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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엔군사령부가 일본에 전력(戰力)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유엔사와 관련한 논의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유엔사는 6·25전쟁 초기이던 1950년 7월 7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84호를 법적 근거로 삼아 1950년 7월 24일 미국 군정 속의 일본 도쿄에서 창설됐다. 유엔사는 당시 한국 정부로부터 확보한 작전지휘권(작전통제권)을 바탕으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유엔군의 6·25전쟁 작전을 지휘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유엔사는 협정을 준수하고 이행하기 위해 북방한계선(NLL)을 선포했으며, 1957년 7월 1일에는 일본에 유엔군후방사령부를 남겨 두고 서울로 이전했다. 그러나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창설되고 유엔사가 가지고 있던 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로 이전되면서 유엔사는 외형만 유지한 조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유엔사는 여전히 정전협정이 부여한 정전협정 준수 및 이행 관련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9·19 평양 공동선언에 따라 남북이 철도 또는 도로를 연결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관한 한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런데 2018년 유엔사 역사상 최초로 미국 출신이 아닌 제3국 출신의 유엔사 부사령관이 취임하고 주한미군사령부 참모장이 겸임하던 유엔사 참모장에 별도의 인사가 임명되는 등 유엔사 강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이를 유엔사 ‘재활성화(revitalization)’ 프로그램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유엔사 운용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유엔사 조직을 정비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연합군사령부 창설 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유엔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보여준다. 유엔사 강화를 통해 미국이 장기적으로 유엔사를 동아시아의 나토(NATO)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유엔사는 유엔 안보리의 해체 관련 결의가 채택되지 않는 이상 종전선언 또는 평화협정 체결 여부에 관계없이 미국 의사에 반해 해체될 수 없는 것이 법적 현실이다. 더구나 미국은 거부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유엔사 해체를 결정하려는 안보리 결의 채택도 막을 수 있다. 이처럼 유엔사의 운명 결정은 미국의 전적인 권한에 속한 만큼 해체 여부를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오히려 미국의 유엔사 강화 계획에 대해 한국 정부는 유엔사 내에서 입지를 넓히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한다.

유엔사가 한국 정부에 국군 장교 20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이는 미국의 유엔사 강화 계획에, 유엔사 내 한국의 역할 확대가 포함돼 있다는 의미다. 유엔사 운용이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는 현실에서 일단 한국은 이 같은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유엔사 내에서 영향력을 최대한 제고(提高)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논란이 된 일본의 유엔사 참여 문제에 대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유엔사의 미래가 미국의 선택에 달린 이상 미봉책에 불과하다. 외려 일본의 유엔사 참여를 전면적으로 봉쇄하기를 원한다면 한국이 유엔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안보리 결의 제84호의 해석상 일본은 전력 제공국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게 더 현명하다. 대한민국 안보의 두 축이 미래연합군사령부와 유엔사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유엔사 내 역할 확대는 더 미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 본 글은 7월 16일자 문화일보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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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