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614 views

문재인 정부의 UAE 정책: 과거 정부 정책의 답습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를 공식 방문했다. 이웃나라 사우디아라비아까지 들릴 예정이었으나 실세 왕세자가 3주 넘게 미국을 방문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한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슬로건 아래 과거 보수 정부들과 차별성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의 UAE행은 의외였다. 아랍 산유왕정은 원전∙자원 외교를 앞세운 이명박 정부, 세일즈∙비즈니스 외교와 제 2의 중동 붐을 주장한 박근혜 정부의 주된 협력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UAE 측의 강한 불만 토로가 갑작스런 UAE 행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UAE 원전 수주의 이면계약으로 군사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에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문제를 제기하자 UAE 정부는 불쾌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2010년 당시 여당은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크부대의 UAE 파병안을 통과시켰다. 한-UAE 군사 양해각서의 일환으로 파병된 아크부대는 UAE 특수부대 훈련을 맡았다.

문 대통령의 UAE 방문 2개월 전 임종석 비서실장이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급하게 UAE를 찾았다. 임 비서실장은 UAE의 실질적 지도자이자 아부다비 왕세제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Mohammed bin Zayed Al Nahyan, MbZ)와 직접 만났다. 이후 왕세자의 오른팔인 칼둔(Khaldoon Khalifa Al Mubarak) 아부다비 행정청장이 특사로 방한했다. 칼둔 청장은 UAE 원자력공사 이사회 의장이자 이명박 정부가 수주한 바라카 원전 사업의 총책임자이다. 곧이어 UAE의 의구심을 해소하고 양국 관계의 회복을 알리는 공식 행보로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아무리 아랍 산유왕정에게 큰 관심 없는 진보 정부일지라도 UAE는 우리의 최대 건설 수주국이자 중동 내 최대 수출대상국, 최대 인적교류국이다.

UAE가 문재인 정부에게 보인 날 선 반응에는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부상이라는 배경도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은 UAE와 사우디를 포함한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의 최대 라이벌이다. UAE와 이란은 시리아 내전에서 7년 넘게 대치했으나 이란이 지원한 정부군의 승리로 전쟁이 마무리되고 있다. 2011년 아사드(Bashar Assad) 시리아 세습독재 정권이 민주화 시위대를 유혈진압 하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미국과 유럽∙중동 동맹국은 이란과 러시아가 후원하는 정부군에 맞서 반군을 도왔다. UAE와 사우디도 반군을 지원했다. 그러나 2014년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ISIS)가 등장하면서 내전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2017년 중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대치했던 나라들이 공동의 적 ISIS 격퇴에 함께 나서자 정부군의 승리가 예견됐다. ISIS는 시아파 아사드 정권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고 반군을 향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ISIS 격퇴전에서 중요성을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아사드 정권이 생존에 성공하면서 정부군을 적극 밀던 이란 강경파 혁명수비대의 영향력도 함께 올라갔다.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Qasem Soleimani)는 대규모 지상군을 이끌며 직접 전투현장을 지휘했고 고위급 장성만 39명 이상 전사했다. 이후 혁명수비대는 시리아를 발판으로 레바논, 이라크, 예멘, 가자지구에 진출해 친이란 강경파를 지원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다. 2015년 발발한 예멘 내전도 UAE∙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대리전 양상을 띄었다. 2018년 12월 사우디가 갑작스럽게 휴전안을 수락하기 전까지 내전은 3년 넘게 교착상태에 놓여 있었다. 예멘 내전에서도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은 이란을 이기지 못했다.

이처럼 이란의 패권이 급부상하고 있을 때 문재인 정부가 한-UAE 군사협력의 정당성을 따진 것이다. UAE군 부총사령관이기도 한 MbZ 왕세제는 최근 안보 위협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지했다. 영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왕세제는 실질적 군 최고통수권자이며 군의 현대화 개혁에 앞장서왔다.

두 나라의 특사가 오간 후 문 대통령의 UAE 방문 키워드는 국방협력에 맞춰졌다. 문 대통령은 왕세제와의 공식 행사에 앞서 UAE 전몰장병 추모공원에 참배했다. 와하트 알 카라마 추모공원은 예멘 내전에서 희생 된 100여 전몰용사를 기리기 위해 2016년 말 세워졌다. 두 정상은 양국 관계를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군사안보의 정례적 대화를 위해 외교∙국방 차관급 협의체를 신설했다. 마지막 날 문 대통령은 아크부대를 방문 격려했다. 국방협력의 부각은 방산 분야 협력의 강조로도 이어졌다. UAE는 인도, 사우디에 이어 세계 3대 무기 수입국이며 2011년 아크부대 파병 후 우리의 UAE 방산 수출 규모가 30배 가량 늘었다.

원전협력의 강조는 UAE 방문의 하이라이트였다. 한-UAE 관계는 2009년 원전 수주를 계기로 비약 발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시절 UAE를 4번 방문했다. 문 대통령은 MbZ 왕세제에게 바라카 원전의 성공을 알려 우리의 사우디 원전 수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사우디는 개혁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2040년까지 원전 16기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중동 내 우리의 최대 교역국인 UAE와 사우디는 아랍 산유왕정 가운데 가장 굳건한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문 대통령의 UAE 방문 4개월 뒤 사우디는 우리를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와 함께 100조 규모 원전 수주의 예비사업자로 선정했다. UAE 원전 수주 경험이 주효했다. 사우디는 올해 안으로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UAE 방문에서 군사안보와 원전 협력을 강조했다. 원전 수주를 위해 아크부대 파병과 군사협정 옵션을 강행한 이명박 정부와 차별성이 없는 행보다. 외교정책의 연속성이란 점에선 반가운 결정일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 키워드 중 하나가 탈원전이라는 사실은 UAE와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 산유왕정에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탈원전을 앞세운 정부가 해외에서 원전 수출에 열심인 모습을 의아하게 여긴다. 나아가 원전 건설 후 60여 년의 운영관리 과정에서 전문가∙장비∙부품이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UAE∙사우디아라비아의 개혁개방 정책: 새로운 협력의 플랫폼 등장

UAE는 이명박 정부가 원전 수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중동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였다. UAE의 바라카 원전 수주를 발판으로 사우디 진출까지 계획했다. UAE는 문재인 진보 정부, 그 정부의 탈원전 어젠다와 잘 어울리지 않는 나라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아랍 산유왕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이명박과 박근혜 보수 정부의 정책 전반을 이어갔다. 정부의 핵심 기조에 어긋나서 치러야 할 비용보다 현상유지의 혜택을 높게 여긴 듯하다.

정확한 계산은 아니었다. UAE와 사우디를 둘러싼 국내외 상황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시기와 상당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직면한 안보와 재정 위기는 최근 1-2년 새 급격히 악화됐다. UAE와 사우디는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부상, 연이은 패전과 전사자 속출, 카타르 단교와 아랍 산유왕정 내분, 셰일 업계의 에너지 시장 장악, 보조금 삭감과 과세 실시라는 전례 없는 변화를 겪고 있다.

따라서 UAE는 군사∙외교안보, 경제, 사회의 개혁개방을 전력질주에 가까운 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그 뒤를 사우디가 바짝 쫓고 있다. 아랍 산유왕정으로 이뤄진 걸프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 GCC) 6개국 가운데 UAE와 사우디의 개혁 행보는 독보적이다. 그런데 개혁의 속도가 빨라지자 국내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UAE와 사우디 개혁의 역사가 짧지는 않다. UAE는 2000년대 말부터 MbZ 왕세제, 사우디는 2010년대 중반부터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MbS) 왕세자 주도로 적극적인 군사안보, 투명한 외교, 산업 다변화, 개방 사회를 위한 국가 체질개선에 나섰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두 나라의 개혁은 분명 진행형이었다. 하지만 전력질주의 속도는 아니었다.

UAE가 사우디보다 먼저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MbZ 왕세제가 MbS 왕세자의 멘토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자이드 빈 술탄(Sheikh Zayed bin Sultan Al Nahyan) UAE 초대 대통령이 사망한 후 장남 칼리파 빈 자이드(Khalifa bin Zayed Al Nahyan) 왕세자는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삼남 MbZ는 왕세제 자리에 오르면서 개혁을 준비했다. 개혁개방이 절실한 분야는 군사안보였다. 2001년 9∙11 테러는 UAE 왕실에 경종을 울렸다. 테러를 감행한 급진 이슬람주의 테러조직 알카에다 대원 19명 가운데 15명이 사우디, 2명이 UAE 출신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은 외부의 적 미국뿐 아니라 미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사우디와 UAE 왕실 역시 공격 대상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2003년 알카에다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 한복판에서 총격전과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왕실을 정면 겨냥했다. 다음은 UAE 차례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MbZ 왕세제는 급진 이슬람주의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대내외에 공표했다. UAE는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작전에 적극 참여해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미국과 우방관계를 다졌다. 지금껏 은밀한 뒷거래로 유지해온 현상유지 전략을 탈피한 것이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참여가 시작이었다. 2011년 리비아에서 독재자 카다피(Muammar al-Qaddafi)의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대 유혈 진압 직후 NATO가 수행한 ‘오디세이 새벽 작전(Operation Odyssey Dawn)’에도 적극 참가했다. 같은 해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독재정권에 맞서는 자유 시리아 반군을 미국∙영국∙프랑스와 함께 도왔다. 이때부터 사우디도 다국적 연합전선에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다.

2014년 칼리파 빈 자이드 UAE 대통령이 건강 악화로 대외활동을 중단하자 MbZ 왕세제가 실질적 결정권자가 됐고 UAE군의 국제연합전선 참여는 더욱 활발해졌다. UAE가 연합전선에서 보여준 적극성과 용맹성 덕분에 미군과 NATO의 장성들은 UAE군에게 ‘작은 스파르타,’ ‘미국의 오른팔’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2014년 미국이 65여 동맹국과 함께 반ISIS 국제연합전선을 조직하자 UAE와 사우디가 또 참여했다. 2015년 시작된 예멘 내전에서 UAE와 사우디는 정부군을 지원하며 이란이 돕는 후티 반군에 맞섰다. 국제사회는 예멘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했고 미국과 영국은 UAE와 사우디 주도 아랍 연합군의 민간인 오폭을 막기 위해 첨단기술을 지원했다.

그런데 2017년 말부터 시리아 내전, ISIS 격퇴전, 예멘 내전의 전세는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장악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페르시아만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 자체개발 중형 잠수함 공개, 탄도∙순항 미사일 시험 발사로 패권 추구의 야심을 드러냈다. 예멘 내전에서 이란이 후원하는 후티 반군은 UAE와 사우디 본토를 향해 탄도 미사일 공격을 일삼았다. 사우디의 경우 100여 차례 이상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UAE와 사우디는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배치하고 있다.

UAE와 사우디는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서로를 가장 중요한 동맹 파트너로 삼았다. 2017년 두 나라는 수니파 아랍 산유왕정의 형제국 카타르와 단교하고 국경을 폐쇄했다. 카타르가 이란과 밀착행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카타르는 이란, 터키와 함께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 무슬림형제단을 후원했다. UAE와 사우디는 2014년 무슬림형제단을 테러조직으로 공식 지정한 바 있다. 두 나라의 카타르 단교∙봉쇄 결정에 대해 GCC 회원국 가운데 바레인은 같은 입장을, 쿠웨이트와 오만은 중립을 취하고 있다.

UAE와 사우디의 경제, 사회 분야 개혁개방은 더욱 파격적이다. 미국 발 셰일 혁명으로 재정 압박의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와 첨단공법을 이용해 셰일 혁명을 일으켰고 2010년대 초 UAE와 사우디는 셰일 업계의 채산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증산 정책을 폈다. 2015년부터 저유가 시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난립했던 셰일 업체들은 시장논리에 맞춰 경쟁력을 키워간 반면 아랍 산유왕정은 시장에서 밀렸다. 2018년 미국 원유 생산량이 사우디를 제쳤고 사우디의 잉여 생산능력은 힘을 잃었다. 풍부한 재정에 기반 한 무차별적 복지 정책과 ‘납세 없이 대표 없다’의 통치기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2008년 MbZ 왕세제는 ‘아부다비 경제비전 2030’을 수립해 석유의존 경제 탈피, 자국민 고용 확대, 민간부문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산업 다변화를 위해서 항공, 반도체, IT 분야의 육성을 강조했고 아부다비 경제부의 국장 40여명을 젊은 인재로 교체했다. 이어 2010년 ‘UAE 비전 2021,’ 2016년 ‘두바이 산업전략 2030’이 비슷한 기조로 발표됐다. 2016년 두바이 에미르이자 UAE 부통령 겸 총리인 알 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은 MbZ 왕세제의 재가 하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연합정부의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정부 규모의 축소와 젊은 여성 인재 영입이 핵심이었다. 신임 장관급 8명의 평균 나이는 38세였다. 그 가운데 22세의 청년부 장관, 29세의 초대 UAE 과학자 위원회 위원장을 포함해 5명이 여성이었다.

2017년 사우디 왕세자에 지명된 MbS는 한해 전 선포된 ‘사우디 비전 2030’ 추진에 박차를 가했다. 여성 축구장 입장∙여성 운전∙여성 창업과 콘서트 남녀 혼석이 허용됐고 35년 전 폐쇄된 영화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 국영회사 사우디 아람코의 해외 상장과 대규모 미래∙오락 도시 프로젝트도 발표됐다.

2017년 UAE와 사우디는 과세라는 정공법도 택했다. 비석유부문 재정수입 확충의 일환으로 에너지∙탄산 음료와 담배 특별소비세를 도입했고 1년 후 5% 부가가치세 제도를 실시했다. 올해 초 바레인도 합류했다. 2017년 GCC 6개 회원국은 부가가치세 통합 협약에 합의했으나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은 과세를 연기해왔다.

 

개혁개방에 맞춘 對UAE∙사우디아라비아 외교: 핵심 인재 육성의 업그레이드

최근 몇 년 사이 UAE와 사우디는 밀실 외교, 석유의존 경제, 보수 이슬람 체제의 과감한 탈피를 위해 전력질주 해왔다. 안보 위협과 재정 위기가 심화됐기 때문이다. UAE와 사우디는 과감하고 적극적인 군사안보 정책을 선보이며 국제연합전선에 참여했다. 전사자가 속출했지만 이란의 영향력 확산을 막지 못했다. 2017년 이후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장악은 확고해졌다. 이 와중에 카타르와 불화가 생겨 GCC 내분으로 이어졌다. 두 나라는 공공부문 축소, 첨단산업 육성, 젊은 인재 영입, 과세 실시로 탈석유 시대에 대비했으나 외부의 변화 속도는 더 빨랐다. 셰일 업계의 빠른 안정화와 함께 올해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전망이다.

게다가 군사∙외교안보와 경제 개혁이 사회 개방과 함께 진행되자 내부 저항이 따랐다. 개혁개방 정책에 투입될 젊은 세대와 여성 인력 충원을 위해선 열린 사회가 필수적이나 보수세력의 반발이 생긴 것이다. UAE 보다 더 보수적인 사우디의 경우 종교계의 반발이 매우 거셌다. 두 나라의 개혁 질주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역량 있는 참여세력과 확고한 지지세력이 절실하다. 바로 전체 인구의 절반을 훌쩍 넘고 어느 세대보다 글로벌 감각이 뛰어난 청년층이다. 35세 이하 청년 인구가 UAE는 65%, 사우디는 70%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먼저’ 캐치프레이즈를 외교 정책에도 적용해 국민 중심의 공공 외교를 강조한다. 사람 중심의 외교로 상대방 국민의 마음도 사로잡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민 중심 어젠다야말로 UAE와 사우디 개혁개방의 타겟 청중인 청년∙여성과 잘 맞아 떨어진다. 양쪽 모두 변화의 동력으로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보수 정부의 UAE와 사우디 정책이 우리의 경제 이해관계에만 초점을 맞추고 상대방을 기회 포착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비판은 늘 있어왔다.

UAE와 사우디가 개혁개방의 동력으로서 특히 공을 들이는 대상이자 개혁의 최대 지지세력은 여성이다. UAE는 2016년 정부 조직 개편에서 5명의 여성 신임 장관을 선발해 UAE의 여성 장관 수는 총 9명으로 늘어났다. 전체 여성 장관 비율이 30%에 달한다. 2018년 MbZ 왕세제는 연방평의회 의석의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한다고 발표했다. 연방평의회는 입법 과정에 참가하는 4년 임기의 심의 자문 기관으로 전체 40 의석 중 절반은 직접 선거로, 나머지 절반은 UAE의 7개 토후국 군주가 인구 비례에 따라 지명한다. 사우디는 2013년부터 준입법 기관 슈라위원회의 의석의 20%를 여성에게 할당하고 있다. 올해에는 리마 빈트 반다르(Reema bint Bandar Al Saud) 공주가 주미 대사로 임명되면서 사우디 첫 여성 대사가 배출됐다.

UAE와 사우디의 여성 인재 등용 정책은 문재인 정부의 성평등, 여성개발 정책과 닮았다. 문재인 정부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 설치,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성평등 임금공시제 정책은 UAE와 사우디의 여성에게 높은 공감을 사면서 여성 인력 육성과 사회진출 활성화의 노하우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어젠다는 UAE와 사우디 청년∙여성을 충분히 공감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을 국가 핵심 인재로 키울 실무 중심 교육∙연구 프로그램도 제공할 수 있느냐다. 우리는 이미 2010년부터 원전 수출 사업의 일환으로 두 나라와 경제발전경험 공유 프로그램(Knowledge Sharing Program, KSP)을 시작했고 한국과학기술원(Kore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Technology, KAIST)과 한국개발연구원(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이 후속 사업을 진행했다. KAIST는 2011년부터 UAE 칼리파 과학기술연구대학과 교육지원 협력을 이어왔고 KDI는 2013년 사우디 여성 리더십 연수과정 개설을 도왔다.

그런데 UAE와 사우디의 교육∙연구 환경은 최근 급격히 발전했다. 두 나라의 공격적인 인재 육성 투자 덕분이다. UAE에는 이미 미국의 뉴욕대와 MIT, 프랑스의 소르본대, 영국의 런던 비즈니스스쿨 분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두바이의 실리콘밸리로 알려진 IT 기업 자유무역단지 ‘인터넷 시티’는 토종 스타트업 배출로 유명하다. 지난 2년 간 중동판 우버 ‘카림’이 우버에, 중동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수크닷컴’이 아마존에 인수됐다. 첨단산업 지원을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이 주효했다. UAE와 사우디는 사적 자본이 넓게 확산된 구조를 갖고 있어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에 친화적이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회사들의 UAE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사우디 역시 UAE와 요르단을 통해 이스라엘 기업들과 협력 관계를 확장하고 있다. 사우디의 비전 2030 프로젝트에 이스라엘 출신 자문단이 깊숙이 간여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UAE와 사우디 젊은 세대의 1/3 이상이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긍정적으로 여긴다는 통계도 나왔다. 이란의 핵 개발 기술이 매우 높은 수준이란 점에서 두 나라의 원전에 대한 관심이 산업 다변화 측면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 UAE, 사우디는 이란이라는 공동의 적을 갖고 있다.

작년 문 대통령의 UAE 방문 후 한-UAE R&D 센터, KAIST-칼리파 대학 공동연구 활성화 계획이 발표됐다. 올해 사우디는 우리를 비전 2030 프로젝트의 전략적 파트너로 거듭 선언했고 KDI는 사우디 전략개발센터 자문을 준비 중이다. UAE와 사우디는 신산업 육성을 위해 왕실의 격에 맞는 첨단과학 분야에 높은 관심을 둔다. 새로운 분야는 복지 재정의 부담을 덜어주며 에너지 소비 수준을 낮춰주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아야 한다.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다. 식상하고 천편일률적인 KSP 프로그램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공급자 마인드로는 어렵다. 두 나라의 청년∙여성은 보조금 삭감과 납세까지 감수하며 개혁개방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니 출발점은 잘 마련됐다. 문재인 정부는 UAE와 사우디의 나라별, 분야별 개혁 성과의 차이와 변화를 구별해 두 나라의 청년과 여성이 개혁 정책을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직접적 도움이 되는 교육∙연구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신남방∙신북방 정책을 통한 외교 다변화로 4강 중심 외교를 넘어서자고 한다. 아세안∙인도 협력을 강조하는 신남방 정책, 유라시아 연계성을 내세우는 신북방 정책이 핵심이다 보니 중동 정책에 대한 구체적 그림은 없다. UAE와 사우디는 개혁개방의 전력질주로 우리에게 새로운 협력의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핵심 인재 육성의 업그레이드 정책으로 두 나라에 화답해야 하며 중동을 외교 다변화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장지향
장지향

지역연구센터

장지향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중동센터 선임연구위원이자 센터장이다. 외교부 정책자문위원(2012-2018)을 지냈고 현재 산업부와 법무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문학사, 정치학 석사 학위를, 미국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 분야는 중동 정치경제, 정치 이슬람, 비교 민주화, 극단주의 테러와 안보, 국제개발협력 등이다. 저서로 «최소한의 중동 수업» (시공사 2023), 클레멘트 헨리(Clement Henry)와 공편한 The Arab Spring: Will It Lead to Democratic Transitions?(Palgrave Macmillan 2013), 주요 논문으로 『중동 독재 정권의 말로와 북한의 미래』 (아산리포트 2018), “Disaggregated ISIS and the New Normal of Terrorism” (Asan Issue Brief 2016), “Islamic Fundamentalism” (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 2008)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파와즈 게르게스(Fawaz Gerges)의 «지하디스트의 여정» (아산정책연구원 201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