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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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에 격랑이 일고 있다. 과거에는 일 년에 한 번씩 몇 년에 걸쳐 볼 수 있던 변화가 한두 달 사이에 모두 등장했다. 미·중간 패권경쟁 하에서 미국의 공세적 접근이 전개되자 중·러의 협력과 대응이 강화되고 있다. 이참에 위상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태도 변화, 한·미·일 안보협력의 한 축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선택한 한국의 정부, 핵보유를 굳히려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리며 동북아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주변 정세의 안정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희망하는 한국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위기의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성을 지닌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기존의 정책을 과감히 수정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작금의 동북아 정세를 진단해보고 향후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 요인들을 식별해보며 이에 기초하여 우리의 대응 방향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동북아 정세의 지각 변동

최근 주목할 만한 동북아 정세로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적극 전개되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측면에서 급격히 부상 중인 중국을 막기 위해 미국 역시 공세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독자적 대응에 힘이 부치자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하고 있다. 둘째,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양국 간 역사 갈등이 경제, 외교, 국민감정 방면으로 확산되었으며, 출혈이 뒤따르는 경제전쟁 속에서도 어느 한쪽도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셋째, 최근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간 보다 긴밀한 연대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북·중·러 공조로 보기엔 이른 바 있지만, 미·중 경쟁이 격화되자,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의 약화를 들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해 동맹국으로서의 방위공약보다는 방위비 분담금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 역시 동맹 강화보다는 대북정책에 관심을 쏟고 있기에 주요 동맹 이슈에서 한미가 협력을 잘해나갈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된다.

미·중경쟁의 격화와 중·러의 대응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의 대미 도전은 공식화 되었고 미국 역시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이를 견제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중국의 도전을 마냥 받아주기만 했던 기존의 접근에서 벗어나 중국에 대해 보다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경제 부문이다. 미·중간 경제 분쟁의 출발은 관세와 실물경제 분야였다. 미국은 상당한 대중 무역 적자가 중국의 불공정 무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수차례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또한 중국의 대표적인 기술기업인 화웨이를 압박하고 있다. 국가 기간 통신장비의 안전은 물론이고 이란 경제제재 위반과 북한에 대한 기술지원을 예로 들며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압박하고 있다.1 중국은 버티기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경기 악화를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중국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배후에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계산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최근 들어 미·중간 무역 분쟁은 환율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관세부과 효과를 완화시키기 위해 1달러당 7위안이 넘는 저환율 정책을 전개하자 미국 재무성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게 된 것이다. 이미 중국 물품에 대해 고 관세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고 해도 추가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단은 마땅치가 않지만 향후 금융 분쟁으로 확대될 경우 세계경제의 대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2

미·중 경제 전쟁이 향후 어떻게 전개되며 어떤 결말을 맞이할 지는 아직까지도 불투명하다. 미중의 경제 전쟁이 지속되면 양국 모두에게 피해가 발생한다. 이 경우 공산당 지배체재를 유지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과 달리 내년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리해질 수 있다. 이러한 계산대로라면 올 하반기부터는 미국 측 압박 강도가 서서히 약해질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중국을 더욱 거세게 압박함으로써 표심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압박 조치가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미중갈등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일관계 악화

전통적으로 가깝고도 먼 이웃으로 불러온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한국의 외교안보에 커다란 도전을 가져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두 나라에 있어 역사문제는 협력의 장애가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기 공산권의 위협, 그리고 탈 냉전기 북한의 핵개발은 한·일간 안보협력의 동력을 제공했고 그간 협력을 꾸준히 발전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두 나라는 최근 들어 강제징용 문제를 기화로 경제전쟁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확정판결은 한·일 양국 관계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므로 일본 식민지배 당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피고인 일본제철은 유감을 표명하며 일본 정부와 협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3 이후 판결의 이행을 둘러싸고 양국은 팽팽한 견해 대립을 이어왔다. 금년 상반기 일본은 한국 측에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외교적 교섭을 요구했고4, 이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경제제재를 가해오며 한·일 관계는 악화경로를 걷고 있다. 한국 내에서는 반일감정이 거세지고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전개되고 있고, 이제는 일본이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교섭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8월 22일 한국 정부가 내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은 한일관계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질 것을 시사한다. 일본은 당장은 한국 정부의 결정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미국을 향해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해치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달하며 미국을 통해 한국을 압박하려는 행보를 취할 것이다. 이미 상황은 일본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의 결정에 강한 실망과 우려(strong disappointment and concern)를 표했다.5 동맹국의 의사결정에 실망과 우려를 표한 것은 이례적이며, 그것도 강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것은 한국 정부의 의사결정에 대한 미국의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더구나 공식 입장을 발표함에 있어 한국 정부라고 부르지 않고 문재인 정부(moon administration)로 지칭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불만을 제기한 것은 향후 한미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한·일관계의 악화는 북한의 핵위협에 대비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는 북한 위협에 대한 한국의 억제력 약화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한·일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며, 비핵화 협상이 진전을 이룬다 해도 일본의 대북 식민지배상 등을 적시에 활용하기 위한 한·일협력은 필요하다. 따라서 악화된 한·일관계는 향후 북한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서도 커다란 도전 요인이 아닐 수 없다.

북·중·러 관계 변화

미·중관계가 악화되며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7월 23일 중국과 러시아는 연합공군훈련을 하는 동중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독도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하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다. 미국에 대항하는 중·러의 공세적 대응이 한·미·일 협력의 약한 고리인 한국의 영공 침범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이나 러시아의 행보가 일회성이 아니라는 점이며, 미국에 대항하는 중·러의 협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중·러간 군사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협정이 곧 체결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6 그 향배에 따라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은 높아갈 것이다.

미·중관계가 악화되고 중·러간의 협력이 강화되면 북한에게 외교적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지난 4월 전격적으로 성사된 푸틴 대통령과의 북·러 정상회담과, 지난 6월 전격적으로 추진된 시진핑 주석의 방북처럼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문제를 대미 외교의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려 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북한으로서는 전통적인 줄타기 외교를 전개함으로써 실리를 최대한 확보하려 들 전망이고 이를 통해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는 외교적 기반을 확충하려 들 것이다.

이와 별개로 북한과 중국, 러시아 간 유대관계 강화도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이다. 지난 8월 16일 오후 베이징(北京)에서는 김수길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관 먀오화(苗華)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 정치공작부 주임과 회담했다. 주의를 요하는 것은 동 회담에서 “최고 영도자 동지들의 숭고한 의도에 맞게 두 나라 군대들 사이의 친선협조 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 발전시켜 나갈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이다.7 다시 말해 회담 자체도 6월 북중 정상회담에 기반한 것이고, 향후 북·중간 군사협력이 단순한 친선협조를 넘어서 높은 단계로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북·중동맹의 복원을 시사한 내용이다. 향후 우리에게는 새로운 근심거리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하고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지난 4월 25일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러 정상회담은 그리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북·러간 경제협력의 수준도 미미했고 핵문제에 있어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해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북·러간 관계강화는 외교적 고립 탈피하는 관점에서 볼 때 북한에게 소기의 성과를 가져다주었다.8 과거 북·러관계는 북한 핵문제로 인해 경색국면이 이어져 왔는데,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도 양자관계가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논의되고 있는 듯한 모습인데, 최근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원형이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임을 고려할 때 북·러간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선회할 경우 북한 비핵화 과정은 더욱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적 비핵화 해법이나 체제보장 문제에 있어 더욱 완고한 태도를 견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중·러의 밀착 가능성은 북한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커다란 도전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약화

미·중관계 악화나 중·러의 공세적 외교, 한·일관계 악화 등은 우리가 늘 목격해 왔던 일들이다. 하지만 한미동맹의 약화는 그간 경험하지 못한 일이며, 한국의 안보와 관련한 많은 우려를 야기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약화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야기되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제일주의 외교의 부작용에서 한미동맹의 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연합군사 훈련을 돈이 많이 드는 행사로 잘못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 과도한 방위비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9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주둔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한다.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질서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연합군사훈련은 이러한 한미동맹을 강력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초투자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돈이 많이 드는 행사로 왜곡하며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고 있다. 이는 동맹국인 한국의 실망을 낳는 동시에 북한에게도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비핵화를 하지 않고 버티기를 지속하다보면 한미동맹은 저절로 약화될 수 있다고 믿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 중심적인 대외정책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증진에 일차적 목표를 두고 있는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인해 한미관계나 대북정책 공조에 악영향이 발생한 것이다. 그 첫 출발은 대북제재의 완화 문제였다. 작년 9.19 평양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북한에 대한 제재완화 필요성을 제기했다가 국제사회의 반대에 직면했다.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뉴질랜드 등에서 대통령의 제안은 상대국 정상들에 의해 거부당했다.10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내 신뢰가 훼손되었다. 방위비 분담 협상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3년 이상의 장기계약으로 방위비 분담 협상을 마쳤어야 했다. 방위비 분담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요구를 고려할 때 1년 단위의 협상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임을 고려할 때 잘못된 협상이 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1년 단위 협상을 수용하며 방위비 분담액의 급격한 상승 압박에 노출되었다. 아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한·미 양국 모두 국내정치적 요인이 동맹 발전에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제일주의에 근거한 과도한 방위비 압박이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우선 입장과 같이 동맹에 대한 배려보다는 국내정치적 성과를 더욱 중시한다. 특히 한국이나 미국 모두 동맹을 중시해오던 원로 정치인들이 은퇴한 후 중심을 잡아줄 인물들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가뜩이나 불안정한 한미관계의 유동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겉으로는 빛 샐 틈 없이 튼튼한 동맹이 속으로는 멍이 들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한국에게는 최악의 외교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향후 한국 외교안보의 위험 요인

군비경쟁의 격화와 강대국 강압외교의 귀환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중국과 러시아의 미국에 대한 도전은 더 이상 외교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차원에서도 미·중간 경제협업구조를 고려할 때 전면전 상황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강대국 간의 치열한 노력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이 이미 미·중·러는 다음 세대의 미사일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기울이고 있고, 군비경쟁은 이미 촉발된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금년 2월 1일 중거리핵전력조약(INF Treaty)을 파기를 선언하며 강대국간 군비경쟁에 새로운 단초를 제공했다. 언뜻 보기에는 미국이 군비경쟁을 촉발한 것으로 보이지만, INF 조약은 오랫동안 존폐 논란에 휘말려 있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개발과 신형 크루즈 미사일 개발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를 미국은 INF 조약의 사실상 위반이라고 판단해왔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가 보유한 사거리 2000㎞인 순항 미사일 SSC-8(러시아명 노바토르 9M729)를 실전배치하고 있다며 INF 조약 준수와 동 미사일의 폐기를 요구해왔다. 이같은 미국의 요구를 러시아가 수용하지 않자 전격적으로 조약 파기를 선언한 것이다.11

미국의 INF 조약 파기에는 중국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INF 조약을 준수하며 중거리 미사일을 제한한 사이, 중국은 소위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 anti access area denial)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 그 대표적인 미사일이 DF(東風·둥펑)-21D이다.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동 미사일은 대함탄도미사일로서 사거리가 1800~3000km에 달하고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다. 또한 지대지 미사일로 전용 가능해 중국 본토에서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오키나와 등에 있는 주일 미군기지까지 타격할 수 있다. 또한 중국은 DF-26을 실전배치 했는데, 사거리 3000-4000km에 이르는 이 미사일은 미국령 괌을 공격할 수 있어 ‘괌 킬러’로 불린다.12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 개발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INF 조약을 파기한 후 중국까지도 포함된 새로운 조약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13 물론 중국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고 그 결과 미국은 새로운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해서 동아시아에 배치하려 들고 있다. 이미 미국은 다 영역 전투개념에 따라 사거리 700km 내외의 종심타격미사일(Deep Strike Missile), 사거리 1600km급의 전략타격캐논포병(Strategic Strike Cannon Artillery), 사거리 2500km급의 전략화력미사일(Strategic Fire Missile)을 개발 중에 있다. 중국보다 우수한 무기체계 능력을 토대로 중국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아래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중·러는 다양한 중거리 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체계의 개발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달성하려 들고 있다.

<표 1> 미·러·중의 미사일 군비경쟁 14

표 1_미•러•중의 미사일 군비경쟁

현재 추세를 고려할 때 이러한 군비경쟁에서 아무도 물러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전 세계적으로 특히 동아시아에서 군비경쟁이 재발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러한 군비경쟁 과정에서 강대국의 강압외교가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강대국간 편 가르기가 심해지며, 주변 국가들을 자기편으로 만들려 하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미국은 일본, 호주, 한국, 대만, 베트남 등을 포섭하려 들 것이며, 중국은 이들 국가에 대해 경고하며 미국의 노력을 무산시키려 들 것이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시도할 경우 이를 수용하는 나라와 수용하기 않는 나라에 대한 안보공약 수위를 차별화 할 수 있다. 반대로 중국은 이를 수용하는 나라에 대해 경제제재 등을 가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들의 선택에 따라 대미관계나 대중관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선택이든 그 나라의 대외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주변 각국도 다양한 득실을 고려하며 그들만의 선택기준을 만들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보유 고착화

강대국간의 경쟁이 거세질 경우 북한 핵문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 미·중·러 모두 서로간의 사활적 경쟁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며, 북한 핵문제는 관리 정도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북한은 이러한 정세를 적극 활용하며 핵보유를 고착화 하려 들 것이다. 자칫 미국이 이러한 북한의 핵보유 의도를 꺾지 못하고, 국내정치용 임시방편으로 일관한다면 지난 30년간의 비핵화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핵무기 카드를 내세워 미국과 협상에 성공하여 한미동맹을 저해하고 경제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데 있다. 북한이 한미연합군사훈련을 핑계로 지난 한 달간 고조시켰던 군사적 긴장을 멈추고 비핵화 실무협상으로 복귀하게 되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동결 거래나 그 밖의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미국은 그러한 우려를 사실무근으로 비판하며 여전히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15 내년 11월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

북한 핵문제가 주변 정세에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역내 강대국의 입장차에 기인한다. 미국은 역내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여 북한으로부터 비롯되는 핵무기 및 기타 군사적 위협을 해결하려는 입장이다. 반대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개발 자체를 달가워하진 않지만 미국의 역내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전략적 이점을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성공한다면 궁극적으로 한미동맹과 미국의 한반도 주둔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경쟁 중인 중국으로서는 북한 카드를 적극 활용해 역내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 한다. 국제사회의 과도한 압박으로 김정은 정권이 붕괴되거나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압박에 굴복할 경우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만일 이를 우려한 중국이 북한을 품에 두고자 보이지 않는 지원을 한다면 비핵화 협상은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뒷배경으로 미국과 보다 지루한 협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지쳐 양보를 하게 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물건너 가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한·미·일 안보협력의 위기

일반적인 한국의 인식과는 달리 미국이 생각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은 다목적이다. 미국의 경우 북한 위협 억제 못지않게 중국을 대상으로 한 한·미·일 안보협력을 전개하고자 한다. 또한 한·미·일 자체로 끝나지 않고 호주, 필리핀, 베트남, 싱가포르, 그리고 인도에 이르는 동맹 및 우방국 네트워크를 연결하고자 한다.16 그렇기에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이기주의적 행보, 아베 정부의 역사수정주의, 그리고 한국 정부의 남북관계 우선적 사고로 인해 한·미·일 협력에 위기 징후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자국우선주의는 동맹네트워크 강화와는 반대의 움직임이다. 동맹국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신 미국 주도의 네트워크에 동맹국들의 기여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일 협력의 당사자인 한국이나 일본 모두 미국으로부터 강도 높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받고 있다. 다른 국가들도 유사하다. 그렇다보니 안보협력이 활성화되기 보다는 내부적인 갈등만 쌓이고 있다.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는 한·일간 협력의 장애물이다. 그 결과 아베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순탄한 때는 한 번도 없다시피 되었다. 물론 한국의 대응이 매번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의도적으로 아베 총리를 외면했던 시기가 있었고, 현 정부 들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교섭 요청을 무시함으로써 상황이 악화된 측면도 존재한다. 역사문제만 빼고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을 공유하는 근접한 이웃 나라로서 관계가 나쁠 이유가 없는데, 여전히 남아 있는 역사문제에 대한 불편함이 양국관계와 한·미·일 안보협력의 장애가 되고 있다.

한국의 남북관계 우선주의 역시 한·미·일 안보협력의 장애로 등장하고 있다. 과거 한국은 북한의 현존하는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해 왔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북한의 핵능력과 첨단 재래식 능력을 고려할 때 이미 한국 단독으로는 북한을 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며 다른 한편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 해 온 것이다. 문제는 북한과의 대화가 시작된 작년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의 거부감을 반영해서 그런지 몰라도 한미일 안보협력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로 인해 한·미·일 안보협력은 더욱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3국간의 군사정보교류가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군사정보보호협정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을 통하지 않고 한·일간에 직접적인 군사정보교환이 가능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2014년 한·미·일 3국간에 체결된 정보공유약정(TISA)은 미국을 통해 군사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이고 법적 효과가 없는 양해각서 수준의 보장이었다. 그렇기에 정보소통의 한계가 노정되어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체결한 것이다. 하지만 한·일관계 악화와 한국 정부의 동 협정 종료로 인해 3국간 원활한 군사정보 교류에 적색등이 켜진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미·일 안보협력은 구호만 강화될 뿐 실질적으로는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북한 핵위협에 대해서도 중국의 위협에 대해서도 보다 강도 높은 결속력은 찾기 어렵다. 그 결과 중국과 러시아, 북한과 중국, 북한과 러시아 간의 협력 복원 조짐에도 효율적인 대비책 수립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림 1> 역내 정세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방향

그림 1_역내 정세의 도전과 한국의 대응 방향

 

한국의 대응 방향

현실을 직시해야

모든 정책은 정확한 상황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래야만 올바른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국들의 동향과 우리에게 가해질 청구서의 내용을 파악하고, 이 상황을 북한이 어떻게 활용하려 들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현실을 외면한 장밋빛 미래 예측으로는 다가올 도전에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역내 국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동북아 다자협력이나, 남북간 평화 경제나 통일을 이루는 길보다는 주변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과 북한의 독자노선을 경계해야 할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인식 하에서 선제적인 대응을 통해 한국의 입지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한국을 압박하며 이익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방위비 분담은 물론이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 그리고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우리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직설적으로 요구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중립적인 위치에 서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중국의 경제력, 심리전 등을 포함한 샤프 파워(sharp power)를 활용할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존재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 편이 되어줄 수 없다. 일본은 미국 편에 서며 한국을 압박하려 할 것이다 한국이 같은 편에 남아 있으면 협력을 중간자적 입장을 보이면 과감히 고립을 유도할 것이다. 만일 한미동맹이 약화된다면 외교적으로 고립된 한국은 일본에 대해 강도 높은 압박을 전개할 수 없다.

북한은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복원하며,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굳히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며, 미중관계의 악화에 따라 북한에게 유리한 여건이 조성중이다. 비핵화 협상은 북한에게 있어 핵보유 협상으로 전환될 것이다. 자신들이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단계적 비핵화와 조기 제재 해제를 미국이 수용하면 협상을 하고, 미국이 거부하면 중·러의 지원을 받으며 버티기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궁극적으로 핵을 보유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별다른 영향력이 없는 한국이 북한을 설득해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한국에 유리한 전략여건을 조성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가치에 기반한 국익중심의 실용외교를 전개해야

우리 외교의 원칙을 확인해야 한다. 최근 한국 외교에서 가치가 보이질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에 기반한 외교정책을 일관되게 가져가야 한다. 가치가 중요한 것은 어려운 외교정책 결정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원칙이 없는 나라의 외교는 정책 변동의 폭이 크다.

국익 중심의 외교를 해야 한다. 역내 정세가 자국이기주의로 흐를 때 자칫 우리의 국익이 주변부로 밀릴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경우 과도한 방위비 분담 부담, 전시작전통제권의 형식적 전환,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의 압력에서 당당히 우리의 국익을 관철시켜야 한다. 한중관계에서는 중국의 부당한 정치적 개입에 맞서 한미동맹, 북한 비핵화, 그리고 인권 증진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높은 대중 경제 의존도를 완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러시아의 경우 경제협력은 우리에게 효율적인 대러 설득카드가 되는 만큼, 실질적 경제협력을 앞세우는 효율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 일본과도 역사문제와 경제안보 협력을 분리하며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 해야 한다. 역사문제는 정부가 나서지 말고 민간에게 맡기고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는 협력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

북한은 철저한 비핵화 원칙을 견지하며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에 따른 남북경협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이벤트 중심의 남북관계는 북한의 이익에만 종사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이 끝내 핵을 보유하기 위해 단계적 비핵화를 고집한다면, 기다릴 줄 아는 정책이 필요하다. 대화를 위한 양보는 현 단계에서는 비핵화의 실패로 귀결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외교에서는 절대 해야 하는 일과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우리 국익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하되 미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 나름의 대중, 대러, 대일 외교를 강화해서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서 주변국이 한국을 필요로 해야 한다. 그래야 노골적인 압박을 피할 수 있다. 동북아 군비경쟁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되 그 대열에서 이탈해서 홀로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는 현실화 될 경우 한국 외교의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중국이 끝내 새로운 중거리 핵전력 조약 참여를 거부할 경우, 중거리 미사일 배치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모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수용한 이후, 북핵 문제에 기여하는 조건으로 가장 늦게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경우 스스로 조건을 설정함으로써 정책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접근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미공조를 강화해야 한다. 핵을 보유한 북한의 전략적 위상을 고려하면 한미동맹은 우리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 군의 독자적 능력으로는 북한 핵무기를 당해낼 방법이 없기에 미국의 확장억제는 한국 안보의 불가결한 수단이 되어버렸다. 동시에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도 미국의 강력한 외교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불필요한 불협화음을 빚어서는 안 되며 철저한 한미공조를 통해 북한에게 단일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철저한 북한 비핵화 공조를 해야 한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협박과 회유를 반복할 것이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에 흔들려서도 평화공세에 넘어가서도 안 된다. 북한의 의도를 읽고 차분하게 대응해 나가면 된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자칫 후세에 핵위협을 물려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비핵화 공조의 방향은 ‘대화를 위한 대화’가 아니라 ‘철저한 비핵화 원칙의 준수’가 되어야 한다.

비핵화가 어렵게 될 경우 억제력에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복원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연기, 그리고 확장억제 제고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김정은의 연말까지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는 내년이 되면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내년 초 마지막 협상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고 이때에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한다면 내년 여름 훈련부터는 과거 수준으로 복원이 필요하다.

한반도 정세가 어려워지는 것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조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급한 전작권 전환보다는 우리의 역량을 키우고 한반도 정세를 보아 안정시킨 후 전작권 전환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몇 년 앞당긴다고 나라의 운명과 국격이 크게 개선되는 것이 아닌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끝으로 확장억제의 경우 확장억제전략협의체를 나토의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유사시 미국의 핵무기를 우리 공군의 플랫폼에 장착시키는 핵공유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협의를 해 나가야 한다.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방위공약 약화 시 고민해야 할 문제지 현 단계의 고민은 아니다. 전술핵 재배치도 한국 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쉽지 않은 문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핵 옵션은 핵공유에 있음을 착안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준비를 병행해야 한다.

미국이 강도 높게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의 경우 기존의 분담원칙을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한미방위조약이나 주둔군지위협정의 내용을 고려할 때 방위비 분담은 주둔에 필요한 비용에 국한되는 것이 맞다. 미국 전략자산 전개비용이나 주한미군의 인건비를 한국이 부담하는 것은 적절히 않다. 현재 50억 달러 이야기가 미측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고 전해진다.17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스타일로 처음에 과도하게 높게 부르고 이를 낮춰감으로써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 셈법일 수 있다.

다만 전략자산 전개비용의 경우, 방위비 분담금이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한국이 일부 지원할 수 있는 별도의 근거조항을 둘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의 명칭과 같이 ‘배려예산’이라는 항목을 따로 둘 수 있을 것이다. 순전히 우리가 미국의 전력운용을 배려해서 지원한다는 개념이다. 인건비의 경우는 주한미군이 아니더라도 미국에서 어차피 부담해야 할 부분이기에 한국이 부담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신냉전 체제 하에서 한중, 한러, 한일 관계를 대비해야

주변국 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한중관계의 복원이 필요하다. 중국과는 북한 비핵화 접근법이나 평화체제 논의와 관련하여 공통점이 많은 상황이다. 중국의 긍정적 기여를 강조하며 한중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다시 재개된다면 최대한 천천히 동조해가며 한중협력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도 알려야 한다. 그것은 북한 핵문제다. 중국이 북한 핵문제에 기여하지 않고 북한을 지원하게 될 경우, 한국의 대중협력은 제한되고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음을 전달해야 한다. 이 경우 한국의 대중 투자를 가급적이면 많이 동남아 등으로 이전시킴으로써 중국으로부터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러시아와도 실질협력을 강화하며 북한 문제 해결에 최대한 협력해 줄 것을 요구해야 한다. 러시아는 중국과 다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자신의 권리로 생각할 수 있지만, 러시아의 경우 자신들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받기를 원하는 수준이다. 따라서 보다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러시아를 우리편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중립화 시켜야 한다. 핵문제에 있어서도 러시아의 입장은 중국과 차이가 있다. 지난 4월말 북러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러시아는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는 모습이다. 이 점을 활용하여 한·러간 협력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대로 한·일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양국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에서 밝힌 것처럼 역사문제와 양국 협력의 투 트랙 접근을 추진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북한 문제에 관한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제징용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일 당국자간 접촉을 통해 한국의 기업과 일본의 기업이 출자하고,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방식의 ‘1+1+@’ 방식의 해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를 이루어 내기 위해 미국을 먼저 설득하고 한미 공동의 목소리로 일본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면 양국 모두 서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합의가 11월 23일 이전에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을 철회함으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이 보다 원활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북한 위협과 주변국 정세를 고려한 자유민주국가의 평화협력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역내 군사적 신뢰구축 등을 한일이 함께 추진할 경우 중국이나 러시아의 참여도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북정책은 상호주의에 입각한 교류협력과 대북 억지력 유지를 병행해야

대화를 위한 대화는 북한만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작년의 교훈이었다. 비핵평화의 원칙을 확실히 수립하고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이끌어 내야 한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비핵화의 최종상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에 합의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이러한 포괄적 합의를 거부하고 끝내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한다면 이는 핵을 보유하기 위한 전술적 협상일 뿐이다. 따라서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이라는 우리의 비핵화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한다.

북한이 끝내 비핵화를 거부한다면 억제력을 강화하고 당분간 북한과의 협력 확대보다는 위기관리 차원의 접근을 해야 한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고,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는 것을 막고, 북한에게 비핵화 거부시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 있음을 경고해야 한다. 남북간의 갈등을 피하고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압박외교를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협력의 확대를 차분히 진행해야 한다.

남북간 기존합의의 이행도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에게만 유리하게 진행되고 있는 판문점 선언 군사분야 부속합의서의 경우, 조속히 GP 철거 등에 북측이 임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우리에게 유리한 감시정찰능력만 스스로 발목을 묶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신뢰구축 조치 이행이 없다면 군사분야 부속합의서는 우리의 국익을 해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는 군사분야 부속합의서 이행을 중단할 수 있음을 협상카드로 활용하여 북한의 추가적인 이행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인적 교류협력도 침묵을 깨고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에게 요구해야 한다.

연합군사훈련이나 비핵화 협상의 지연을 핑계로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억지주장을 받아주기 보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관되게 밀고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은 꾸준히 말을 바꿔왔다. 지금은 비난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여건을 조성하는 일이며, 한미동맹 강화, 한일관계 복원, 한중 및 한러관계 개선이 이루어지면 자연스럽게 한국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 북한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주변국 외교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면 역으로 한국은 더욱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수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본 문건의 내용은 필자들의 견해로 아산정책연구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About Experts

최강
최강

원장

최강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다.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국립외교원에서 기획부장과 외교안보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동 연구원에서 2005년부터 2012년까지 교수로 재직하며 2008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주연구부장을 지냈다. 또한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아태안보협력이사회 한국위원회 회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에서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국제군축연구실장,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국방현안팀장 및 한국국방연구 저널 편집장 등 여러 직책을 역임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기획부 부장으로서 국가 안보정책 실무를 다루었으며, 4자회담 당시 한국 대표 사절단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1959년생으로 경희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구분야는 군비통제, 위기관리, 북한군사, 다자안보협력, 핵확산방지, 한미동맹 그리고 남북관계 등이다.

신범철
신범철

안보통일센터

신범철 박사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재직중이다. 1995년 국방연구원에서 연구활동을 시작한 이래 국방연구원 국방정책연구실장(2008), 국방현안연구팀장(2009), 북한군사연구실장(2011-2013.6) 등을 역임하였다. 신 박사는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2009-10)과 외교부 정책기획관(2013.7-2016.9)을 역임하며 외교안보현안을 다루었고, 2018년 3월까지 국립외교원 교수로서 우수한 외교관 양성에 힘썼다. 그 밖에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실, 국회 외통위,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북한군 시크릿 리포트(2013)” 및 “International Law and the Use of Force(2008)” 등의 저술에 참여하였고, 한미동맹,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학술지와 정책지에 기고하고 있다. 신 박사는 충남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서 군사력 사용(use of force)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강재광
강재광

연구부문

강재광은 아산정책연구원 인턴이다.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하였고, 공군 통역장교로 임관하여 복무하였다. 현재 콜럼비아대학교에서 국제학 석사 과정을 수료 중에 있다.