 직위이고, 역대 선거를 보면 부통령 토론회가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멍청했던 부통령후보로 여겨지는 댄 퀘일(Dan Quayle) 부통령을 한 방에 밟아버린 로이드 벤슨(Lloyd Bentsen)의 “Senator, you are no Jack Kennedy”는 지금까지도 여러 토론회들을 통해 나온 최고의 한 마디로 꼽히고 있다. 그래도 퀘일은 결국 부통령 자리에 올랐다.

현지시각 10월 4일 버지니아 주에서 부통령 토론회가 열렸다. 언론에서 부통령 토론회에서 펜스가 지난 주 입은 트럼프의 상흔을 얼마나 가려줄 수 있을 지 중요하다고 떠들었지만, 실제로 이번 부통령 토론을 흥미진진할거라 본 전문가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일단 흥행이 될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백인 중년 남성 정치인들의 토론이었다. 주말 아침 방영되는 시사토론회 Meet the Press와 뭐가 다른가. 도발적이어서 웃긴 사라 페일린(Sarah Palin)도, 감자(potato) 철자법도 모르는 댄 퀘일(Dan Quayle)도 없었다.

1. 펜스의 승리

내용과 상관없이 케인에 비해 펜스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차분해 보였다. 아마도 방송인으로의 경력이 훌륭한 카메라 워킹에 도움이 된 듯하다. 이에 반해 케인은 부통령 자리로 가는 데 한 끗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했는지, ‘오바’하는 모습이었다. 공격적이고 성마른 모습까진 그렇다쳐도 펜스가 이야기할 때 말을 끊고 반박하는 모습은 확실히 ‘짜증유발’적이었다. 그리고 시끄러웠다. 왠지 연설 도중 물 찾아 헤매던, 의욕만 가득 찬 정치풋내기 마르코 루비오가 연상되었다. (팀 케인은 베테랑 정치인이건만. 대통령 선거가 주는 중압감이 대단하긴 한가 보다.)

물론 팀 케인은 조목조목 트럼프에 대해 공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세금 납부 내역에 대해 집요하게 공격하고, 여성, 전쟁포로, 이민자에 대한 트럼프의 모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펜스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실제로 했던 말에 대해 ‘대통령 되면 안 그럴거야~’로 일관했고 때때로 동문서답을 하기도 했다.

2. 애국가 시청률 드라마의 주인공 – 마이크 펜스

아무리 존재감이 없더라도 부통령이 되는 것은 상원의원이나 주지사에서 전국 혹은 세계적 정치인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은퇴 후 받게 될 강연료도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도널드 트럼프인지. 펜스와 트럼프는 의견이 다른 부분도 꽤 된다. 일례로, 통상무역에 있어서 펜스는 TPP와 NAFTA의 열렬한 지지자이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무슬림 입국금지에 대해 지난 12월 인종차별적이라고 반대성명을 내기도 했다. 러시아와 푸틴에 대한 논쟁에서 그 다름을 확연하게 볼 수 있었다. 화려한 뉴요커인 트럼프와는 일상생활도 상당히 다를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공화당’이었다. (아마도 오늘 토론을 시청한 많은 공화당원들 중 대통령 티켓의 위아래 이름을 바꾸고 싶은 사람도 꽤 됐으리라)

그래서인지, 클린턴과 그녀의 정책에 최대한 일체화하려는 팀 케인과 달리 펜스는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도,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상마저도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안쓰럽다. 하지만 어쨌든 드라마는 끝내야 한다. 이번 작품은 포기하더라도 후속작을 약속받기 위해 괜찮은 퍼포먼스를 보여야 한다. 그렇다, 추후를 도모해야지.

3.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렇게 잊혀져 갈 것이다. 원래 부통령 토론회가 대단히 주목을 끄는 성질의 것도 아니고, 특히 이번 토론은 큰 재미가 없었기 때문에 별 이슈를 생산하지 못한 채 지나갈 것이다. 팀 케인은 상당히 아쉬울테지만,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유권자가 별 관심 없기 때문이다. 이미 포커스는 트럼프의 납세 문제와 2차 토론으로 돌아가 있다.

덧. 이전에 빌 클린턴은 할 일 없을 때 사고치는 인물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 있다. 확실히 그러한 듯 하다.

* 본 글의 내용은 연구진들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About Experts

김지윤
김지윤

연구부문

김지윤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선거와 재정정책, 미국정치, 계량정치방법론 등이다. 주요 연구실적으로는 “Cognitive and Partisan Mobilization in New Democracies: The Case of South Korea”(with Jun Young Choi and Jungho Roh, forthcoming, Party Politics), “The Party System in Korea and Identity Politics” (in Larry Diamond and Shin Giwook eds. New Challenges for Maturing Democracies in Korea and Taiwan. 2014. Stanford University Press), “기초자치단체에서 사회복지비 지출의 정치적 요인에 관한 연구” (이병하 공저 의정연구, 2013), 『국회의원 선거결과와 분배의 정치학』 (한국정치학회보, 2010), 『Political Judgment, Perceptions of Facts, and Partisan Effects』 (Electoral Studies, 2010), 『Public Spending, Public Deficits, and Government Coalitions』 (Political Studies, 2010) 등이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 버클리대학에서 공공정책학 석사를, 미국 MIT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