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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에는 ‘로콜’(Rockall)이라 불리는 영국의 주권 주장 하에 있는 매우 작은 특이한 모양의 해양지형이 존재한다. ‘절해고도’(絶海孤島)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리는 로콜은 영국, 아일랜드 등 로콜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연안국들이 수립하는 해양정책 등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로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로콜은 높이가 약 17m, 너비가 약 25m인 암석이다. 로콜은 영국으로부터 약 300km, 아일랜드로부터는 약 420km 그리고 아이슬란드로부터는 약 7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살 수 없는 로콜에 대한 기록은 이미 18세기의 저작물로부터도 발견된다. 공식적으로는 1810년 영국 해군 소속 ‘HMS Endymion’호에 의해 로콜이 발견되었고, 1811년 HMS Endymion호로부터 몇몇이 처음으로 로콜에 상륙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19세기 동안 영국은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을 펼친 적이 없다.

1955년 9월 18일 영국 해군 소속 Desmond Scott 소령 등 4명이 로콜에 상륙한 이후 공식적으로 영국은 드디어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은 영국의 마지막 영토 편입으로 기록되어 있다. (로콜을 영국의 영토로 편입하게 된 이유는 냉전시대인 1955년 당시 소련이 로콜을 악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는 이와 같은 영국의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나 그렇다고 로콜을 아일랜드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1972년 2월 10일 영국 의회는 ‘로콜 섬 법 1972’(Island of Rockall Act 1972)라는 법을 만들면서 로콜을 행정적으로 스코틀랜드의 일부로 편입했다.

영국을 제외한 그 어떤 연안국도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로콜은 영국과 아일랜드 등 영국 주변국 간 분쟁의 씨앗이 되어 왔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로콜이 인근 해저에 대한 광물자원 개발의 권리 그리고 인근 수역에 대한 어업의 권리 등을 주장하는 데 있어 어떤 일정 역할을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더구나 아일랜드 국적 어선이 로콜의 12해리 영해 내로 진입하여 어로활동을 펼치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아일랜드의 주장은 유엔해양법협약을 고려했을 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가?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는 ‘섬 제도’를 규율하고 있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1항은 “섬이라 함은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밀물일 때에도 수면 위에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121조 제3항은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이나 대륙붕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에 비추어 보았을 때, 로콜과 관련하여 두 가지 결론이 내려질 수 있다. 첫째, 로콜은 ‘섬’이다. 즉,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밀물일 때에도 수면 위에 있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육지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는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가 적용될 수 없는 간조노출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로콜이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임에는 분명하나 이러한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대륙붕을 가지지 못할 뿐이지 12해리에 이를 수 있는 영해조차 가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로콜의 12해리까지는 영국이 주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영국이 로콜의 12해리 영해 내에서 광물자원 개발의 권리와 어업의 권리 등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는 별다른 법적 걸림돌이 없다는 의미이다.

만약 아일랜드가 로콜을 영국의 영토로 인정한다면 영국이 로콜의 12해리 영해 내에서 아일랜드 국적 어선의 어로활동을 단속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하여 국제법적으로 항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로콜은 이미 영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로콜이 영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당연히 영국의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에 대한 아일랜드의 불만을 근거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약 아일랜드가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로콜을 자신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 포함시켰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있다는 것이 영국의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에 대한 아일랜드의 불만을 근거 없는 불평으로 만들고 있다.

아일랜드가 영국의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것은 로콜 인근 수역에서 어느 정도 어업의 권리를 확보하고, 영국의 아일랜드 국적 어선에 대한 법집행행위를 제한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아일랜드가 로콜 인근 수역에서의 아일랜드의 어업의 권리를 국제법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쉽지 않다. 굳이 국제법적 근거를 찾는다면 ‘전통적인 어업권’(traditional fishing rights) 정도를 제시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전통적인 어업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공식적으로 로콜에 대한 주권 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1955년 이전부터 아일랜드 국적 어선이 로콜 인근 수역에서 어로활동을 해왔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일랜드가 이와 같은 증거를 확보할 수 없다면 로콜이 비록 배타적 경제수역 또는 대륙붕을 가질 수 없는 암석에 불과할지라도 영국의 주권 하에 있는 로콜의 12해리 영해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

영국은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3항에 따라 로콜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도 유엔해양법협약 제121조 제3항에 따라 로콜이 12해리 영해는 주장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일랜드가 로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 로콜과 같이 매우 작고 아무도 살지 않고, 아무도 살 수 없는 암석조차 국제법적으로 12해리 영해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 문제이다.

 

* 본 글은 2020년 7월호 해군지에 기고한 글이며,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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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범
이기범

국제법센터

이기범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의 국제법센터 연구위원이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영국 에딘버러대학교 로스쿨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법학박사 학위 취득 후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광운대학교, 전북대학교 등에서 국제법을 강의하였다. 주요 연구분야는 해양경계획정, 국제분쟁해결제도, 영토 문제, 국제기구법, 국제법상 제재(sanctions) 문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