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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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정책연구원-KAIST 공동기획 세미나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유교: 반추와 재음미>

* 동아시아 3국, 자국 근대화 담론 구축 과정 속 새로운 과제 “유교를 어떻게 ‘문제화’할 것인가”
* 전문가 및 학자 14명, 한∙중∙일 근대화와 유교 관련 집중 토론 벌여

한국학연구센터 정은경

 

지난 11월 26일,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 한국학연구센터와 KAIST 경영대학이 공동 기획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유교: 반추와 재음미> 세미나가 열렸다. 연구원 2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세미나는 2개의 세션으로 구성됐다. 발표 및 토론자로 참석한 14명의 학자들은 한∙중∙일의 과거와 현재 사회, 그리고 각국의 유교 문화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토론을 벌였다.
KAIST의 김경동 교수는 기조 연설을 통해 “서구의 근대화 이론은 자신들의 경험을 이론화하여 전파하는 과정에서 후발사회의 관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담론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지금까지 서구가 독점해 온 근대화 논의를 동아시아 3국에서는 어떤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때, ‘유교’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한국학연구센터 김석근 박사 역시 “이번 세미나를 통해 한중일 3국의 근대화와 유교의 상호 작용 및 비교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 세션 별 발표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다.

◇ 1세션= “19세기 말 근대화와 유교”

건국대학교 신복룡 교수가 「19세기 한국의 근대화와 유교」를 주제로, 서울대 장인성 교수가 「문명사회∙메이지 계몽∙유교: 상업사회의 덕목과 유교」를 주제로, 그리고 서울대 양일모 교수가 「근대 중국과 유교의 곤경」 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신복룡 교수= “조선 망국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이완용 등과 같은 몇몇 개인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지배 계급 전반은 물론이고 그들의 사상 및 통치체계였던 ‘유교’에도 물어야 한다. 예컨대 『주역』이 『Theory of Change』로 번역되는 바와 같이 유교가 개혁과 변화의 논리를 담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19세기 가치 변동의 시기에 근왕사상과 중화주의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 조선 지배 계급의 유교는 분명 근대화의 장애 요인이었다. 또한 ‘신분제도로 인한 사회 경직성’, ‘노동 기피 및 천시로 인한 생산성 저하’의 측면을 볼 때, 19세기 말 새로운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데 있어 ‘양날의 칼’이었던 당대 유교에 대해 연민을 덧입힌 ‘회상성 기억 조작(retrospective falsification)에 빠져서는 안 된다.”

* 장인성 교수= “교역과 국제화의 맥락에서 상업사회와 근대국가를 실현하고자 했던 메이지 일본의 계몽 사상가들을 통해 일본 근대화와 유교에 관해 성찰하고자 한다. 19세기 일본의 개항과 국제화 과정에서 나타난 ‘자유 무역’ 개념은 메이지 시대 초기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완전히 변용시켰으며, 그들은 ‘상업 사회’를 수용하는 데 있어 유학적 원리를 동원하였다. 개항 전후 시기 학자인 요코이 쇼난(横井小楠)이 유학적 원리로써 교역 현상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그 예다. 쇼난에게 ‘교역의 도’는 천지간에 통용되는 보편적 원리, 즉 ‘천지 공공의 도’였으며, 이후 등장한 메이지 시대의 교역 사상은 기본적으로 쇼난의 이론에서 발전, 변형된 것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교역이 부를 증대시키는 교환의 자연적 원리’로 이해된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갖는다.

일본 근대화와 유교 간 관련성의 또 다른 특징으로, 일반적으로 메이지 계몽사상가들은 ‘상업사회=문명사회’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 욕망을 용인하는 한편, 이 욕망을 제어하는데 유학의 윤리를 교착시키려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자립, 자조, 근면’과 같은 덕목이 사회질서를 위한 도덕으로서 상정되었으며, 이것들은 유학적 덕목과 근대적 덕목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덕목은 서양 계몽 사상에서 들어온 개인의 윤리이기도 하므로, 오로지 유학의 덕목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우며, 따라서 유교 외에 당대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의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 양일모 교수=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은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미 세계적 규모에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주요 변수가 되었다. 또한 현대 중국에서 유교의 위상은 현 중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중국 정부는 문화적, 학문적 역량의 획득을 추구하는 Soft power에 관심을 기울여 유교를 대내외적 수요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한다.

20세기 전후 서양의 근대적 사유가 권위를 획득해 가는 과정에서, 유교는 근대와 양립하기 어려운 반(反)문명으로, 혹은 선진적 서양 과학과 민주의 실현에 장애가 되는 진부한 사상으로 치부되었으며, 변화하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위상을 새롭게 설정해야만 했다. 결국 새로운 교육 제도와 공화제 국가의 출현은 근대라는 시점에서 새롭게 기획되기 시작한 정치 사회적 제도 속에서 중국 유교에게 주어진 곤경이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유교의 위상은 쉽게 변하지 않았는데, 청조가 존속하면서 근대의 기획을 달성하고자 했던 20세기 초반, 근대 국민국가를 창출하기 위해 유교를 활용하고자 한 강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 형성을 위해 군인의 정신과 국민 도덕 양성 방안으로 유교가 활용되었던 일련의 작업들을 ‘근대의 유교화’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명명하고자 한다. 예컨대 캉유웨이가 유교를 국교로 삼고자 한 것(1921), 쑨원과 장제스가 국민국가 유지를 위해 유교 윤리를 국민혁명의 정신,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고자 한 것 등을 ‘근대의 유교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현재 중국이 문명으로 표상된 서양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서 다시 한 번 유교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시도들은 ‘탈근대적 유교 해석’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상파괴의 회의정신, 국가이데올로기화에 대한 경계와 같은 문제의 중압을 염두에 두고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 2세션= “현대 사회와 유교의 유산”

연세대학교 류석춘 교수가 「현대 한국사회와 유교 유산」을 주제로, 한양대 박규태 교수가 「현대일본사회와 유교」를 주제로, 마지막으로 연세대 조경란 교수가 「중국의 굴기와 유교: 유교를 어떻게 문제화 할 것인가」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류석춘 교수= “한국의 민주화 발전과 경제 성장에 있어 ‘유교적 가치’의 공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혈연에 기초한 기업인 삼성, 현대가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음이 그 예다. 유교적인 인간관계, 즉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연고를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가능하게 한 특수한 ‘사회 자본(social capital)’으로 설명할 수 있다. 또한 유교전통에 기초한 문화적 가치지향이 자본주의와 친화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로, 유교의 ‘효(孝)’ 윤리를 들 수 있다. 한국인들은 가족에 대한 의무로서 선대보다 향상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발전적이고, 집합적인 압력을 받는데, 이러한 도덕적 압력이 한국인들에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노동 윤리를 체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 박규태 교수= “일본 근대화와 유교 간 상관성을 낮게 측정한 장 교수와는 다른 시선으로 현대 일본과 유교를 바라보고자 한다. 현재 일본 사회의 『논어』붐과 공공철학 붐을 통해 유교 도덕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옴 사건’(1995)과 ‘3.11 대지진’(2011)을 겪은 후 일본에서 일어난 논어, 공공철학 붐은 공공성의 복권인 현대 일본의 요구를 반영하는 온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위기의식의 음화’라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다.”

* 조경란 교수= “중국이 유교를 활용하여 내세우는 소프트 파워 구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중국의 유학에 대해 얘기하기 앞서 유학-국가-지식인 간 관계를 따져보아야 한다. 현재 중국의 유학담론은 국가의 묵인과 비호 아래 유학이 ‘국가-지식-복합체’의 형태로 또다시 ‘문명중국’의 재구축에 자발적으로 동원되어 담론을 활성화한 결과로 봐야 한다. 작금의 중국(국가)은 자본의 에이전트에 다름 아니며, 지식인들은 권력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선택된 국가 이데올로기’인 유학을 대중화하는데 나서고 있다. 지금 ‘왜’ 유학이 다시 호출되고 있는가, 이는 현 중국의 유학 부흥이 자연 발생적인 것이 아닌 ‘국가의 선택’임을 드러내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